소설리스트

30화 (30/75)

#030화

‘나…랑 사장님이 원수라고?’

뭔 황당한 말인가 싶어서 사장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지만, 사장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거릴 뿐이었다.

“헛소리지, 뭘 신경을 써?”

“그, 그런 거겠죠?”

어쩐지 무시하고 넘기기엔 영 찜찜했지만 그렇다고 그 손님을 다시 불러 따져 물을 수도 없었다.

문을 열고 확인했을 때 그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오늘 아침 납골당에서부터 서점, 그리고 방금 전 상황까지 복잡하고 심란한 마음에 단전서부터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

“뭔 일 있어? 너 오늘 좀 이상하다?”

사장이 새로 만든 호두 버터 타르트를 내오며 물었다.

나는 푹 숙였던 고개를 들고 말했다.

“실은 오늘 어머니 납골당에 갔었는데… 유골함이 텅 비어 있었어요. 누가 어머니 유골을 가져간 거 같아요.”

“뭐???”

“뭐라고요???”

사장과 미고가 너 나 할 거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와씨!!! 누가 그런 미친 짓을 해?”

얼굴이 달아오른 미고가 입에 한가득 우물거리던 빵을 도로 손에 뱉었다.

“형….”

사장이 한 손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그럼 혹시 어머니 유골을 훔쳐간 게….”

“푸에르 짓인 거 같아요. 이쯤 되니까 어머니가 정말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신 건 맞는지… 그것도 의심스러울 지경이에요.”

사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동안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사장이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자세히 보니 어머니의 만년필이었다.

“아까 지팡이 수리점 다녀왔어. 내가 빨리 좀 수리해 달라고 닦달했지. 받아.”

나는 고마운 마음을 희미한 미소로 대신하고 만년필을 재킷 안쪽에 고이 담았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저 이만 가 볼게요.”

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고는 말없이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사장은 집에 가서 먹으라며 빵을 잔뜩 싸 주었다.

집에 가는 버스 안, 운 좋게 빈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데 낯익은 사람이 버스에 타는 게 보였다.

최선유 대리님이었다.

“최 대리님, 안녕하세요.”

회사 밖에서 그를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어쩐지 사람이 달리 보였다. 특유의 주눅이 든 표정은 비슷했지만.

최 대리는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인사를 받았다.

서로 다른 정류장에 내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는 나와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기 위해 버스 버저를 눌렀다.

“이 동네에 사세요?”

내가 어색한 정적을 깨며 물었다.

“네, 2개월 전에 이사 왔어요. 해 인턴은 이 동네 오래 살았어요?”

“네, 중학교 때부터 쭉이요.”

“오래 살았네요. 하하.”

이후 대화는 다시 끊겼고, 어색함을 메우기 위한 우리 둘의 발걸음은 조금씩 빨라졌다.

‘이쯤에선 따로 가겠지?’

골목길이 나올 때마다 살짝 기대를 했지만, 최 대리와 가는 길이 포개지듯 똑같았다.

‘뭐야? 이렇게 근처라고?’

집에서 5분 거리인 편의점까지 다다랐을 때가 돼서야 최 대리가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여기서부터 전 저쪽 골목으로 가요.”

“전 이쪽 골목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가 고개를 꾸벅 숙이자, 최 대리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잘 가요.”

편의점을 기점으로 세 갈래가 난 골목길 가운데 서서 우린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최 대리의 뒷모습을 확인하고 나도 내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발에 무언가 물컹한 것이 밟히는 느낌이 났다.

“윽…!!”

고체 젤리를 밟는 기분이었는데 발밑을 확인하니 형광 노란색 몸통에 보라색 점이 촘촘히 박힌 애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것도 세 마리나!

‘아! 깜짝이야! 이게 왜 여기 있지?’

구두 굽으로 애벌레 몸통을 으깨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촉감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난 미끄러지면서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잠깐! 저건 그때 진우 몸속에 들어갔던….’

