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75)

#049화

“사진 속 여자가… 친엄마라고? 그럼 마델은 누군데?”

“몰라. 혹시나 해서 확인했는데 입양 기록이 있는 것도 아니더라. 우리가 전에 갔던 그 집도 아이 친엄마 명의로 되어 있었어. 그래서 더 빨리 확인도 됐던 거고.”

말문이 막혔다.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잠시 목소리를 내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말이 나오질 않았다.

마델의 아이가 실종됐다고 한 건 10년 전이고, 친엄마가 아이 실종 신고를 한 것은 13년 전이다.

그 3년의 간극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 사실만 놓고 보자면, 마델이 13년 전 실종된 아이를 데리고 엄마 행세를 했다는 것밖에 말이 되질 않았다.

자꾸만 머릿속에 이상한 생각이 가스처럼 뿌옇게 차올랐다.

“듣고 있냐?”

진우가 내가 대답이 없자 물었다.

“아이 엄마 행세를 한 마델이라는 사람이 대체 누군지. 왜 그랬는지 현재로선 알 수가 없어. 우선 아이의 친엄마를 직접 만나 봐야 할 거 같아.”

“아이 엄마는 지금 어딨는데?”

“지금 지방에 있는 정신 병원에 입원 중이야. 간신히 찾았어. 아이가 실종된 후에 우울증으로 몇 차례 극단적인 시도를 했고, 이후엔 줄곧 병원에 있었나 봐. 가서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귀가 좋은 미고가 나와 진우의 대화를 듣고는 놀라서 내 옆으로 바짝 붙었다.

“내가 카페 근처로 갈 테니까, 만나서 곧장 병원으로 가자.”

“그래.”

전화를 끊자, 사장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난 미고에게 방금 진우와의 통화 내용을 사장에게 설명해 줄 것을 부탁했다.

“혹시 마델을 만나더라도 내색해선 안 돼요.”

당부의 말을 남기고 진우와 만나기로 한 곳으로 향했다. 마델은 협박을 받고 있다고 했다. 대체 마델과 친엄마, 협박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진은 왜 태운 걸까.

진우가 내가 올 뱡향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내 바로 옆으로 차를 댔다.

“얼른 타.”

진우와 병원으로 향하는 차 안에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적막함을 깨며 진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마델이라는 사람이랑은 연락이 닿았어?”

“아, 만났어. 카페에 왔더라고.”

“사진 보여 줬어? 뭐래? 아는 사람이래?”

진우가 흥분해서 액셀을 더 밟았는지, 차 속도가 빨라졌다.

“우연히 찍힌 사람일 뿐 모르는 사람이래. 그리고… 마델이 지금 납치범에게 협박을 받고 있대.”

“뭐? 협박?? 그 사람이 납치범이랑 연락을 하고 있다고?”

“응. 마델은 아이가 살아 있다고 믿고 있어. 그래서 우리가 납치범을 자극하지 않길 원해.”

그 말을 듣더니 진우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협박을 받고 있다라….”

진우가 주문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진우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당시 사건 기록을 봤어. 아이 엄마가 진술해 놓은 게 있는데 마델이란 자가 한 말과 완전히 동일해. 자신은 머리를 감고 있었고, 아이 먼저 집 바로 앞 놀이터에 가서 놀고 있었는데 딱 5분 사이에 아이가 사라졌다, 이렇게 적혀 있어.”

진우가 언제 샀을지 모르는 김빠진 콜라를 들이키며 말했다.

“내 생각에는 애 엄마와 마델 중 누구의 말이 진짜인지 진위를 가릴 필요가 없어. 3년이라는 시간 차 때문이야. 친엄마가 13년 전에 이미 먼저 진술을 했기 때문에, 아이 친엄마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럼 마델이 거짓말을 했다는 건데… 대체 왜?”

진우가 할 말이 있어도 말을 아끼려는 사람처럼 말을 하다 말고 침을 삼켰다.

“지금 확실히 알아보려고 가는 거잖아.”

이후 우린 말을 아꼈다. 이미 속이 시끄러웠으니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귀가 먹먹했다.

몇 시간 동안 휴게소 한 번을 들르지 않고 가니, 어느덧 주변 풍경이 시골로 바뀌어 있었고 이름 모를 강이 좌측으로 흘렀다.

산 중턱에 콘크리트와 철근을 얼기설기 찰흙처럼 버무린 큰 건물이 보였다. 정신 병원에 온 건 난생처음이었다.

창문마다 쳐져 있는 창살 때문인지 병원보다는 깔끔한 교도소 같은 느낌을 풍겼다.

우린 면회 신청을 하고, 별도로 마련된 손님 응접 공간에서 기다렸다. 면회 시간은 진즉에 끝났지만, 경찰 신분이었던 진우 덕분에 병원 측에서 편의를 봐주었다.

그렇게 십 분이나 지났을까. 마침내 우리가 기다리던 아이의 친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애 엄마는 옛날 사진 속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늙고, 초췌하고, 병색이 완연했다.

활짝 웃을 때 졌던 팔자 주름이, 지금은 무표정할 때 오히려 더 짙어 보였다. 와인처럼 붉은 기가 돌던 풍성한 머리카락은 수가 반쯤 줄었고, 희끗희끗한 새치가 가득했다.

무엇보다 제일 달라진 건 텅 빈 눈동자였다. 희망도 체념도 심지어 슬픔과 애도도 모두 저버린, 감정을 삭제한 눈.

