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화
참혹한 광경이었다. 바닥에 나뒹군 몸통은 두어 번 뒤집히더니 하늘을 바라보고 누웠다.
오로지 순수하게 고통만 들어찬 욘의 눈동자가 보였다. 자신을 최후의 목격자로 삼은 그는 결코 눈을 감지 않았다.
실제로 본 적이 없고, 사진만으로 본 게 다여서 바로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분명 그였다. 욘 게일.
순간 와락 욕지기가 솟아올라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먹은 것을 다 게워 낼 동안에도 미래의 잔상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흘렀다.
밧줄을 당겨 욘의 몸을 갈기갈기 찢은 자 중에 한 명이 귀청이 찢어질 만큼 높은 하이 톤의 목소리로 깔깔깔 웃어 대기 시작했다.
‘후아!’나 ‘우후!’와 같은 소리도 질렀다. 벼르던 일을 해치웠다는 개운함, 생각보다 쉬웠다는 오만함이 느껴졌다.
그는 일종의 세리머니인지, 바닥의 흙을 양손으로 퍼서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부었다.
난 변기통에 고개를 박은 채 정신을 집중했다. 그들이 어둠 속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얼굴을 익혀야 했다. 이들이 욘을 죽인, 아니, 욘을 죽일 범인들이었다.
‘누구지. 대체…….’
설핏 그림자만 보였지만 덩치가 커 보이진 않았고, 마치 초식 동물처럼 날렵했다.
한 명은 더벅머리가 잔뜩 뒤엉킨 채 치렁치렁 길었는데 성별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또 한 볼에 움푹 파인 상처가 있었다. 마치 칼로 도려낸 것처럼.
또 한 명은 등이 꼽추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소리를 크게 지르며 웃었던 자가 바로 이자였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의 모습은 너무 빨리 숲속으로 사라지는 바람에 확인하지 못했다.
만약 정말로 내가 본 대로 욘 게일이 살해당하기라도 한다면……. 문제는 이게 언제 일어날 일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머릿속에 댕, 댕, 댕 종이 세 번 울렸다. 어디서 울리나 봤더니, 강 너머에 종탑이 있었다. 종의 울림에 강물이 천천히 밀려났다.
‘종이 세 번 울리기 직전에 욘이 살해당한다….’
연극의 막이 내린 것처럼 커튼이 닫히고, 더 이상 미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구역질을 다 끝내고 나니 피곤함에 머리가 팽팽 돌고, 현기증이 났다. 그저 끔찍한 악몽일 뿐이라고 믿고 싶었다.
난 간신히 화장실을 나와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심장은 여전히 진정할 생각이 없이 목젖에 잽을 날렸다.
욘 게일도 자신의 미래를 알까? 종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곤 하지만, 욘은 알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날 보자고 한 것일 수도.
욘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얇은 생각이 층층이 쌓였다. 슈빌의 등에서 잠시 눈을 붙였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잠이 몰려왔다. 정신을 차릴 만한 한 줌의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다.
***
눈을 떴을 때 베갯잇이 흥건했다. 땀인지, 침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악몽을 꿨다. 욘 게일의 미래를 꿈에서 한 번 더 본 것인데, 거듭 본다고 익숙해질 만한 장면이 아니었다.
오히려 악몽을 꾸면서 온몸을 배배 꼬고, 비튼 바람에 종아리와 어깨가 뻐근했다.
“으…….”
난 지오가 챙겨 준 연고를 꺼내서 등에 바르기 위해 손을 뻗었다. 금세 팔이 저리고, 손이 달달 떨렸다.
창밖을 보니 어두컴컴한 게 벌써 밤이었다. 아침이 되면 카페에 가서 내가 본 미래를 사장에게 말해야 했다.
근데 내가 본 게 정말 미래에 일어날 일일까. 이번에는 어쩐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욘 게일은 마법 세계의 모든 이가 인정하는 대예언가다. 그런 그가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당한다니.
내가 본 미래가 언제 발생하는지, 그 시점을 알 수 없는 것도 문제였다.
‘언제인지 알아야 사건을 막을 수 있을 텐데…….’
어쩌면 미래를 보는 능력은 내게 축복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제껏 누군가 행복해지는 미래를 본 적이 없다. 늘 누가 다치고, 사고를 당하고, 끝내 죽임을 당하는 그런 미래만 볼 뿐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난 내 미래를 봐선 안 되겠네. 영원히 모르는 게 낫겠어.’
헛헛한 마음에 한숨처럼 웃음이 새어 나왔다. 깊은 밤, 일단은 아침이 될 때까지 조금이라도 잠을 청하고자 했지만 결국 난 그렇게 날을 새고 카페로 향했다.
“일찍 왔네? 잠 좀 늘어지게 자고 오지.”
사장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막 내린 커피를 건넸다. 원래 자기가 마시려고 내린 거 같은데, 나는 머그 컵을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사장님, 욘이 만나자고 한 날보다 더 일찍 4마을에 가 있으면 어떨까요?”
“왜?”
사장이 새로 장만한 커다란 수동 그라인더를 팔이 빠져라 돌리면서 말했다.
“그게……. 음…….”
내가 어제 본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니까 입술이 바싹 말랐다. 잠시 머뭇거리던 사이 원래 하려던 말이 아닌 다른 말이 나왔다.
“욘은 어떤 사람이에요?”
“글쎄……. 나도 개인적인 친분은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뭐랄까. 좀 불쌍한 사람이지.”
“불쌍한 사람이요?”
사장이 잘려 버린 머리카락 끝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말했다.
