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화
격리된 아이 엄마를 뒤로하고, 되돌아오는 차 안, 진우가 핸들을 세게 내리치며 언성을 높였다.
“협박을 받고 있다고? 와! 씨…. 웃기지도 않네. 네가 이 사건을 파는 게 싫으니까 그렇게 둘러대는 거잖아. 애초에 협박범 따위는 없어. 지가 아이를 납치해 놓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 거라고!!!”
진우의 말이 맞다. 카페 구석에서 아이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슬픔에 잠겨 있던 마델의 모습은 모두 가증스러운 연기였다.
추억을 보는 창을 통해서 그녀가 온종일 봤던 기억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사진을 태운 이유도 이제 알겠어. 일부러 아이 친엄마가 찍힌 사진을 모두 태운 거라고! 자기가 친엄마가 아니란 사실을 들킬까 봐. 와……. 진짜 사이코패스에 연극성 성격 장애에, 악마가 따로 없다.”
한참 흥분해서 치를 떨던 진우가 대답이 없는 날 곁눈질했다.
“너 충격받았냐?”
충격도 충격이지만, 나는 그 순간 리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리도는 죽기 전 마지막 부탁으로 마델의 아이를 찾아 달라고 했다. 어쩌면 리도는 마델의 정체에 대해서 뭔가 눈치를 챘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내게 이런 부탁을 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살아 있을까?”
“글쎄. 어휴…….”
진우가 새삼 끊은 담배 생각이 간절한지 한숨을 연기 뱉듯 푸 내쉬었다.
“정말 살아 있다면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하다못해 시신이라도… 거둘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이가 살아 있다면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마델에게 끌려간 이후, 아이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살아는 있는 걸까.
“근데 납치범 말이야. 마법사 맞지? 다른 사람 모습으로 변신하고, 조종하고, 저번에 나도 사실 죽을 뻔했잖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솔직히 좀 막막하다.”
“나 카페 근처에 좀 세워 줘. 사장님을 좀 만나 봐야겠어. 마델의 정체에 대해 말해야지. 잡을 방법도 찾고.”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 역시 내가 무슨 방법이든 찾아오길 바랐다.
서울에 도착하자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겼다. 원래 같으면 진즉에 문 닫았을 시간이었지만, 예상대로 카페엔 사장과 미고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기다리느라 눈 밑이 퀭해진 사장과 미고가 주방에서 뛰어나왔다.
“야! 어떻게 된 거야? 가서 만나 봤어? 진짜 친엄마 맞대??”
사장이 다그치듯 질문을 퍼부었다.
난 깊은숨을 후욱 들이마시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병원에서 친엄마를 만나 직접 듣고, 본 이야기들을 전했다.
미고가 기가 막혀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 역시 말하는 와중에도 전신으로 퍼지는 섬뜩한 기분에 진저리를 쳤다.
친엄마가 바닥에 머리를 박다가 진정제를 맞고 끌려갔다는 부분에선 미고의 충혈된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제 어쩌죠? 마델을 잡아야 돼요. 납치범이면서도, 아이를 잃은 엄마 행세를 하며 모두를 속인 자라고요.”
사장이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혹시 아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마델을 자극해서는 안 돼. 아이의 행방을 알기 위해선 마델을 미행하거나 자백을 받는 수밖에 없어.”
사장의 말에 미고가 눈가에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제가 마델의 기억을 보면 어떨까요? 기억을 보면 마델이 아이를 어디에 숨겼는지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래. 좋은 생각이야. 마델이 카페에 오면, 잠드는 약초를 넣은 커피를 마델에게 먹이는 거야. 그동안 미고는 기억을 보는 거지.”
“근데 마델이 언제 카페에 올 줄 알고 기다려요. 어쩌면 영영 안 올 수도 있고요.”
지금으로선 미고가 제안한 방법이 가장 안전하고 현실성이 있었다. 다만 마델이 언제 카페에 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안 그래도, 느낌이 싸한 김에 미끼를 미리 던져 놨지.”
“미끼요?”
사장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손에 든 것을 보여 주었다. 마델의 장갑이었다. 마델이 늘 끼고 다니는 은회색의 가죽으로 된 장갑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마델이 저번에 어딜 급하게 가면서 장갑 한 짝을 카페에 두고 갔거든. 암만 전보를 쳐도 소식이 없길래 내가 이걸 이용해서 뻥을 좀 쳤어.”
