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화
진우가 몸을 움직이려고 힘을 주자 관자놀이에 핏줄이 굵게 부풀어 올랐다.
“계속 힘주면 눈알이 터질 텐데… 내가 몇 봤거든.”
사감 학생으로 변신한 누군가는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며 빈정거렸다.
“자…. 넌 이제 이 남자애한테 죽임을 당하는 거야. 고시생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경찰을 죽였을까. 사람들이 재밌어할 만한 사건이 되겠네.”
놈이 왼손을 공중에 올리자, 진우의 뒤통수를 겨누고 있던 지팡이가 휙- 돌아서 이번엔 진우의 목을 겨눴다.
놈의 입꼬리가 길게 찢어졌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묘한 기대감이 엿보이는 미소였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진우의 눈동자 안을 놈이 거울처럼 들여다봤다. 단숨에 끝낼 수 있지만, 아쉽다는 듯이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때였다. 진우의 전화를 받은 내가 헐레벌떡 고시원에 도착한 것이.
고시원에 들어서자마자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진우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 휘둘렀다.
놈의 지팡이가 튕겨 나가고, 마비가 풀린 진우의 몸이 풀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진우야!!!”
사감 학생으로 분한 자가 날 노려봤다. 떨어진 지팡이는 다시 순식간에 떠올라 놈의 손에 쥐어졌다.
좁은 공간에서 우린 가운데 진우를 두고 대치 중이었다. 놈이 지팡이를 든 손을 움직이자, 나는 서둘러 날개를 펼쳤다. 놈의 공격이 날개에 맞고 튕겨 나가면서 형광등이 굉음을 내면서 깨졌다.
“거저 얻은 그 날개로 유세라도 떨 참인가?”
‘거저 얻어? 내가 케루빔의 날개를 어떻게 얻었는지 알고 있다는 뜻인가?’
난 날개로 진우를 더욱 세게 감쌌다. 지금 놈의 타깃은 진우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네 친구 모가지가 바닥에 나뒹구는 것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군.”
놈은 어깨를 으쓱 추켜올리고 으스대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거의 다 됐어. 내가 지금 신데렐라 처지라서 말이야…. 마차가 호박으로 변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신데렐라? 호박? 놈이 뭐라고 지껄이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왼쪽 눈동자에 미래의 잔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허름한 고시원 307호 방 안, 붉은 피로 젖어 가는 싸구려 침대 시트가 보였다. 이불 모서리에서 핏방울이 맺혀 뚝뚝 떨어졌고, 바닥에 펼쳐진 수험서에 피가 둥근 원으로 번졌다.
피를 모두 쏟고, 호흡을 잃은 사람을 확인하니,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감 학생의 얼굴과 같았다.
내 왼쪽 눈이 보랏빛을 내면서 번뜩이는 것을 확인한 놈이 중얼거렸다.
“그 눈… 미래를 보는 군.”
놈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듯이 유유히 고시원을 빠져 나갔다. 난 이렇게 놈을 놓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왼쪽 눈에 보이는, 싸늘하게 식어 가는 307호 사감 학생의 모습을 외면할 수 없었다.
놈이 뒤로 돌아 나를 힐끗 보며 말했다.
“날 잡고 싶으면 쫓아오든가. 날 따라오면 곧 내 정체를 알 수 있을 거야. 곧 변신 마법이 끝나거든.”
몇 걸음 더 멀어진 놈은 이내 몸을 아예 뒤로 휙 돌려 팔을 펼쳤다. 그가 뒷걸음질로 멀어지며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 변신이 끝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네가 더 잘 알 거야. 지금 그 눈으로 보고 있을 테니까.”
‘젠장.’
놈의 말을 듣고 염려가 확신으로 변했다.
변신 마법이 끝난다는 말은 사감 학생이 죽는다는 말이었다. 신데렐라의 마차가 자정이 되면 호박으로 되돌아오듯, 사감 학생이 죽으면 놈도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올 터였다.
