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4/75)

#064화

아이들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죄수원 앞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였다.

흡사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무광 철제 외벽이 페이스트리처럼 겹겹이 쌓여 있었고, 전체적인 모양은 거북이 등딱지 같은 곡선을 띠었다.

우리는 표를 사기 위해 각자 150페닌씩 지불하고, 길에 늘어진 줄에 섰다.

죄수원 안으로 들어오니 이색 테마 파크에 들어온 것처럼 활기찬 분위기가 감돌았다. 먹을거리, 놀 거리, 기념품 숍까지 복작복작 이목을 끌었다.

다만 그 기념품이라는 게 내가 흔히 봐 왔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곰돌이가 그려진 채찍, 방울이 달랑거리는 몽둥이 같은 체벌 도구들이 마치 장난감처럼 팔리고 있었다.

선생님을 따라 들어왔던 아이들은 부모님에게서 받은 쌈짓돈을 꺼내서 기념품을 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한 손에는 송곳이나 칼, 미니 단두대, 덜렁거리는 손목 등의 장난감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솜사탕과 아이스크림을 들었다.

이곳은 마치 교도소와 동물원을 합성해 놓은 곳 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우리 안에 동물이 아닌 사람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죄수들의 방은 죄수의 특성에 따라 작거나 크기도 했고, 뜨겁거나 차기도 했다. 죄수원이 죄수를 대하는 방식은 마치 지옥에 대한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 놓은 것과 비슷했다.

우리 옆을 아이 엄마 두 명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대화가 들렸다.

“여기만 왔다 가면 한동안 애들이 말을 얼마나 잘 듣는지 몰라.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오려고 해.”

“죄수원이 무섭긴 무서운가 보지. 호호호호.”

제정신인가. 탐탁지 않은 사장의 표정을 보아하니 나와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사장이 왜 4마을 이야기만 나오면 인상을 찌푸렸는지 왠지 알 것도 같았다.

선생님이 다시 큰 소리로 아이들의 주의를 끌었다.

“자, 이제 투어를 시작하겠어요.”

지오는 벌써 비위가 상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은 입구에서 기다릴 테니 우리더러 다녀오라고 손짓했다.

선생님이 첫 번째로 아이들을 이끌고 간 곳은 1번 죄수의 방이었다.

통유리 안에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미래에서 본 사람인가 싶어서 미간을 찌푸리고 정신을 집중했다.

“흠……. 아닌 거 같은데.”

일단 체구가 너무 컸다. 상체는 발달했지만 상대적으로 하체가 빈약한 체형이었고, 움직임도 굉장히 둔했다. 그는 삶의 의욕이 완전히 소거된 얼굴을 하고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벽과 바닥, 천장까지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방에는 이렇다 할 가구나 물건이 없었다. 텔레비전도, 책도, 하다못해 책상이나 필기도구 같은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뜻했다. 저렇게 멍하니 있는 것을 빼곤.

“자, 여기가 1번 죄수 방이에요. 죄수원에 들어오면서 과거 이름은 삭제됐습니다.”

이 남자는 대체 무슨 잘못을 해서 이곳에 들어왔을까. 선생이 내 호기심에 화답하듯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이자는 여아 4명, 남아 7명을 살해한 극악무도한 자입니다. 오! 마침 체벌 시간이네요. 무서우면 선생님 옆으로 오세요.”

1번 죄수는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더니 천천히 단두대가 설치된 작은 방으로 이동했다.

보통 단두대라고 하면 목을 내밀기 마련인데, 남자는 단두대 앞에 일자로 반듯이 섰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남자는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단두대 앞으로 몸을 밀착했다.

그 순간 천장에 있던 칼날이 벼락이 내리꽂히는 것처럼 단숨에 아래로 떨어졌다.

“꺄아아아아악!!”

이를 본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개중에 몇 명은 울음을 터뜨렸다. 실은 미고와 나도 소리를 질렀는데 아이들의 비명 소리에 묻혔다. 사장은 멀찍이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 있었다.

신체 일부가 잘린 남자의 바지가 붉게 물들었다. 남자는 익숙한 듯 몸을 새우처럼 오므리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다음 체벌 시간까지 1번 죄수의 잘린 신체는 다시 자랄 거예요. 자라면 자르고, 자라면 자르고 무한 반복이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기괴하고 엽기적인 곳이 실제로 존재한다니. 다만 저자가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당해도 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번엔 2번 죄수를 만나러 갈까요?”

