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75)

#031화

다행히도 진우는 내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이씨! 이 자식은 골목을 살피라 마라, 이상한 걸 시키고 있어! 찜찜해서 무시하지도 못 하겠고… 암튼 이따 보기만 해.”

진우는 투덜거리면서도 편의점 옆으로 난 골목을 순찰하듯이 어슬렁거렸다.

처음에 진우는 여자가 쓰러져 있는 골목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경찰 일을 하면서 생긴 촉일까. 어딘가 싸한 기분에 가던 길을 멈춘 그는 천천히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 잠깐….”

어두워서 무언가 바로 보이진 않았다. 암순응에 적응한 시야 속으로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저게 뭐지?’

남의 집 벽과 벽 사이에 비좁게 만들어진 골목으로 진우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라면 국물인지 모를 시커먼 자국이 보였다. 근처에서 쇠 비슷한 피비린내가 났다.

바닥의 자국을 따라 일곱 걸음 정도를 더 걷고 나니 그제야 바닥에 구겨져 있는 여자가 보였다.

“헉……. 이런 시발!”

경찰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순간은 도통 익숙해지는 법이 없다. 무거운 추가 심장에 매달려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저기 괜찮아요? 정신 좀 차려 봐요!!!!”

진우는 119에 신고 후, 상처 부위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수그렸다.

엉망이 된 복부의 상처를 보고 진우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맥박을 확인하려던 찰나 사라져 가는 의식을 붙잡고 있던 여자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조금만 버텨요. 곧 구급차가 올 거예요!”

“엄마가…….”

말이라기보다 가느다란 호흡에 가까웠다. 직감적으로 피해자에게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음을 느꼈다.

진우는 이런 상황에 가장 중요하고 미룰 수 없는 질문을 던졌다.

“누가 이런 거예요??”

진우는 간절히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결국 여자는 말을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하아…. 젠장….’

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더 이상 맥박이 뛰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진우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차분하게 여자의 소지품들을 확인했다.

가방 안에는 지갑, 휴대 전화, 화장품이 담긴 파우치랑 생리대가 들어있었다.

‘살해 현장이다. 피해자는 27살, 이름은 이주희. 소지품이 그대로인 것을 봐서 금품이 목적인 범행은 아니다. 성폭행 흔적도 없다. 원한 관계가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칼로….’

진우는 휴대 전화를 들어 마지막 통화 목록을 확인했다. 엄마였다.

‘죽기 직전 피해자는 나에게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진우는 짧고 굵은 숨을 쉬고 나서 전화를 걸었다.

휴대 전화 너머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와다다 들렸다.

“왜 이렇게 안 와? 떡볶이 다 불겠다. 어디쯤이야? 늦으면 먼저 먹는다!”

“여보세요.”

딸에게 걸려온 전화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 엄마가 경계하며 물었다.

“누구세요? 이거 우리 딸 핸드폰인데.”

진우가 경찰이 되고 나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이거였다. 유가족에게 피해자의 죽음을 알리는 일.

피해자의 마지막 말인 ‘엄마가….’가 아니었더라면 분명 본인이 안 하고, 추후에 후배한테 시켰을 일이었다.

평생 빈혈이라곤 몰랐던 진우지만, 뇌 속 혈관이 조여지며 찰나지만 앞이 시커메졌다.

***

진우가 살인 현장에 있을 무렵, 난 최 대리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집에 진우 외에 다른 사람을 들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손님맞이라고 해 봤자 편의점에서 사 온 안줏거리와 맥주를 상에 늘어놓는 것밖에 할 게 없었다.

난 곁눈질로 최 대리의 안색과 행동을 살폈다. 아직까진 평소 모습과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었다.

쭈뼛거리며 주변을 살피던 최 대리가 맥주를 홀짝거리며 물었다.

“해그냥 씨, 고민이 뭔데요.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해요.”

“아…. 그게 뭐냐면요.”

있지도 않은 회사 고민을 만들어 내려니까 절로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자잘한 업무 스트레스야 있었지만 일은 대체로 할 만했다.

팀 내 진상을 담당했던 부장과 차장이 사라진 후로 회사 분위기는 전과 비할 바 없이 쾌적해졌기 때문이었다.

“음, 그게… 뭐랄까. 좀 외로워서요.”

하고많은 고민거리 중에 외롭다가 뭐냐고. 난 막 내뱉은 외롭다는 말이 낯 뜨거워서 뒷목을 긁었다.

“그럴 때가 있죠. 충분히 이해해요.”

민망해하는 나와 달리 최 대리는 내 마음을 알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동네고 하니 종종 봐요.”

최 대리와 나는 오가는 대화 사이에 난 빈틈마다 잔을 부딪쳤다.

어색함을 떨쳐 버리려고 내 주량보다 많이 마신 탓에 순식간에 잠이 쏟아졌다.

최 대리보다 먼저 잠들면 안 된다고 끝없이 되뇌었지만, 어느덧 난 침대에 한쪽 팔을 괴고 잠이 들고 말았다.

ㅡ찰싹.

ㅡ찰싹. 찰싹.

일정한 패턴을 두고 지속적으로 나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무의식 중에 긴장을 해서 깊게 잠을 이루지 못했던 터였다.

소리가 나는 주방 쪽으로 향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ㅡ찰싹.

ㅡ찰싹. 찰싹.

손뼉을 치는 소리 같지는 않았고, 뺨을 때리는 거에 더 가까운 찰진 소리가 났다.

“최 대리님?”

싱크대 밑에서 최 대리가 자신의 뺨을 세차게 갈기고 있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그의 얼굴은 이미 붉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최 대리님! 뭐 하세요? 아니… 이게 무슨!”

