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75)

#044화

리도의 손끝 발끝이 점점 모래처럼 부스러지며 사라졌다. 그의 몸이 조금씩 작은 입자로 변해 공중에서 흩날렸다.

“놀라지 마요. 괜찮아요. 고통스럽지 않아요. 오히려 편안하죠. 내가 죽은 자리에 소금이 남을 거예요. 그 소금을 가져요.”

놀란 나는 리도의 팔꿈치를 붙들었다.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리도의 존재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그 소금은 누군가 마음속 깊이 간직한 슬픔과 고통을 보게 해 줄 거예요. 내가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선물이에요. 이다에게 진 빚은 이걸로 갚을 수 있겠네요.”

리도의 형체가 천천히 옅어졌다. 그렇게 리도는 한 줌의 소금만 남긴 채 그렇게 사라졌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사장도, 마델도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남은 것은 소금과 리도와 한 약속, 그 두 개뿐이었다.

한참 동안 정적이 흘렀다. 한 영혼이 눈앞에서 소멸했으니,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와야 할지 갈피를 잃은 느낌이었다.

사장이 작은 유리병을 내게 주었고, 나는 리도가 남긴 소금을 입자 하나 허투루 날리는 일 없이 고이 담았다.

마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어 번 입을 댄 커피는 차갑게 식은 채 잔에 그대로였다.

마델이 조용히 카페를 나가면서 말했다.

“괜한 짓 할 필요 없어요. 리도의 마음만으로도 충분해요.”

마델은 더 이상 무의미한 희망을 갖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뛰어난 소울 스위퍼였던 리도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돕고… 싶어요. 리도의 마지막 부탁이기도 하고요.”

용기를 내서 카페를 떠나려는 마델을 붙잡았다. 마델이 멈칫하더니. 가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긴 한숨을 쉬었다.

“5분이었어요. 딱 5분.”

상념에 사로잡힌 마델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아이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놀이터에 가고 싶다고 졸랐어요. 집 바로 앞에 놀이터가 있었거든요. 정말 바로 앞에.”

마델의 목소리는 떨림도 없이 느리고 단단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이 순간을 곱씹었을지 알 것 같았다.

“난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있었고, 아이에게 먼저 가서 놀고 있으라고 했어요. 엄마는 씻고 가겠다고. 서둘러 씻고 5분 후에 놀이터로 갔는데 아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거예요. 그 5분 사이에.”

마델이 어떤 후회 속에서 삶을 살았을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어도 기다릴 만한 착한 아이였다. 굳이 5분 먼저 아이를 혼자 보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저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었을 뿐.

하늘이 찢기고 조각나서 무너지고, 흔들리는 땅에서 간신히 중심을 잡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마델은 아이를 다신 보지 못했다.

마델은 이 말을 마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가 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배달 심부름을 갔던 미고가 돌아왔다. 순식간에 얼어붙은 분위기에 미고가 눈을 끔뻑거리며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사장과 나는, 숨을 고르게 쉴 수 있었다.

난 리도가 남기고 간 사진 한 장과, 소금이 담긴 작은 병을 바라봤다. 엄마가 나더러 리도를 만나라고 한 이유가 이 소금 때문이었을까.

이제 나도 미고와 사장에게 인사를 남기고, 집에 갈 준비를 했다.

“형~ 여기서 자고 가지!”

미고가 서운한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미안. 아빠 옷이랑 이 사진 말이야. 내 친구한테 보여 주고, 뭐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진우에게 연락을 했다. 마침 출출했다며 진우는 치킨을 포장해서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내가 집에 도착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현관문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집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오직 한 명, 진우뿐이었다.

“야 나 너무 배고파…. 일단 빨리 먹자.”

기름 냄새를 풍기며 들어온 진우가 손에 든 비닐봉지를 흔들었다.

치킨에 눈길조차 안 주는 날 보며 진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넌 뭐 먹었냐? 치킨 안 먹어?”

“어. 너 먹어. 난 입맛이 없네.”

치킨을 보고도 입맛이 안 생기는 건 몸이 어딘가 단단히 고장 났다는 뜻이라며 건강 검진이라도 받으라고 진우가 중얼거렸다.

치킨을 단숨에 해치운 진우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뭔 일 있지? 얼른 말해.”

난 그제야 아빠 유품이 담긴 종이 봉투를 건넸다.

“이게 뭐야?”

“보면 알아.”

진우는 오래된 피로 얼룩진 옷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너 방금 밥 먹었는데 미안하다.”

