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0화 (60/75)

#060화

미고가 안간힘을 쓰며 문고리를 당겼다. 목에 선 핏대가 터질 듯이 팽창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문고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켜 봐.”

난 미고를 밀치고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미고가 나보다 더 힘이 센 걸 알았지만, 지금은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다.

내 힘으로 안 된다면 케루빔 날개의 힘이라도 빌리고 싶었지만, 답답하게도 날개는 펼쳐지지 않았다. 아직도 날개를 제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지금처럼 사무치게 답답했던 적이 없었다.

“으아아악!!!!”

안에서 사장이 혼자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방에서 휘두르는 수십 개의 몽둥이가 되어 온몸을 후려쳤다.

문이 끄떡도 하지 않자,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가서 주변을 살폈다.

땅에 놓인 돌을 들어서 문고리에 내려쳤다. 돌이 쇳덩이에 부딪치는 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역시나 통하지 않았다. 사장이 마법을 걸어 놓았으니, 힘으로 될 게 아니었다.

이 상황을 혼란스럽게 지켜보고 있던 지오는 급히 풀숲으로 사라졌다.

나는 지팡이를 들고 문고리를 겨눴다. 사장의 마법을 깨트려야만 한다.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입에서 나온 정체불명의 괴성과 함께 지팡이 끝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사장의 마법과 만나 부딪치면서 생긴 반동으로 순식간에 나와 미고의 몸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고꾸라진 허리를 곧추세우고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손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공중에서 멋대로 움직였다. 미고가 바들바들 떠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문 쪽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폭발음과 함께 문짝이 완전히 박살 났다.

“어? 됐어요!!”

미고가 놀란 눈으로 나와 문을 번갈아 봤다. 케루빔의 날개에서 빌린 힘이 아니었다. 온전히 나의 힘으로 사장의 마력을 산산조각 냈다.

폭발과 함께 자욱해진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연기가 바람에 천천히 밀려나면서 창고 안의 상황이 보였다.

우린 창고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어 나풀거리는 사장의 뒷모습 너머로 돈돈, 그리고 한 손에 밀짚 인형을 든 로프의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푸에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내 귀로 놈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일말의 안도감이 들었다. 아직 난 푸에르를 상대할 자신이 없는 걸까.

사장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돈돈의 목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사장의 손이 뒤룩뒤룩 찐 턱살 사이를 파고들었다.

사장은 손톱 날을 세워 의안이 끼워진 그 반대쪽 눈을 겨냥했다.

사장이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지 그 마음을 읽은 돈돈이 뻣뻣하게 굳은 목을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아, 안 돼! 눈은 안 돼!!”

돈돈은 들고 있던 칼로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사장의 팔을 거듭 세차게 베었다. 그런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장은 팔이 칼에 베이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사장이 손톱을 동그랗게 오므리더니 돈돈의 눈을 사정없이 파기 시작했다. 겁에 질려 새파래진 돈돈과 다르게 사장의 얼굴엔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옷감이 뜯어지는 소리와 비누로 뽀득뽀득 손 씻는 소리가 뒤엉켜 나더니, 곧 돈돈의 눈알이 사장의 손톱에 꽂힌 채 뽑혀 나왔다.

“끄아아악! 죽여 버리겠어!!!!”

한쪽 남은 눈알마저 뽑힌 돈돈이 죽기살기로 발악하며 달려들었다. 돈돈이 허둥대며 휘두르는 칼에 사장의 바지가 부욱 찢기면서 허벅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사장은 돈돈의 눈알을 쥔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꽉 쥐어서 단숨에 터트렸다. 그녀의 손목을 타고 잔여물이 흘렀다.

완전히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돈돈 앞을 미고가 막아섰다. 인기척을 느낀 돈돈이 더욱 세게 돌진해 왔지만, 미고가 재빠르게 피하면서 벽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사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손에 묻은 찐득거리는 액체를 벽에 슥슥 닦았다. 그리고 로프가 손에 들고 있는 밀짚 인형을 향해 말했다.

“푸에르, 추잡하게 숨지 말고 나와. 어디 내 머리카락도 모두 태워 보지 그래?”

사장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흔들림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치켜뜬 사장의 눈자위에 두어 금의 핏줄이 섰다.

이 상황을 그저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던 로프의 눈동자가 흰자위 없이 온통 새까맣게 변했다.

입꼬리를 좌우로 찢어서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은가?”

로프의 목소리를 빌렸지만 분명 푸에르였다. 로프가 지푸라기 인형을 더욱 세게 쥐었다. 푸에르는 지푸라기 인형을 통해 지금 그를 조종하고 있었다.

로프가 관절 인형처럼 어색한 걸음걸이를 하고 사장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사장은 지팡이를 겨누고 경계를 하면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뭐… 정 원한다면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순식간에 사장의 앞으로 이동한 로프가 사방으로 뻗어 있는 사장의 머리칼을 잡더니, 칼로 단숨에 잘랐다.

“끄아아악!!”

사장은 마치 목이라도 베인 것처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툭 떨어진 머리카락은 스스로 불에 타 곧 재만 남았다.

사장이 양손으로 귀를 막고 소리를 질렀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사장은 창고 구석으로 뒷걸음질 쳤다.

이를 지켜보던 로프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이 칼로 지푸라기 인형의 머리를 댕강 잘랐다. 지푸라기 인형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로프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푸에르는 이곳에 없었다. 멀리서 이 밀짚 인형을 매개로 돈돈과 로프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

정신을 차린 로프가 눈앞의 상황을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양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럴 수가! 내가 회색 마녀의 머리카락을 잘랐어! 내가 잘랐다고!! 바로 이 로프가!!!”