최 대리는 최면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초점 없이 풀린 눈을 하고 자신의 뺨을 치고 있었다.

최 대리는 마치 다른 사람에게 빙의라도 된 것처럼 전혀 딴판의 사람이 돼서 욕지거리를 했다.

“이 병신 같은 새끼야! 너 면상 볼 때마다 시발 기분 좆 같아진다고.”

난 애벌레 때문에 기어코 무슨 일이 생기나 보다, 직감했다.

“키키키킥! 이런 새끼는 명도 존나 길다니까요?”

최 대리가 악에 받쳐서 쏟아 내는 말을 듣는데 어쩐지 들어 본 적이 있는 어감과 말투였다.

‘아…. 이건 나 부장이랑 계 차장이 최 대리님한테 늘 하던 말이잖아….’

지금 최 대리는 나 부장과 계 차장의 역할이 되어 자기 자신에게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발작에 가까운 그의 행동에 소름이 돋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1인극의 주인공처럼 한참 동안 분노를 내뿜던 최 대리가 다시금 자신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부어오른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최 대리님! 그만하세요. 제발요….”

놀란 내가 최 대리를 말리기 위해 그의 팔을 붙들었다. 팔을 움직이지 못하자 최 대리는 벽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쿵쿵. 말리는 내 몸도 벽에 같이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막무가내로 미쳐 날뛰는 최 대리를 혼자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만하세요. 제발요. 제발….”

나는 거의 울기 직전의 목소리로 애원했다. 대체 애벌레가 그에게 어떤 증오를 부추긴 것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어째서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해치는 거지?’

점차 내 품 안에서 과격한 행동이 잦아든 최 대리는 아이처럼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찢어진 이마에서도 피가 흘러 콧등을 타고 떨어졌다.

엉엉 울던 최 대리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내가 싫어…. 나는 병신이야…. 나 같은 건 죽어야 돼.”

나는 그제야 최 대리가 자신을 그토록 못살게 군 이유가 감이 오기 시작했다.

‘자기혐오.’

애벌레는 최 대리 안에 들어가 곪아 터지기 직전인 상처를 톡 하고 건들었다.

악랄한 괴롭힘을 오랜 기간 견디며 그의 안에 움튼 병이었다.

최 대리는 당하기만 하는 자신이 견딜 수 없이 한심하고, 죽고 싶을 만큼 싫었다.

언제부터인가 가해자들보다, 당하기만 하는 병신 같은 자기 자신이 더 혐오스러웠다.

마법으로 복수를 했고, 그들을 회사에서 내쳤지만, 결코 최 대리가 스스로 이룬 복수는 아니었다.

그들이 눈앞에서 사라졌음에도, 그들이 만든 내적 상흔은 여전히 유효하게 최 대리를 괴롭혔다.

가해자의 처벌이 곧 피해자의 온전한 회복을 뜻하진 않았다.

상처를 회복하는 건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었으니까.

난 서럽게 우는 최 대리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며 말을 꺼냈다.

“나 부장이나 계 차장 같은 부류의 인간들 말이에요. 누군가를 짓밟지 않고는 못 견디는 인간들이에요. 언제나 다른 사람을 혐오하는 것으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고요. 거기에 최 대리님의 잘못은 없어요.”

내 말에 최 대리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제가 약해 빠져서 그래요.”

남을 때리는 것보다 자학이 더 쉬운 사람, 최 대리가 그랬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누구나 반격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맞서 싸우거나 되받아치지 못하고, 끝내 당하고야 마는 그런 사람도 있다.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차마 다른 사람에게 표출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게 겨냥하는 사람, 최 대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최 대리는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혼절하듯 잠들었다.

나는 여전히 피가 맺혀 있는 최 대리의 이마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

애벌레는 최 대리 안에서 몸집을 키우면서 종국에는 그를 잡아먹을 것이었다.

‘내일 날 밝으면 바로 카페로 데려가야지.’

난 사장이 진우에게 먹였던 빨간 젤리를 떠올렸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늦은 시각, 진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제야 진우에게 했던 부탁이 떠오르면서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라는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진우가 다짜고짜 성질을 내며 물었다.

“야!!! 너 어떻게 된 거야?”

난 진우가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서 재차 물었다.

“그건 내가 물어볼 말인데? 어떻게, 골목은 확인했어?”

“야…. 너 어떻게 알았냐고. 그 골목에서 사고가 날 거라는 거.”

진우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사고? 무슨 사고가 났는데?”

잠깐이었지만 진우가 말하는 사고가 무엇일지 가늠이 되질 않아 불안한 마음에 재촉하듯 물었다.

“뭔 사고냐니까?”

“살인 사건. 사람이 죽었다고.”

“뭐…?”

진우의 말을 듣자마자 심장이 요동쳤다. 살인 사건이라니.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설마 했지만, 내 우려보다 더 극단적인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다.

“진짜 사람이 죽었단 말이야?”

“그래. 그래서 그 골목에서 살인 사건이 터질지 네가 어떻게 알았는지가 중요해.”

“하아…. 그게… 그쪽 골목으로 남자가 걸어가는 걸 봤어.”

차마 진우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말한다 한들 그가 믿어 줄 리도 만무했다.

“말이 되는 소릴 해. 남자 뒤통수만 보고 그 사람이 사람 죽일 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거야? 너 뭐 신기 들렸냐?”

속이 부글부글 끓는지 화를 억누르는 진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신기는 아닌데… 그거랑 얼추 비슷해.”

“뭐 인마?!! 야!!!”

진우는 갈수록 황당한 말만 늘어놓는 나에게 씩씩대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범인은 잡았어?”

난 긴장한 채 진우에게 물었고, 진우는 자신이 겪은 상황을 내게 이야기해 주었다.

“범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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