진우가 넓은 어깨를 최대한 옹송그리며 겸손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진우라고 하고, 경찰입니다. 제가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게 혹시나 큰 아픔을 드리는 거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지만, 아드님 실종 사건과 관련해 여쭐 게 있어서 왔습니다.”

여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뼈만 남은 앙상한 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나는 진우가 고개를 숙일 때 함께 옆에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이의 엄마가 아주 오랫동안 다물고 있었던 입을 떼자, 위아래 입술이 살이 찢어지듯 벌어졌다.

“와 줘서 고맙습니다.”

경찰인 진우에게도 유가족에게 과거의 사건에 대해 묻는 것은 처참한 마음이 들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 엄마가 와 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 진우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희야말로 고맙습니다. 이미 사건 기록에서 보았지만, 실종 당시 상황에 대해 직접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녀는 바닥으로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들어 나와 진우의 눈을 번갈아 바라봤다.

“사건 기록에 적힌 것은 사실이 아니에요.”

“네???”

아이 엄마의 갑작스러운 말에 진우의 눈빛이 번뜩였다.

“저도 몇 년 전에서야 그날의 기억을 되찾았어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난 정신 병원에 있고, 아무도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았어요.”

“무슨 기억을 되찾았다는 건가요?”

진우는 놀란 마음을 애써 누르고 침착하고 노련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난 5분 먼저 아이를 놀이터에 내보내지 않았어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대충 수건으로 돌돌 말아서…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갔다고요.”

이어지는 아이 엄마의 말은 이랬다.

*

“엄마! 나 놀이터에 먼저 가서 놀고 있으면 안 돼?”

고개를 숙인 채 이미 샤워기로 머리카락을 적셔 버린 엄마가 보채는 아이를 달래며 말했다.

“에이, 조금만 기다려. 엄마 머리만 금방 감고 같이 가자!”

“왜~ 바로 앞이잖아. 그네 타고 있을게.”

그네 타는 일이 뭐 그리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고 아이는 발까지 동동 굴렀다. 그리고 결국 신발장에서 불이 들어오는 공룡 신발을 꺼내 허겁지겁 신었다.

“엄마도 같이 가자니까!”

엄마는 결국 공연히 물만 묻힌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대충 돌돌 감고, 아이를 뒤쫓아 놀이터로 향했다.

“넌 누굴 닮아서 성격이 그리 급하니! 에휴…. 날 닮았구나. 내가 누굴 탓하겠어.”

엄마는 그네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아이의 뒤꽁무니를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가 그네에서 미끄럼틀로 종목을 옮길 무렵, 그녀는 시소에 앉아서 머리를 털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는 물이 흥건히 묻어 축 늘어졌다. 그때 언제 왔는지, 어떤 여자가 마치 반가운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애 엄마 쪽으로 고개를 내밀며 아는 척을 했다.

“아이가 참 귀엽네요.”

애 엄마는 아이 칭찬에 절로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아이는 굽이진 미끄럼틀을 내려오면서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었다. 웃는 아이의 얼굴에 인디언 보조개가 쏙 들어갔다.

여자는 애 엄마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이제 저 아이는 내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아이의 엄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엄마, 어디 가?”

아이가 갑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엄마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엄마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온몸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

여자는 그날 일을 회상하는 것이 팔뚝만 한 가시를 삼키는 일이라도 되는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여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귀신에 홀린 듯 집으로 들어가 다시 머리를 감았어요. 그 여자는 그사이에 아이의 손을 잡고 갔고요.”

“그럼 실종 당시에 왜 어떤 여자가 아이를 데려갔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진우가 참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말했잖아요. 기억을 최근에서야 되찾았다고. 그 여자는 귀신이었어요. 그렇게밖에 설명할 길이 없어요. 그 여자가 내 아들을 데리고 유유히 사라지는 동안에도, 난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또 감고, 또 감았어요. 미친 사람처럼.”

마법에 걸린 애 엄마는 아이가 완전히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머리를 감았다.

“기억을 되찾기 전까진 나도 내가 머리를 감는 동안 아이가 사라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정신 병원에 입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억이 드문드문 나기 시작했죠.”

시종일관 담담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던 아이 엄마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다.

“처음엔 악몽인 줄 알았고, 그다음엔 원망할 존재가 필요해서 만들어 낸 허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근데 이제 알아요. 그게 내 기억이란 걸요.”

난 아까부터 손으로 사진 모서리를 만지고 있었다. 마델과 아이, 리도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는데 이걸 봤을 때 아이의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렵기도 걱정스럽기도 했다.

진우가 망설이는 날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내가 사진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

“혹시 아이를 데려갔다던 그 여자가 이 사람인가요?”

사진을 보자마자 아이 엄마의 텅 빈 눈동자가 도자기처럼 날카롭게 깨졌다. 아이의 엄마는 눈앞에서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양손으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방구석으로 온몸을 구기며 들어가더니, 황급히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책상 위쪽으로 던졌다.

그녀가 이번에 확인한 것은 아이의 얼굴이었다. 자신의 곁을 떠났을 때보다 조금 더 자란 아이의 모습을.

그녀의 존재가 촛농처럼 녹아내렸다. 이제 짐승처럼 네발로 기며 바닥을 향해 울음을 토하는 그녀를 보며 나와 진우 모두 시간이 멈춘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이 엄마가 바닥에 머리를 박기 시작하자 병원 관계자들이 몰려와 저지하기 시작했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자 결국 진정제를 투약했다.

맹수에게 목덜미가 물린 나약한 짐승처럼, 그녀는 숨을 거두는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이로써 모든 게 명확해졌다.

마델은 납치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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