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화
난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흙더미에 묻힌 아이의 옷가지를 건져 냈다.
“많이 추웠겠다…….”
옷에 손이 닿는 순간, 아이를 안았을 때 느꼈던 따듯하고 푹신한 느낌이 떠올랐다. 아이에게서 나는 달고, 고소한 특유의 냄새까지.
내가 아이가 입고 있었던 갈색 상의와 흰색 트레이닝 바지를 갤 동안, 사장은 미리 챙겨 온 하얀 도자기에 아이의 유골을 담았다.
한 조각의 뼛가루도 놓치지 않고 챙겨 가려는 마음으로 우린 흙 속을 뒤지고 또 뒤졌다.
유골을 모두 담고 나자 하얀 도자기에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제야 사장은 뚜껑으로 유골함을 닫았다.
동이 떠올랐다. 날이 밝아오자 반딧불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조금 있으면 부지런한 사람들이 언제나처럼 약수를 채울 빈 통을 들고 아침에 산을 오를 터였다.
“사장님, 이제 가요.”
“그래. 다 된 거 같다.”
“아이의 영혼은요? 이제 마델의 기억에서 해방됐을까요?”
“아직. 엄마한테 돌려보내 줘야 해.”
“네. 그럼 지금 바로 아이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가요.”
우린 산을 내려가는 길에 있는 약수터에서 손과 얼굴을 대충 씻었다. 흙을 뒤집어쓴 얼굴에서 구정물과 눈물이 뒤섞여 흘러내렸다.
찬물이 얼굴에 닿으니 그제야 정신이 또렷해졌다. 아이의 영혼이 내 손에 들려 있다는 책임감에 가슴이 묵직했다.
난 혼잣말하듯 읊조리며 말했다.
“아이야, 엄마한테 가자.”
사장의 마법 덕분에 엉망이 된 옷은 다시 깨끗해졌다.
택시를 타고 아이 엄마에게 가는 길.
아이의 유골을 마주하는 엄마의 심정이 어떨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상상하고 또 상상하며 우린 병원에 도착했다.
나와 사장은 면회실에 앉아서 아이의 엄마가 나오길 기다렸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면회를 신청한 건 우리 둘뿐이었다.
문이 열리는 삐거덕 소리가 나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와 사장님을 번갈아 빠르게 보는 아이 엄마의 혼란스러운 눈동자가 보였다.
뭔가 직감했던 것일까. 들어올 때부터 뭔가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반쯤은 혼이 나간 얼굴.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
“꿈에 아이가 저를 찾아왔어요. 그 전까지 꿈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던 아이인데…….”
그 말을 듣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 엄마가 내가 들고 있는 하얀 도자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그 도자기에 써진 아이의 이름을 확인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유담 2004~2012]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이 엄마가 아이의 유골함을 끌어안았다.
“담아…. 담아…. 담아… 엄마가 미안하다…. 담아…. 담아… 엄마가 미안하다…. 담아…. 담아…….”
아이 엄마의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듣고 병원 관계자들이 면회실로 들이닥쳤다.
사장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들어온 사람들을 손으로 휘휘 내쫓았다.
“어이, 그냥 가.”
문을 열고 몰려왔던 사람들이 언제 들어왔냐는 듯이 일사불란하게 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목 놓아 울던 아이 엄마는 이제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지 가뭄 들어 쩍쩍 갈라진 논바닥 같은 숨소리를 내쉬었다.
궁금한 게 많을 텐데도 아이 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어쩌면 아이가 실종되던 날의 기억을 모두 되찾았을지도 몰랐다.
사장이 담담한 목소리로 아이를 해친 자는 잡혔으며, 죽음을 바라게 될 정도의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이전에 약방 할매가 주었던 환약을 떠올렸다.
엄마가 직접 만들었다던,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환약.
나는 반짝거리는 사탕 껍질을 벗기고, 약을 미지근한 물과 함께 아이 엄마에게 건넸다.
그녀는 처음엔 힘없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지만, 내가 다시 한번 권하자 조용히 약을 먹었다.
뭘 집어삼킬 상황이 아니었지만, 아이를 찾아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약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 엄마가 급작스러운 복통을 호소했다. 아랫배를 잡고 웅크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으흡…. 우욱….”
