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화
이동 거울은 다행히도 아타드 가시덤불을 지나 정원의 한가운데로 연결되어 있었다.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 천장의 넝쿨 사이로 기어가는 살모사 모습이 비쳐 보였다.
난 화들짝 놀라 천장을 올려다봤다. 뱀의 몸이 넝쿨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줄기가 바닥을 향해 푹 꺼졌다.
뱀이 무게를 못 이기고 당장이라도 내 머리 위로 떨어질까 싶어서 목이 움츠러들었다.
정원은 여전히 스산하고 기분 나쁜 분위기를 풍겼다. 불현듯 정원의 주인인 악초 할아범이 떠올랐다.
“혹시 악초 할아범이 벌써 오지는 않았겠죠? 저를 보면 가만 안 둘 거 같은데….”
사장이 할아범을 떠올리며 쌤통이라는 듯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쓴 마법이 제대로 먹혔으면 한 일주일은 못 나올 거야. 아무튼 여러모로 타이밍은 괜찮네.”
정원은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뭐랄까, 풍성하게 느껴졌는데 자세히 보니 나무에 각양각색의 열매가 달려 있었다. 지오가 옆에서 지금이 정원의 수확기라고 설명해 주었다.
열매들은 하나같이 좌우 대칭이 온전하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비틀려 있었다.
저 멀리까지 독버섯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무늬와 색깔을 가진 열매가 가득했는데, 언뜻 봤을 땐 꽃밭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쨍한 색감 때문에 눈이 얼얼해질 무렵 사장이 솜뭉치를 하나씩 우리에게 나눠 줬다.
“전에도 말했지? 노화(老花), 늙은 꽃의 향기를 조심하라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저주하게 만들거든.”
다들 콧구멍 속에 솜뭉치를 집어넣었다. 저만치서 노화의 모습이 보였다.
늙은 꽃은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도 더욱 추했다. 쭈글쭈글하고 질긴 주황색 꽃잎에는 검은 반점이 검버섯처럼 번졌다.
꽃잎 가운데 수술은 시체를 파먹기 위해 모여든 파리 떼처럼 우글거렸고, 가운데 우뚝 서 있던 암술은 전보다 더 커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노화의 이파리를 뜯는 일이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사장님, 이파리를… 어떻게 뜯죠?”
“난들 아냐. 이건 뭐 작전을 세워서 될 일도 아니야. 부딪쳐 보는 수밖에.”
나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화의 앞에 서자, 지오가 콧속에 든 솜뭉치 때문에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 꽃이 우리한테 할 말이 있다는데요?”
사장이 양쪽 눈썹을 갈매기처럼 위로 치켜뜨면서 말했다.
“너 꽃이랑도 대화할 수 있어?”
“네. 생명이 있는 건 무엇이든.”
지오는 꽃에 무언가 말하기 시작했고, 쉴 새 없이 입 모양이 바뀌었다. 하지만 마치 가청 주파수를 벗어난 것처럼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오가 대화를 마치고 우리에게 노화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돈돈과 바통, 그자들은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고 하네요.”
지오의 말에 사장이 의심에 찬 눈초리로 노화를 쏘아보았다.
“그걸 노화가 어떻게 알아? 그자들이 원하는 게 뭔데?”
지오가 다시 노화의 말을 듣더니 전달했다.
“답을 알고 싶으면 제 목소리를 빌려 달래요.”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사장은 몇 년을 살았을지도 모르는 저런 늙은 꽃에 목소리를 빌려준다는 생각 자체가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지오는 수락의 의미로 눈을 감았다.
“야! 너 혹시 목소리 빌려주려는 건 아니지? 미쳤냐!”
지오가 다시 눈을 떴을 땐 혼이 나간 사람처럼, 파르스름한 눈자위 가운데 동공이 사라진 시커먼 눈동자가 보였다.
“하여튼 쟤도 말 더럽게 안 들어. 부모님이 속 좀 썩였겠어.”
지오가 입을 열었을 때 그 목소리는 여자 목소리도, 그렇다고 남자 목소리도 아니었다. 젊은 사람의 목소리도, 노인의 목소리도 아닌 마치 여러 개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노화의 목소리가 듣기에 거북하고 소름 끼쳐 무의식적으로 이를 꽉 물었다.