분명 본 적이 있었다. 이전에 진우의 몸속으로 들어가 증오를 부추겼던 바로 그 벌레였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애벌레는 각자 세 갈래 길로 흩어져 기어가기 시작했다.

‘안 돼! 잡아야 돼!’

내가 손 쓸 새도 없이 애벌레들은 점점 속도를 높였다. 곧 사람이 뛰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뭐가 저렇게 빨라?!’

각기 다른 골목으로 흩어지는 바람에 뭐부터 잡아야 할지 막막했다.

총 세 갈래의 길, 맨 왼쪽 골목엔 최 대리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보였고, 가운데 길엔 교복을 입은 중학생 남자아이가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맨 오른쪽 골목엔 30대로 보이는 남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하아…. 어떡하지???”

난 순간적으로 세 갈래의 길에서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결국 최 대리의 뒤를 쫓아서 뛰었다.

“최 대리님!!!”

애벌레는 벌써 최 대리의 발꿈치까지 가 있었다. 애벌레는 순식간에 그의 등을 타고 올라가더니 귓구멍 속으로 그 큰 몸을 욱여넣었다.

“헉…!”

나는 허겁지겁 그를 멈춰 세웠다.

“최 대리님!!! 잠깐만요!!”

황급히 최 대리의 얼굴을 확인하니, 동공이 흐려지면서 관자놀이에서 이마를 지나는 혈관이 두드러지며 불룩거렸다.

“괜, 괜찮으세요??”

잠시 후 최 대리는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헐레벌떡 달려온 날 의아한 눈으로 보며 물었다.

“해그냥 씨, 왜 그래요?”

“저… 그게… 괜찮으신 거죠?”

난 최 대리에게 뭐라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하면서도 그의 옷소매를 꽉 붙들었다.

“최 대리님, 우리 집에 가서 시원한 맥주 한잔하실래요?”

갑작스러운 내 제안에 최 대리가 양손을 휘휘 저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뇨. 죄송한데 집에 가서 좀 쉬고 싶어서요.”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지.

“아니면 여기 근처에 진짜 맛있는 치킨집이 있거든요. 여기 이사 오신 지 두 달밖에 안 됐으니까 모르실 거 같아서요. 거기가 진짜 동네 주민들밖에 모르는 숨은 맛집이거든요! 제가 소개해 드릴게요.”

“아…. 말씀은 감사한데 오늘은 그냥 집에 갈까 해요. 대신 다음에 꼭 소개해 주세요. 맛있다는 치킨집이요. 여러모로 신경 써 줘서 고마워요.”

인턴인 나에게도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는 그였지만, 이미 애벌레에게 먹힌 그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제가!!! 그… 고민, 고민이 있어서 그래요. 부탁드릴게요.”

“고민…이요?”

최 대리는 고민이라는 말에 되레 걱정 어린 눈으로 날 보았다.

“혹시 회사랑 관련된 일인가요?”

“네! 맞아요. 회사 일이에요.”

결국 마음이 약한 최 대리는 내 제안을 수락했다. 난 그를 데리고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최 대리님, 죄송한데 맥주랑 안주 좀 골라 주시겠어요? 저 전화 한 통만 하고 올게요.”

난 급히 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머릿속엔 다른 골목으로 달려간 애벌레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몇 번의 통화 연결음 끝에 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진우야!! 나야, 나 좀 도와줘!”

“너 왜 그래? 뭔 일 있냐?”

진우는 엊그제부터 경찰 업무에 복귀했다. 그는 애벌레가 몸에 들어간 이후의 상황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진우가 정신을 차렸을 땐 복수를 계획했던 개두식과 황대찬은 모두 교도소에 있었다.

순수한 건지 뭔지, 진우는 이번 일을 계기로 권선징악을 더욱 신봉하게 되었다고 천진하게 말했다.

