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화
지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지오는 잔뜩 주눅 든 표정으로 자신의 모자를 낚아챈 사람에게 시선을 옮겼다.
지오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잃어버린 장난감을 찾은 아이처럼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유독 큰 턱이 도드라져 보이는 남자가 자신의 콧등을 긁으며 말했다.
“맞네! 지린내 지오. 와……. 씨. 이게 얼마 만이냐? 너 냄새 많이 빠졌다. 요즘엔 좀 씻고 다니나 보지?”
남자가 지오의 팔을 덥석 잡았다. 지오가 몸을 움츠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놔…….”
“너 요즘에도 풀이랑 이야기하면서 노냐? 아무튼 넌 그대로구나. 여전히 떠돌이처럼.”
사장이 한쪽 눈썹을 들썩이더니, 남자가 같잖다는 듯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야……. 놓으라잖아. 그 팔을 꺾어서 엉덩이에 달아 줄까?”
사장의 말에 빈정이 상한 남자가 “넌 뭐야?”라고 말하려다가 사장의 살기 어린 눈빛을 보더니 주춤했다.
“이 사람은 또 누구야? 같이 다니는 사람이냐? 나 참! 삭막하게 왜 그래? 오랜만에 소꿉친구 만나서 반가워서 그러는데 지가 뭔 상관이라고.”
남자는 막상 사장에게 대놓고 뭐라고 할 자신은 없으면서도, 그 와중에 알량한 자존심을 챙겨야겠는지 투덜거리며 눈을 흘겼다.
“야.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셔. 그만 집에 들어가.”
“팔이 엉덩이에 붙으면 똥 닦기는 편하겠다. 그렇지?”
열이 뻗친 사장이 다가오자 남자는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벌러덩 넘어졌다.
미고는 바닥에 떨어진 지오의 모자를 주워서 먼지를 툭툭 털었다.
사장이 엉덩방아를 찍은 남자의 귓가에 이를 악물고 작게 속삭였다.
“야……. 끄즈. 난 두 번 말 안 흔드…. 끄즈라고……. 확 씨.”
곧 4마을 입장을 앞두고 소란은 피우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저 자식을 가만두자니 제 성질은 못 이기는 사장이 으르며 말했다.
“어이없네. 간다. 가!”
사장의 기세에 겁을 먹은 남자가 이제 그만 가던 길 가려는지 뒤로 돌았다. 그리고 몇 걸음 내딛자마자 갑자기 “아!”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처음엔 뭔 쌩쇼인가 싶었지만, 남자가 왼쪽 볼을 부여잡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니 뭔가에 물린 듯했다.
남자의 주변에 호두 크기만 한 커다란 벌이 날고 있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현란한 색과 패턴을 가진 것을 보니 독이 있어 보였다.
얼굴이 급속도로 부풀어 오른 남자가 씩씩대며 지오를 노려봤다.
“야!! 너지. 네가 그런 거지? 네가 벌더러 나 쏘라고 한 거잖아!”
지오는 남자의 말에도 대꾸하지 않고 사뭇 진지한 태도로 남자의 얼굴을 살폈다.
“으으으……. 너 벌이랑 이야기할 수 있잖아. 네가 시킨 거 맞지! 맞잖아!!”
남자의 부어오른 볼에 점점 고름이 차기 시작했다. 얼굴이 물 담은 풍선처럼 흐늘흐늘해지자 남자가 수치심과 고통에 흐느끼기 시작했다.
남자의 얼굴과, 주변을 서성이는 벌을 찬찬히 살피던 지오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잠깐……. 너 혹시 코르 페르다 꽃 가지고 있어?”
지오의 말에 남자가 도둑질을 들킨 7살 아이의 표정을 지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지오가 깊은 한숨을 쉬며 남자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자루를 거칠게 당겼다. 그 안에는 누런색에 쟁반처럼 넓적한 이파리를 가진 꽃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네가 코르 페르다 꽃을 이만큼이나 갖고 있으니까 그렇지…. 이 꽃에서는 등붉은쥐벌 암컷이 내뿜는 페로몬 향이 난단 말이야. 너 이 꽃이 정말 어떤 꽃인지 몰라? 이 꽃이 내뿜는 독에 중독되면….”