헛구역질을 하면서 입가에 끈적끈적한 침이 흐르기 시작하자 나는 당황해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준 약을 먹고 이렇게 됐으니. 난 다급히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님, 마음을 어루만지는 약이라더니 어떻게 된 거죠?”
사장은 마치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담담히 지켜봤다.
아이 엄마의 눈이 점점 붉게 달아오르며 충혈됐다. 이어 온몸에 혈관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강에 빠진 듯 입고 있던 환자복이 땀에 젖어 갔다.
사장이 작게 읊조렸다.
“얼마나 독한 독을 품고 살았으면 저런 반응이 나올까.”
나는 아이 엄마의 상태가 심각해지자 공포에 질려 말했다.
“의사, 의사를 불러야 할 거 같아요. 지금 당장…….”
사장이 헛구역질을 하는 엄마를 부축했다.
“기다려 봐.”
지금 상황이 이런데 한가하게 기다리라니. 아이 엄마가 크게 기침을 하면서 무언가를 왈칵 토했다. 시커멓게 응고된 핏덩어리들이었다.
“너희 엄마가 만든 약이잖아. 좀 믿어 봐.”
“그렇지만…….”
그때 아이 엄마가 목에 무언가 걸렸는지 컥컥 소리를 내며 숨을 쉬지 못했다.
“어억… 어어억.”
그녀의 기도를 막고 있던 것이 입을 통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 엄마의 입에서 나온 것은 날카롭게 벼린 단도였다.
칼을 토하고 나자 그녀는 숨을 고르게 쉬면서 진정을 하기 시작했다.
사장이 그제야 일어나서 동백꽃이 그려진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가와 손을 닦아 주었다.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들은 자기 심장에 칼을 꽂고 살아. 이 환약은 그 칼을 뽑아 준 거야.”
칼을 토한 아이 엄마의 안색이 점점 밝아졌다. 팥색을 띠던 얼굴에 조금씩 생기가 돌아왔다.
“죽지 않고 사는 게 중요해. 따라서 죽는 건 쉬워. 남아서 생을 이어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늘 가치 있는 일은 더 어려운 법이지.”
핏발이 섰던 흰자위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사장은 보라색 머리끈으로 풀어 헤쳐진 아이 엄마의 머리카락을 곱게 묶었다. 사장의 손끝에서 뻣뻣하고 말라비틀어진 머리카락이 촉촉하고 부드럽게 변했다.
그러면서 원래 잘 알고 지내던 친구인 양, 언니인 양,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 여긴 당신 집이 아니잖아요.”
그녀는 사장에게 안겨 아이처럼 훌쩍거렸다. 사장이 토닥토닥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나는 바닥에 내던져진 단도를 들었다. 낡은 헝겊으로 칼 손잡이 부분이 감싸져 있고, 날 끝이 타원형으로 휘어져 있었다.
길이는 손바닥만 했지만, 날이 얼마나 바짝 서 있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건 네가 잘 챙겨.”
“제가요?”
“여기 두고 갈 수는 없잖아.”
사장이 칼집을 건넸다. 칼은 칼집과 딱 맞아떨어졌다.
아이 엄마는 사장의 말대로 퇴원 수속을 밟았다. 원래는 복잡한 절차가 있다고 하는데, 사장이 보호자를 자처하고 의사에게 몇 마디 했더니 바로 퇴원 처리가 됐다. 마법을 썼겠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우린 다 같이 병원을 나와 아이 엄마가 살던 집으로 향했다.
아이가 실종됐던 집 앞 놀이터는 사라지고, 시멘트가 깔린 좁디좁은 빌라 주차장이 생겼다. 차가 네 대정도 들어가는 크기였다.
그녀는 그 주차장을 한동안 서서 지켜보더니 집으로 들어갔다.
오랜 시간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이라 집 안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사물도 죽은 것처럼 모든 게 낡고 병들어 보였다.
아이 엄마는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내내 말이 없었지만, 인사를 하고 가려고 하자 우릴 붙잡았다.
그리고는 주방으로 가서 무언가를 찾았다. 차를 내주려나 보다 생각했다.
