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75)

#048화

사장이 1등에 당첨된 복권처럼 사진을 공중에 흔들었다.

“누, 누군데요?”

우린 뛰어서 사장과의 거리를 좁혔다. 내가 사장의 손에 든 사진을 낚아채듯 들어서 확인했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의 옆에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불에 타 버린 사진 속에선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인상착의는 평범했다. 살짝 붉은 기가 도는 머리카락이 어깨만큼 내려왔고,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얼굴엔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언뜻 봤을 땐 아이를 유괴할 정도로 악랄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요?”

앞뒤 상황을 모르는 진우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를 하자고.”

사장은 진우가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하긴 사장에게 진우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진우의 목숨을 구하고, 대신 복수를 하기 위해 사장과 미고가 얼마나 애를 썼던가. 정작 진우는 기억을 하지 못했지만.

진우가 테마 파크 귀신의 집이라도 들어가는 사람처럼 사방을 고루 살피며 카페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뗐다.

“뭘 그렇게 봐? 카페 처음 와?”

사장이 진우가 호들갑 떠는 모습이 볼썽사나운지 툭툭 말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사장은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 진우에게 줄 커피를 내렸다.

진우는 초면에 결례를 범했나, 아차 싶었는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했다.

“전 해그냥 친구, 이진우라고 합니다.”

“알아.”

사장이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진우 앞에 커피 한 잔을 내려놓았다. 커피잔에 짙은 주황빛이 감돌았다.

‘아…. 저거….’

속으로 곧 진우도 눈물 한 바가지 흘리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장에겐 눈물을 쏙 빼는 이 커피가 일종의 신고식 같은 거일지도 몰랐다.

“아, 고맙습니다.”

진우가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커다란 몸집 때문에 커피 잔이 유독 작고 앙증맞아 보였다.

“그나저나 이 사진은 뭐고, 사진 속 사람을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데?”

진우가 참았던 질문은 던졌다.

“그날, 네가 나더러 다시 그 집에 돌아가서 잘 살펴보라고 했잖아. 가서 확인했더니, 직전에 누가 뭘 태운 흔적 같은 게 있더라고. 반쯤 타다 만 사진이 있어서 내가 가져왔어.”

“반쯤 탔다고? 멀쩡한데?”

진우는 이 사진이 반쯤 타 버린 사진이었다는 걸, 그리고 마법으로 복원을 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말이 빨라졌다.

“아무튼 이게 원래는 반쯤 탔었는데, 사장님이 어렵게 원래 모습으로 복원을 했어. 여기서 핵심이 뭐냐면, 누군가 그 집에 들어가서 사진을 태웠다는 거야. 우린 범인이 자신이 찍힌 사진을 태우려고 했던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어. 그러지 않고서야 굳이 그곳까지 가서 사진을 태울 필요가 없잖아.”

내 설명이 영 흡족하지 않았던지 진우가 되물었다.

“잠깐, 지금 네 말은 이 사진이 원래는 반쯤 탄 사진이었는데, 이걸 다시 원래 모습으로 복원을 했다는 거잖아. 그게 가능해???”

한쪽 턱을 괴고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장이 말했다.

“왜, 보여 줘?”

사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진이 모서리서부터 화르륵 타들어 갔다.

“으어어엇!!”

놀란 진우가 오두방정을 떨며 사진에서 손을 뗐다. 사진은 정확히 반쪽이 타 버린 후 진우의 손바닥 위에 안착했다.

“원래 이렇게 반쪽짜리였는데, 내가 사진관 사장에게 커피 1년 무료 시음권까지 주면서 급하게 복원해서 받아 온 거라고.”

사진은 어느덧 다시 복원한 후의 모습을 되찾았다.

“아… 알겠어요.”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리는지 진우가 살짝 기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마법… 마녀 이런 게 있구나. 진짜 신기하네….”

경계심을 늦추지 않던 진우의 눈빛에 새삼 동심 어린 아이의 모습이 엿보였다. 잠시 혹했던 진우가 딴 길로 새지 않고, 사건에 집중하려는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만약 누군가 정말로 이 사진을 태워서 증거를 없애려고 했다면, 네 추측대로 이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도 염두해야겠지. 근데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

“아니. 몰라….”

“제일 빠른 방법은 아이 엄마에게 직접 묻는 거야. 아이랑 같이 찍은 사진이 있을 정도니까 바로 답이 나오겠지.”

진우의 말이 일리가 있는지 사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안 그래도 마델에게 전보를 쳤는데 연락이 없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늘 오던 카페에도 통 안 보이고.”

우린 모두 마델이 걱정되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 네가 직접 상대한 놈은 어땠어?”

사장이 화제를 돌리며 내게 물었다.

“놈이 저에 대해 이미 많은 걸 알고 있는 거 같았어요. 제가 케루빔의 깃털을 어떻게 얻었는지도 알고 있는 거 같았고요.”

“너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그럼… 우리 주변에 있는 걸 수도 있겠네.”

진우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좀 더 알아볼 게 있다면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카페를 떠나기 전, 마델의 집에서 가져온 사진을 자기 휴대 전화 카메라로 찍었다.

“어? 근데 너….”

문득, 커피 잔을 모두 비운 진우에게 아무런 신호가 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이쯤 눈물을 왈칵 쏟을 때가 됐는데, 사장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진우를 곁눈질했다.

“네 친구는 눈물을 삼키는 스타일이 아닌가 보네.”

사장의 말에 진우가 “네? 저요?”라고 맹하게 말했다.

하긴 진우는 평소에도 눈물이 많았다. 영화를 보다가도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오면 한참을 서럽게 울곤 했다.

나와 야식을 먹을 때면 일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하면서 맥주 한 모금에 추연히 눈물을 흘리곤 했으니까.

