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75)

#046화

어느덧 진우 옆에서 같이 CCTV 영상을 보고 있던 고시원 사감 학생도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어? 얘가 왜 또 방에서 나오지? 10시에 방에서 나왔고, 다시 들어간 적이 없는데 15분 후에 또 나오는 거죠? 지금?”

진우가 고심하며 입술을 물어뜯었다 경찰 생활을 하면서 많은 CCTV 영상을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전날 영상도 좀 볼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방금 확인해 봤는데요. 전날 영상이 없어요. 시스템 에러 같은데…. 혹시 나오는 모습이 두 번 찍힌 것도 에러 같은 게 아닐까요?”

진우가 학생의 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잘 봐요. 나오는 모습이 완전히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한 것처럼 똑같으면 그럴 수도 있겠죠. 근데 이건… 나오는 모습이 전혀 달라요.”

“방에서 나오는 모습이 다르다고요?”

사감 학생이 도수가 높은 안경을 고쳐 쓰며 다시 영상을 확인했다. 그가 밀착하자 진우의 코에 싸구려 스킨 냄새가 물씬 풍겼다.

“처음 나오는 사람은 상체가 쏠린 채 걸어요. 어디 급하게 가는 사람처럼. 그리고 무릎 사이를 밀착해서 쓸면서 걷는 스타일이고. 근데 15분 후에 나오는 사람은 상체가 뒤로 쭉 빠져 있죠. 걷는 폼부터가 달라요. 마치 다른 사람처럼.”

“정말 그러네요. 분명 같은 사람인데….”

“혹시 303호 학생이 평소 어떻게 걷는지 기억나요? 둘 중에 고르자면 어떤 게 더 비슷해요?”

사감 학생이 면도를 하기 전인 자신의 턱을 손등으로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먼저 나온 사람이 상호랑 더 비슷한 느낌이긴 해요. 늘 쫓기듯이, 느긋한 느낌은 아니에요. 사실 수험생들이 대개 다 그렇죠. 뭐. 여기 느긋한 사람이 어딨어요. 아마 남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게 걸음걸이에서도 나오는 거 같기도 하고.”

사감 학생이 푸념처럼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학생은 무슨 시험 준비해요?”

진우가 갑작스럽게 경직된 분위기를 풀며 사감 학생에게 물었다.

“저요? 임용 고시요….”

“어려운 시험 준비하네. 공무원 할 사람은 입 무거워야 하는 거 알죠? 수사 중인 사안이니까 함구하고. 오늘 협조해 줘서 고마워요.”

사감의 입단속까지 마친 진우는 CCTV 영상 원본을 챙기고 일어섰다. 이상했지만 우선은 학생 앞에서 태연한 척했다. 그리고 혼자 남겨지자마자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해그냥! 내가 아까 그 집에서 도망친 놈을 CCTV 영상 눈 빠지라 보면서 결국 찾았거든?”

이제 막 카페에 도착한 나는 진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찾았다고? 누군데? 그래서 뭐래? 거긴 왜 간 거래?”

진우는 내게 방금 전 있었던 일을 속사포처럼 쏟아 냈다.

“알리바이가 있더라니까? 같은 시간에 편의점 CCTV에도 찍혔으니까. 근데 대체 방에서 같은 사람이 두 번 나온 거는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진우가 생각할수록 말이 안 되는 상황에 답답한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시원 CCTV 영상 나한테 보낸 거 맞지? 나도 좀 보려고.”

“어…. 그나저나 네 주위에 이상한 일이 왜 이렇게 생기는 거야. 너 어디 점이라도 보러 가야 하는 거 아니냐? 삼재 그런 거 아니냐고.”

“삼재는 무슨…. 그런 거 아니야. 아무튼 고생했어. 나도 나대로 좀 더 알아볼게.”

진우가 “너대로 뭘 더 알아본다는 거냐.”며 되묻는 말을 뒤로하고 하고 우선 전화를 끊었다.

