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75)

#055화

로뚜가 공갈빵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방 쪽을 서성였다.

그를 처음 봤을 때는 조금 느끼한 면이 있지만 키도 크고, 스타일도 멋진 중년의 사내라고 생각했다.

늘 화려한 패턴의 실크 블라우스와 그 위에 걸친 캐시미어 카디건으로 멋을 낸 그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에 볼에 살이 없어서 무슨 표정을 지을 때마다 잔물결같이 예닐곱 개의 주름살이 생겼다.

남에게 좀체 관심이 없는 사장마저 로뚜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였다.

공갈빵은 먹었을 때 입에서 맛만 느낄 수 있을 뿐, 배 속으로 들어가는 것 없이 사라진다고 사장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하는 손님들이 즐겨 찾는 메뉴이기도 했다.

사장이 로뚜에게 공갈빵을 팔지 않는 것도, 급격히 살이 빠진 그가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이 분명했다.

“공갈빵 없대도 그러네!”

로뚜는 결국 사장에게 욕을 먹고, 반박할 기운도 없는지 어깨를 옹송그리고 터덜터덜 걸었다.

허탕을 치고 집에 가려는 그를 내가 붙잡았다.

“저 혹시 사마귀 라테를 드시는 건 어때요? 칼로리도 낮고 허전한 속을 따듯하게 채워 줄 거예요.”

“그, 그래요?”

얼마나 굶었는지 로뚜가 맥없이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사장은 오지랖을 부리는 날 보며 입술을 씰룩거리면서도 손으로 부산스럽게 사마귀 라테를 만들기 시작했다.

난 그에게 사마귀 라테를 서빙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살을 빼시는 거예요? 이전 모습이 훨씬 근사했는데……. 오실 때마다 다른 음식은 일체 안 드시고, 공갈빵만 드시니 걱정이 돼서요.”

레몬즙이 눈에 튀어 눈을 깜빡거리던 미고가 어느새 내 옆에 와서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살 빼지 마세요.”

로뚜는 대답 대신 한숨을 내쉬며 사마귀 라테를 호로록 마셨다. 부드러운 우유 거품이 메마른 그의 입술 위에 촉촉이 내려앉았다.

“그게 어쩔 수가 없어요. 지금 상황이…….”

“지금 상황이요?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노력형 개인주의자였던 나는 이제 봇물이 터진 듯이 로뚜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로뚜는 사마귀 라테를 모두 마시고 긴장이 풀렸는지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었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져 더욱 나이가 들어 보였다.

피골이 상접해서 기아에 시달리는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눈 주변은 지방이 바싹 말라 귤껍질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체내의 지방이 모두 고갈돼서 더 이상 에너지를 만들 수가 없자 몸이 간을 파괴해서 땔감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벽에 틈이 생겼어요. 그 틈 사이로 손을 넣으면 그리운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죠. 근데 그 틈이 너무 좁아서…….”

로뚜가 주변 눈치를 보며 비밀이라는 듯이 작게 속삭였다.

“틈이요? 그럼 그 틈 사이로 손을 집어넣으려고 이렇게 살을 빼셨다는 거예요?”

어느덧 사장도 우리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로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틈이 아주 좁은데 또 어떻게든 손을 욱여넣으면 들어갈 것도 같고, 그렇게 아슬아슬하단 말이죠. 그래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살을 뺀 거죠.”

사장이 로뚜의 말이 황당하고 못 미더운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잡은 적이 있긴 해요?”

“잡은 적 있어요. 딱 한 번.”

그리운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는 틈이라… 사장에게 알고 있느냐고 물었지만 사장도 어깨를 들썩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오랜만에 음료다운 음료를 마신 로뚜는 벽에 기대 꾸벅꾸벅 졸았다.

“만약에 사장님은 보고 싶은 사람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있다면 로뚜 아저씨처럼 살을 뺄 거예요?”

난 로뚜가 잠시라도 편히 잘 수 있도록 무릎 담요를 덮어 주면서 사장에게 물었다.

“아니. 미쳤어?”

“왜요?”

“그건 진짜를 흉내 낸 가짜니까. 그 틈 너머로 내가 진짜 그리던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설사 그렇다고 해도 사무치게 그리운 촉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익숙한 냄새, 다시 느끼고 싶은 온기 같은 거요.”

“흥. 그래도 가짜는 필요 없어.”

