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8화 (38/75)

#038화

나는 황급히 다이빙하듯이 이동 거울로 몸을 던졌다.

혹시나 하반신은 여기 그대로 두고, 상반신만 카페로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다행히 상상처럼 몸이 절단 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카페 한가운데 떨어져 고꾸라진 몸을 일으켜 세우자, 날 밀고 새치기를 했던 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미안해요. 아깐 너무 급해서….”

여자의 얼굴은 까무잡잡했고, 볼에는 붉은 기운이 가득했다. 오래 씻지 못했는지 몸에선 정체 모를 짐승의 분뇨 냄새가 났다.

파란색 머리카락은 껌같이 질긴 고무가 묻어서 잔뜩 엉켜 있었다.

그 와중에 쌍꺼풀 없이 동그란 눈 속에 밤하늘처럼 검푸른 눈동자가 빛났다.

여자는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려는 듯이 옆으로 매고 있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수박만 한 크기의 알이었다. 검은색 바탕에 녹색과 분홍색의 물결무늬가 있었다.

“이거 설마 피누누의 알??”

사장이 알을 유심히 보더니 파란 머리 여자에게 물었다.

“네. 맞아요.”

“정신이 나간 거야? 피누누는 자신의 알을 도둑질한 이들을 용서하지 않아. 사지를 찢을 거라고!”

여자가 알을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피누누의 알을 훔친 자들에게서 이 알을 훔쳤어요. 세 개 중에 한 개밖에 못 빼돌렸어요. 아까도 그자들에게 쫓기는 바람에….”

“잠깐, 그럼 이게 진짜 알이 아닐 수도 있겠네?”

사장과 여자의 대화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내가 ‘진짜 알?’이라고 중얼거리자, 미고가 내 귀에 속삭이며 설명했다.

“피누누는 전설의 용인데 총 세 개의 알을 낳아요. 그중에 한 개만 진짜고, 나머지는 가짜예요. 그런데도 피누누는 세 개의 알을 똑같이 보살피면서 품어요.”

미고의 설명에 사장이 덧붙이듯 말했다.

“나중에 부화할 때가 돼서야 어떤 게 진짜 알인지 알 수 있어. 알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방식인 거지.”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사장이 한결 화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넌 누구야??”

사장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여자를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소개가 늦었어요. 제 이름은 지오예요. 멸종 위기에 놓인 동식물의 보존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어요.”

사장이 지오가 입고 있는 낡은 누더기에 달린 장신구를 가리켰다. 초록빛을 띠는 토마토 모양을 한 브로치였다.

“토모토 가문인가 보군.”

“그렇긴 하지만 전 내놓은 자식이에요. 집에 안 들어간 지가 5년이 훌쩍 넘었는걸요. 부모님 모두 절 부끄러워하세요.”

미고가 다시 한번 내 귓가에서 속삭이며 설명을 해 주었다.

“토모토는 예로부터 걸출한 마법사를 배출한 가문으로, 4마을에서 아주 유명해요. 저 브로치가 토모토 가문임을 증명하는 일종의 표식이고요.”

사장은 지오에게 호기심이 생겼는지 질문을 이어 갔다.

“멀쩡한 집은 왜 나왔는데?”

“말했잖아요. 절 부끄러워하신다고. 지저분한 제 행색도 싫고, 제가 하는 일을 하찮게 여겨요. 전혀 다른 삶을 살 자신이 없으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녀의 엄마는 지오가 직접 땀 흘려 만든 지도와 연구 자료를 모조리 찢고 불태웠다고 한다.

계속해서 ‘더 중요한 일’을 찾아보라는 부모의 겁박에도, 지오는 조용히 자연을 더듬고 다니는 일을 포기할 수 없었다.

“뭐, 저마다 인생엔 다 사정이 있으니까.”

사장이 지오에게 커피 한 잔을 내려 주려는지 주방에서 달그락 소리를 냈다.

“아시다시피 피누누도 멸종 위기예요. 새끼 피누누 부화가 임박해서 살펴보러 간 건데… 마법사 두 명이 피누누에게 약을 먹이고 알을 빼돌리고 있더라고요.”