진우와의 통화를 바로 옆에서 듣고 있었던 미고와 사장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우린 곧장 영상을 확인했다. 진우의 말 그대로였다. 분명 같은 사람이, 방에서 연달아 나왔다.

영상을 확인한 사장과 미고는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시선을 교환했다.

“마법을 썼네.”

사장이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핸드폰에서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변장 마법을 쓴 거 같아요.”

미고가 사장의 말을 거들면서 말했다.

“변장 마법이라니….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

“변장할 사람의 신체 일부랑 악초 할아범 정원에서 나는 쌍둥이 풀뿌리랑 또… 아무튼 제조법이 복잡해서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사장이 계피 시럽을 넣은 시원한 커피를 내오면서 말했다.

“약을 먹이고, 변장하고 싶은 사람 옆에서 4시간 동안 같이 잠들어야 돼. 아마 그래서 범인이 전날 영상을 지운 거겠지.”

“그렇다면 누군가 자신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 학생으로 변장을 하고 마델의 집에 갔다는 거잖아요. 용의주도하네요.….”

“아마 너희가 마델의 집으로 들이닥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거 같아. 그러니까 거길 갔겠지. 마주치면 의심을 살 게 뻔한데.”

사장의 말이 맞았다. 난 마델의 집에서 챙겨 온, 불에 타다 만 사진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 다른 볼일도 있었던 거 같아요. 사진을 태우려고 했던 걸 보면…….”

“그 사진에 범인이 찍혔던 게 아닐까요? 그러지 않고서야 굳이 가서 없앨 필요가 없잖아요!”

미고가 결정적인 증거를 잡았다는 듯이 흥분하며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범인이 마델과도 아는 사이라는 거잖아. 단순히 아는 걸 넘어서 같이 사진을 찍을 정도로 친밀한 사이라는 거지. 어우! 소름 끼쳐.”

내가 진저리를 치며 물을 들이켰다. 찬물을 마시자 몸이 절로 부르르 떨렸다.

“근데 왜 이제 와 사진을 없애려고 한 거지? 이제껏 같이 찍은 사진이 있었어도, 눈치를 못 챘다는 거잖아.”

“저도 그게 좀 걸려요. 범인이 왜 하필 지금 사진을 없애려고 했는지. 굳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면서까지 위험 부담을 안았냐는 거예요. 덕분에 우린 범인이 면식범이었다는 힌트를 얻었지만… 아무래도 좀 이상해요.”

사장도 내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뭔가 놓치는 게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정답지를 눈앞에 두고도, 못 보는 그런 바보가 된 기분.

“그나저나 어떻게 잡죠? 변장 마법을 쓴 자 말이에요.”

“못 잡지. 한 번 걸렸으니 그 남자애로 또 변장하진 않을 거고. 변장 마법을 쓰더라도 다른 사람을 이용할 거야.”

사장이 마델의 집에서 가져온 사진을 가리키며 재차 말했다.

“이 사진 속에 단서가 있겠지. 범인이 뭘 숨기려고 했는지. 이 사진만 복원하면…….”

“복원요? 이미 타 버린 사진을 복원할 수가 있어요?”

사장이 사진을 챙기고 겉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마법사 장터에 사진관이 있어. 아무래도 물질의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라 어렵고, 오래 걸릴지도 몰라. 그래도 해 봐야지.”

사장은 급히 사진을 들고, 마법사 장터로 향했다.

“미고야, 내가 없는 동안 카페 잘 봐.”

“네!”

미고가 중요한 임무를 맡은 양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 진우를 좀 만나고 올게요. 아무래도 범인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같아요.”

“그래. 각자 볼일 보고, 이따 연락하자고.”

그간 크고, 작은 일을 함께 해결해 온 시간 덕분인지 셋의 손발이 더욱 잘 맞았다.

카페를 나온 나는 바로 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우야, 너 어디야? 잠깐 볼 수 있어?”

