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75)

#039화

우린 동시에 깨진 알 안을 보기 위해 고개를 쭉 뺐다.

그 안에는 피누누 새끼가 아닌, 노르스름하면서 우아한 상앗빛을 내는 커다란 발톱이 들어 있었다.

“이거 피누누 발톱이잖아!”

사장이 귀한 물건을 다루듯 두 손으로 발톱을 들어 살폈다.

지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입을 반쯤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피누누는 보은의 의미로 발톱을 선물한다고 전해져요. 직접 본 것은 처음이지만요. 아마도 제가 새끼를 구해 주길 바랐나 봐요. 전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지오의 목소리가 떨리면서 작게 사그라들었다. 사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손에 이 알이 들어가게 될지 어떻게 알았을까?”

“예로부터 피누누는 예지력이 있다고 전해지죠.”

지오가 간신히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어휴…. 그럼 뭐 해. 알도 뺏기고, 새끼도 죽었는데.”

미래를 보았던 어미 피누누도 결국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피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어미는 끝까지 운명을 붙들고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에게 발톱을 전하려고 했던 걸 보면.

미고는 허망한 표정으로 바스러진 알 껍데기를 만지작거렸다. 사장이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해 봐. 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어진 지오의 말은 이랬다.

***

지오의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고, 공기 중에 피누누의 알을 훔친 놈들의 냄새를 어렴풋이 맡았다.

매캐하니 코끝을 긁으면서, 탄 설탕 시럽의 끈적임이 느껴지는 냄새였다.

지오에겐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바로 동물과 교감을 하는 것이었다. 동물뿐만 아니라 나무나 풀, 곤충같이 생명력이 있는 모든 것의 말을 곧잘 알아듣곤 했다.

지오는 간밤에 양 떼들에게서 놈들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놈들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부글부글 피어오른 작은 비눗방울을 닮은 조팝나무 꽃들이나, 비 온 뒤에 질퍽한 길가를 가로지르는 환형 동물들, 그리고 담장 위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은 특히 결정적인 정보를 주곤 했다.

지오는 1마을에 위치한 크고 허름한 창고에 숨어 있었다. 검은 점박이 고양이가 지오에게 말린 돼지 귓불을 얻어먹더니, 이곳에서 기다리면 놈들이 올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렇게 두 시간가량 같은 자세로 숨어 있는데 드디어 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뚱뚱하고 키가 작은 놈이 돈돈이었고,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땋고 부메랑을 가지고 다니는 놈이 보탱이었다.

지난번에 부메랑에 목이 베일 뻔했던 지오는 그를 보자마자 긴장해서 괄약근을 세게 조였다.

돈돈의 손에 들려 있는 철장에는 갓 태어난, 주먹만 한 새끼 피누누가 있었다.

‘이럴 수가…. 혹시나 했는데 그들 손에 진짜 알이 간 거야!!’

피누누 새끼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했다. 배내털도 나지 않은 연한 살결이 모두 헐고, 찢어져 있었다.

철장 안에 갇힌 새끼는 계속해서 좁은 틈 사이로 몸을 빼려고 시도했다. 이제 갓 태어난 새끼임에도 두려움과 체념을 모르는, 집요하고 까만 눈동자가 빛났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구해 줄게.’

지오는 몸을 수그리고 천천히 철장 근처로 이동했다.

“윽! 이 지독한 냄새는 뭐야? 어디서 썩은 내가 나는데?”

돈돈이 도넛을 먹다 말고 콧구멍을 발랑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보탱은 그런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부메랑의 칼날을 벼리고 있었다.

“넌 냄새 안 나? 어우! 나 먹은 거 올라오려고 해. 내가 이래 봬도 비위가 좀 약해. 곱게 자라서 그런가 봐.”

돈돈은 혼잣말을 하며 기름진 머리카락을 정성껏 매만졌다. 그리고 놈은 이곳저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지오와 돈돈 사이의 거리가 2미터가량으로 점점 좁혀졌다.

‘아씨, 좀 씻을걸…. 냄새가 발목을 잡네.’

지오는 이제부터라도 잘 씻고 다녀야겠다는 뒤늦은 다짐을 하며 마음을 졸였다.

2 대 1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발각됐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머리를 팽팽 돌렸다.

“이 냄새를 어디서 맡아 본 적이 있는데, 언제였더라?”

이제 딱 한 발자국만 앞으로 오면 나무 선반과 지푸라기 사이에 숨어 있는 지오의 모습이 발각될 차였다.

그때 창고 문을 열고, 검은색 말이 기세 좋게 들어왔다.

ㅡ히이이잉.

크고, 근육질의 말이 들어와 난데없이 똥을 싸기 시작했다. 돈돈의 바로 옆으로 철퍼덕철퍼덕 똥 덩어리가 떨어졌다. 바지 끝단에 똥이 튄 돈돈이 질색을 하며 뒷걸음질을 했다.