ㅡ와장창.

사장이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었는지, 들고 있던 컵이 과자처럼 으스러졌다. 지오의 말에 열이 뻗친 게 틀림없었다.

“간땡이가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네. 누가 그런 천벌 받을 짓을 해?”

“제가 한 개는 빼돌렸지만, 나머지는….”

사장은 지오의 머리 색깔과 비슷한 푸른색을 띠는 커피 한 잔을 그녀에게 건넸다.

“마셔. 고생했을 텐데.”

지오는 커피 잔을 내려놓는 사장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어지간해서는 첫 만남에 쉬이 손을 잡기 힘든 사장의 아우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이 알을 좀 부탁해요. 전 다시 나머지 알이 무사한지 확인하러 가야 돼요. 금방 올게요.”

사장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할 동안 미고는 사장에게 애처로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사장님, 제가 잘 돌볼 수 있어요. 제발요!”

사장이 한숨을 푹 쉬더니 바닥에 있던 피누누 알을 들어 미고에게 안겼다. 허락의 의미였다.

“고맙습니다. 금방 와요. 오래 안 걸려요.”

“어딜 가. 이거 다 마시고 가.”

사장이 지오 앞으로 커피 잔을 슥 내밀었다. 지오가 그제야 미소를 보이며 컵을 입에 가져다 댔다.

커피를 마신 지오는 머지않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이 차에 마법을 건 거예요? 왜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지?”

지오가 마신 커피의 정체를 알고 있던 난 그녀에게 커다란 양동이를 건넸다.

“이거 받아요. 저도 겪어 봐서 아는데 눈물이 양동이를 가득 채워야 멈출 거예요. 그간 흘리지 않고 삼킨 눈물이 한꺼번에 나오는 거예요.”

지오는 민망한 듯 양손을 쉴 새 없이 팔랑거리며 부채질을 했다.

“눈물을 참다니요! 울 일이 뭐가 있다고. 하하하…. 진짜 이상하네.”

지오가 입고 있던, 옷이라기엔 너무 더럽고 낡은 판초가 그녀의 눈물로 젖어 들었다.

그녀의 부모는 지오의 소명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길 거부했다.

경멸이 녹아 흐르는 말, 무시와 하대가 습관이 된 행동들은 그녀에게 늘 상처를 냈지만, 지오는 늘 태연하게 굴었다고 한다.

가족이 자신을 다치게 한다는 사실을, 지오 스스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지오는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소리를 내며 울었고, 이제 제대로 말을 하기도 힘들 지경이 되었다.

더 이상 자신의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지 그녀는 자리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알을 잘 부탁해요.”

“몸조심해.”

사장이 지오를 배웅했다. 그녀가 떠나고, 우리도 드디어 쉴 준비를 했다.

거의 32시간가량 깨어 있었던 나는 카페 구석 간이침대에서 거의 혼절하듯 그렇게 잠이 들었다.

***

다음 날, 오래 깨어 있었던 만큼 오랜 시간 잠에 빠진 난 주방에서 집기들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주방 안쪽 바닥엔 파란 머리 지오가 몸을 웅크린 채 신음하고 있었다.

지오의 얼굴은 피와 흐르는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마침 부엌에서 반죽을 치대고 있던 사장은 놀라 쓰러진 지오를 살폈다.

그녀의 낡고 해진 옷은 사방으로 찢겨 있었고 몸 군데군데 찢긴 상처가 있었다.

그중에 왼쪽 팔에 난 상처가 가장 심각했는데 날카로운 것에 가로로 베여서 살점이 위아래로 너덜거렸다.

왼쪽 소매와 바지는 이미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지오는 누가 봐도 목숨을 겨우 건진 모양새였다.

“괜찮아? 정신 좀 차려 봐!”

사장이 바닥을 향해 있던 지오의 얼굴을 천천히 옆으로 돌리자 눈물이 가득 맺힌 눈동자가 보였다.