진우는 어디를 급하게 가는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나 지금 고시원에 가는 중이야. 거기 사감 학생이 급히 할 말이 있다고 해서. 전날 영상도 찾았다고 하고.”

“그래?? 잘됐다!! 나도 거기로 갈게. 문자로 주소 좀 찍어 줘.”

“오케이. 거기서 만나자.”

전날 영상에 범인의 얼굴이 찍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마 진우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진우에게 고마우면서도 괜한 일에 끌어들인 것은 아닌지 꺼림칙한 마음이 스쳤다.

‘별일이야 있겠어.’

내가 서둘러 고시원에 가고 있는 사이, 진우는 이미 엘리베이터도 없는 허름한 고시원에 도착해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4층 계단에 미리 나와 있던 사감 학생이 반가운 목소리로 진우를 맞았다.

“형사님! 여기요.”

4층까지 단숨에 올라온 진우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영상 없다더니 어떻게 찾았어요? 하고 싶다던 말은 또 뭐고요?”

진우가 질문을 퍼붓자 사감 학생이 “뭐가 그리 급하시냐.”며 피식 웃었다.

사감 학생이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는 사이, 진우는 그가 준 캔 커피를 만지작거렸다.

“안 드세요?

“별로 목이 안 말라서… 요즘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더니, 카페인 중독인 거 같기도 하고.”

“아, 네. 고생하시네요.”

사감 학생은 전날 영상을 찾다 말고,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학생이 자리를 비운 사이, 진우가 컴퓨터로 파일을 뒤졌지만 여전히 사건 전날 영상은 찾을 수 없었다.

‘어디에 있다는 거지.’

진우가 사감 학생을 기다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성인 한 명 간신히 있을 만한 협소한 공간, 이곳에서 고시원 잡일을 도맡아 하면서 종일 공부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우는 경찰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던 때를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는 죽을 것처럼 힘이 들더니, 시간이 지나니까 기억도 왜곡되나 보네. 그때도 나름 좋았다 싶은 걸 보니.’

오늘은 어쩐 일인지 사감 학생 책상에 책이 없었다. 텅 빈 책상을 보며 진우가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감 학생이 화장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런 학생을 지켜보던 진우의 미간에 일자로 주름이 잡혔다. 진우가 “씁….”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셨다.

“잠깐…… 너 누구야.”

“네?”

뜬금없는 진우의 말에 사감 학생이 팔짱을 끼며 되물었다.

“처음엔 눈치를 못 챘어. 근데 좀 이상하더라. 나한테 새삼 형사님, 이라고 부르질 않나. 갑자기 캔 커피를 주면서 살갑게 굴질 않나. 그리고 진하게 나던 싸구려 스킨 냄새도 안 나고. 책상 위에 책도 한 권도 없고.”

사감 학생이 진우의 말을 들으면서 뭔 말인지 당최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형사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지금 저를 의심하시는 거예요? 제가 뭘 했다고…….”

“결정적으로 방금 네 걸음 말이야. 상체를 뒤로 빼고, 느긋하게 걷는 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이 말이지.”

사감 학생이 별 시답잖은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조소했다. 순간 얼굴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일그러졌다.

그때 진우의 목 뒤에 무언가 차갑고 딱딱한 것이 닿았다. 반사 신경이 좋은 진우였으니 평소라면 바로 뒤로 돌았겠지만,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손끝 발끝서부터 점점 딱딱하게 굳어 가는 게 느껴졌다. 고개가 뻣뻣해서 돌아가지 않았고, 입술도 글루 건으로 붙인 것처럼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으으으…….”

순식간에 온몸이 마비된 진우가 고통에 신음했다. 오직 그의 눈동자만이 혼란스럽게 위아래, 좌우로 움직였다.

“그니까 왜 이렇게 설쳐.”

사감 학생의 목소리 톤이 미세하게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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