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화
“뭐가 그렇게 급해요? 이야기 좀 하다 가지.”
사장이 나가려던 마델의 옷소매를 다급히 붙잡았다. 평소의 사장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만한 행동이었다.
“왜 그래요? 나를 여기 잡아 두려는 사람처럼.”
마델의 표정이 미세하게 찡그려졌다. 아차, 싶었던 사장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정말 이상하네요. 저기 저 친구가 사물로 기억을 볼 수 있다고 했던가요? 상위 마법사에게도 아주 어려운 일을… 저 어린 녀석이 해낸다는 것도 그렇고…….”
마델이 손가락으로 미고를 가리켰다. 당황한 미고가 어색하게 웃었다.
“혹시 저한테 거짓말을 한 건가요? 대체 왜?”
숨 막힐 듯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사장에게 뭐라고 아무 말이라도 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사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람이 새는 헛웃음을 쳤다.
“뭐라고요? 허! 참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아까부터 자꾸 커피를 권하는 것도 좀 수상하네요. 혹시 여기에 뭐 탄 거예요?”
사장이 찔리는 만큼 더욱 과하게 발끈하며 말했다.
“그럴 리가! 날 뭐로 보고! 안 말리니까 가요. 가!”
마델이 사장을 훑어보며 냉랭한 표정으로 자신이 앉았던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리고 커피 잔을 들어 사장에게 건넸다.
“이 커피가 멀쩡하다면 직접 마셔 보세요. 그럼 믿을게요. 터무니없는 의심을 한 것에 대해 사과도 드리죠. 그러니, 자.”
마델이 사장에게 재차 커피 잔을 내밀었다. 사장이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혔다. 강한 풀뿌리 즙이 들어가서, 마신다면 단 몇 초 만에 잠들 터였다.
사장이 긴장한 내색을 숨기면서 호기롭게 커피 잔을 받아 들었다.
“왜 이렇게 의심이 많아? 내가 뭘 어쨌다고! 내가 커피 가지고 장난할 사람으로 보인단 말이야? 불쾌하네. 정말!”
사장이 뜸을 들이면서 짜증 난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때 내 바로 옆에 있던 지오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지금쯤 때가 됐는데…….”
지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마델이 비틀거리면서 벽을 짚었다.
“어……. 갑자기 왜 이래…. 나한테 뭔 짓을 한 거야…….”
마델이 전신 마취 직전에 중얼거리는 사람처럼 몇 마디 말을 내뱉더니 쓰러지기 시작했다.
사장과 지오가 마델을 냉큼 받치면서 연기를 시작했다.
“마델, 괜찮아요? 몸이 이렇게 안 좋으면 말을 하지.”
“안으로 가요. 제가 잘 드는 약초를 달여 드릴게요.”
우리는 이미 의식을 잃은 마델을 부축해 카페 안 손님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다.
얼결에 카페 안쪽으로 딸려 들어온 나는 상황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잠든 거 맞죠? 커피는 분명 입에도 안 댔는데… 어떻게 된 거죠?”
지오가 이마에 맺힌 땀을 블루베리 잼이 묻은 손등으로 슥 닦으며 말했다.
“혹시 몰라서 제가 손가락 쿠키 반죽에도 풀뿌리 즙을 넣었거든요. 커피에 타서 마시는 것보다 반응 속도는 느렸지만, 아무튼 성공이네요.”
지오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나 하마터면 이거 마실 뻔했잖아. 켕기는 게 많은가 봐. 뭔 의심이 이리 많아.”
사장이 어깨를 들썩이며 긴장이 풀린 미소를 지었다.
이어 사장과 미고는 쓰러진 마델을 바닥에 눕히고 결박했다.
“마델… 만만하게 볼 상대 아니야. 잠에서 깨면 이 정도 결박은 쉽게 풀 수 있어. 그래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시간이라도 벌어야 하니.”
지오가 산에서 캔 질경이 독풀로 마델의 양 손목과 발목을 세게 묶었다.
“풀의 독성이 손발을 마비시켜서 잠시 동안 마력을 쓰지 못하도록 도와줄 거예요.”