“진우야! 나 지금 우리 집 근처 편의점이거든? 근데 이 근방에서 뭔 일이 생길 거 같아. 아니, 무슨 일이 이미 생겼을지도 몰라.”

진우는 내가 당최 뭔 말을 지껄이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야, 너 술 마셨냐?”

“그런 거 아니야! 지금 설명할 시간이 없어. 그니까 빨리 여기로 와!”

“참나. 뭐래? 나 이미 너네 집 근처야. 복귀 기념으로 치맥이나 하려고 했는데 애가 쓸데없는 소릴 하네?”

“이 근처라고? 잘됐다. 빨리 와! 편의점을 기준으로 좌우 두 길을 다 확인해야 된다. 꼭!!!”

“아까부터 자꾸 골목길은 왜! 알아듣게 설명을 좀 해.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그게… 설명을 하기가 좀 복잡해서 그래. 그니까 잔말 말고 부탁 좀 들어줘.”

진우는 어이가 없는지 ‘미친놈, 뭐라는 거여?’ 불만 어린 말투로 중얼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난 컵 라면 코너에서 한참을 멍하게 서 있던 최 대리를 불렀다. 확실히 겉으로 멀쩡해 보일 뿐 하는 행동이 정상은 아니었다.

‘진짜 뭔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불안한 마음에 진우에게 문자로 골목길에 꼭 가 보라고 재차 당부했다.

나는 혹시 몰라 최 대리를 이끌고 남은 골목을 대충 살핀 후에야 집으로 향했다.

그땐 미처 몰랐다. 골목길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 줄은.

***

지금부터 이야기는 30대 남성이 들어갔던 맨 오른쪽 골목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그 남자는 한 여자의 뒤를 쫓는 중이었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는 단출한 정장 차림에, 귀에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집에서 엄마가 떡볶이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더욱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남자는 여자의 팔을 세차게 잡아당겼고, 옆으로 작게 난 골목 어귀로 그녀는 속절없이 끌려 들어갔다.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조차 삼킨 그녀의 입을 두툼하고 거친 손이 틀어막았다.

“놀라지 마. 나야.”

“오… 오빠?”

남자의 손바닥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간지러운 진동을 내며 울렸다.

애벌레에 먹힌 남자의 눈동자가 염소의 것처럼 가늘고 길어졌다.

“그니까… 내 연락을 왜 씹냐고. 어? 니가 내 연락을 씹으니까….”

남자는 여자의 뒤를 쫓던 내내 왼손에 쥐고 있던 칼을 꺼내서 주저 없이 여자의 복부를 찔렀다.

칼은 생각보다 깊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칼을 조금 빼서 다시 한번 힘을 주어 세게 찔러 넣었다.

“…내가 기분이 좆 같잖아.”

여자는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남자는 개의치 않고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아서 목 뒤로 잡아당겼다.

여자의 고개가 젖혀지고, 목이 팽팽하게 늘어나면서 남자와 눈을 맞췄다.

붉게 충혈된 두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왜… 왜 그래. 그러지 마…. 제발.”

흐르는 피가 흰 블라우스를 적시며 번졌다.

남자는 서랍장을 뒤지는 사람처럼 다시 한번 칼로 복부를 헤쳐 놓았다.

피가 빠져나간 여자의 몸은 벽에 기대지도 못하고 앞으로 고부라졌다. 남자는 여자의 하얀 뒷덜미를 보고 피식 웃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잖아?”

남자는 여자의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고, 골목 깊숙한 곳으로 옮겼다.

잘 나오지 않는 사인펜처럼 핏자국이 선을 그었다.

그때 골목길 틈 사이로 남자 서너 명이 술에 취한 채 어깨동무를 하고 흥얼거리며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피가 묻은 옷을 배낭에 집어넣고, 골목을 나왔다.

그가 골목에서 사라지고, 정확히 3분 후에 내 부탁을 받은 진우가 현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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