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5/75)

#045화

진우의 말에 몸을 낮추고, 먼지가 가득 낀 창 안쪽을 들여다봤다. 사람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거 같은데… 누가 있다는 거야?”

“분명히 봤어. 누군가 빠르게 쓱 지나가는 거.”

진우는 사냥감을 목전에 둔 맹수처럼 몸을 수그린 채 작게 속삭였다.

“넌 여기 문 앞에서 지키고 있어. 누가 나오는지 잘 보고. 혹시 누가 나오더라도 덤비지 말고 도망가게 둬. 위험하니까. 괜히 잡는다고 허튼짓하지 마라. 난 다른 출구가 있는지 확인하고 올게. 느낌이 싸하다. 이 새끼… 이거 지금 잡아야 돼.”

형사의 촉이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진우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매서운 눈빛이나 격양된 목소리 톤, 날렵하게 움직이는 육중한 몸까지.

진우가 몸을 낮춘 채 벽을 따라 돌았다.

정말 집 안에 누가 있다면 수상한 일임은 분명했다. 이렇게 낡은 집에 도둑이 들 리도 없고. 그렇다면 범행 장소를 다시 찾은 범인일지도 몰랐다.

난 문 앞을 지켰다. 누군가 나온다면 진우의 말대로 순순히 보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때 집 건너편에서 타다닥, 서둘러 뛰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어 정확히는 못 들었지만 진우가 뭐라 소리치는 게 들렸다.

난 황급히 진우가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진우는 누군가의 뒤를 쫓아 전력 질주 중이었다. 나 역시 진우를 따라 뛰기를 잠시, 진우가 벽을 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게 보였다.

“아 씨…. 놓쳤어. 새끼가 왜 이렇게 빨라?”

“봤어??”

“아니. 내가 뒤편으로 갈 때쯤 이미 안방 창문으로 도망치고 있더라고. 뒷모습만 봤는데… 그냥 검은색 후드티에, 바지… 모자를 푹 눌러써서 얼굴도 못 봤어.”

아쉬운 마음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바로 뒤쫓았는데 새끼가 겁나 빠르네. 이제 CCTV 뒤져서 찾아야지. 이 일대에 CCTV가 촘촘하게 설치가 안 돼 있을 텐데 걱정이다. 걱정.”

“네 생각에는 도망친 놈이 혹시….”

내가 조심스럽게 진우에게 물었다. 누가 됐든 이렇게 필사적으로 도망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유력한 용의자야. 생각해 봐라. 누가 이런 집에 물건을 훔치러 와. 그리고 그냥 집에 온 사람이라면 우릴 보고 도망갈 이유는 더더욱 없지. 저렇게 도망치는 새끼들은 다 이유가 있다니까. 하! 씨! 잡아야 했는데!!”

진우는 수상한 사람을 마주친 이상 나도 그냥은 넘어가지 못하겠다면서 사건에 의욕을 보였다.

“아! 맞다. 너 아까 그 집에 다시 가 봐. 안방 창문 열려 있을 거야. 집에 들어가서 뭐 없어진 건 없나. 아무튼 좀 확인해 봐.”

“나 혼자?”

“난 일단 도망친 새끼가 누군지, 먼저 잡아야 돼.”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는 조만간 아이 엄마를 꼭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 실종 아동을 찾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거라면서.

난 진우와 헤어지고 다시 마델이 아이와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그것도 문이 아닌 창문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10여 년 전에 집 앞에 있었다던 놀이터는 이제 시멘트가 두툼하게 깔린 빌라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마델의 집에서 열 발자국도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했다.

‘이 정도면 먼저 가서 놀고 있으라고 할 만도 하네.’

난 마델에게 당신 탓이 아니라고. 누구라도 그럴 만했다고 위로하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늙고 상처받은 집의 모습이 평소 마델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마델은 저명한 마법사였지만, 아이를 낳은 후에는 인간 세계에서 살기 시작했다. 아이에겐 마력이 없었다고 하니, 인간 세계에서 사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편한 환경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주택 뒤쪽, 야트막한 벽 너머로 안방 창문이 보였다. 진우의 말대로 반쯤 열려 있었다.

난 한참 동안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며 보는 눈이 없는지 확인한 뒤 담 위로 올라갔다. 담에서 다리를 뻗어서 창틀에 발을 올렸다.

몸을 날려 방 안으로 뛰었다. 수북하게 쌓인 먼지가 나로 인해 풀썩거리며 방 안에 자욱한 연기를 만들었다.

안방은 창고처럼 여러 가지 잡동사니가 분별없이 마구잡이로 놓여 있었다.

너저분하고 전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이가 사라진 그 날을 기점으로 단 한 번도 치운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오직 아이의 방만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아이가 돌아오면 장난감을 가지고 편히 놀 수 있도록.

집 안 곳곳에서 아이의 사진이 보였다. 개나리 옆에서 아랫니가 빠진 채 헤벌쭉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부터 아이가 학교서 받아 온 ‘착한 어린이 상’도 자랑스럽게 벽에 걸려 있었다.

대부분 아이의 독사진이었다. 아이 아빠와는 아주 이른 이별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게 사별이었는지 단순한 이별이었는지는 아무도 몰랐고, 누구도 마델에게 이에 대해 묻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이 낡은 집을 오직 아이 홀로 쓸쓸히 지키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렸다.

지저분하긴 했지만 언뜻 봤을 때 도둑이 집을 뒤진 흔적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대체 누가, 왜 집에 들어온 거지? 정말 진우 말대로 아이를 납치한 유괴범인 걸까.’

그때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처음엔 그냥 먼지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무언가 불에 탄 후 남아 있는 재였다.