“미래를 보는 게 그 사람의 일이잖아. 외로운 일인 거 같아. 미래를 알아도 못 바꾸는 일이 태반일 거고. 생각만 해도 좀 허무하달까. 그리고 4마을에 늙은 박사랑 장로들이 얼마나 그를 쪼아 대는 줄 아니? 미래를 본다지만 정작 본인의 현재는 행복할까? 싶기도 하고.”
사장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였다. 사진 속에 피곤해 보였던 그의 눈빛이 떠올랐다.
“실은 제가 어제 욘의 미래를 봤는데요.”
“뭐? 욘의 미래를 봤다고? 무슨 미래?”
사장이 하던 일을 멈추고 특유의 강렬한 눈빛을 쏘았다.
“누군가 욘을 죽이는 미래를 봤어요. 강기슭이었는데 바로 옆에 높은 종탑이 있었어요. 네 명의 사람이 욘의 사지를 묶고는……. 살해했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주방에서 무언가 와장창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마침 마법사 장터에 갔다가 청록색 문으로 들어오던 지오와 미고가 내 말을 들은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욘이 죽다니…….”
지오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거꾸로 들었다.
“말 그대로야. 네 명의 사람이 욘을 죽였어. 근데 그게 언제인지 정확히 모르겠어. 이번에는 내 눈이 잘못된 거 아닐까 싶을 정도야. 욘이 보낸 편지가 이 일과 관계된 일인가 싶기도 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중언부언하는 사이, 지오가 힘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미고는 그런 지오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옆에 앉았다. 지오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제가 욘이 머무는 비밀 별장을 알아요. 다음 달에 올 하반기 예언이 나올 텐데, 그 전까지 욘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 별장에 있을 거예요.”
지오의 말에 미고가 놀라며 물었다.
“누나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지오가 대답을 않고 끌자, 사장이 대신 말했다.
“욘 게일의 비밀 별장을 알 정도로 지오의 가문이 대단하다는 거 아니겠니.”
“오…….”
미고가 나지막하게 감탄사를 뱉었다. 지오를 무시하던 부모의 위세를 알 만한 대목이었다.
사장의 말에 따르면 욘 게일은 아무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욘을 알았지만, 직접 대면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그런 욘과 교류하는 사람은 장로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라고 한다.
“맞다! 누나가 토모토 가문 사람이란 걸 까먹고 있었어요. 선대 마을장을 배출한 가문이잖아요. 정말 대단해요!”
“대단하긴……. 어차피 난 내놓은 자식인걸. 오라 해도 뭐… 안 가.”
지오가 어울리지도 않는 시니컬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욘을 직접 본 적도 있어요?”
“응. 두어 번.”
지오는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욘의 별장에 몇 번 가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말만 별장이지 아주 삭막한 공간이어서, 어린 지오의 눈에도 그가 몹시 안쓰러웠다고 했다.
“욘은 대단하지만 불쌍하기도 해요. 장로들의 욕심에 혹사당하는…….”
사장은 카페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안내 표지판을 출입문 고리에 걸었다.
“일단 4마을 입구로 가자. 마델이 탈출한 뒤로 보안이 강화돼서 4마을로 가기 위해선 무조건 입구를 통과하도록 돼 있거든. 규칙을 어겼다가 죄수원에라도 보내면 어떡하니. 으으으.”
사장이 양손을 앞에 내밀고 어설픈 유령 흉내를 냈다.
“죄수원이요?”
사장은 가 보면 안다면서,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겨서 가방에 담았다. 난 잠시 주먹보다 조금 큰 코코넛 열매같이 생긴 가방에 온갖 것들이 다 들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이어 사장이 이동 거울이 아닌 커튼을 칠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무래도 거울보다는 커튼이 속이 울렁거릴 일도 없고 편리했으니까.
우린 그대로 4마을 입구로 이동했다. 그곳은 마치 고속도로 톨게이트처럼 진입을 막아 놓고 소액의 통행료를 받고, 검문을 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마을로 들어오려는 자들 중에 변신 마법을 쓴 자가 있는지 특수 안경으로 확인하고, 마델을 비롯한 지명 수배 마법사가 있는지도 일일이 확인했다.
내 앞으로 사장이 이 모든 상황이 마뜩잖다는 듯이 인상을 잔뜩 구긴 채 건들기만 해 봐라, 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뒤로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미고와, 지푸라기를 엮어서 만든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쓴 지오가 서 있었다.
지오는 죄지은 사람처럼 얼굴을 가리기에 급급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사장이 입을 빼쭉거리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돼? 아는 사람 만나면 만나는 거지.”
“그게……. 제가 집 나온 지도 오래고 부모님은 제가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르시거든요. 관심도 없으시겠지만. 아무튼 절 보면, 너 그렇게 살 줄 알았다면서 지금의 저를 마구 폄하하고 모욕할 게 뻔해요. 그래서 제 소식이 부모님 귀에 들어가는 게 너무 싫어요.”
지오의 말에 미고가 작게 중얼거리며 물었다.
“그래도 궁금하지 않아요? 잘 지내시는지 건강하신지……. 부모님도 속으론 누나 걱정을 많이 하실 거예요. 이번 기회에 한번 찾아뵙는 게…….”
엔간하면 남의 말을 끝까지 듣는 편인 사장이 미고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내버려 둬. 친구나 애인 사이도 아니고 가족이야. 오래 안 본다고 끊기는 관계도 아니고.”
그때 누군가 뒤에서 지오의 모자를 한 손으로 채 갔다. 놀란 지오가 어깨를 움츠리며 눈을 크게 치켜떴다.
낯선 인물이 지오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야! 너……. 맞지?? 맞네.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