선생은 뭐가 그리 신나는지 신발 굽으로 리듬을 만들며 걸었다. 10미터 정도 걷자 그곳엔 대형 수조가 마련돼 있었다.

안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모두 평범한 관상용 물고기는 아니었다. 가만 보니 이전에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본 적이 있었다.

칸디루 아수. 회색빛의 미끈한 원통형 몸에 하얀색 눈, 조금은 멍-한 인상의 이 물고기는 동물의 피부를 물어뜯고, 구멍을 통해 내부로 침입해 살점과 내장을 모조리 먹어 치우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옆으로 몸길이가 50센티미터쯤 되고 갈치처럼 생긴 물고기가 지나갔다. 황갈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고, 주둥이가 창처럼 길고 날카로웠다.

“오! 지금 보이는 저 물고기의 이름은 티리릭이에요. 마침 티리릭이 2번 죄수를 공격하려는 것 같네요.”

티리릭이 강철같이 뾰족한 주둥이로 수조 안에 있던 여자의 종아리를 뚫었다.

마침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마치 앙코르 무대를 고대하는 관객들처럼 손을 모아 손뼉을 쳤다.

“이 수조에는 주로 강에 서식하는 육식 물고기가 살고 있어요. 피라냐, 티리릭, 전기뱀장어, 몸길이가 5미터나 되는 피라이바 등등. 이 물고기들은 모두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발적으로 수조에 왔고, 이틀 후엔 모두 원래 살던 서식지로 돌려보내고 있어요.”

나는 종아리에서 피를 흘리며 사력을 다해 도망치는 중년의 여자를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갈퀴가 있었고, 턱에 아가미가 펄럭이는 게 보였다.

“2번 죄수는 수년간 바다에 독을 풀어 많은 생물을 학대하고 죽인 자입니다. 죄수원은 이자에게 마법으로 아가미와 물갈퀴를 선사해서 이 수조에서 살도록 했습니다. 물론 자신을 뜯어 먹으려고 혈안이 된 저 다정한 친구들과 함께 말이죠.”

선생이 애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이자는 자유시간에 다양한 묘기를 익히고 있어요. 오후 죄수 쇼의 주인공도 2번 죄수지요. 관람 시에는 우비를 꼭 입으세요.”

그때 2번 죄수가 전기뱀장어를 잡아서 이로 뜯어 먹기 시작했다. 뱀장어가 만든 600볼트의 전기가 여자의 몸으로 흘렀다. 심장 마비를 일으킨 여자가 경기를 일으켰고 곧 의식을 잃고 수면 위로 둥둥 떠올랐다.

선생이 웅성대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며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2번 죄수가 죽은 거냐고요? 아니에요. 이곳은 죄수들에게 그런 자유를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답니다.”

언제부터인가 내 등에 착 달라붙어 있는 미고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나만 간담이 서늘한 게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묘한 위안이 되었다.

“이거 언제까지 봐야 해? 미래에서 봤다던 자들 말이야. 이자들 아니지?”

삐딱하게 서 있던 사장이 내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난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에요. 3, 4번 죄수들도 아닌 거 같아요.”

난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소위 말하는 ‘스타 죄수’들의 사진을 대충 훑었다.

이어지는 3번 죄수는 수백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테러를 저지른 자였고, 4번 죄수는 사람들을 선동하고 조종한 자였다. 이들 중에 내가 찾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 가요. 이거 다 봤다가는 멀쩡한 정신도 가출할 거 같아요.”

우린 서둘러 죄수원을 나왔다. 이미 해는 지고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아, 맞다! 제가 본 미래에서 욘이 살해당하고 곧이어 종이 세 번 울렸어요.”

지오를 찾아 잰걸음으로 종탑을 향하던 사장이 날 보며 말했다.

“매일 자정마다 종이 세 번 울려. 네가 본 미래에서 종이 세 번 울렸다면……. 욘은 자정이 되기 직전에 죽임을 당하겠네.”

왜인지 종탑 밑은 유독 어두웠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그래서인지 오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때 종탑 옆 풀숲 사이로 몸을 숨기고 있는 지오가 보였다.

“쟤는 왜 저러고 있어?”

사장이 인기척을 내지 않고 다가가, 지오의 어깨를 두드렸다.

깜짝 놀란 지오가 우릴 보더니 검지를 세워서 입에 가져다 댔다.