“야! 파란 머리!!! 누가 이랬어? 누가 널 이렇게 만든 거냐고!! 피누누 알 훔쳤다는 그놈들이야?”

사장이 형편없이 망가진 지오의 행색을 보고, 놀라 씩씩거렸다.

“씹어 먹어도 모자랄 것들. 살점을 도려내서 짐승에게 던져 주겠어.”

흥분해서 눈을 부라리는 사장 옆에서 미고가 미지근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지오의 환부를 닦았다.

지오는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는 우릴 보더니 안심이 된다는 듯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저만 다친 거 아니에요.”

지오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한 손에 꽉 쥐고 있던 낡은 헝겊 자루에서 묵직한 뭔가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윽…. 저게 뭐야.”

고깃덩어리처럼 생긴 것은 사람의 손모가지였다. 미고가 질색을 하며 진저리를 쳤다.

손에도 살집이 두둑하게 붙은 것이 꽤 덩치가 있는 사람의 것 같았다.

질겁한 나와 미고와는 다르게 사장은 대수롭지 않게 손모가지를 들어서 이리저리 살폈다.

비즈로 만든 팔찌들이 여전히 손목에 끼워져 있었다.

“완전 비곗덩어리고만? 가만… 이거 근데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거 같지 않냐?”

비즈 팔찌 여러 개를 겹쳐서 낀 두꺼운 팔목이라…. 자세히 보니 사장의 말대로 분명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도 같았다.

“아! 기억났어요. 그… 슈슈에게 거미줄을 치라고 시키고, 까마귀 눈알을 도려냈던 자들이요! 그중에 작고 뚱뚱한 마법사도 이런 팔찌를 끼고 있었어요.”

미고 역시 내 생각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거리며 말했다.

“혹시 머리를 길게 땋은 놈이랑 같이 다니는 자 아닌가요?”

우리가 설명한 몽타주가 자신이 상대한 자들과 일치했는지, 지오가 놀라며 말했다.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이자들을 알아요?”

지오는 상체를 일으켜 벽에 기대어 앉았다. 찢긴 팔뚝에서 왈칵 피가 흘러나왔다.

사장이 지혈을 위해 얇고 깨끗한 천으로 지오의 팔을 세게 묶으며 말했다.

“우리도 만난 적이 있었어. 이놈들 푸에르 추종자들이야.”

돈돈의 것으로 보이는 손모가지에선 피 대신 찐득하고 누런 잼이 뚝뚝 흘렀다. 사장이 돼지 족발 들 듯이 손목을 들고 말했다.

“뭐 네가 당한 것보다, 놈들이 좀 더 당한 것 같으니 기분이 한결 낫네.”

사장은 툭툭 내뱉는 어조와 달리 수건으로 지오의 몸에 묻은 핏자국과 흙먼지를 부드럽게 닦아 주었다.

그리고 뜨거운 솥에서 퍼 온 검은깨 죽을 손수 먹였다.

사장이 주는 죽을 고분고분 받아먹는 지오의 눈에서 다시금 눈물이 흘렀다.

“야…. 기력도 없는 게 울고 있어. 울려거든 체력 좀 충전하고 울어. 나머지 알들은 어떻게 됐어?”

사장의 말에 지오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놈들 손에 간 알이 진짜였어요. 새끼는… 죽었어요. 제가 갔을 땐 이미 부화를 한 후였더라고요.”

지오의 말을 들은 미고가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사장은 말없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피누누 새끼가 죽다니… 가엾네. 그럼 우리가 보관하고 있던 알은….”

“가짜예요.”

하룻밤 사이 피누누 알에 정이 흠씬 들었던 미고가 ‘말도 안 돼.’라고 중얼거리며 알의 표면을 쓰다듬었다.

그때 꽈직 소리를 내며, 피누누의 알에 균열이 생겼다.

“뭐야? 알이 깨지려나 본데? 이 알은 가짜라며!!!”

모두의 시선이 피누누 알에 쏠렸다. 알은 맨 위에서 바닥에 내리꽂히는 번개 모양으로 금이 갔다. 그리고 정확히 반으로 쩍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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