그 자리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희열을 느끼던 로프가 군침을 흘리며 사장 쪽으로 걸어갔다.

사장은 곧 발작 증세를 일으키며 온몸을 떨었다. 급히 달려온 미고는 사장이 발작 중에 몸을 벽에 부딪쳐 다치지 않도록 그녀를 꼭 껴안았다.

“제발 진정해요. 사장님….”

사장의 머리카락을 자른 건 로프의 짓이 아니었다. 로프의 몸을 빌린 푸에르의 짓이었다.

회색 마녀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면 결코 회색 마녀의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다던 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납득할 수 없었고, 그건 사장도, 미고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힘의 원천인 머리카락이 상하자 사장은 몸도, 정신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했다.

사장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푸에르도, 또 눈앞에 있는 로프도 용서할 수 없었다.

얼굴의 모든 근육을 사용해서 웃던 로프가 기세등등하게 날 향해 지팡이를 겨눴다.

그는 마치 자신이 직접 회색 마녀를 해치우기라도 한 것처럼 기고만장한 몸짓으로 지팡이를 세차게 휘저었다.

‘가만 안 둬.’

로프가 마법을 씀과 동시에 나는 엄마의 일기장에서 보았던 반사 마법을 썼다. 이제껏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지만 망설일 틈이 없었다.

로프와 내 마법이 공중에서 부딪쳐 주황빛을 냈다. 이어 로프의 마법이 바로 내 앞에서 미끄러지듯이 돌아서 그에게 되돌아갔다.

“어? 뭐, 뭐야!!”

이를 본 로프가 경악하며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로프가 날 향해 썼던 마법이 무엇이었는지는 바로 그의 모습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아악!! 내 얼굴이!!!”

로프의 얼굴 반쪽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어떤 화학 반응이 일어난 것처럼 거품이 보글보글 그의 볼에서 터졌다. 한쪽 볼에 붙어 있던 살점이 크게 떨어지면서 허연 뼈가 드러났다.

“으으으…. 안 돼!”

로프가 질겁하며 바닥에 뚝뚝 흘러내리는 자신의 살점들을 게걸스럽게 양손으로 모았다. 그리고 하나의 반죽으로 만들어 주머니에 담았다.

난 로프가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미고와 함께 쓰러진 사장을 부축했다. 기색혼절한 사장의 몸이 축 늘어졌다.

“사장님, 정신 좀 차려 봐요!”

사장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정신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면서도, 일단 사장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게 시급했다.

출구를 찾기 위해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방금 내가 부수고 왔던 문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돈돈이 피가 흐르는 눈을 간신히 부여잡고 지팡이로 들어온 출입구를 봉쇄하고 있었다.

난 급히 벽을 더듬으며 출입구를 찾았다. 방금 전 부수고 들어왔던 입구는 이미 벽으로 막혀 있었다.

“미고야, 문이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 사방이 다 벽이고….”

주변 사물이 왜곡된 거울에 반사된 것처럼 묘하게 일렁였다.

눈에서 흐른 피가 돈돈의 낮은 콧등을 타고 인중 가운데로 흘렀다. 출구를 완전히 없애 버린 그가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며 주머니에서 정체불명의 가루를 꺼내 사방으로 뿌렸다.

미고가 그 가루를 보고, 냄새를 맡더니 멈칫하곤 말했다.

“저거 불나무 송진 가루예요. 지금 이 창고를 불태울 속셈이에요. 어서 나가야 돼요!”

미고가 자신과 사장에게 묻은 가루를 정신없이 털어 내고 있을 때, 돈돈과 로프가 구석방으로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어? 저기 도망쳐요!!”

미고가 로프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사장을 부축해서 따라 들어갔을 때, 돈돈과 로프가 미리 만들어 두었던 이동 거울로 몸을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쩐 일인지 미고는 아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송진 가루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놈들이 거울을 통해 모두 빠져나가고, 거울이 겨우 내 주먹만 한 크기로 작아졌을 때 그 속에서 작은 성냥개비가 하나 튀어나왔다.

“어? 저, 저건!!!”

저 불이 송진 가루에 닿으면 문이 봉쇄된 창고 안은 불바다가 될 게 뻔했다.

성냥개비가 슬로우 모션 효과를 넣은 것처럼 천천히 눈앞에서 땅을 향해 떨어졌다.

심장 박동이 올라가면서 둔기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처럼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 순간 등에서 날개가 치솟았고, 난 최대한 날개를 활짝 펼쳐서 사장과 미고를 끌어안았다.

내 날개가 두 사람을 채 감싸기도 전에, 불씨가 송진 가루에 닿으면서 순식간에 창고는 화염에 휩싸였다.

양손으로 사장과 머리끝이 그을린 미고를 꼭 껴안았다. 이제 날개 밖으로 보이는 것은 맹렬히 타오르는 불뿐이었다.

케루빔의 깃털로 버티곤 있었지만 화기가 점점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불 속에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얼른 이동 거울을 만들어서 여길 빠져나가야 돼.”

미고가 절망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 가방에 있을 물건은 오직 사장님만 꺼낼 수 있어요. 설사 우리가 찾는다고 해도 원하는 것을 찾기까지 한참이 걸릴 거예요.”

최대한 날개로 몸을 감쌌다곤 하지만 등줄기를 따라 일렁이는 불길에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형, 괜찮아요?”

“미고야, 이대로는 얼마 못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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