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화
밤하늘에 번쩍이는 불꽃의 열기가 볼에 닿았다. 종탑이 불꽃의 빛에 따라 시시각각 색을 바꿨다.
불꽃놀이는 그 규모가 상당했고, 꽤 오랫동안 했다. 불꽃이 비춰 얼굴이 녹색으로 변한 지오에게 내가 물었다.
“불꽃놀이는 오늘만 해?”
“네. 죄수원 축제 첫날에만 해요. 축제 마지막 날에는… 음….”
지오가 말을 하다 말고 머뭇거리자 이를 듣고 있던 욘이 대신 말을 이었다.
“공개 처형을 하지.”
“네??”
난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공개 처형이라니, 지금이 무슨 중세 시대도 아니고. 욘 역시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난 죄수원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다들 죄수원에 열광하고 있고, 마을의 상징이 되었으니… 없애기가 어렵게 되었어.”
내내 별말이 없던 사장이 욘에게 물었다.
“코르 페르다 꽃말이야. 종탑 죄수들에게 먹이고 있는 거… 혹시 알아?”
사장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욘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정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돼서인 것 같기도, 치부를 들켜서 수치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아… 그건….”
욘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대번에 답을 하지 못하자. 사장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뭐야? 알고 있었네.”
사장의 말에 욘이 시인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코르 페르다 꽃은 사람의 영혼을 말살하는 꽃이지. 영혼이 사라지면 사람은 껍데기만 남아. 물건과 다를 바가 없게 되지.”
“그렇게 잘 알면서… 오랜 시간 그들에게 꽃을 달여 먹이게 한 거야? 죄수라고 할지라도 코르 페르다 꽃을 써선 안 된다고 본인 입으로 떠들고 다녔으면서.”
사장이 담담한 말투로 욘을 힐난했다.
“나도 최근에서야 알았어. 보좌 장로 한 명과 펠라가 합작해서 벌인 일이었지. 나를 위한답시고 한 일인데… 마냥 질책만 할 수는 없었어. 다신 그러지 말라고 일러두는 수밖에는.”
사장이 소용없다는 의미로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아직도 먹이고 있는 거 같던데 뭘.”
“솔직히 말하면, 이젠 펠라의 선택이 옳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들이 언제 나를 죽이러 올지도 모르는데… 나로서도 대책이 필요한 거지.”
난 귀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종탑에 시선을 고정했다. 종탑은 고요했다. 바람도 불지 않는지, 마치 벽에 걸어 놓은 그림을 보는 느낌이었다.
불꽃놀이가 막바지에 이르렀는지 불꽃이 쉴 틈 없이 터졌다. 그러다 고막을 치던 폭죽 소리도 점점 잦아들었다.
“끝났나 본데요?”
내 말에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 같네.”
다들 아무 말이 없었다. 조금 더 기다리니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분명 내가 봤던 미래에선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모든 상황이 종료됐었다.
“휴우….”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미래가 변한 것일까. 열기구가 천천히 땅을 향해 내려갔다.
열기구에서 내린 욘이 내게 악수를 청했다.
“고마워요.”
사장이 기지개를 켜고, 욘더러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뭐 더 남아 있을 필요가 없잖아. 그렇지?”
사장의 말에 숨겨진 의도를 알 것 같았다. ‘혹시라도 내게 줄 게 있으면 얼른 줘라. 우린 집에 가야 하니까.’라는 뜻이었다.
욘이 이를 알아채고 물었다.
“오늘 밤에 돌아가려고? 그러지 말고 내일 가는 게 어때? 내일 다시 이 종탑에서 만나자고. 자네에게 줄 것도 있고.”
왜 하필 또 종탑에서 만나냐는 내 질문에 욘은 내일이 되면 이유를 알 게 될 거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만 늘어놓았다.
“네. 그렇게 해요.”
사장이 집에 가고 싶다며 투덜거렸지만, 완고한 욘의 태도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더 4마을에서 보내게 되었다.
다시 우리의 베이스캠프인 텐트로 돌아가는 길, 지오가 영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정말 미래가 바뀌었을까요?”
“나도 모르겠어.”
우린 다 같이 텐트로 들어와 각자 자기의 자리에 드러누웠다. 이제 이곳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편안하게 느껴졌다.
“근데 영 찝찝한 게 있어요. 그 편지 말이에요.”
침대에 누워 상념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사장에게 말했다.
“누가, 왜 보냈을까요? 나 탈출한다고 미리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연막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어요. 그럴싸한 편지를 보낸 것을 보면 조력자도 있는 거 같고.”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진즉에 잠든 사장의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곯아떨어진 이들을 두고, 밤공기를 쐬려고 바깥으로 나왔다. 고요한 가운데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바닥에 일렁이는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미 어둠에 적응한 눈이 검은 형체를 바로 낚아챘다.
“펠라… 맞죠?”
그림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을 욘의 수행 장로인 펠라였다.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아니, 그보다 저희가 여기에 있는 줄은 어찌 알고….”