“이 정도로 비위 상하면 경찰 못 해. 인마. 그나저나 이거 누구 거야?”

진우는 피로 얼룩진 옷이 범상치 않은 것임을 눈치채고 물었다.

“설명하긴 복잡한데… 이거 우리 아빠 옷이야.”

“아버지 옷?”

“응. 나도 최근에서야 알았는데… 아빠가 병으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서 아직 선뜻 입 밖으로 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호흡을 한 차례 고른 뒤 말을 이었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 같아.”

“뭐??? 아니, 갑자기…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증거는 있고?”

극심한 피로로 초점 없이 풀려 있던 진우의 눈빛이 다시 번뜩였다.

“이게 그 증거야. 일단 국과수에 감정을 받을 수 있을까? 이 피가 대체 누구의 피인지.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아야 돼.”

“일단 알아듣게 설명을 좀 해. 너 단순히 이 옷을 보고, 살인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거 같은데…….”

난 쏟아지는 진우의 질문에 대답할 기운이 없어서 냉장고에 등을 기대고 풀썩 주저앉았다.

“국과수가 동네 세탁소가 아니야. 그냥 대뜸 가져다주면 되는 게 아니라고. 무슨 사건이랑 어떤 연관이 있는지 소명이 필요해.”

점점 정신이 아득해졌다. 잠이 몰려오고 있었다. 난 간신히 잠을 이겨 내며 주머니에 있던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진우야. 미안한데 부탁이 하나 더 있어. 이 사진 속의 아이가 10년 전에 실종됐어. 찾을 수 있을까?”

진우는 낡은 사진을 물끄러미 살폈다. 카메라를 향해 마델과 그의 어린 아들, 그리고 리도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게 누군데? 아는 사람들이야? 실종 신고는 했대? 아이 이름은 뭔데?”

“실종 신고를 못 했을 거야. 아이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고.”

“뭐?? 신고를 왜 안 해! 불법 체류자야? 아니, 불법 체류를 해도 그렇지. 아이가 실종됐으면 신고를 먼저 하는 게 당연하지.”

진우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들은 인간 세계 사람들이 아니라서 경찰에 신고를 못 했다고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야…. 너 진짜 너무 이상해. 아버지 유품도 그렇고, 이 사진은 또 뭐고.”

질문을 퍼붓던 진우가 답답한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했다.

“그냥 좀 알아봐 줘. 나도 아이 엄마한테 부탁을 받은 거야.”

“그니까 누구길래 너한테 그런 부탁을 하냐고!!! 아이가 사라졌는데 실종 신고도 안 했다고 하고! 수상하잖아! 그 아이 엄마라는 사람도!”

“나중에 다 설명해 줄게. 지금은… 좀 그렇고.”

진우는 답답하게 구는 내가 못마땅한지 신경질적으로 마른오징어를 뜯었다.

나는 벽에 기대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방전된 기계처럼 고요히 잠이 들었다.

***

다음 날, 정오가 돼서야 간신히 일어난 나는 여전히 비몽사몽한 상태로 휴대 전화를 확인했다.

진우에게서 전화가 다섯 번이나 와 있었다. 무슨 일이지?

아빠 옷이 담긴 종이 봉투와 사진이 없어진 걸 보니 진우가 툴툴거리면서도 잘 챙겨 간 모양이었다.

“진우야, 전화했었어? 나 이제 막 일어났어.”

“야. 얼른 준비하고 나와. 지금 너희 집 앞으로 가는 중이니까.”

“왜? 무슨 일인데?”

“네가 준 사진 말이야. 실종 아동이 찍힌 사진. 그 사진을 가만 보니까, 찍었던 장소를 내가 알 것 같거든. 일단 같이 가 보자.”

난 진우의 말을 듣자마자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돌린 후, 옷을 챙겨 입으며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이어지는 진우의 설명은 이랬다.

어젯밤, 진우는 내가 준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니, 해그냥 이 자식 요즘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니깐. 뜬금없이 골목에 가 보라고 해서 갔더니 살인 사건이 나질 않나. 실종된 아이를 찾아 달라고 하질 않나.”

진우는 투덜거리면서도 내가 준 사진과 10년 전 실종 아동 리스트를 보며 꼼꼼히 비교 중이었다.

“자식이 설명도 제대로 안 하고, 막무가내로 말이야. 아무튼 다음번에 만나면 아주 내가 족쳐서 알아내든가 해야지.”

진우는 지금 맡고 있는 사건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럼에도 그는 신고조차 되어 있지 않은 실종 아동을 찾는 일에 피 같은 휴일 아침 시간을 쓰고 있었다.

