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화
“안 돼!!!!”
사지가 붙들린 채 나는 비명을 질렀다.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공포감에 온몸이 떨렸다.
“미… 미고야…….”
내가 몸부림을 칠수록 나무뿌리는 더욱더 내 손발을 거세게 조였다.
나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미고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아무리 불러도 미고의 몸은 힘없이 축 늘어진 채 미동이 없었다.
그때였다. 금수인지 사람인지 모를 작은 형체가 마델의 어깨 위로 달려들었다.
“이건 또 뭐야??”
마델은 뒤에서 엉겨 붙은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상반신을 좌우로 흔들었다.
내가 구덩이 속에서 구했던 아이가 마델에게 맞서고 있었다. 아이는 마델의 어깨 위에 앉아서 다리로 목을 조였다.
당황한 마델의 손아귀에 힘이 풀렸고, 미고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내 발과 손을 조이고 있던 나무도 조금씩 느슨해졌다.
난 서둘러 뛰어가 쓰러진 미고를 끌어안았다. 미고는 몸을 축 늘어뜨리고 반응이 없었다.
두려움에 울음이 구역질처럼 나왔다. 얼른 미고를 데리고 이곳에서 나가야 했다.
마델이 몸을 격렬히 흔드는 와중에도, 아이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작은 손으로 마델의 양쪽 눈을 꽉 부여잡았다. 검지와 중지가 마델의 눈꺼풀 안쪽을 후벼 팠다.
“아아아악!!!”
마델이 아이의 등허리를 잡고 거칠게 자신의 몸에서 떼어 냈다.
눈 앞 꼬리가 있는 쪽이 0.7센티미터 정도 찢긴 마델이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마델이 눈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맹렬히 아이를 찾아 눈동자를 돌렸다.
“네가 날 감히 공격해? 죽여 버리겠어. 늘 그랬듯 죽여 버릴 거라고!!!”
마델이 악다구니를 쓰며 미쳐 날뛰었다. 난 마델이 눈을 부여잡고 있는 동안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아이를 안아서 들어 올렸다.
아이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돌부리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렸다.
“저 이제 어디에 있는지 알죠? 저… 꼭 찾아 주세요. 엄마… 엄마한테 가고 싶어요.”
아이의 숨소리가 낮잠 드는 아이처럼 조금씩 작아졌다. 감았다 떴다 하는 눈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알아. 내가 꼭 찾아 줄게. 엄마한테 돌려보내 줄게.”
아이는 작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이가 가리키는 방향에 마델의 기억에서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있었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이제야 와서.”
아이의 분홍빛 볼 위로 아이의 눈물과 내가 흘린 눈물이 만났다.
마델이 우리 쪽으로 흐느적흐느적 걸어오면서 지팡이를 겨눴다.
“감히 내 기억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마델의 공격과 동시에 내가 날개를 펼쳤다. 간발의 차이로 마델의 공격을 피했고, 이를 맞은 나무 기둥이 반쪽으로 쪼개졌다.
나는 한쪽 손에는 아이를, 다른 한 손으로 바닥에 쓰러진 미고를 안았다. 그리고 아이가 알려 준 기억의 출구로 황급히 날아갔다.
“어딜 나가려고!!!”
마델이 악다구니를 쓰며 내 뒤를 쫓았다. 그리고 엿가락처럼 한쪽 팔을 늘려 내 발목을 잡았다. 부러진 발목이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어그러지며 돌아갔다.
“으윽….”
난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으며 출구 문고리를 잡았다. 마델이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어서 출구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목에 매고 있던 피누누의 발톱을 휘둘러서 마델의 손을 떼어 내려 했지만, 발톱은 공중에서 헛돌 뿐 마델에게 해를 끼칠 수 없었다.
마델의 기억 속에서 나와 미고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 오직 아이만이 마델에게 맞설 수 있었다.
그때 내 발목을 악착같이 잡고 있던 마델의 손이 헐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이때다 싶어 문을 열고 나가면서 뒤로 돌았다.
“크아악!!”
내 오른팔에 안겨 있던 아이가 어느새 다시 마델의 목덜미에 앉아서 눈을 후벼 팠다. 아이는 내가 도망칠 수 있도록 시간을 벌고 있었다.
“어서 가요! 가!”
그렇게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면서 나는 정신을 차렸다. 문을 통과함과 동시에 나는 현실로 돌아왔고, 카페에서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익숙한 커피 냄새와 함께 나를 내려다보는 사장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익사 직전 겨우 물에서 나온 사람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바로 옆에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 있는 미고가 보였다.
“미고야!! 정신 차려!!! 사장님, 미고가 기억 속에서 마델의 공격을 받았어요. 미고… 괜찮겠죠??”
사장이 미고의 눈꺼풀을 들어서 동공을 확인하고,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대고 심장박동을 들었다.
“지금 깨우는 중이야. 조금만 늦었어도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심장 박동이 완전히 멈추기 전에 기억에서 빠져나와서 망정이지. 넌 괜찮은 거지?”
“네…….”
사장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갔다. 미고에게 무언가를 달인 물을 숟가락으로 떠서 먹이고, 계속해서 미고의 심장 소리를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 호흡이 붙어 있어. 근데 시간이 없어. 빨리 치료를 하지 않으면 위험해. 지금 당장 지오 편에 미고를 약방 할매에게 보내야겠어.”
사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장의 전갈을 받은 지오가 다급히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이미 간략히 전후 사정을 들은 지오는 자신의 몸집의 두 배인 미고를 가뿐히 둘러업고, 주방에 만들어 둔 이동 거울로 냅다 뛰어들었다.
“미고를 잘 부탁해요!”
내가 미고를 업고 가는 지오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지오는 “걱정 마요!”라고 소리치며 사라졌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퍼뜩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느낌이 들어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마델이 보이지 않았다.
