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화
ㅡ띵동. 띵동.
중년의 여성이 긴장한 듯 멀찌감치 신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세요?”
“택배 왔습니다.”
“잠시만요.”
현관문 바로 앞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진우는 그녀에게 거실 안쪽으로 들어가 있으라며 손짓했다.
진우는 피해자 이주희의 집에 있었다. 진우가 천천히 현관문을 열었다.
문틈 사이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검은색 배낭을 멘 남성의 번뜩이는 눈동자가 보였다.
남자는 문밖에서 들렸던 중년 여성의 목소리와는 달리, 건장한 체구의 진우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멈칫거렸다.
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태연하게 손에 들고 있던 작은 택배 상자를 건넸다.
“여깄습니다.”
서둘러 내빼려는 남자의 팔목을 진우가 재빠르게 낚아챘다.
“잠시만요. 이거 보니까 601호가 아니라, 201호 거라고 돼 있는데요?”
남자는 당황해하며 상자에 적힌 주소지를 확인하고는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아, 제가 잘못 배달을 했네요. 죄송합니다.”
남자는 도로 상자를 받아서 가려고 했지만, 진우는 여전히 그의 손목을 꽉 쥔 채 놓아주지 않았다.
“저, 이것 좀 놔주세요.”
“야……. 네가 죽였지?”
그는 택배 기사가 아니었다. 의심을 피하고자 다른 집 앞에 놓여 있던 아무 상자나 들었을 뿐, 그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진우의 말에 순식간에 얼굴이 잿빛으로 변한 남자가 거칠게 팔을 뿌리치며 현관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동시에 진우가 반대 방향으로 문을 세게 당기면서, 남자는 현관문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남자는 황급히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들어 가로 방향으로 세게 그었다.
“시발아, 너 뭐야!”
잠시 뒤로 물러났던 진우가 칼을 든 놈의 손목을 비틀어 잡고 벽에 세게 내리쳤다.
남자의 주먹에 힘이 풀리면서 칼이 신발장에 쨍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진우는 남자의 팔을 뒤로 결박하고 벽으로 밀었다.
“당신을 이주희 씨 살해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그제야 현관문 쪽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주희의 엄마가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남자는 바닥에 피가 섞인 침을 뱉으며 말했다.
“니 딸은 니년이 죽인 거야. 날 고깝게 생각하는 거 다 알고 있었다고!!! 니가 나랑 헤어지라고 시켰지?”
그 말을 듣고 있던 진우가 열이 뻗친 표정으로 남자의 턱에 주먹을 날렸다. 남자가 고통에 신음하며 진우를 노려봤다.
“아이고! 손이 미끄러졌네. 그러니까 닥치고 갑시다.”
남자는 이주희와 3개월 전에 헤어진 사이로,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주희는 남자 친구의 집착과 폭언에 지쳐서 이별을 고했고, 그때부터 남자의 스토킹이 시작됐다.
남자의 배낭에서 피가 묻은 옷가지와 함께 범행 계획이 쓰인 수첩이 발견됐다.
수첩에는 군인 신분인 피해자의 오빠가 부대에 복귀하는 시기까지 고려해서 이번 주말에 범행을 실행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범행 계획이 담겨 있었다.
최대한 잔인하게 죽일 것. 고통스럽게 죽일 것, 그년의 애미도 같이 죽일 것 등 범인이 떠오르는 대로 갈겨 놓은 낙서가 잔뜩 있었다.
“엄마가…….”
피해자 이주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죽기 직전 마지막 숨까지 끌어모아 진우에게 해야만 했을 말.
진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은 ‘엄마가 위험해.’였다.
현장을 동료들에게 인계하고, 진우는 바로 피해자의 집으로 향했다. 버스를 탄 범인보다 차로 움직인 진우가 정확히 5분 빨리 도착했다.
악마의 농담처럼 모녀지간 생과 사의 고비가 5분 차이로 엇갈렸다.
진우는 남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경찰 조사를 마친 뒤 비로소 내게 전화를 걸었다.
‘해그냥… 이 자식 대체 어떻게 안 거야?’