사장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딱 잘라 말했다. 잠든 로뚜를 물끄러미 보던 나는 불현듯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라 말했다.

“저도 한번 해 볼까요? 틈 사이에 손을 넣어서 엄마 손을 잡고 나면 엄마에 대한 기억이 더 돌아올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형도 살을 빼게요?”

미고가 그건 말리고 싶다는 듯이 한쪽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건 아니고, 꾀를 좀 쓰면 어떨까?”

“어떻게요?”

“공갈빵 반죽을 손에 묻혀서 마치 손이 큰 사람인 것처럼 속이는 거예요. 그리고 틈이 벌어졌을 때 반죽을 뚫고 손을 쑤욱 집어넣는 거죠.”

사장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허술한 작전이 통할까?”

“일단 한번 해 봐서 손해 볼 거 없잖아요.”

사장은 주방 구석에 남은 공갈빵 반죽을 가져와서 내 손에 붙였다.

손재주가 좋은 사장이 조금 공을 들이자, 마치 특수 분장이라도 한 것처럼 손이 감쪽같이 커졌다. 미고는 옆에서 반죽이 잘 마를 수 있도록 부채질을 했다.

어느덧 손님들이 주변으로 몰려들어 내 가짜 손을 구경하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에이~ 손이 자고로 움직여야지. 지금 딱 굳어서 못 움직이지? 그렇지?”

“그거 살살 나무 꽃가루가 있으면 마치 살덩이처럼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을 텐데.”

그때 약방 할매에게 다녀온 지오가 진한 암모니아 냄새를 풍기며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카페 안에 있던 손님들 모두 코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지오의 냄새에 익숙해진 우리만 태연하게 그녀를 맞았다.

“방금 전부터 이 냄새가 나더라고요. 곧 지오 누나가 오려나 보다, 생각했어요.”

미고가 지오의 옆에 바짝 붙어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넌 청각도 뛰어난데 후각도 좋구나! 그나저나 무슨 난리래요. 이게?”

바닥에 흩어진 공갈빵 반죽과 물, 밀가루를 보면서 지오가 사장에게 물었다. 로뚜의 사정을 모두 들은 지오가 가방에서 조그마한 유리병을 꺼냈다.

“살살 나무 꽃가루가 있긴 한데요.”

사장이 지오의 말에 반색하면서도 티를 내지 않고 말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갖고 있어?”

“약방 할매한테 좀 얻어 왔죠. 도도새가 날기 연습을 하다가 나뭇가지에 크게 베는 바람에 치료가 필요하거든요.”

“도도새? 오래전 멸종된 새 아닌가요?”

난 어릴 적 멸종된 동물에 대해쓰인 백과사전을 읽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지오에게 물었다.

“도도새가 여태 무사히 살아 있는 건 사람들이 도도새가 멸종됐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도도새가 아직 존재한다는 걸 알면 또 얼마나 괴롭혀들 대겠어요.”

지오는 상상만으로도 진절머리를 쳤다. 그리고 공갈빵 반죽에 살살 나무 꽃가루를 톡톡 뿌렸다.

“여유 있게 가져와서 이 정도는 줄 수 있을 거 같아요. 잘 섞어서 다시 만들어 봐요.”

사장이 반죽을 섞자 살살 나무 가루가 녹아서 반죽에 스며들었다. 반죽에선 희미하게 콩기름 비슷한 냄새가 났다.

반죽이 점점 내 피부색에 가깝게 변하기 시작했다. 사장은 반죽을 떼서 내 손등에 얹고 부드럽게 폈다. 아까와는 다르게 진득거림이 없고, 보송보송한 느낌이 들었다.

“자, 이제 손을 움직여 봐.”

난 조심스럽게 손을 쥐었다 폈다. 살살 나무 가루를 넣어서 그런지 반죽은 이물감 없이 내 손에 들러붙었다.

“오! 진짜 손 같아요. 신기하네.”

지오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살살 나무 꽃가루는 살점이 패인 상처에 솔솔 뿌리면 새살이 두둑하게 올라오거든요. 그리고 반죽이랑 배율만 잘 맞추면 이렇게 멋진 코도 만들 수 있어요.”

지오는 조물조물거리던 반죽을 자신의 코에 올렸다. 길고 날카로운 매부리코가 지오의 얼굴에 붙었다.

“어우. 안 어울리니까 얼른 떼.”

사장은 질색했지만, 정작 지오는 새 코가 마음에 드는지 거울을 보며 약간의 손만 봤다.