‘그래서 쟤가 멀쩡하구나.’

어쩐지 진우를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근데 진우야, 이유는 모르겠는데 놈이 널 노리는 거 같아. 네가 위험하다는 뜻이야.”

“이유 있던데?”

진우가 이번엔 미고가 가져다준 손가락 쿠키를 조심스럽게 입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이유가 있다고? 뭔데.”

“나더러 왜 이렇게 설치냐고 하더라. 내가 설쳐서 죽이고 싶은가 봐.”

진우는 그런 일을 겪고도 넉살 좋게 웃으면서 연이어 말했다.

“그 말이 뭔 줄 아냐? 수사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거야. 우리가 지금 쫓는 방향이 맞다고, 놈이 확인시켜 준 거나 다름없어. 멍청한 놈.”

진우는 일하다 보면 이런 일은 부지기수라며 손을 홰홰 저었다.

“아무튼 저 먼저 일어나 볼게요.”

진우는 내게 전화하라며 오른손으로 제스처를 취하면서 카페를 나갔다. 궁금한 게 많았을 텐데 꾹 참는 게 눈에 보였다. 둘만 있을 때 몰아서 물어보겠지.

“사장님, 이렇게 맛있는 커피는 처음 마셔요. 고맙습니다.”

진우의 말은 진심인 듯했고, 사장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입가에 미세하게 미소를 띠었다.

사장은 진우가 또 변신 마법을 쓴 자에게 공격을 당할 수도 있으니, 안경점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변신 마법을 구별할 수 있는 렌즈가 분명 있을 거라며.

미고도 머지않아 카페 단골인 라뚜 아저씨의 빵 배달을 위해 부산하게 움직였다.

“원래 배달 서비스는 안 하는데, 라뚜 아저씨가 워낙 단골이라서 해 드리는 거거든요. 근데 요즘에 공갈빵만 드셔서 그런지 너무 말랐어요. 말리고 싶은데 말을 듣지 않으시니… 아무튼 저 다녀올게요.”

혼자 남겨진 카페, 다행히 한산하다. 스스로 커피 한 잔을 내려서 마셨다. 사장님이 내린 커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밖에서 사 먹는 커피에 비하면 훌륭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그때 문을 열고, 마델이 들어오는모습이 보였다.

“마델!!!”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크게 소리쳤다. 그녀가 무사하다는 사실과 이제 사진 속 인물의 정체에 대해 알 수 있겠다는 두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난 손에 사진을 들고는 마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안색이 파리하고, 눈이 데꾼한 것이 수심이 깊어 보였다.

“제가 아이의 행방을 찾다가, 마델의 집에 허락도 없이 들어갔어요. 죄송해요….”

나는 잠시 마른침으로 목을 다듬고 말했다.

“그런데 거기서 누군가를 마주쳤는데, 그자가 이 사진을 태우고 있었어요. 지금은 복원했지만… 혹시 이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마델이 고요히 사진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그냥 사진에 우연히 찍힌 사람 같은데….”

“모르신다고요? 아….”

난 실망의 빛이 역력한 표정을 애써 감추기 위해 어색하게 입가를 올렸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리도가 당신에게 왜 그런 부탁을 했는지 알아요. 하지만 이제 모두 그만둬요. 실은… 요즘 협박을 받고 있어요.”

“협박이요???”

“아이는 살아 있고, 자신을 찾아내려고 하면 아이를 죽여 버리겠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마델의 말에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최근에 당신들이 한 행동이 그자를 자극한 것 같아요. 그 협박을 끝으로 더 연락도 닿지 않고, 아이가 아직 무사한지도 모르겠어요.”

마델이 원망 서린 말투로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제발. 그자를 이 이상 흥분시켜선 안 돼요. 아이가 살아 있다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되기라도 하면 나는… 나는….”

우리가 한 행동이 아이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만둬요. 그게 절 돕는 길이에요.”

마델의 마음이 십분 이해됐다. 만약 아이가 살아 있다면… 마델은 그게 뭐든 대가를 치를 것이다.

마델이 카페를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과 미고가 돌아왔다. 난 두 사람에게 마델의 말을 전했다.

“뭐? 애를 두고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사장의 머리끝이 붉게 변하면서 나풀거렸다.

“아이가 무사한지 확인할 동안만이라도 가만히 있어 달래요. 아이를 해코지할 수도 있다고요…. 섣불리 움직이면 안 될 거 같아요.”

사장의 한숨 소리가 나직이 새어 나왔다. 손을 놓고 있을 수도, 무언가를 나서서 할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놈이 시키는 대로 놀아나야하는 건가, 마음속으로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고개를 쳐들었지만 애써 욱여넣었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드문드문 노등이 켜졌다.

내일 출근 때문에라도 이제 그만 집에 가야 했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진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마침 문을 열고 나가려던 나는, 전화만 받고 가자 싶어서 다시 돌아와 의자에 앉았다.

“어, 진우야.”

수화기 너머로 진우가 소리를 빽 질렀다. 흥분해서 뭐라 뭐라 하는데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뭐라고? 다시 말해 봐! 뭐라는지 지 안 들려.”

그제야 진우가 호흡을 가다듬고 한 음절씩 또렷하게 말했다.

“네가 분명 아이가 10년 전에 실종됐다고 했잖아. 근데 아니었어. 이 아이 13년 전 실종 신고가 되어 있어.”

“뭐? 실종 신고가 되어 있다고? 것도 13년 전에?”

“그리고 사진 속에 우리가 용의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여자 있잖아.”

“어….”

“그 여자, 신원을 확인해 보니까 아이의 친엄마야. 납치범이 아니라 친엄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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