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화
내가 찾기도 전에 그가 먼저 내게 와 주었다. 놀라서 말문이 막힌 날 보며 사장이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냈다.
난 사장에게 들고 있던 엄마의 엽서를 슬쩍 보여 줬다. 사장이 눈치를 채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리도에게 말을 붙이기 위해 우선 내 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해그냥이라고 합니다.”
“오! 참 아름다운 이름이군요. 해그냥… 제 고향이기도 하지요.”
그는 내 이름을 듣더니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해그냥, 이 친구에게도 커피 한 잔을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제가 한 잔 대접하고 싶은데요.”
리도가 사장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부탁하자,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향했다.
그사이 미고는 카페 단골인 로뚜 아저씨에게 남은 빵을 배달해 주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엄마의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와중에 리도가 먼저 말했다.
“아주 깊은 바닷속, 수심이 6,000m가량 되는 심해에는 물의 압력이 높고, 햇빛이 들지 않아 아주 깜깜해요. 그 안에는 가라앉아 있는 감정과 영혼들이 있죠.”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그의 말투를 듣고 있자니, 전래 동화를 듣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심해에서 해수면까지 나오는 동안 난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한 영혼이 말하길 아주 오랜 시간 고심 끝에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고 했어요. 자신이 평생 가 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의 이름을 땄다고 했죠.”
“…….”
“얼굴도 보지 못하고, 한 번 안아 주지도 못하고, 촉촉한 볼에 입을 맞춰 보지도 못한 채 먼저 떠나게 되어 미안하다 했어요.”
난 그의 말을 듣는데 난데없이 머리가 핑 도는 것처럼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가 하는 말이 꼭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리도는 눈빛으로 내게 충분히 전달하고 있었다. 난 지금 당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고.
그 순간 머릿속에 아버지의 유골을 바다에 뿌렸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현혹의 동굴을 다녀온 뒤로 이전 기억과 관련된 자극을 받으면 잊고 있던 기억이 돌연 떠올랐다.
기억 속의 엄마는 유골을 바다에 뿌리면 ‘그’가 아빠를 좋은 곳으로 돌려보내 줄 거라고 말했다. 그땐 엄마가 말하는 ‘그’가 그저 신을 말하는 걸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리도는 내 반응을 예상했는지, 차분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영혼의 아들이 아무래도 당신인 것 같네요.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알아차렸죠. 인간 세계 말로 해석해도 썩 괜찮은 뜻이라고 했어요.”
사장은 커피 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면서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살폈다.
“정말 아빠를 만난 거예요? 아빠는 지금 어디 계시죠?”
리도는 그건 자신도 모른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신의 곁으로 갔죠.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나도 몰라요. 하지만 가까운 시일에 나도 신의 곁으로 가게 될 것 같군요.”
아빠의 영혼을 만났다는 리도의 말이 믿기지가 않으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아빠의 흔적을 느끼고 싶었다.
“200년이나 살고 나니까 이젠 되레 죽음이 기다려질 정도예요. 신의 곁에서 편히 쉬고 싶군요. 당신의 아버지처럼요.”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말했다.
“최근에서야 알았어요. 아빠가 지병으로 죽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요.”
리도가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만은 확실히 말해 줄 수 있어요. 그의 영혼이 불그스름했다는 건 누군가 그를 죽였다는 뜻이에요.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말아요. 아버지는 편하게 가셨으니. 바다에 가면 해수면이 햇빛을 만나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죠? 그게 바닷속에 있던 영혼과 감정이 좋은 곳으로 간다는 표식이에요. 반짝이는 바다를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삼길 바라요. 그게 우리 소울 스위퍼들이 남겨진 사람들에게 주는 마지막 위로니까.”
리도에게서 바다 이야기를 들으니, 기억 속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기억 속의 엄마와 나는 바닷가에 있었다.
엄마는 유독 바다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엄마는 바다를 하염없이, 하루 종일도 볼 수 있다 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도 그 빛을 보고 위로를 받았을까?