놈의 입가가 방정맞게 씰룩거렸다. 난 그대로 307호 방을 찾아 뛰었다.
307호는 고시원 복도의 맨 끝, 공용 화장실 바로 옆에 위치했다. 문을 열자, 창문 하나 없이 사방으로 막힌 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1인용 침대 하나 간신히 들어가는 크기의 방에 사감 학생이 누워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피는 오른손 팔목에서부터 시작됐다. 날카로운 것에 깔끔하게 베인 상처였다.
언제부터 피를 흘리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촌각을 다투는 긴박한 상황임은 분명했다.
피를 많이 흘려 안색이 창백했고, 팔다리는 힘없이 축 처져 있었다. 난 호흡을 확인하기 위해 학생의 코에 귀를 가져다 댔다.
‘미세하지만 아직 호흡이 있어.’
사감 학생은 위독했지만, 미래시를 통해 본 것처럼 많은 피를 흘린 것은 아니었다. 난 서둘러 119에 신고 전화를 했다.
놈은 이 학생의 몸을 빌린 것도 모자라, 그를 자살로 위장해 살해할 생각이었다.
놈이 307호 사감 학생의 몸을 빌린 이유는 오직 진우를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진우가 날 도와서 생긴 일이야.’
불안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후회가 몰려왔다. 진우를 이 일에 끌어들이는 게 아니었다.
구급대원이 도착해서 응급 처치를 한 뒤 사감 학생을 들것에 실었다. 이후 구급대원들이 쓰러진 진우를 발견할 때쯤 진우가 정신을 차렸다.
진우는 의식을 찾자마자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들것에 실려 나가는 사감 학생의 모습을 보며 움찔거렸다.
“안심해. 이제 괜찮아…. 일단 몸부터 추스르자.”
혼란스러워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진우를 부축해 구급차에 태웠다. 진우는 병원으로 이송되는 와중에 다시 과호흡을 일으키더니 또 한 번 의식을 잃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난 사감 학생의 상태를 확인했다. 생명엔 지장이 없다는 의사에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감 학생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살 기도자가 됐다. 곰팡이 핀 고시원 벽에 붙어 있던 오색의 포스트잇이 떠올랐다.
대부분 자기 계발서에 나올 법한 힘을 북돋는 글귀들이었다. 힘들어도 결코 자신을 해치는 일 따위는 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송 중 의식을 잃었던 진우도 정신을 되찾았다. 극심한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 때문인 거 같다고 의사가 진우의 상태를 설명했다.
다행히 진우도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목 부위에 찢긴 상처 위에 붕대가 감겨 있었다.
진우가 누워서 눈을 끔뻑거리며 날 찾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술을 움직이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냐니까. 나 다 봤어.”
제발 뭐라고 말이라도 해 보라는 진우의 간절한 눈빛이 보였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진우를 내 일에 더욱 끌어들이는 결과가 될까 봐 망설여졌다.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나. 머릿속에 오만 가지 생각이 빠르게 스쳤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진우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야…. 너 얼른 말 안 해???”
“너 몸 회복하면, 그때 다 설명할게. 급할 거 없어.”
이 말로 진우를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아 맞다…. 그 사감 학생은 괜찮아? 아까 나랑 같이 응급실에 실려 가는 걸 봤어. 피를 많이 흘리던데.”
“괜찮아. 생명에 지장이 없대. 다행이지.”
“그 자식은 누구길래 사감 학생으로 감쪽같이 변해서… 뭐 귀신이라도 돼??”
진우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공격한 게 진짜 사감 학생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계속해서 채근할 것이 뻔한 진우의 성격을 아는지라, 난 오늘 중으로 다 설명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그를 안심시켰다.
진우와 대화 중에, 문뜩 병실 창문 밖으로 까마귀가 나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 저건 미고잖아!
난 미고에게 건물 위에서 만나자고 손짓을 했다. 진우가 “너 뭐 하냐.”며 이상한 눈빛으로 날 흘겨봤다.
“진우야, 잠깐만 여기 있어. 나 금방 올게. 와서 다 설명해 줄게.”