“에이 씨! 이놈의 촌구석 빨리 벗어나든가 해야지! 짜증 나!”

말은 개의치 않고 똥을 다 싸더니 뒷다리로 똥을 차 냈다.

‘고마워.’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처했음을 눈치채고 와 준 말에게 지오는 속으로 인사를 했다.

‘어서 나가. 저 마법사들 아주 위험하다고.’

말은 지오의 말을 듣고는, 천천히 들어왔던 문으로 나갔다. 지오는 덕분에 놈들의 눈을 피해 철장 바로 앞까지 몰래 다가갈 수 있었다.

이제 손만 길게 뻗으면 철장이 잡히는 위치에 있는데, 뭔가 발에 찐득하고 물컹한 것이 밟혔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다봤을 땐 도넛이 뭉개져 있었고 안에 들어 있던 캐러멜 시럽이 발에 엉겨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낄낄대는 비열한 웃음소리와 함께 돈돈이 지오의 바로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또 너냐? 지독하네. 들어나 보자! 어떻게 우리가 있는 곳을 귀신같이 찾아오는 거지?”

그때 지오의 눈에 철장 틈에 낀 피누누 새끼가 보였다.

새끼는 좁은 철장 틈 사이로 고개를 넣고 한쪽 날개를 기어코 끼워 넣은 채로, 피 묻은 살점처럼 매가리 없이 축 늘어졌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철장 사이에서 낑낑거리며 몸서리를 치던 새끼는 더는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동공이 커진 지오의 시선을 따라 돈돈이 피누누 새끼에게 시선을 돌렸다.

“뭐야! 죽은 거야?”

돈돈이 철장에 낀 새끼를 검지로 잡아, 신발 밑창에 붙은 껌을 떼듯이 쭈욱 뺐다. 새끼의 몸이 작은 철장 사이에 세로로 짓눌렸다.

“죽었네. 이거 훔친다고 개고생을 했는데 이렇게 죽어 버리다니!”

보탱이 그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들어 피누누 새끼에게 눈길을 주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돈돈이 죽은 피누누 새끼를 재수 없다는 듯이 바닥에 던졌다.

“안 돼!”

지오가 바닥에 내팽개쳐진 새끼를 보며 질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새끼는 목이 완전히 꺾인 채 죽었다. 지오의 눈동자 속에 화기가 일렁였다. 그 분노는 지금 닥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압도했다.

“가만 안 둬!”

“가만 안 두면 뭘 어쩔 건데?”

그때 멀리서 보탱의 부메랑이 날아왔고, 지오는 재빨리 새끼가 갇혀 있던 철장을 들어 부메랑을 튕겨 냈다.

그리고 서둘러 고개를 숙여 바닥에 버려진 피누누 새끼를 들어 품 안으로 넣었다.

그사이에 다시 날아온 부메랑이 지오의 팔뚝을 깊숙이 베고 날아갔다.

우악스러운 고통에 한쪽 무릎을 꿇은 지오는 주머니에 담아 두었던 독그릇 꽃을 말린 가루를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돈돈의 눈에 뿌렸다.

“으아악!”

꽃의 독성 때문에 놈의 눈가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놈의 작은 눈은 부은 살에 파묻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눈알을 사포에 문대는 것 같은 느낌에, 돈돈이 두 손을 눈에 가져다 대고 울부짖었다.

지오는 혼돈에 빠진 돈돈의 팔을 비틀어 올렸고, 때마침 지오의 심장을 향해 날아오던 부메랑의 칼날은 돈돈의 손모가지를 깔끔하게 썰고 지나갔다.

“끄아아아악!!”

앞이 안 보이는 돈돈이 피가 솟구치는 손목을 허공에 휘두르며 절규했다.

부메랑이 돈돈의 손목을 잘랐다는 것을 안 보탱은 손에 든 부메랑을 두 번 위아래로 흔들어 긴 창으로 바꾼 뒤에 직접 지오를 처리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 순간 창고 안으로 검은 말 떼들이 문을 박차고 우르르 들어왔다.

이어 방금 전 똥을 싸고 나갔던 검은 말이 다시 들어와 목을 옆으로 휘둘러서 지오를 등에 태웠다.

귀찮고 성가시단 표정을 한 보탱이 지오를 막아선 말들에게 칼을 휘둘렀다.

이어 보탱은 지오의 뒤를 쫓으려 했지만, 손목이 잘린 돈돈이 다른 한 손으로 보탱의 다리를 붙잡으며 도와 달라 애원하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다.

지오의 얼굴은 피와 흐르는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검은 말은 지오를 인적 없는 작은 오두막에 데려다주고는, 무리가 있는 헛간으로 되돌아갔다.