“저는 이다의 아들이에요. 혹시 이다를 아시나요?”
리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메랄드 빛깔의 파란 눈이 잠시 파도가 일렁이듯 출렁거렸다.
“이다는 떠올리면 무척이나 그리운 친구죠. 보고 싶었지만, 깊은 바닷속에서 만나지 않은 것을 늘 다행으로 여겼어요. 하지만 당신의 슬픈 눈을 보고 있자니, 이다가 마냥 잘 지낸 것은 아닌가 보군요.”
“네. 엄마는 돌아가셨어요. 납골당에 두었던 유골도 사라져서… 바다에 뿌릴 수도 없고요.”
말을 하면서 가슴이 아렸다. 엄마는 아빠의 유골을 바다에 뿌려 주었지만, 난 엄마의 유골을 지키지 못했다.
리도가 두툼하고 축축한 손으로 내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애써 헛기침을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편지에, 저에게 리도를 만나라는 내용이 있어요. 엄마와는 어떻게 아시는 사이인가요?”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저렇게 근사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리도가 엄마를 떠올리며 바로 그런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의 비애를 떠안는 것이 너무 힘겨워 정신을 잃고 바다에 떠내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 이다를 만났죠.”
엄마는 정신을 잃은 리도를 정성껏 돌봤고, 기운을 차린 그는 다시금 바다 깊은 곳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엄마가 왜 저에게 리도를 만나라고 했을까요? 혹시 짐작 가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리도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내 눈을 응시했다.
“이다와 같은 눈동자군요…. 이유는 알 거 같아요. 다만 지금 말고, 조금 이따가 이야기해 줄게요. 괜찮죠?”
“네. 그럼요.”
양해를 구하는 그의 눈빛에 얼핏 슬픔이 엿보이자 내가 아무렴 괜찮다는 듯이 더 밝게 대답했다.
그때 불현듯 카페에 보관하고 있던 아빠의 유품인 스웨터가 떠올랐다. 소울 스위퍼인 그라면 옷에 걸린 마법을 깨트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난 주방 구석에서 아빠의 옷이 담긴 종이 봉투를 꺼내 왔다.
“이건 돌아가신 아빠 유품이에요. 혹시 여기에 걸린 마법을 깨트려 주실 수 있나요? 리도라면 하실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리도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우선 자신의 무릎 위에 옷을 올렸다. 그리고 양손으로 옷 끄트머리를 세게 쥐었다.
“해 볼게요. 잠시….”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사막을 건너는 긴 낙타의 것처럼 얇고 긴 속눈썹이 파란 눈을 살포시 덮었다.
그가 심호흡을 하면서 조용히 주문을 읊조리자, 누렇게 바랜 아빠의 옷이 살짝 들썩였다.
사장이 먼저 어떤 기운을 느꼈는지 날 몇 발자국 뒤로 당겼다.
그때 뜨거운 열감과 빛이 빠르게 지나가고, 주변 공기가 급속히 팽창하며 사방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들더니 나와 사장이 1미터가량 뒤로 밀려났다.
순간적으로 주변과의 기압 차가 커지면서 귀가 먹먹해졌고, 고막이 터질 듯 고통스러웠다.
바람이 멈추고,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고, 리도의 볼에 가느다란 빗금이 생겼다. 빗금 사이로 붉은 피가 모로 흘렀다.
“괜찮으세요??”
나와 사장은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이는 리도를 부축했다.
“괜찮아요, 아주 강한 마법이 걸려 있네요.”
마법이 풀렸는지 리도의 손에 들린 아빠의 옷이 순식간에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까마귀 눈알을 통해 보지 않아도 피로 얼룩진 옷의 형태가 그대로 보였다.
옷은 마치 시간을 빠르게 돌린 것처럼 순식간에 변했다. 붉은 피는 흉한 갈색이 되었고, 부드럽던 옷감은 미라가 감고 있는 붕대처럼 흉측하게 굳어 오그라들었다.