난 사람으로 꽉 찬 엘리베이터를 피해 비상 계단으로 옥상까지 단숨에 뛰어갔다. 옥상 철제문을 열어젖히자 까마귀 한 마리가 솟구쳐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순식간의 사람의 모습을 한 미고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미고야! 너 내가 여기에 있는 줄 어떻게 알고 왔어?”
“사장님이 아무래도 걱정이 된다면서 저더러 형을 따라가 보라고 하더라고요. 고시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형이랑 형 친구랑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길래 쫓아온 거고요.”
“아…. 그랬구나.”
미고가 내게 전할 좋은 소식이 있는지 안색을 밝히며 말했다. 미고는 어떤 말을 할 때 그게 좋은 소식이면 표정에서부터 먼저 티가 났다.
“그리고 사장님이 사진 복원이 생각보다 빨리 될 거 같다면서 바로 형을 데리고 카페로 오라고 했어요.”
“좋은 소식이네. 얼른 가 봐야겠다. 그런데 그 전에….”
이대로 진우에게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카페로 갈 수는 없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미고를 바라보았다.
“내 친구가 학생으로 변신한 놈한테 상처도 입고, 내가 마법을 쓰는 모습까지 봐 버렸어. 이걸 먼저 해결해야 할 것 같은데….”
미고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천진하게 말했다.
“기억을 지우는 방법도 있어요. 제가 할까요?”
“아니야. 그건 좀 그래. 일단 사장님이랑 상의를 좀 해야겠다.”
진우의 기억에 손을 대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누군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기억을 조작하는 게 얼마나 엿 같은 일인지 알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
미고를 데리고 진우의 병실로 갔을 때, 진우는 수액을 반쯤 맞은 상태로 퇴원하려는지 환자복을 갈아입고 있었다.
“너 뭐 해? 의사 말 못 들었어? 오늘 하루 병원에서 진정을 좀 하라잖아.”
진우가 내 말에 개의치 않으며 링거 주사를 거칠게 떼어 냈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나 괜찮아. 인마. 내가 아까 너무 놀라서 그래. 자…. 이제 알아듣게 설명 좀 해 봐. 대체 그놈 정체가 뭐야? 그리고 또 너는….”
“우선 급히 갈 곳이 있어. 가면서 이야기하자. 여긴 내 친구야.”
난 진우에게 미고를 소개했다. 미고가 한참 동생이었지만 친구라고 소개했다. 사장도, 미고도 내겐 똑같이 친구였다.
우린 카페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굳이 앞자리를 비우고, 남자 셋이 비좁은 뒷좌석에 어깨를 포개어 탔다. 은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혹시 몰라 우리의 대화가 들리지 않도록 택시 기사의 귓구멍에 마법으로 솜뭉치를 끼웠다.
택시 안에서 난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우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시원에서 직접 본 것이 있었던 터라 완전히 내 말을 무시하진 않았다.
물론 여전히 믿기 어렵고, 애들 장난같이 들렸지만 진우는 똑똑히 기억했다. 사감 학생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누군가가 자신을 공격한 것을. 그리고 진우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썼던 마법까지 전부.
“그래서 지금 어딜 가는 건데? 그 마녀가 한다는… 커피숍?”
나와 미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는 참다 참다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휴…. 뭐가 뭔지 정말 모르겠다.….”
진우는 이제 가서 마녀든, 마법사든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겠다며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을 반짝였다.
‘휴…. 처음엔 나도 그랬지. 생각보다 금방 익숙해질 거다.’
난 속으로 생각하며 진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느덧 택시가 카페 근처에 도착했고, 우린 걸어서 카페로 향했다. 그때 마침 카페 밖을 서성이고 있던 사장과 딱 마주쳤다.
“왜 이렇게 늦게 와! 사진 복원 끝났어!!!”
사장은 우릴 발견하더니 득달같이 달려와 말했다.
“이 사진에 범인이 찍혔다고!”
사장이 들고 있던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