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화
틈 밖의 손이 당황하며 내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끈끈이 액에 들러붙은 손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난 이제 스파이더맨처럼 아예 발을 벽에 대고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미고가 내 허리를 잡고 당겼다. 우리는 줄줄이 사탕처럼, 사장은 미고의 허리를 잡고, 지오는 사장의 허리를 잡았다.
“으아악!! 저 팔 빠질 거 같아요!!”
난 팔이 당장이라도 탈골될 것 같은 느낌에 소리를 질렀다. 어깨와 팔의 연결 부위가 느슨해지는,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들었다.
로뚜는 영문도 모른 채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우리가 힘을 모아 당기자, 점차 내가 잡고 있던 손이 틈에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틈 밖으로 무언가 나오자, 다들 흥분해선 내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다리기라도 하듯 구령을 넣어 가며 계속해서 나를 잡아당겼다.
가녀리고 흰 손가락과 팔목이 보이더니, 점점 태닝을 한 것처럼 어두운 빛깔에 우락부락한 팔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의 손과 남자의 팔이 기괴하게 접합된 모습이었다.
“어우! 저게 다 뭐야?”
사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이제 거의 한쪽 어깨가 틈 밖으로 나왔다. 어깨 부근의 삼각근과 견갑근, 목까지 이어지는 후경부 삼각근까지 여리한 손과는 어울리지 않는 몸통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
“거봐! 가짜랬잖아.”
사장이 미고의 허리를 당기면서 투덜거렸다. 이를 지켜보던 로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이 이런 존재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었다.
그때 틈 밖으로 악취를 풍기는 검은 기름을 뒤집어쓴 얼굴이 나왔다.
누렇게 변한 흰자위에 빨간색 동공을 한 남자는 로뚜와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어 보였다. 벌레가 우글거리는 잇몸 사이마다 선홍빛의 피가 고여 있었다.
“이럴 수가…….”
“부패한 쓰레기 귀신이야. 이제까지 저 자식의 장난질이었군.”
사장이 미고의 허리를 감은 손을 풀고 지팡이를 들었다. 그때 쓰레기 귀신이 있던 틈이 크게 벌어지더니 온갖 쓰레기들이 로뚜의 방으로 물밀 듯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썩은 쥐의 사체와 분뇨가 묻은 지푸라기, 구정물 사이로 바퀴벌레가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으아악!”
나와 사장은 이리저리 튀는 쓰레기를 피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악취에 익숙한 지오마저 견디기 힘든 냄새였다. 미고는 시취를 견디다 못해 정신이 아뜩해져 휘청거렸다.
“부패한 짐승의 내장에서 나는 냄새야. 계속 맡으면 기절할 수도 있어.”
다들 악취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 로뚜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쓰레기 귀신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결연한 표정을 지은 그가 나와 사장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내 집에서 나가.”
그러자 쓰레기 귀신이 로뚜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이 점점 작아졌다.
“자, 어서 잡아. 그렇게 잡고 싶어 했던 손이잖아.”
귀신이 실실 웃으며 로뚜에게 속삭였다. 이어 얼굴이 흘러내리며 찰흙처럼 형체가 불분명해지더니 점점 소년의 얼굴로 변하기 시작했다.
쓰레기 귀신은 열두 살 남짓의 소년으로 변했는데, 그 얼굴을 자세히 보니 로뚜와 닮은 구석이 많았다.
눈앞의 소년을 마주한 로뚜의 퀭한 눈 속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터지는 울음을 참으려는 입가 사이로 침이 튀었다.
난 쓰레기 귀신을 겨누고 있던 로뚜의 지팡이가 떨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팡이가 점점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어쩌죠? 로뚜 아저씨가…….”
“누구지? 로뚜랑 좀 닮은 거 같은데… 내가 알기론 로뚜에게 아들이 없는데…….”
로뚜가 숨을 몰아쉬자 말라서 가죽만 남은 허리에 갈비뼈가 모습을 보였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힘겹게 지팡이를 다시 들어 올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날 모욕하지 마.”
로뚜의 지팡이 끝에서 밝은 빛이 나왔고, 쓰레기 귀신이 쓰고 있던 가면이 너덜너덜해지면서 벗겨졌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쓰레기 귀신은 밝은 빛에 눈을 뜨지 못하고, 틈 사이로 더 많은 쓰레기들을 몰고 들어왔다. 쓰레기가 밀려드는 틈을 타서 도망칠 속셈이었다.