“사장님, 잘만 하면 진짜 틈을 속일 수도 있겠는데요?”

“뭐, 그럴싸하네. 한번 가 보자. 어떤 녀석이 틈에 대고 그런 장난질을 하는지.”

우린 곤히 자고 있는 로뚜를 깨웠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얼른요. 앞장서요.”

사장이 채근하자 로뚜는 못 이기는척하며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로뚜도 그 틈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해 왔던 터였다.

그의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어쩐지 좀 심란해 보이는 표정을 짓는 로뚜에게 물었다.

“이렇게 살을 빼서까지 손을 잡고 싶은 사람이 누구예요?”

“있어. 사랑하는 사람.”

로뚜는 어린애가 에스프레소를 삼키는 것처럼 쓴 침을 넘겼다.

답답하리만큼 느린 걸음이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속도가 지금 아저씨 체력으로는 최선이었다.

사장에게 듣기로, 로뚜는 평생 외롭게 살아왔다고 했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읜 그는 커서도 사람들에게 쉽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

어느덧 도착한 로뚜의 집은 작지만 홀로 여행을 다니며 모은 다양한 소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장 난 냉장고처럼 온기도, 냉기도 모두 빠져나간 미적지근한 공기가 끈적끈적하게 피부에 닿았다.

“저기야.”

로뚜가 화려한 문양의 벽걸이 카펫을 치우자, 그 안에 작은 틈이 보였다.

“흠…….”

틈 앞에서 침을 꼴깍 삼키고, 심호흡을 했다. 로뚜는 이 틈 너머에 그리운 사람이 있다고 믿었지만, 난 어쩐지 꺼림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저 너머로 뭐가 있을 줄 알고 대뜸 손을 넣는단 말인가. 뭔가에 물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뭐라도 해야만 했다.

난 가짜 손을 한 번 더 점검했다. 여전히 잘 움직였고, 스스로도 헷갈릴 만큼 촉감부터 모든 게 진짜 같았다.

“이제 넣어 볼게요. 좀 떨리네요. 하하…….”

다들 웃음기를 빼고 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난 더는 망설이지 못하고 틈 안으로 손을 넣었다.

로뚜의 말대로 손은 틈 사이에 꽉 껴서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손끝에 틈의 바깥쪽 입구가 만져지는 것을 보니, 조금만 더 넣으면 들어갈 것도 같았다.

난 심호흡을 하며 손이 반죽을 뚫고 틈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했다. 긴장한 탓에 손에 땀이 나서 반죽과 살 사이에 공간이 생겼다.

난 장갑을 뚫고 나가듯 틈 밖으로 있는 힘껏 손을 내밀었다.

“됐어요! 손이 들어갔어요!”

틈 바깥으로 내밀어진 손에 시원한 바람이 스쳤다. 공중에 손을 휘저어 봤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근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데.”

“조금만 기다려 봐. 곧 그쪽에서 손을 내밀 거야.”

로뚜가 내 바로 옆에서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로뚜의 말대로 손끝에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내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자, 사람들은 내가 틈 밖에서 손을 잡았음을 눈치채고, 숨을 죽였다.

“잡았어요? 정말 누가 있어요?”

미고가 궁금한지 틈 쪽으로 바짝 붙으며 물었다.

틈 밖으로 작고, 조금은 차갑고, 마른 손을 꼭 잡았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손이었다.

“엄…마?”

틈 밖으로 맞잡은 손은 낯설고 어색한 느낌만 들 뿐,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어때요? 뭔 기억이 떠올라요? 진짜 엄마 손 맞아요?”

지오가 마치 다음 차례는 자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호기심이 어린 눈을 반짝거리며 채근했다.

“글쎄… 딱히…….”

난 뒤를 돌아 사장과 눈을 맞췄다. 사장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준비해 둔 작전을 실행해도 좋다는 사인이었다.

틈 밖의 손은 내 손을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난 응수하듯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내 손바닥에 몰래 묻혀 놨던 붉은 액체가 손목을 따라 주르륵 흘렀다.

틈에 손을 넣기 직전에 손바닥에 끈끈이주걱의 끈끈이를 발랐다. 틈밖에 무엇이 있는지 직접 꺼내서 보자는 지오의 아이디어였다.

“지금이야! 당겨!!!”

사장이 소리치자, 나는 있는 힘껏 손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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