“마법이 깨지니까,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거야.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사장이 놀란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설명했다.
반이 접힌 채 돌처럼 굳은 옷은 딱딱해서 펼쳐지지도 않았다. 난 그 모습을 보는 게 견디기 어려워서 옷을 서둘러 다시 종이 봉투 속에 담았다.
리도가 다시금 바닥으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혈색을 잃은 그의 안색을 살피며 사장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리도는 겨우 벽에 기대어 앉았다.
사장은 리도의 양해를 구한 뒤, 손수건으로 그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그때 딸랑, 방울 소리를 내며 카페 문이 열렸다.
카페 단골인 마델이었다. 그가 들어오자 리도가 없는 기운을 끌어모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델, 정말 오랜만이에요.”
카페 영업이 끝났다고 말하려던 차였던 사장은, 리도가 마델을 반기는 것을 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제가 오랜 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 마델을 이곳으로 불렀어요.”
리도와 마델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와락 안고 한참을 있었다. 나와 사장은 두 사람이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잠시 자리를 비켜 줬다.
“두 분이 원래 아는 사이였나 봐요.”
“응. 그런가 보네.”
사장이 마델의 커피를 새로 내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델과 이야기를 나누던 리도가 우리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해그냥 씨. 괜찮다면 저도 부탁이 있습니다.”
리도의 말에 내가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끄덕이면서 말했다. 아빠 유품에 걸린 마법을 깨트리면서 그가 얼마나 무리했는지 알았기에, 그의 부탁이라면 뭐든 꼭 들어주고 싶었다.
“네. 말씀하세요.”
“사실 제게 남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곧 죽는다는 말입니다.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요. 전 기뻐요. 이제 온전히 쉴 수 있게 되었으니. 다만… 떠나기 전에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신의 곁에 가게 되었다는 리도의 말이 떠올랐다. 그가 내게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모서리가 다 헤졌지만 오랜 시간 소중히 간직한 것으로 보였다. 벽화가 그려진 돌담 앞에서 여럿이서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 리도의 젊었을 적 모습이 보였고, 그 옆에 있는 게 마델과 그의 어린 아들이었다.
“10년 전, 제 친구 마델의 아이가 실종됐습니다. 이 아이를 좀 찾아 주세요.”
사진 속에 카메라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브이를 하는 남자아이의 개구진 표정이 보였다.
저만치 테이블에 앉아 있던 마델이 리도가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델도 리도가 내게 이런 부탁을 하리라곤 예상 못 한 것 같았다.
“부디 이 아이를 꼭 찾아 주세요.”
리도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과연 지킬 수 있는 약속일까. 허튼 약속을 할 수 없었던 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사장과 리도를 번갈아 봤다.
“못 찾을 수도 있겠죠. 그래도 꼭 찾아봐 준다고 약속해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도의 간절함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의 볼에 간 실빗금이 방금 전보다 더욱 짙어 보였다.
“솔직히 장담을 못 드려요. 그렇지만 열심히 찾아볼게요. 제 친구 중에 경찰도 있고… 방법이 있을 거예요.”
내 대답이 흡족한지 리도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카페 구석 테이블에 앉아 있던 마델은 리도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손등으로 짓누르며 색색 숨을 쉬었다.
덩달아 붉어진 눈시울을 들키기 싫었던 사장이 공연히 커피 원두를 갈았다. 원두 그라인더 안에서 백사장을 걷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이제 인사를 할 시간이 됐네요.”
리도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네? 벌써 가시게요?”
단지 카페를 떠난다는 말로 알아들은 나는 리도를 보았다. 미지근한 바람이 불면서 리도의 형체가 천천히 옅어졌다.
리도는 떠나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이 세상으로부터 사라지는 중이었다.
마델이 놀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장도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이다가 날 만나러 오라고 한 이유는 이것 때문이에요.”
리도가 잡은 손이 모래처럼 흐트러지며 조금씩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