“마델은요?”
“아무래도 곧 정신을 차릴 거 같아서 내가 가둬 놨어. 저기에.”
사장이 턱을 들어 보인 곳에는 큼직한 보스턴백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가방 지퍼에 작은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설마 이 안에 마델이 들어가 있다는 건가.
“3마을 집행자를 불렀어. 곧 마델을 데리러 올 거야.”
사장은 우리가 중얼거리는 말로 이미 마델의 기억 속 상황에 대해 다 파악하고, 조치를 취해 놓았다.
“다, 다행이네요.”
다리에 힘이 풀려 있던 나는 벽을 잡고 일어서고자 했지만, 발목 통증 때문에 제대로 서는 것도 쉽지 않았다.
“너도 좀 누워 있어. 발목에 외상은 없을 테지만 일종의 환상통처럼 한동안 아플 거야. 기억 속에서 심하게 다쳤으니.”
기억 속에서 있었던 일은 현실에도 확실히 영향이 있었다.
고통스러웠지만, 마델의 기억을 떠나기 전 보았던 아이의 눈빛이 잊히지 않아 마냥 쉴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이가 저희가 마델의 기억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사장이 목을 뒤로 젖혀 기도를 열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이의 영혼이 마델의 기억 속에 갇혀 있어. 네가 아이를 도와주면서 기억에 균열이 생겼고, 그 덕분에 아이의 영혼이 마델에게 맞설 수 있었던 거야.”
엄마에게 돌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마델에게 달려들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아이의 시신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아요. 어서 찾아야 돼요. 아이가 부탁했거든요. 엄마한테 돌려보내 달라고…….”
난 퍼렇게 질린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말했다. 사장이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야지. 그래야 아이의 영혼도 그 끔찍한 기억 속에서 꺼내 줄 수 있으니까.”
“당장 가요. 지금.”
그때 검은 정장을 입은 대여섯 명의 마법사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마을 집행자들은 키는 좀 작았지만, 다부진 체격을 갖고 있었다. 여자, 남자가 섞여 있었는데 선글라스 안쪽으로 매서운 눈빛이 번뜩였다.
그들은 말을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보스턴백을 가리켰다. 사장 역시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행자들은 보스턴백에 다시 한번 마법을 걸고 가방을 챙겨 카페를 나갔다.
“마델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사장은 대답을 미루고, 주방에 돌아가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커피에서 내가 최근에 꽂혀 있는 물렁뼈 오가피 향이 났다.
“재판을 받겠지. 그리고 합당한 벌을 받아야지.”
사장이 내게 커피를 건네며 답했다. 말투에 어쩐지 허탈한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과연 마델이 한 짓에 걸맞은 벌이 이 세상에 존재할지가 의문이었다. 죽음으로도 갚을 수 없는 죄였다. 오히려 죽음은 마델이 지은 죄에 비하면 벌이 아니라 상이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이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뿐이었다.
“가자. 아이를 찾으러.”
나는 남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이 주방에서 무언가를 뒤적거리더니 목발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일단 이거 써. 그나마 걸을 만할 거야.”
“네.”
달마저 구름 속에 갇혀, 빛을 내지 못하는 어두운 밤이었다.
나는 마델의 기억 속에서 본대로 명암산 초입으로 사장을 데리고 갔다.
“여기야?”
“네…….”
산속은 그림자의 품처럼 차갑고 어두웠다. 당장 내딛는 내 발 앞코도 보이지 않았다.
사장이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반딧불이의 도움을 좀 받아야겠다. 너무 어둡다.”
“반딧불이…요?”
사장이 작고 낡은 자루를 묶고 있는 실을 풀자, 그 안에서 반딧불이 열 마리가 빠져나왔다.
반딧불이가 빛을 내긴 해도 어둠이 가실 만큼의 빛은 아니었다.
사장이 지팡이를 휘두르자, 반딧불이 엉덩이에서 내던 빛이 몇 배는 밝게 빛났다. 마치 가로등처럼 반딧불이 일직선으로 나란히 날아가며 우리가 가는 길을 밝혀 주었다.
“이 반딧불이가 내는 빛은 오직 마력이 있는 사람의 눈에만 보여.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덕분에 나는 아이가 묻혀 있는 구덩이를 찾기 위해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산을 올라갈수록 숨이 차고, 식은땀이 났다. 지쳐서라기보단 아이와 나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기 때문이란 직감이 들었다.
그때 목발이 축축한 낙엽에 미끄러지며 멀리 나가떨어졌다. 심하게 엉덩방아를 찍은 나는 고통에 신음하며 주저앉았다.
바닥에서 한기가 전해지며 온몸에 찌릿한 전율이 흘렀다.
“잠깐만요. 사장님… 여기인 거 같아요.”
열심히 앞서나가던 사장을 불러 세웠다. 난 내가 넘어져 주저앉은 땅을 가리켰다.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비켜 봐.”
내 이야기를 알아들은 듯이 반딧불이가 내 주변을 빙빙 돌았다.
사장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주문을 외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누군가 입김을 부는 것처럼 흙이 조금씩 흩날렸다. 아이의 유골이 있을 수도 있기에, 사장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흙을 파냈다.
땅이 조금씩 밑으로 파였고, 2미터가량 파인 구덩이 밑으로 옷자락이 보였다.
이를 본 사장이 마법을 멈췄고, 나와 사장은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비록 마델의 기억 속이었지만, 내 품 안에서 느꼈던 아이의 호흡과 체온을 떠올렸다.
나는 차마 아이의 유골을 꺼내지 못하고 옷가지만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손으로 아이 옷에 묻은 흙을 털었다. 손끝에 아이의 뼈가 잡혔다.
“가자……. 엄마한테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