“나는 또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건데?”

사진 속 아이는 입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마치 진우더러 자신을 찾아 달라고 말을 하는 거 같았다. 그 눈빛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진우는 나의 생뚱한 부탁을 저버리기가 어려웠다.

“에고. 고 녀석 귀엽게도 생겼네. 엄마가 널 잃어버리고 얼마나 애를 태웠을까. 가슴이 다 타들어 갔을 거야. 휴우…. 근데 대체 무슨 사정이 있어서 실종 신고도 안 돼 있는 거냐고.”

혹시나 싶어 실종 아동 리스트와 비교를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사진 속 아이의 인상착의가 비슷한 아이는 찾을 수 없었다.

멍하니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때 사진의 뒷배경에 등장하는 돌담에 그려진 벽화 그림이 흐릿하게 보였다.

“어? 잠깐… 저거… 어디서 봤던 거 같은데…….”

학교 폭력을 견디다 못해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본 진우는, 대학 진학 대신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경찰 시험에 합격한 그는 소년원 아이들과 함께 일 년간 벽화 봉사를 다녔다.

그림으론 영 솜씨가 없었던 진우는 대부분 배경 색칠을 맡았다. 진우가 사진 속에서 발견한 벽화 그림은 이미 벽에 칠해져 있던 그림이었다.

진우가 직접 파란색 페인트를 묻힌 붓으로 그 벽화 그림을 지웠기 때문에 똑똑히 기억했다.

‘대체 벽에 돌고래를 그린 건지 도마뱀을 그린 건지, 알 수가 없다고 애들이랑 한참을 웃었던 게 기억나.’

장소를 확인한 진우는 급히 경찰서를 나오면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이 자식은 전화를 왜 안 받아? 아주 내가 지 꼬붕이지. 나한테 심부름시켜 놓고 지는 꿀잠 자는구나.”

이후 나는 진우의 전화를 받고 집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곧 진우가 도착했고, 우린 차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동네였는데, 후미진 느낌을 풍겼다. 곳곳에 요란하게 그려진 벽화는 동네의 음침함을 가리려는 두꺼운 메이크업이었다.

“동네가 여전히 낡았네. 여긴 재개발 안 되나.”

진우는 기억을 더듬어 벽화가 그려져 있던 담벼락을 찾아냈다. 사진과 비교해 보니 구도가 정확히 일치했다.

우린 근처에 ‘형제 슈퍼’라는 간판을 단 허름한 편의점에 들렀다. 가게 곳곳에 십 년의 세월은 거뜬히 겪었을 흔적이 엿보였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혹시 이 사진 속의 아이를 아시는지 여쭤보려고요.”

편의점 주인인 아주머니는 진우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의 이두박근에 시선을 고정하며 물었다.

“뭔 사진? 당신 누군데? 깡패야?”

“제가 어딜 봐서 깡패예요. 경찰이에요. 경찰.”

진우는 종종 듣는 오해인지 새삼 억울해하며 말했다.

“흠. 그래?”

아주머니는 공무원증을 확인하고서야 진우가 내민 사진을 자세히 살폈다.

“아…. 기억이 나는 것도 같은데. 옛날에 실종된 아이 아닌가? 애가 실종되고 나서 애 엄마가 아주 폐인이 됐었지. 우울증에 걸려서 우리 집에 매일 술을 사러 왔었어. 진짜 불쌍해서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니까.”

“어떻게 실종됐는지 아세요?”

난 진우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용히 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경찰이면 알 거 아니야. 왜 나한테 물어? 아무튼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데 단 5분 만에 사라졌더래. 그래서 애 엄마가 미쳐 버린 건지도 몰라. 그 5분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으니.”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주머니의 말을 경청했다.

“애 엄마는 못 본 지 오래됐어. 한 7, 8년 됐나. 어디 가서 죽은 건 아닌가 몰라.”

진우와 나는 슈퍼 아주머니가 일러 준 대로 아이가 살던 집을 찾아갔다. 걸어서 5분 거리로 가까웠다.

허름한 주택 1층, 집 대문을 보아하니 드나든 사람의 흔적이 없이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진우가 더러운 창문에 이마를 스스럼없이 대고, 안을 들여다봤다.

그때였다. 슈퍼에서 산 껌을 씹던 진우가 긴장한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고개 숙여. 지금 이 집 안에 누가 있어. 애 엄마는 아닌 거 같은데…. 어쩌면 범인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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