“사는 건 지루하기 짝이 없지. 오래 살다 보면 좀처럼 재밌는 일도 없고.”
지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중압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에도 사장이 지지 않으려는 듯이 공격적인 어투로 말했다.
“그래서 목소리까지 빌려서 우리한테 할 말이라는 게 뭔데?”
“그자들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어.”
“그니까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는데?”
사장이 여전히 노화의 꿍꿍이를 의심하며 물었다.
“그야, 내가 주지 않았으니까.”
“뭘? 뭘 주지 않았다는 건데. 자꾸 뭐 하나 빼먹고 말하지 말고, 제대로 말을 해!”
사장이 버럭 하자 노화가 가래가 끓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가 그렇게 친절해 보여? 대가도 없이 다 말해 주게? 다만… 내가 묻는 질문에 답을 해 준다면야 순순히 말해 줄 의향도 있지.”
지오의 목소리를 빌린 늙은 꽃과 사장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긴장한 탓에 목이 뻣뻣하게 굳어 갔다.
까마귀 모습으로 내 어깨에 앉아 있던 미고가 부리로 부드럽게 내 목을 쪼았다.
“질문이 뭔데? 들어나 보자.”
노화의 이파리를 뜯으려고 온 건 우리였는데, 어째 노화의 계략에 말려드는 기분이 들었다.
“너희가 지금은 이렇게 사이좋게 붙어 다니지만, 사실은 원수나 다를 바 없는 사이잖아?”
“원…수?”
노화의 말을 들으니, 이전에 카페에 들어왔던 목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태복음 5장 4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목사는 분명 우리더러 원수지간이라 했다. 오늘 노화도 사장과 날 일컬어 원수라 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사장을 쳐다봤지만, 사장은 말문을 열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노화가 머뭇거리는 사장을 부추기며 말했다.
“어떻게 회색 마녀의 머리카락이 모두 타 버렸는지 안 궁금해? 서로 주고받기에 흥미로운 주제 같은데 말이지.”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사장이 그토록 찾아 헤맨 비밀의 열쇠를 늙은 꽃이 가지고 있었다. 푸에르가 회색 마녀를 몰살할 수 있었던 비밀을.
사장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졌지만, 무언가 단단히 결심한 얼굴이었다.
“난 비밀이 까발려지는 것을 좋아해. 무지로 유지되던 평화가 깨어지는 균열과 파편이 날 흥분시키거든. 어서 말해. 네가 가지고 있는 비밀을.”
늙은 꽃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웃음을 겨우 삼키며 사장을 꼬드겼다.
‘비밀?’
사장이 내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라도 있다는 건가. 사장을 조금은 서글픈 눈으로 내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내가 질문에 답을 하면, 네 이파리 한 장을 줘.”
사장은 이 와중에도 노화의 이파리를 취하기 위해 조건을 내걸었다. 노화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듯 쉽게 이를 받아들였다.
“해그냥, 언젠가 말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떠밀려서 말하게 될 줄은 몰랐어. 그래도 지금 상황으로선 별수가 없는 거 같네.”
사장이 나를 향해 곧추서서 말했다. 사장의 서론을 듣고 있으려니 머리가 핑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우리 둘 사이에 차가운 강물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처럼 선득한 기운이 느껴졌다.
“1998년 2월 19일, 여섯 살이었던 내가… 푸에르에게 직접 네 엄마와 아빠가 있는 곳을 알려 줬어.”
“뭐, 뭐라고요?”
내가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한 순간, 지오의 목소리를 차지한 노화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이 발작 수준으로 웃음을 쏟아 냈다. 깔깔깔깔. 그의 웃음소리가 큰 정원을 가득 메웠다.
난 순식간에 화염 속에 들어온 것처럼 온몸에 열이 올랐다. 목이 바짝 말라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사장이 하는 말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돌려서 말 못 하겠다. 내가 그런 쪽으론 소질이 없어.”
사장이 한숨을 길게 내쉬더니 작정한 듯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2월 19일, 아침 일찍 우리 집에 들이닥친 푸에르가 나에게 물었어. 이다를 찾고 있는데, 찾지 못하면 회색 마녀를 모조리 죽일 거라고. 만약에 이다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면 나와 엄마의 목숨은 살려 주겠다고 하더라.”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물론 그자가 머리카락이 탄 채 죽은 할머니 시신 위에 서서 그렇게 말했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지. 이다와 우리 엄마는 친한 친구 사이였고, 덕분에 난 이다의 집에 몇 번 간 적이 있었거든.”