“나도 알아…….”
볼이 축 처진 남자가 고통에 눈을 강박적으로 깜빡이면서 지오의 말을 가로막았다.
“나도 심부름 중이라고.”
“무슨 심부름이기에 위험한 꽃을 이렇게나 많이…….”
지오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남자 주변을 서성이는 벌에게 우리에겐 들리지 않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벌이 작은 엔진 소리를 내며 날갯짓을 했다.
벌이 사라지자 지오는 급히 응급 처치를 하려는지 약방 꾸러미를 꺼냈다.
“야……. 어떻게 좀 해 봐. 아파 죽겠어.”
사장이 남자의 말을 무시하며 지오에게 말했다.
“얼른 가자. 시간 없어.”
사장은 뭐 저딴 녀석을 신경 쓰냐는 눈빛을 노골적으로 보냈다.
“잠시만요.”
지오는 약방 꾸러미 안 나무 상자에서 팔뚝만 한 바늘을 꺼냈다. 그걸 보자마자 남자가 질색하며 손을 휘저었다.
“너 이씨! 그걸로 뭐 하려고. 됐어. 필요 없으니까 가!”
“지금 당장 고름 빼지 않으면 점점 몸 안으로 번져. 가만있어. 금방 끝나니까.”
지오는 결심한 듯 침착하고 단호한 몸짓으로 남자의 턱에 바늘을 찔렀다. 피부 표피에 구멍이 나자 지오가 양손으로 고름을 짜기 시작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하얀 고름이 햇볕에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흘렀다. 사장이 남자의 면전에서 코를 막으며 질색했다.
“냄새……. 입맛 떨어져. 진짜.”
지린내 난다고 지오를 놀렸던 남자에 대한 복수가 틀림없었다.
지오는 더러운 고름에도 끄떡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있는 힘껏 고름을 짜냈다. 남자의 얼굴에 붓기가 점점 가라앉으면서 본래 모습을 찾아갔다.
남자가 거의 멀쩡하게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지오가 쌩하니 돌아섰다.
남자가 멋쩍어하면서도 지오를 붙잡으며 말했다.
“고, 고맙다. 근데 너 진짜 왜 온 거야?”
대충 무시하려던 지오가 별안간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남자의 옆으로 갔다. 그리고 귓가에 대고 은밀히 속삭였다.
“우린 욘 게일을 만나러 왔어.”
나와 사장은 지오가 어째서 저 남자에게 그런 말을 시시콜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난감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 의문은 남자의 말에 금세 풀렸다.
“욘은 지금 없어.”
“뭐?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보통은 지금쯤 비밀 별장에 있잖아.”
“없대도. 부모님한테 직접 들은 거라 정확해. 비밀 일정이 있어서 어제 어디론가 떠났고 이틀 후에나 돌아와.”
“이틀 후? 하아……. 아무튼 알겠어.”
용건을 마친 지오가 다시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남자가 못 미더운 눈빛으로 지오를 향해 소리쳤다.
“근데 욘은 왜 만나? 너 뭔 또 사고 치려는 건 아니지?”
지오가 그의 말을 무시하고 가려다 말고 멈춰 섰다.
“야. 너나 잘해.”
지오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장과 미고 그리고 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박수를 쳤다. 지오가 누군가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것은 처음 들었다.
마치 다정한 말밖에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늘 착한 말만 뱉었으니까. ‘너나 잘해.’가 그렇게 거친 말은 아니었지만 지오의 입에서 들으니 쾌감이 있었다.
지오가 쑥스러운지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욘이 지금은 별장에 없대요. 쟨 저랑 친구, 아니, 그냥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아이예요. 저 친구 부모님이 욘의 몇 안 되는 보좌 장로거든요. 그래서 믿을 만한 정보죠.”
“그럼 오늘 못 만난다는 거네.”