***
진우의 이야기에 놀라 말문이 막힌 나에게 진우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여자 친구가 이별을 통보하니까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거야. 한 달 전부터 범행 계획을 세워 놓고, 기회를 엿봤더라고. 조금만 늦었어도 피해자의 엄마까지 당할 뻔했어.”
“휴…. 정말 끔찍하다.”
내가 진저리를 치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무튼 너 대체 어떻게 알았냐니까? 암튼 너 요즘 뭐 하고 다니는지 진짜 수상해…….”
그때 불현듯 떠오른 또 하나의 골목, 애벌레가 소년의 뒤를 따라갔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아! 맞다! 다른 골목은? 내가 두 골목 다 확인하라고 했잖아.”
“야! 다른 골목 확인할 정신이 어딨어! 눈앞에 사람이 죽었는데!!! 근데 다른 골목은 왜 물어? 불안하게….”
욱해서 씩씩거리는 진우의 목소리가 멀어지듯 작아졌다.
“아… 안 되는데….”
난 순간 멍해져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전화기 너머에서 진우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경황이 없었다.
지금 당장 나가서 확인할까도 생각했지만, 최 대리를 혼자 두고 집을 비울 수는 없었다.
‘나도, 진우도 없었을 그 골목에서 또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쩌지?’
상상력을 덧칠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렇게 밤을 꼴딱 새우고 동이 텄다.
‘전 여자 친구를 살해한 놈은 이미 오래전부터 범행을 계획했다고 했어. 협박에 스토킹에 전력도 화려 했지….’
난 몇 시간 전 그 자세 그대로 앉아서 생각을 정리했다.
‘반면에 최 대리님은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을 죽일 생각을 하기보다 자학을 하는 편을 택했어. 진우는 되레 황대찬을 구하기까지 했지.’
증오를 부추기는 애벌레가 인간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도 결과는 각기 달랐다.
‘어차피 할 사람은 하고, 말 사람은 마는 거 아닐까?’
사람이란 게 원래 같은 상황에 놓여도 다른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 사실이 ‘인간’이라는 존재에 미약하나마 희망을 걸게 하는 마지막 변명거리였다.
생각 정리를 거의 마칠 때쯤 최 대리가 잠에서 깼는지 몸을 뒤척였다.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서둘러야겠어.’
난 아침 댓바람부터 최 대리를 데리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얼이 빠져서 걸을 때 두 팔을 힘없이 팔랑거리는 최 대리를 보니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난 불편해 보이는 정장 구두 대신에 내 슬리퍼를 최 대리에게 신겼다.
‘상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빨리 가자.’
카페로 부랴부랴 가는 길, 최 대리가 신고 있는 슬리퍼는 바닥에 질질 끌리다가 뒤꿈치를 탁, 찰지게치면서 리듬을 만들어 냈다.
내가 카페 안으로 최 대리를 데리고 들어오자마자 사장은 한눈에 그가 이상한 상태임을 알아봤다.
“야. 이 사람 누구야? 여기 데리고 오면 어떡해! 근데… 상태가 왜 이 모양이야? 맛이 갔는데?”
“네. 증오를 부추기는 벌레가 몸속으로 들어갔어요. 휴……. 설명하자면 긴데, 어제 길에서 증오를 부추기는 벌레들을 봤거든요.”
“벌레…들?”
“네, 총 세 마리였어요. 아무튼 그때 진우에게 먹였던 빨간색 젤리 있잖아요. 그것 좀 빨리….”
사장은 아랫입술을 실룩거리더니 주방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사장은 최 대리의 벌어진 입 틈새로 빨간색 곰돌이 젤리를 넣었다.
“이건 붉은 후추를 넣어서 만든 감초 젤리야. 증오를 부추기는 벌레가 제일 싫어하는 게 이 붉은 후추 향이거든.”
줄곧 멍하던 최 대리가 갑자기 목에 생선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캑캑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곧 입에서 허벅다리 두께의 애벌레가 튀어나왔다. 난 비위가 상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건… 이전에 한 번 봤는데도 적응이 안 되네요.”