오래전부터 있던 게 아닐지도 몰랐다. 혹시 아까 집에 들어온 그자의 짓인가?

혹시 몰라서 무언가를 또 태운 흔적이 있는지 주변을 샅샅이 뒤졌다.

“어? 찾았다!”

방 안 구석에서 타다 만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반쯤 타서 사라진 사진 속에는 아이가 자전거를 타면서 웃고 있었다.

벽에 걸려 있는 아이 사진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진 같은데 왜 태우려고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난 깨끗한 비닐봉지를 찾아 반쪽 남은 사진과 남은 재를 모두 담았다. 중요한 증거일지도 몰랐다.

그 시각, 진우는 주변 CCTV 영상을 보면서 집에서 도망친 자의 행적을 좇고 있었다.

눈이 빠지게 찾았지만, 놈은 마치 증발해 버린 것처럼 CCTV 사각지대로 사라져 버렸다.

이대로 포기할 진우가 아니었다.

‘집에서 도망치는 모습을 놓쳤다면, 네가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를 찾으면 되지.’

진우는 시간대를 바꿔서 처음 그가 빈집에 들어가던 순간을 찾아냈다. 도망칠 때는 그렇게 재빠르던 녀석이, 집에 들어갈 때는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진우는 몇 시간째 정체불명의 남자의 동선을 따라 CCTV 영상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경찰 일이라는 게 요즘은 현장에서 뛰는 것보다 CCTV를 들여다보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거의 ‘도사’ 취급을 받았는데, CCTV에서 용의자를 단박에 잘 찾았기 때문이었다.

통합 관제 상황실 관제 요원들에게 일사불란하게 지시를 내리던 진우가 드디어 남자의 꼬리를 잡았다.

“찾았다!!! 하! 지가 도망쳐 봤자 내 손바닥 안이지!”

CCTV를 역순으로 추적한 결과, 이 남자가 최초로 출발한 곳이 ‘예스 고시원’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진우는 쾌재를 부르며 정체불명의 남자의 거주지로 보이는 고시원으로 향했다.

그는 고시원 입구를 지키며 동시에 수험서를 보고 있던 학생에게 CCTV 캡처본을 보여 주며 물었다.

“이 남자 본 적 있어요? 혹시 여기 살아요?”

고시원 사감이었던 그는 사진을 보고 단박에 누군가를 떠올리며 말했다.

“303호 사는 애인데요. 그건 왜요?”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의 신상에 대해 모두 꿰고 있던 그가 진우에게 자신이 아는 정보를 쏟아 냈다.

“이 친구 이름은 김상호고요. 저기 303호 살아요. 9급 공무원 시험을 3년째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어요. 좀 철딱서니가 없어도 착한 놈인데… 얘를 왜 찾으시는 거예요?”

사감은 진우가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좀 이상했다. 형사의 감으로 봤을 때, 이 남자가 납치범이라기엔 나이도 상황도, 영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사감의 안내를 따라 진우가 303호의 문을 두드렸다.

ㅡ똑똑똑.

“김상호 씨. 계시죠?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낡은 나무문이 삐거덕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누구세요?”

눈 밑이 퀭하니, 피곤해 보이는 20대 남자가 안 감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나왔다.

“경찰입니다. 수사 중인데 협조 부탁드립니다. 오늘 오후 한 시 반경에 이 집에 갔었죠? 여긴 왜 갔어요?”

진우는 그가 찍힌 CCTV 영상을 보여 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어딜 가요?”

진우의 물음에 김상호가 봉변을 당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이렇게 버젓이 찍힌 사진이 있는데도 발뺌하시는 겁니까?”

남자는 진우의 이야기를 듣더니 억울하다는 듯이 해명했다.

“전 오늘 오후 한 시부터 내내 편의점에 있었어요. 알바하느라. 거기에 찍힌 사람, 뭐 저랑 닮긴 했는데… 아무튼 저 아니에요! 못 믿으시겠으면 같이 편의점으로 가요. 거기 CCTV 영상 보여 드릴 테니까.”

남자는 제 억울함을 풀 생각으로 오히려 앞장서서 진우를 끌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남자의 말대로 편의점 CCTV 영상에는 오전 내내 남자가 편의점에서 일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영상이 조작이 아니라면, 남자의 알리바이는 증명이 된 셈이었다.

“거봐요! 제 말이 맞죠? 저 이제 집에 가 봐도 되는 거죠? 공부할 시간을 너무 뺏겼다고요….”

“네.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303호 남자의 말이 사실로 드러난 이상 진우는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시원 CCTV 영상을 거듭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상해…. 분명 오후 한 시쯤 고시원에서 나와서 버스 타고 아까 그 실종 아동의 집까지 간 것을 내가 동선별로 다 되짚어 확인을 했는데… 같은 시간에 어떻게 편의점 CCTV에도 찍힌 거지.’

CCTV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반복해서 보던 진우가 어느 지점에서 화면을 멈췄다.

화면만 멈춘 게 아니라, 진우의 표정도 오묘한 표정으로 멈춰 있었다.

“이게 뭐야….”

303호 남자가 오후 한 시에 방에서 나오고, 정확히 15분 후에 같은 사람이 다시 방에서 나왔다.

방에서 동일인이 두 번 나온 것이 찍힌 것인데, 이게 가능하려면 303호 남자가 쌍둥이라야 했다.

진우는 아까 받아 놓은 303호 청년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 근데 혹시 쌍둥이 형제가 있어요?”

“네?? 아우…. 진짜 하다 하다…. 없어요. 없어. 쌍둥이 아니고요. 저 삼대독자거든요? 공부해야 되니까 그만 귀찮게 하세요.”

진우는 자신의 눈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무리 봐도 15분의 시차를 두고 나오는 건 303호 청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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