사장이 떨리는 숨을 고르며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난 이다가 사는 곳을 알려 줬어. 그자가 이다를 죽일 것을 알면서도 말이야. 그날 밤, 푸에르는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죽이고 사라졌어. 나와 엄마의 목숨을 부지해 주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
아버지의 기일이자, 내 생일이었던 1998년 2월 19일. 그날에 있었던 일을 사장의 입을 통해 듣고 있었다.
이제야 목사와 노화가 우리 둘 사이를 왜 원수라고 불렀는지 이해가 됐다.
사장이 엄마의 위치를 알려 주지 않았더라면, 아빠는 죽지 않았을지도 몰랐으니. 사장은 푸에르가 엄마를 해칠 것을 알고도 엄마의 위치를 알렸다.
하지만 당시 여섯 살이었던 어린아이가 대체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쉬이 사장을 탓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듣는 사장의 이야기에 심장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나에겐 솔직했어야지. 미리 말을 했어야지… 라는 생각이 원망처럼 스며들었다.
늙은 꽃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이파리를 부르르 떨었다. 미고는 어느덧 사람으로 변해서 말없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이제 됐어?”
사장이 냉소적인 얼굴로 노화에게 물었다.
“재밌다. 기대 이상이야.”
“그럼 약속대로.”
사장이 이를 악문 채로, 노화의 이파리를 잡고 세게 당겼다. 부욱, 가죽을 벗기는 소리가 나며 이파리가 반쯤 찢겼다. 나머지는 사장이 아무리 세게 잡아당겨도 뜯기지 않고 덜렁거릴 뿐이었다.
노화가 귀찮다는 듯 사장에게 말했다.
“야. 잠자코 있어. 때가 되면 줄 테니. 아무튼 내가 원하는 답을 들려 줬으니 이번엔 내 차례인가?”
지오는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 노화에게서 목소리를 되찾았다. 지오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숙였다.
지오는 목소리를 빌려준 것을 후회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고, 계속해서 노화의 말을 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신더러 암술을 꽉 잡아 보래요.”
지오는 자신의 목소리로 노화의 말을 전달했다. 노화는 나더러 암술을 잡으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사장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뭘 시키려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할게. 얘보단 내가 뭐든 더 잘할 테니까.”
지오가 노화의 말을 듣더니 전했다.
“무조건 해그냥이 해야 한다고 하네요. 시키는 대로 하면 알게 될 거라고.”
사장은 ‘무슨 꿍꿍이야.’라고 중얼거리며 노화를 노려봤다.
난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노화가 시키는 대로 우뚝 솟은 암술을 잡았다. 내 손이 닿자 암술이 부풀어 올랐다.
“잡았어요. 그다음에는요?”
나는 불쾌한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지오에게 물었다.
“놓치지 말고, 세게 당기래요. 자기가 됐다고 할 때까지.”
암술을 잡자, 주변을 둘러싼 수십 개의 수술이 촉수처럼 몸을 세우고 공격 태세를 취했다.
난 암술을 잡아당겼고, 암술은 마치 내 손에서 빠져나오려는 듯 반대로 힘을 주었다. 우린 어느새 줄다리기를 하는 자세가 되었는데, 암술 주변에 우글거리던 수술이 손등에 파고들어 살을 파먹었다.
손이 뒤틀리면서 마비되는 고통이 여실히 느껴졌다.
한참 동안의 씨름 끝에 온몸에 비 오듯 땀이 흘렀다. 꽃은 이제 내 쪽으로 많이 기울었고, 축 처진 꽃잎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났다.
손등의 고통이 손목을 타고 팔까지 올라왔다. 양팔은 마비된 것처럼 감각이 사라졌다. 내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 지오가 소리쳤다.
“이제 됐대요!”
내가 손을 떼자, 암술은 마치 헛구역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쿨럭쿨럭 괴상한 소리를 냈다. 이내 좌우로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토사물처럼 불투명한 액체를 쏟았다.
난 손등에 들러붙은 수술을 거칠게 떼어 냈다.
평소에 거의 욕설을 하지 않는 나였지만,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보니 욕이 절로 나왔다.
“이런 시발….”
노화는 나를 농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