물은 나오지 않았다. 수도꼭지를 열어도 쿨럭쿨럭 소화 장애를 겪고 있는 돼지 배때기 소리만 날 뿐 물은 나오지 않았다.
가만히 지켜보던 사장이 나서서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늘 매고 있는 주머니에서 팔팔 끓는 물이 담긴 주전가를 꺼냈다.
그 작은 가방에서 대체 어떻게 저 주전자가 나왔는지, 것도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가! 새삼 볼 때마다 놀라웠다.
언제부터 찬장 위에 있었을지 모를 티백을 우려 차를 나눠 마셨다. 이상할 만도 한데 오히려 깊은 맛이 나는 게 종일 긴장했던 몸이 사르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차를 다 마시고 우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 엄마가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고마워요.”
아이에게 감사 인사라도 시킬 모양인지 양손에는 유골함을 꼭 안고 있었다.
우린 집을 나가서도 옛날 놀이터가 있던 주차장에서 한참 동안 근처를 서성였다. 마음이 놓이지 않거나 했던 것은 아닌데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 엄마가 오랜만에 온 집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집 밖에서도 보였다.
그녀는 가장 먼저 벽지에 핀 곰팡이를 닦았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녀는 쉬지 않고 청소를 했다. 더 이상 움직일 힘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 두고 먼저 떠난 사람들의 유일한 소원은 남은 사람의 평안이다.
비록 어린아이라고 할지라도, 다를 리 없다.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그녀의 폐에 가득 찼다. 깨끗해진 집 안에 아이의 영혼이 따듯한 차 향기처럼 떠다녔다. 나와 사장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주말 아침, 난 누가 봐도 자고 일어나 그대로 온 듯한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카페로 향했다.
이전 같았으면 일종의 보상 심리 때문에 기어코 오후까지 잠을 청했을 테지만,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자마자 카페에 갈 생각부터 했다.
카페에 들어서자 고소한 버터 향이 물씬 나면서 동시에 레몬과 자몽의 상큼한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형, 왔어요? 사장님이 저더러 이걸 다 짜래요. 마법으로 하면 간단한 것을 일일이 직접 하라고……. 게다가 전 아직 환자잖아요!”
미고가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일러바쳤다.
“어쭈! 너 나불거리는 거 보니까 다 나은 거 같다. 잔말 말고 얼른 짜. 직접 손으로 짠 게 훨씬 맛있으니까!”
미고는 회복 중이었다. 약방 할매의 응급 처치 덕분에 큰 후유증 없이 치료가 가능했다고 한다.
미고는 더 쉬라는 사장의 만류에도 몸이 근질근질하다면서 기어코 카페에 출근했다. 레몬은 직접 짜는 게 싫다면서 투정은 부릴지언정 마고는 카페에 있을 때 가장 편해 보였다.
“줘. 내가 할게.”
내가 비닐장갑을 끼고, 미고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한 손으로 반 토막이 난 레몬을 꽉 쥐자, 주르륵 레몬즙이 흘렀다.
“해그냥한테 시키지 마. 어차피 해그냥이 해도, 네가 다시 다 짜야 돼.”
사장의 말에 내가 발끈하며 나섰다.
“제가 왜요? 잘만 하는 고만.”
미고가 내가 이미 짠 레몬을 들어 다시 꽉 쥐었다. 처음에 나왔던 레몬즙보다 훨씬 많은 양이 병을 따라 흘렀다.
“형……. 제가 할게요.”
그때 문을 열고 카페 단골인 라뚜 아저씨가 들어왔다.
매번 미고에게 공갈빵 배달을 시키던 라뚜는 사장이 배달 서비스를 금지시키자 오랜만에 직접 카페를 찾았다.
그는 이전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점점 말라 갔는데, 족히 30킬로그램은 빠진 거 같았다. 그가 힘없이 발 다리를 흐느적거리며 말했다.
“공갈빵 주세요.”
사장은 로뚜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딱 잘라 말했다.
“오늘은 공갈빵 없어.”
사장의 말에, 내가 주방 쪽으로 힐끗 봤다. 오븐 안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공갈빵이 한가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