“무슨 뻥이요?”
미고 역시 사장의 계획은 알지 못했는지 물었다.
“미고가 이 장갑을 통해서 마델의 기억을 볼 수 있다고. 마델이 허락만 한다면 이 장갑이 아이를 찾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고 말이야.”
“근데 전 물건을 매개로 기억을 보는 능력은 없는데요? 그건 훨씬 어려운 일이라고요.”
미고가 잠시 고개를 갸우듬하더니 이제야 이해가 되는지 “아!” 소리를 내며 맞장구를 쳤다.
사장은 편지에, 마델이 두고 간 장갑을 통해 미고가 그녀의 기억을 볼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만약 마델이 이 거짓말에 속는다면 자신의 기억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장갑을 찾으러 카페에 올 것이라는 계산이 담겨 있었다.
“올 거야. 아직 우리가 자신의 정체를 안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까.”
나와 미고는 사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너… 내일 출근해야 되는 거 아냐? 월요일이잖아.”
지금 이 상황에 출근 걱정이라니, 그래도 별수 없었다. 억장이 무너지는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도 평소처럼 밥을 먹어야 사니까. 고작 인턴 월급이라도 있어야 생활을 하니까.
“형,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마델이 카페에 찾아오면 바로 형한테 알려 주러 갈게요.”
어느덧 미고가 날 위로하며 어깨를 두드렸다.
“해그냥한테 알려 주러 갈 시간이 어딨니? 바로 기억 뒤져야지. 아무튼 너는 얼른 집에 가. 너무 늦었어.”
“저 근데 지오는 어디 갔어요? 요즘 통 안 보이네요.”
막상 집에 가는 시간이 돼서야 지오 생각이 났다.
“지오는 5마을 숲에 갔어. 걔가 요즘 야생 풀 연구에 꽂혀서. 뭐 마침 잘됐네. 잠재우는 약초를 캐 오라고 시켜야겠어.”
난 사장과 미고에게 인사를 건네고 집으로 향했다. 어둠이 깔린 길을 걷는데 자꾸만 목 뒤가 오싹해서 뒤로 돌았다
마델은 왜 하필 엄마의 가면을 썼을까. 굳이 아이가 실종됐다고 슬픔에 잠긴 연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집에 도착하자 벌써 새벽 두 시, 출근 시간까지 채 몇 시간이 남지 않았다. 피곤했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병원에서 아이 엄마가 절규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때 진우에게서 문자가 왔다.
[집에 도착했냐? 너 괜찮지? 괜한 걱정하지 말고 그냥 자라.]
그래서 마델은 어떻게 잡기로 한 건지, 방법은 찾았는지, 여러모로 궁금한 게 많았을 텐데 진우는 우선 내 안부를 먼저 물었다.
[응. 이제 자려고. 너도 고생했다. 내일 연락할게.]
난 이불을 뒤척이다 말고 습관처럼 엄마의 수첩을 펼쳤다.
요즘 연습 중인 마법은 반사 마법이었다.
[반사 마법]
상대의 마법을 도로 상대에게 흘려보내는 마법.
*무지 어려움. 마법의 난이도에 따라서 성공 확률이 달라짐.
수첩에 적힌 대로, 거울을 바라보면서 수차례 연습해 봤지만 역시나 실패였다. 허탈한 마음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안압이 높아졌는지 눈가부터 이마까지 지끈거렸다.
눈을 감고 머리가 둥둥 울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난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늦게 잤음에도 용케도 제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출근길 지하철을 타서도 운 좋게 자리가 나서, 앉아서 편히 갈 수 있었다.
머릿속은 온통 마델과 실종된 아이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했지만, 그래도 맡은 회사 일은 그럭저럭 해냈다.
사무실 사람들에게 기분이 좀 우울해 보인다, 집에 무슨 일 있냐, 이런 질문을 두어 번 받긴 했지만 손사래를 치며 괜찮은 척 웃어 보였다.
회사에서 할 일이 많을수록 잠시라도 마델의 악행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마델이 카페에 오길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아직 터지지 않은 시한폭탄을 껴안고 자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금요일이 되었다.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문 앞에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막 한글을 배운 7살 아이가 쓴 것처럼 삐뚤빼뚤한 글씨가 보였다.