로뚜가 도망가는 귀신의 다리를 붙잡자, 귀신이 뒤를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풍선처럼 뻥 터지더니 구정물을 방 안에 있던 모두에게 튀겼다.
“도, 도망간 거예요?”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사장에게 물었다.
“쓰레기 귀신은 이미 썩은 존재라서 잡는 게 큰 의미가 없어. 계속해서 어딘가를 떠돌며 고약한 장난을 치겠지.”
로뚜가 긴장이 풀렸는지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닥에 주저앉았다. 미고와 내가 쓰러진 그를 양쪽에서 부축했다.
“음식이든 꽃이든 사람이든 아름다웠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부패해. 썩기 마련이지. 아무리 한때 아름다웠다고 하더라도 갈 때를 알아야 돼.”
기력을 다한 로뚜가 결국 미고의 품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 미고는 그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손바닥을 펼쳐서 로뚜의 이마에 올렸다.
로뚜의 기억이 미고와, 그의 어깨를 부축하고 있던 나에게 흘러들어 왔다.
불을 넣지 않은 냉골 바닥에, 어린 소년이 쭈그려 앉아 머리를 가랑이 사이로 넣었다.
가만 보니, 방금 전 쓰레기 귀신이 변신했던 그 소년이었다.
아이는 벽에 걸린 부모님 사진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울지도 않고, 눈꺼풀을 힘없이 깜빡였다. 아이는 몹시도 지쳐 보였다.
로뚜가 틈 사이로 그토록 잡고 싶었던 손은 어린 시절 자신의 손이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부모를 잃은 어린 로뚜는 외로움이 한기가 되어 들어찬 방 안에 홀로 있었다.
로뚜는 인생에서 가장 외로웠던 순간, 어린 시절 자신의 손을 잡아 주기 위해 지독하게 살을 뺐다. 그 기억이 얼마나 사무치게 외로웠으면 그랬을까.
어린 로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고가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기억 속 어린 로뚜가 갑자기 눈앞에 등장한 나와 미고를 보고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로뚜…….”
아이는 우릴 몰랐지만, 미고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울먹거리자 아이도 금세 경계를 풀었다.
미고는 어린 로뚜를 와락 껴안았고, 경직돼 있던 아이의 몸이 조금씩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미고 뒤에 서 있던 나도 천천히 걸어가 로뚜를 껴안았다.
부모의 죽음이 아이를 어떤 감정으로 내모는지, 겪어 봤으니 잘 알았다.
아이는 이제 완전히 경계를 허물고, 누군지도 모를 우리의 품 안에서 울었다. 냉담하고 차게 식어 버린 아이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었다.
로뚜는 중년이 훌쩍 넘은 나이가 되었지만 그때의 기억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몸만 컸지, 정신은 여전히 아이인 채로 홀로 냉골 방에 남겨졌다. 누군가 내밀어 줄 따듯한 손을 기다리면서.
잔인하리만치 외로운 순간을 홀로 견뎌야 했던 아이는, 결국 곁을 내주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랐다.
잠시 후, 정신이 든 로뚜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사장과 나, 지오는 부지런히 엉망이 된 집을 치우고 있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드나 보지?”
사장이 로뚜에게 물었다. 로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집이 거의 치워진 것을 보고 면목이 없는지 고개를 숙였다.
우린 한 명씩 그를 꼭 안아 주었다. 물론 사장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희미한 미소만 지었다.
“기억이 바뀌었군요….”
로뚜는 목이 잠겨서 말을 잇지 못했다.
“대강 치웠으니 가자고!”
기어코 로뚜를 카페로 끌고 온 사장은 뚱한 표정으로 그의 앞에서 팔짱을 끼었다.
로뚜의 앞에는 사장이 직접 끓인 대추 스튜가 놓여 있었다.
사장은 안 먹기만 해 봐라, 라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짓고 있었다.
대추 특유의 달큰한 향을 맡으니 덩달아 몸이 노곤해졌다. 로뚜는 숟가락을 들어 갈색의 대추 스튜를 후루룩 마셨다.
“맛있네요. 고맙습니다.”
“워낙 오래 굶어서 식사량을 천천히 늘리셔야 해요.”
미고가 로뚜가 먹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고마우면 매일 와서 한 그릇씩 잡수고 가요. 그냥 하는 말 아니에요.”
로뚜는 쓰레기 귀신에게 홀린 자신의 모습이 몹시 부끄러웠다. 그는 후회스러운 만큼 더욱 열심히 숟가락질을 했다. 접시에 바닥이 보이자 사장이 커다란 국자로 비어 있는 그릇을 다시 채웠다.