“쉿! 잠시만요……. 쟤가 왜 저기에 있지?”

지오가 가리킨 곳에는 어쩐지 낯이 익은 남자가 서 있었다.

“오늘 4마을 입구서 만났던 남자요. 벌에 쏘였던, 걔 이름이 헨이에요. 헨이 지금 코르 페르다 꽃이 담긴 자루를 종탑에서 나온 사람에게 줬어요. 사장님은 아시겠지만…….”

“코르 페르다 꽃 밀매는 중죄지.”

그때 헨이 종탑에서 나온 자에게 말했다.

“죄수들에게 꽃잎 넉 장을 달여서 하루 세 대접씩 먹이도록 하세요. 이제 슬슬 양을 늘려도 된다고 하네요.”

“같이 올라가서 확인 안 하셔도 되겠습니까?”

“확인은 무얼요……. 알아서 잘하시겠죠. 전 이만 가 볼게요.”

종탑에서 나온 자는 코르 페르다 꽃이 담겨 있던 자루를 받고, 그 대가로 페닌이 두둑하게 들어 있는 자루를 주었다.

자루를 챙겨 종탑에서 멀어지는 헨을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어느 정도 종탑에서 멀어진 순간, 사장이 뛰쳐나가 헨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헨은 우리를 보더니 죽다 살아난 사람을 본 것처럼 냅다 빽- 비명을 질렀다. 지오가 앞장서서 그에게 물었다.

“너……. 지금 뭐야? 설마 코르 페르다 꽃 밀매라도 한 거야?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나. 이게 알려지면 너도, 너희 부모님도 모두 파면이야”

지오가 그렇게 길길이 날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지오의 설명에 따르면 코르 페르다 꽃은 마법 세계에서 엄격히 금지된 독초였다. 심지어 악초 할아범의 정원에서도 키울 수 없는 꽃이었다.

중독성이 심한 데다가, 사람의 생각과 의지를 말살시켜 자아를 지워 버리는 무서운 독을 품었다.

“사람을 물건으로 만드는 꽃이야. 욘은 그 꽃을 사람에게 쓰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어. 그게 죄수라고 할지라도 말이야. 그리고 그 말은 또 뭐야. 죄수에게 꽃잎을 달여서 먹이라니……. 설마 종탑 안에도 죄수가 있다는 거야?”

지오의 말에 겁을 잔뜩 먹은 헨이 주변을 살피며 몸을 떨었다.

“그… 그게… 네가 잘못 들은 거야.”

“너 아까 심부름하는 거라고 했지? 누가 너한테 이런 짓을 시킨 건데? 당장 말해. 코르 페르다 꽃잎을 달여 먹인 죄수에 대해서도 싹 다.”

“안 돼……. 나 말 못 해……. 진짜 나 죽어.”

헨이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애원했지만 지오는 단호했다.

“말 못 해? 그럼 지금 당장 마을장과 장로회, 아니지 욘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어.”

“안 돼……. 제발……. 그게 실은… 종탑 안에는 죄수원에도 가둘 수 없는 강력한 마력의 죄수 네 명이 갇혀있어. 아버지가 그들에게 먹일 코르 페르다 꽃을 주고 오라고 시킨 거고. 제발 비밀에 부쳐 줘.”

헨은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죄수 네 명이 종탑에 갇혀 있다고? 그게 정말이야?”

“응…”

“그냥 넘길 순 없는 문제야. 알다시피 코르 페르다 꽃은 설사 그게 죄수라고 하더라고 써선 안 되니까.”

한참 생각에 잠긴 지오가 헨에게 손을 내밀었다. 헨이 지오의 자비를 기대하며 손을 맞잡았다.

“일단 우리가 종탑에 들어갈 수 있도록 네가 도와줘. 종탑에 갇혀 있다는 죄수가 누군지 봐야겠어.”

지오의 눈빛이 번뜩였다. 지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종탑에 갇혀 있다는 죄수는 공교롭게 네 명이었다.

지오는 종탑에 갇힌 죄수가 미래에 욘을 죽일 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뭐? 그건 못 해…….”

“방금 종탑에서 나온 자가 너한테 같이 들어가자고 했잖아. 다 들었어!”

헨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사람들을 다 끌고 들어갈 수는 없어. 한 명 정도면 모를까…….”

지오는 그거면 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내 옆으로 와서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가서 확인해요. 미래에서 본 자들이 맞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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