[형! 마델에게서 오늘 저녁 카페에 와서 장갑을 찾아가겠다고 전보가 왔어요. 이따 카페서 만나요. -미고-]
이걸 반갑다고 해야 할지, 두렵다고 해야 할지 양가적인 감정이 뒤엉켰다. 나는 두방망이질을 하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쪽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오후에 온다고는 했지만, 마델이 정확히 오늘 몇 시에 카페에 들를지는 알 수 없었다. 예상보다 빨리 오게 될지도 몰랐다.
출근 후 나는 고민하다가 부서에 새로 발령한 고 팀장님께 오후 반차를 쓰겠다고 말했다.
“어우! 해그냥 인턴은 연차, 반차 쓰는 것에 거침이 없네! 아주 당차! 나 때는 눈치 보느라 연차? 어우, 꿈도 못 꿨지. 먼저 쓰라고 하면 그제야 좀 쓰고 그랬지. 아무튼 MZ 세대 친구들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네!”
고재식 팀장은 자신의 말에 다들 웃어 주길 바라는지 팀원들을 곁눈질했다.
하긴 이제 인턴 생활도 한 달 후면 끝이었다. 평가를 앞뒀으니 인턴들 모두 몸을 사렸고, 가급적 법적으로 허용된 휴가도 쓰기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이전이라면 팀장의 이런 말에 주눅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고재식 팀장이 아무리 진상을 부려 봐야 지난 유 부장과 계 차장만큼은 아니었다. 진상 짓거리에 워낙 이골이 나서 이 정도는 웃으며 넘길 정도가 되었다.
반차를 쓴 나는 오후 두 시가 되자 서둘러 카페로 향했다. 마델이 오기 전이어야 할 텐데, 마음이 급했다.
카페 문을 열자, 사장과 미고 그리고 오랜만에 지오의 모습이 보였다.
“어? 일찍 왔네? 늦을 줄 알았더니.”
“형! 제 쪽지 보고 온 거예요?”
홀을 치우고 있던 미고와 사장이 말했다. 지오는 오랜만에 씻었는지 오물 냄새가 나지 않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지오는 빵 만드는 것을 거들었는지 온몸에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지오가 하얗게 밀가루를 바른 손바닥을 펼쳐서 인사를 했다.
“저기… 마델은 아직이에요?”
“어.”
사장과 난 주방 구석으로 가서 속삭였다. 아직 몇몇 손님들이 카페에 있었기 때문에 말조심을 해야 했다.
“손님들 있어도 돼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야, 그렇다고 다 내보낼 수는 없잖아. 너무 수상해 보일걸? 마델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그건 또 그러네요. 잠재우는 약초는요?”
지오가 몇십 년 묵은 산삼이라도 캔 사람처럼 자랑스럽게 풀뿌리를 흔들어 보였다.
“오!”
사장이 풀뿌리를 으깨서 즙을 냈다.
“마델이 오면 커피에 이걸 타서 줄 거야. 그럼 30초 안에 잠들 테지.”
때맞춰 카페 문이 열리면서 딸랑대는 방울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서 확인했을 때 문 앞에 마델이 서 있었다.
사장은 속내를 감추고 여유 있게 웃으며 그녀를 맞았다.
“오랜만에 봐요. 요즘 왜 이렇게 뜸했어요?”
마델은 카페에 오자마자 자신의 장갑을 찾았다. 사장이 주방 서랍에서 그녀의 장갑을 찾아서 돌려주었다.
마델이 장갑 한쪽을 손에 끼면서 말했다.
“혹시 기억은 본 건 아니죠? 제 기억을 남이 본다는 게 좀… 불쾌해서.”
“그럼요. 그래서 미리 여쭤본 거고 마델이 싫다 하면 하지 않아요.”
사장이 잠드는 뿌리 즙을 넣은 커피와 손가락 쿠키를 쟁반에 담아 내왔다.
“오랜만에 왔는데 커피 한잔하고 가요.”
마델은 허기졌는지 손가락 쿠키 두 개를 먼저 씹어 먹었다.
“지금 시간이 없어서,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커피도 안 마시고 바로 가게요?”
마델이 커피 잔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말했다.
“오늘은 커피가 별로 마시고 싶지 않네요. 오늘따라 향도 내 취향이 아닌 거 같고.”
마델은 시크하게 웃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카페 문으로 향했다.
‘뭐야!! 이렇게 가 버린다고???’
이대로 마델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