사장은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포크를 애벌레에게 던졌다. 살이 올라 포동포동해진 몸통에 포크가 꽂혀서 데롱거렸다.
“사장님, 전 최 대리님을 집에 모셔다드리고 올게요.”
“조금만 기다려.”
사장은 다시 주방으로 가더니 커피 두 잔을 내려서 테이크아웃 잔에 넣어 건넸다.
자주 있지 않은 사장의 호의였으므로 난 눈썹을 들썩거리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최 대리는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지만 낯빛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아마 그 역시 진우처럼, 지금 본인이 겪은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리라.
최 대리를 무사히 집에 데려다주고, 난 또 다른 애벌레가 지나갔던 골목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여기서 뭔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조심스러웠다.
그때 내 옆을 따라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담장 위를 나란히 걸었다.
“야! 너 이거 찾냐?”
주변에서 까랑까랑하고 높은 톤의 목소리가 들리자 좌우를 살폈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도 없자 헛것이 들리나 싶어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팠다.
“여기라고! 저 등신.”
난 그제야 담벼락 위에 선 고양이에게 눈길을 줬다.
“아, 너구나?”
까마귀가 절친이고, 마녀가 운영하는 커피숍에 들락거리는데, 새삼 말하는 고양이라고 놀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따라와 봐. 보여 줄 게 있으니까.”
고양이가 꼬리를 치켜들고 담장 위를 걸었다.
50미터가량 더 가서 멈춘 고양이의 시선이 담장 너머를 가리켰다.
발꿈치를 들어 내다본 담벼락 안에는 전날 밤 봤던 애벌레가 죽어 있었다.
고양이의 손톱자국이 몸통에 가득했다.
“이거 찾는 거 맞지? 내가 어젯밤에 죽였어.”
고양이가 거만하게 턱을 탁 치켜들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랬구나. 고마워. 걱정했거든. 이 벌레가 어떤 남자애 뒤를….”
“응. 걔 나랑 친한 남자애야. 종종 나 먹으라고 통조림이며 간식이며 챙겨 오는 애지. 이 벌레가 내 친구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길래 내가 해치웠지.”
가까이 다가가 애벌레가 완전히 죽은 것을 확인한 나는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 고마워. 근데 혹시… 누가 애벌레를 거리에 풀었는지 아니?”
“무서워서 볼 엄두도 못 냈어. 다만…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긴 했지.”
고양이가 목소리를 들었다는 말에 솔깃한 나는 고양이 쪽으로 몸을 수그리며 물었다.
“뭐? 뭐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내 쪽으로 눈을 흘기며 빠르게 옆을 지나쳤다. 그들 눈에는 난 야옹, 야옹거리는 고양이에게 말을 건네는 남자일 뿐이었다.
“이 짓도 이젠 재미없네. 이렇게 말했어.”
“음…. 그 말은 이제 이런 미친 짓거리는 안 하겠다는 뜻이잖아?”
고양이가 뒷발로 귀를 긁으면서 말했다.
“반만 맞지.”
“반만 맞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제 더한 짓을 하겠다는 뜻이니까.”
“뭐?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더한 짓이라니….”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빨리 잡아야 했다. 이런 벌레들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건 정말이지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
“다른 말은 못 들었어? 목소리는 어땠어?”
“목소리는 아주 평범했어. 아! 뭔 노래를 흥얼거렸어.”
“노래? 무슨 노래? 따라 불러 봐.”
고양이가 목을 가다듬더니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고양이의 어설픈 가락 속에서 귀에 낯익은 선율이 들렸다.
“잠깐! 혹시 네가 부르는 노래 말이야. 이거야?”
난 휴대폰으로 노래 한 곡을 찾아서 틀었다.
♬ 레 파미 레 도#레미 레 미레미파 파 파 미레도# ♬
“응. 그거 맞는 거 같은데?”
고양이가 앞발을 혓바닥으로 핥으며 말했다.
“이 노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 노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회색 마녀 학살 당시 흘러나왔다던 바로 그 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