이제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한 미고가 누워 있는 마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미고가 마델의 이마에 손을 올리기 직전 사장이 다급하게 당부하며 말했다.
“마델의 기억 속에서 각별히 조심해. 너도 알다시피 소란을 피우거나 개입하면 안 돼. 자칫 마델의 정신과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무사하지 못할 거야. 영원히 기억에 갇힐 수도 있다고.”
미고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델의 기억 말이야. 나도 같이 보는 게 어때? 이전에 진우 기억도 같이 본 적이 있잖아.”
아무래도 마델의 기억 속에 미고 혼자만 보내는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미고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신 기억 속에서 저랑 절대 떨어지면 안 돼요. 사람의 기억은 너무 방대해서 한번 길을 잃으면 출구를 찾기가 어려워요.”
준비를 마친 미고는 마델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난 진우의 기억을 봤을 때처럼 한 손으론 마델의 손을, 다른 한 손으로는 미고의 어깨를 잡았다.
“자, 이제 들어가요.”
순식간에 주변에 암전되고, 높은 곳에서 곤두박질칠 때처럼 메슥거림이 올라왔다.
진우의 기억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영사기로 쏘는 영상을 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아예 누군가의 기억 속에 완벽히 들어온 느낌이었다.
나와 미고는 어느덧 인적이 드문 동네 골목길에 있었는데, 현실인지 기억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실감 났다.
“제가 직접 원하는 기억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 보다 깊이 기억 속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어요.”
미고가 놀란 기색의 날 진정시키면서 설명했다.
그때 눈앞에 마델의 모습이 보였다. 옆에는 그녀가 납치한 아이가 있었다.
마델은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
아이가 우렁차게 엄마를 부르며 마델에게 달려갔다.
나와 미고는 마델의 눈에 띄지 않도록 지나가는 행인처럼 위장해서 그들을 힐끔힐끔 지켜봤다.
“어차피 기억 속 마델의 눈에는 저희가 배경에 섞여서 보이지 않을 거예요. 기억을 뒤트는 특별한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고가 하지 말라는 짓은 절대 하지 말자, 속으로 되뇌었다.
아이는 뙤약볕에 녹아내리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핥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아이를 마델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지금 마델은 납치범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누가 봐도 완벽한 연기였다. 다 알면서도 속을 만한, 마델에게 어떤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둘 사이는 애틋해 보였다.
마델은 아이의 입가와 손에서 팔꿈치까지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자상하게 닦아 주었다.
미고도 예상 밖의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침착하게 말했다.
“단편적인 기억만 보고서는 알 수 없어요. 기억을 일부만 보는 것은 오히려 사람을 헷갈리게 할 때도 많거든요.”
미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마치 오래된 책 페이지가 넘어가듯이 주변 환경이 순식간에 낮과 밤, 산과 주택가로 바뀌었다.
“마델의 잠재의식이 남에게 보여 주기 싫은 기억은 잘 내놓지를 않고 있어요. 조금만 더 뒤져 보면 나올 것 같은데…….”
미고와 난 12배속으로 빨리 돌리고, 또 되감는 인생 한가운데 있었다. 이번에 도착한 기억 속에선 마델 혼자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어? 가만 보니 동네가 낯익다.
“여긴 마델이 아이를 납치한 그 동네잖아!”
마델은 진우와 내가 사진을 보여 주면서 아이에 대해 물었던, 바로 그 슈퍼 평상에 앉아 있었다.
우린 맞은편 정자에 앉아서 그런 마델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때 아이의 친엄마가 노인처럼 말린 어깨에 굽은 허리를 하고 슈퍼로 들어갔다.
엉킨 머리카락은 드문드문 뽑혀 있었다. 실종 이후 머리를 한 번도 감지 않은 것처럼 그녀의 머리카락은 물에 젖은 보푸라기 같았다.
아이 엄마는 시선을 땅에 고정한 채 소주 4병을 샀다. 슈퍼 주인아주머니가 아랫입술을 꽉 깨물면서 아이 엄마에게 조용히 술을 팔았다.
아무리 말을 하기를 좋아하는 푼수데기라고 하더라도, 아이를 잃은 엄마에게 섣불리 말을 걸 수도, 위로를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티 안 나게, 소주 4명 중에 1병 값을 제하고 받았을 뿐이었다.