“이제 그때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 같아요. 단 한 번의 포옹이면 충분했네요. 고마워요.”
괜찮냐는 내 물음에 로뚜가 답했다. 로뚜가 두 그릇을 모두 비우는 것을 보고 나서 우리도 대추 스튜를 먹기 시작했다.
입안 가득히 풍기는 대추 맛을 느끼며 왠지 어제보다 더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기분 좋은 식사가 끝날 무렵, 카페 문을 박차고 누군가 들이닥쳤다. 가만 보니 마델을 데리고 갔던 마을 집행자 중에 한 명이었다.
“어? 당신이 왜…….”
정장 차림에 멀끔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옷은 다 찢기고 얼굴도 상처로 가득했다. 겨우 도망 나온 모양새인 그가 다급하게 말했다.
“마델이…… 도망쳤습니다…….”
“뭐라고요???”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식탁 위에 놓인 대추 스튜가 엎어지면서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사장이 심각한 얼굴로 정색하며 물었다.
“대체 어떻게 도망쳤다는 거지? 무슨 수로!!”
집행자가 끔찍한 일이라도 겪었는지 숨을 몰아쉬며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저 빼고 나머지 집행자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푸에르예요. 푸에르가 나타나서 마델을 데려갔어요.”
그는 마델을 마을 재판소로 옮기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미 다른 집행자들은 습격을 받은 것처럼 바닥에 죽어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게 푸에르의 짓인지는 어떻게 확신하지?”
사장이 중간에 말을 가로채며 물었다. 푸에르 때문인지, 마델을 놓친 집행자들 때문인지 목소리에 화기가 느껴졌다.
“보스턴백에서 나온 마델이 검은 천을 두르고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어요. 분명 ‘푸에르 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푸에르가 자신을 일부러 살려 둔 것이라고 말했다.
“마델을 빼돌린 게 푸에르, 자신의 짓임을 알리려는 듯 저를 살려 둔 거예요.”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물었다.
“푸에르는 봤어요?”
집행자가 힘없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고개를 돌리면 볼 수 있었는데……. 돌리지 못했어요. 두려웠어요. 두개골이 벌어진 채 죽은 동료들과 눈이 마주치고 나니……. 마법에 걸린 듯 몸이 굳어 버렸어요.”
사장은 몸이 굳어 버린 게 단지 느낌이 아닌, 정말 마법으로 인해 그랬을 수도 있다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를 위로했다.
“마을장에게 보고했으니 곧 지명 수배가 뜰 겁니다. 마을간 출입구 보안도 강화될 거고요. 죄송합니다. 부디 몸조심하세요.”
그는 다친 다리를 절뚝이며 사라졌다.
“마델을 놓치다니…….”
미고가 분한 마음이 북받쳐 올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렇게 또 푸에르에게 당하다니. 마델도 푸에르 추종자였다. 푸에르가 마델을 이용해 우릴 감시하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대로 푸에르가 우리 앞에 나타나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푸에르를 찾아야 돼요. 그래야 마델도 다시 잡을 수 있어요. 분명 푸에르 주변에 있을 테니.”
내가 정적을 깨며 말하자, 말없이 가만히 있던 지오가 답답한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대체 어떻게요? 단서가 없잖아요. 푸에르를 찾을.”
난 수사의 출발은 늘 목격자 진술로부터 시작한다는 진우의 말을 떠올렸다.
“푸에르를 직접 본 목격자가 있었잖아요. 전에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이름이 로프… 로프였어요.”
“로프는 너처럼 기억을 가두는 마법을 써서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사장이 심란한 표정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나도 책을 통해 목격자 로프가 기억이 감옥에 갇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저도 기억을 되찾았잖아요. 물론 전부 찾지는 못했지만…….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한테는 기억을 볼 수 있는 미고도 있고.”
내 말에 미고와 지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로프가 어디에 사는지 모른다는 게 여전히 문제였다.
“근데 책에는 외딴 시골에 산다고만 되어 있어서……. 로프를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 말에 사장이 입고 있던 앞치마를 벗으며 말했다.
“로프의 위치는 내가 알아. 카페에 있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소식과 정보를 접해. 우연히 로프를 만났다는 손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이미 사장은 내 말대로 로프를 만나러 갈 생각인지 가게를 문 닫을 준비를 했다. 지오과 미고도 말없이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그럼 가요. 푸에르를 본 유일한 목격자를 만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