어쩐지 맥이 풀렸다. 곧이어 입국 심사 같은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우린 4마을로 들어왔다.
“일단 네가 미래에서 봤다던 곳으로 가 보자. 강 너머로 종탑이 보였다고 했지?”
사장의 말에 지오가 화답하며 말했다.
“디디오강을 말하는 거예요?”
“응. 내 생각에도 디디오강이 맞는 거 같아. 종탑을 둘러싸고 있는 강은 디디오강뿐이니까.”
강은 4마을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지오의 말에 따르면 디디오강은 4마을 전체를 가로지르며 흐른다고 했다.
나는 미래에서 봤던 모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정말 이곳이 맞는 걸까. 한 시간쯤 걸었을까. 200미터 전방에 커다란 종탑이 보였다. 미래에서 봤던 것과 분명 같은 모양이다.
다만 욘이 죽임을 당했던 장소를 정확하게 특정하기는 어려웠다. 강기슭 옆으로 우거진 숲길이라 어딜 보든 다 거기서 거기 같았다.
그때 마침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디디오강 둘레길을 걷는 모습이 보였다. 소풍을 온 건지 짝꿍 손을 잡고 두 줄로 걷는 아이들의 얼굴에 설렘이 가득했다.
맨 앞에서 아이들을 끌고 가던 선생님이 말했다.
“여러분들 이제 죄수원에 갈 거예요.”
“와~~!”
“야호!”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환호하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마치 소풍에서 제일 기대했던 코스에 도착한 것처럼.
난 사장님에게 죄수원에 대해 얼핏 들었던 것을 떠올리며 물었다.
“죄수원이 어디예요? 뭐 하는 곳인데요?”
사장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종탑 바로 옆에 낮지만 거대하고 둥그스름한 건물이 있었다.
“궁금하면 따라가 볼래?”
난 고개를 끄덕였고, 우린 병아리 떼 뒤를 쫓는 거위처럼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따로 마이크를 차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마이크를 대고 말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렸다. 아이들만큼이나 신이 난 선생님은 짙은 분홍색 안경테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여러분들, 바로 저기에 죄수원이 보이네요. 죄수원 견학을 가기 전에 선생님이 미리 주의 사항을 설명해 줄 거니까 잘 들어요. 알았죠?”
“네~~~!”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에 고도의 집중력을 보였다. 죄수원이 아이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한 곳임은 분명했다.
“죄수원은 사회에 해악을 끼친 죄수들을 가둬 놓고 죄수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시설이에요. 극악무도한 마법사들을 가둔 곳인 만큼 보안도 철저하니 안심해도 좋아요.”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약간 겁을 먹었는지 웃음기가 사라졌다.
“하루 한 번 죄수들에게 먹이 주기 시간이 있고, 채찍질 등을 통해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응당한 죗값을 치르는 시간도 있어요. 오늘 체벌은 특별히 피해자 부모가 와서 한다고 하니,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군요.”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선생님의 설명을 종합해 보자면 죄수원은 일종의 교도소였다. 다만 동물원처럼 죄수들의 생활을 공개하고 관람객을 받았다. 그리고 음식을 제한하고, 체벌을 하는 등 죄수에게 위해를 가했다.
“죄수들은 화장실을 제외하곤 24시간 공개된 곳에서 생활하게 되고, 자유 시간에는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간단한 공연 연습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오후에 죄수 쇼 관람이 예정돼있으니 기대해도 좋아요. 실은 선생님도 너무 기대가 된답니다. 까르르.”
선생님은 생각만 해도 짜릿한지 경박스러운 웃음소리를 냈다.
“아무튼 죄수원에서 단연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죄수는 총 네 명이에요. 이 네 명의 죄수만 보고 나와도 다 봤다고 할 수 있죠.”
‘네 명의 죄수?’
나는 미래에서 욘의 사지를 묶은 밧줄을 잡아당긴 네 명의 사람을 떠올렸다. 죄수원의 죄수가 탈출해서 욘을 죽이기라도 한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