아이 엄마는 술이 담긴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다시 집이 있는 언덕길을 올랐다.
마델은 왜 다시 이곳에 왔을까.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와……. 씨. 진짜….”
미고는 욕을 하는 것도 아깝다는 듯이 탄식했다. 평상에 앉아 있던 마델은 고개를 숙인 채 키득키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마델은 그곳에 앉아서 아이 엄마의 고통을 관람하고 있었다. 그게 마델이 여기에 온 이유였다.
마델은 느릿느릿 걸어가는 아이 엄마의 뒤를 쫓았다.
아이 엄마는 아이를 잃어버린, 집 앞 놀이터 시소에 앉아서 소주 한 병을 단숨에 비웠다. 이제 그녀는 울지도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시소가 들썩거리면서 끼익 끼익 쇳소리가 났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사람의 정신이 온전히 붕괴되는 과정이었다.
그런 그녀를 훔쳐보는 마델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마치 포르노를 보는 사람처럼 얼굴이 불그죽죽했다.
타인의 고통을 이토록 즐거움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마델은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아이 엄마를 지켜보고 돌아갔다.
아이를 납치한 마델이 기거하는 곳은 사건 현장에서 기껏해야 차로 30분 거리에 있었다. 우린 그림자처럼 마델의 뒤를 바짝 쫓았다.
마델이 도착한 곳은 허름한 빌라였다. 온종일 혼자서 쫄쫄 굶었던 아이가 마델이 오자 반가워하며 방에서 뛰어나왔다.
“엄마, 어디 갔다 왔어?”
“배고프지? 이거 먹어.”
마델이 손에 든 시장 통닭을 아이에게 건네자 아이는 손뼉을 치며 펄쩍 뛰었다.
둘의 모습을 주방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미고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마법으로 아이가 자신을 진짜 엄마라고 믿도록 만들었어요.”
“응……. 그런 거 같네.”
아이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였다. 하루 종일 먹은 게 없어도, 집이 난장판이어도 상관없었다. 엄마가 있으니까.
아이가 치킨을 다 먹을 때쯤 마델이 말했다.
“오늘은 엄마랑 갈 데가 있어.”
“어딘데? 우리 놀러 가?”
아이가 별안간 천진하게 두 눈을 반짝였다.
“응. 놀러 가.”
“오예!”
아이는 한 손을 허공으로 휘저으면서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어디 가려는 걸까…….’
나와 미고는 불안한 마음에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마델이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은 동네 뒷산이었다. 비가 온 직후여서 그런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쌀쌀한 바람이 찬물처럼 와 닿았다.
등산로를 한참 벗어나자 지형이 험해졌다. 나뭇가지가 서로 부딪치며 스산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아이가 살짝 겁을 먹고 엄마의 바지춤을 잡았다.
“엄마. 여기 길 맞아?”
“응. 엄마가 지름길을 알아.”
아이는 엄마의 말에 안심이 되었는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묵묵히 걸었다.
한참 앞서서 걷는 마델을 따라 아이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속도를 높였다.
우린 침통한 마음으로 마델의 뒤를 밟았다. 자꾸만 무서운 예감이 들었다.
“여기야. 다 왔어. 이쯤이면 될 거 같다.”
“엄마……. 여기가 어딘데? 나 이제 좀 힘들어.”
마델은 이제야 미뤘던 일을 해치우려는 사람처럼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얘야. 내가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델을 바라봤다. 그 눈빛 안에는 그 어떤 의심도 없었다.
“이제 좀 지루하달까. 아무튼 그래.”
마델의 표정이 점점 싸해지면서 무표정으로 변했다.
“사실 난 네 엄마가 아니야.”
“엄마……. 왜 그래?”
아이가 난데없는 말에 놀랐는지 마델에게 더 들러붙었다.
마델이 아이의 정수리를 검지로 톡, 하고 건들자 마법이 풀리면서 아이의 눈에서 얇고 투명한 비닐이 벗겨졌다.
아이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 누구세요?”
얼굴이 퍼렇게 질린 아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