자신이 곤경에 처한 것을 알고 도와준 검은 말에게 고마우면서도, 보탱의 손에 잔인하게 죽은 말 무리들을 떠올리니 지오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깊게 베인 팔에서 피를 많이 흘렸던 터라 지오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이동 거울을 만들었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가운데 어젯밤 사장이 줬던 따듯한 커피 향이 머릿속에 연기처럼 자욱하게 들어찼다. 그렇게 지오는 커피숍 주방으로 곤두박질쳤다.

***

이야기를 마친 지오가 그제야 품 안에서 죽은 피누누 새끼를 꺼냈다. 순간 우린 그 처참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새끼는… 철장 사이에 몸이 끼인 채 죽었어요. 틈이 워낙 좁아서 몸을 다 빼내지 못했고, 겨우 머리랑 날개 한쪽을 뺐는데 몸이 끼여서 숨을 쉬지 못한 거 같아요.”

사장이 수국이 수놓아진 손수건으로 죽은 피누누 새끼를 고이 감싸며 말했다.

“피누누는 그래. 그들에겐 자유가 곧 생명이니까. 아무리 새끼라도 갇혀 있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했을 거야.”

이어 사장은 알 속에 있던 피누누 발톱 끝부분을 노끈으로 단단히 묶어서 지오에게 주었다.

“네가 보관해.”

지오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받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철장에 끼어 죽은 피누누 새끼의 잔상으로 가득했다.

죽을지언정 포기를 모르던 그 새카만 눈을. 이 발톱을 보면 내내 죄책감에 시달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 새끼를 지키지 못했는걸요. 저 대신 보관해 주세요.”

이번에 사장은 내게 노끈으로 묶은 발톱을 건넸다.

“그럼 네가 가지고 있어.”

“제가요? 아니에요! 저 물건 간수를 잘 못해요.”

사장이 막무가내로 손에 발톱을 쥐여 주며 말했다.

“그래서 목걸이로 만든 거 안 보여?”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제가 어떻게….”

사장이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자, 양손으로 겨우 들 만큼 묵직했던 발톱이 동전만큼이나 작게 변했다.

피누누 발톱은 지오에게 가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녀를 바라봤지만, 지오는 날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니 받아 두라는 의미였다.

“돈돈과 보탱을 아신다니, 드릴 말씀이 있어요.”

사장이 만든 검은깨 죽 덕분인지 안색이 한결 밝아진 지오가 말을 꺼냈다.

“제가 헛간에 숨어 있을 때 그들이 이동 거울을 통해 헛간으로 들어왔어요. 마침 바닥을 기어가는 보석 딱정벌레 등에 그들의 모습이 비쳐 보였거든요. 분명 그들은 악초 할아범 정원에서 오는 길이었어요.”

“악초 할아범 정원이요? 놈들이 그곳엔 왜 간 거죠?”

마침 그곳에 갈 예정이었던 난 지오에게 물었다.

“뭔가…를 찾으려고 했지만, 못 찾은 것 같았어요. 허탕을 쳤다고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거든요.”

“놈들이 그곳에서 뭔가를 찾고 있었다고? 흐음. 그게 뭘까.”

사장이 보라색 스카프를 벗고, 보라색 비닐 잠바로 갈아입으면서 말했다.

“그거야 지금 가서 알아보면 되지. 마침 가려던 참인데 잘됐네.”

사장의 말을 들은 지오가 의외라는 듯 물어 왔다.

“악초 할아범의 정원에 가려던 참이었다고요? 왜요?”

“노화의 이파리를 뜯으러 가. 정말 미친 짓인데, 그 짓을 기어이 하러 간다. 우리가.”

사장의 말을 듣더니 지오가 다친 몸을 일으키며 갈 채비를 했다.

“넌 그 몸으로 어디를 가려고 해? 여기서 기다려.”

“저도 가야 돼요!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웃기지 마! 환자까지 챙길 정신 없으니까.”

“싫어요! 저도 갈 거예요!! 그놈들이 그곳에서 뭘 찾으려 했던 건지도 알아봐야 하고.”

사장이 버럭 화를 내면 엔간한 강심장 아니고선 대들기가 쉽지 않았는데 지오는 달랐다.

지오는 사장이 큰 눈을 부릅뜨고 사납게 노려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어휴…. 파란 머리 고집이 장난 아니네.”

미고와 나도 다친 지오를 말리고 싶었지만, 지오의 기세가 말린다고 꺾일 것 같지 않았다.

사장이 주머니에서 가루를 한 줌 꺼내 공중에 뿌리자 주방 한편에 긴 타원형의 이동 거울이 생겼다.

“가자. 뭔 일이 생길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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