펠라가 주변 눈치를 살피며 품 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서 내게 건넸다.
“이게 뭐죠?”
“로뎀나무 기름이야.”
나는 유리병을 받아서 마개를 뽑았다. 처음 맡아 보는 나무 향이 물씬 풍겼다. 향은 금세 공중에 흩어졌다.
“이걸 왜 주시는 건데요?”
“내일 종탑에 들어오기 전에 이 기름을 이마에 엑스자 형태로 발라. 듬뿍. 손등이나 목 뒤에 더 발라도 좋아.”
“저기 지금 제 질문에 대답 하나도 안 하고 계신 거 알아요? 여긴 어떻게 왔고, 이건 왜 바르라는 거죠?”
내가 말하는 도중에도 쉼 없이 주변을 살피던 펠라는 대답도 없이 자리를 뜨려 했다.
“저기요. 이러고 그냥 간다고요? 지금 본인이 얼마나 수상해 보이는지 모르죠?”
내 말에 펠라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로 돌았다.
“욘이 그들을 언제부터 종탑에 가둔 줄 아나? 걔들이 겨우 여섯 살 때부터라고. 코르 페르다 꽃을 달여 먹이라고 시킨 것도 욘이고.”
내가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펠라는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밤새 펠라의 말을 곱씹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욘은 자신을 죽일 운명인 여섯 살짜리 아이들 네 명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두었다는 게 된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이것만은 분명했다. 펠라는 욘의 편이 아니다. 죄수들에게 조력자가 있다면 그것은 펠라일 지도 몰랐다.
동이 트고, 지오가 가장 먼저 일어나 텐트 밖으로 나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로뎀나무 오일이 든 병을 지오에게 보여 줬다.
“이게 뭔지 알아?”
지오는 마개를 열어 냄새를 맡더니 ‘우와!’ 감탄을 연발했다.
“왜… 이게 뭐길래 그래?”
“이거 족히 300년은 된 로뎀나무 오일이에요! 이 정도 물건은 절대 못 구하는데 어디서 났어요? 이게 부정한 기운을 없애고, 맑은 피를 돌게 하고, 몸속의 찌꺼기를 정화하고, 악귀의 눈을 속이는… 아무튼 엄청 귀한 건데.”
지오가 자신도 좀 써 봐도 되냐며 한두 방울 떨어트려 목 뒤에 슥슥 발랐다.
“그렇게 좋은 거라고?”
이어 사장과 미고가 하품을 하며 텐트를 나왔고, 나는 이들에게 간밤에 펠라를 만난 이야기를 했다. 무언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
우린 약속 시간보다 이르게 종탑에 도착했다. 로뎀나무 오일은 그 효능으로만 봐선 발라서 나쁠 게 없었기 때문에 펠라의 말대로 이마와 손등, 뒷목에 골고루 발랐다. 지오가 사장과 미고에게도 남은 오일을 발랐다.
문지기는 결코 나를 제외한 다른 일행은 들어갈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문지기의 이마가 미세하게 반짝였다. 마치 오일을 바른 것처럼.
종탑을 올라가기 위해 한참 동안 계단을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는데 단순히 힘들어서는 아니었다. 뭐지. 이 불길한 예감은.
종탑 꼭대기에 올라오자, 철장 안에 갇힌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 침착한 얼굴로 창살 가까이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냄새도 맡았다.
자세히 살펴야 보일 정도였지만, 역시나 이마에 무언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그들 역시 이마에 로뎀나무 오일을 발랐다.
등이 스멀거리는 느낌에 뒤돌아보니 펠라가 서 있었다. 그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까딱하며 묵례했다.
그에게 어젯밤 일에 대해 물으려던 순간, 경쾌한 발걸음 소리를 내면서 욘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는 농구공 크기의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다.
조금 긴장한 표정의 욘은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먼저 와 있었네. 대체 뭘 주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나… 궁금했을 텐데 기다려 줘서 고마워.”
욘이 내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날 의자에 앉혔다.
“이다는 예지력이 있었지만, 본인이 그 능력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사라졌어. 그런데 말이야. 너도 그래.”
“네? 제가요?”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너도 네 능력을 거부했고, 결국 봉인됐어. 능력이 있어도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거야. 오늘 내가 그걸 뚫어 주려고 해.”
욘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들고 있던 정체불명의 물체를 덮은 검은 천을 들었다.
철로 된 검은 송아지 모양의 동상이었다. 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송아지의 입에서 검은색 연기가 새어 나왔다.
송아지 동상에서 빠져나온 연기는 어떤 형체를 이루었는데 점점 사람의 이목구비를 띠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라기보단 귀신의 형상에 가까웠다.
염소처럼 동공이 가로로 길었으며, 짐승에게 먹히다 만 시체처럼 피부가 다 파헤쳐져 있었다. 입을 열자 두 개의 긴 혓바닥이 날름거리며 빠져나왔다.
시큼한 곰팡내가 코를 찔렀다. 난 그 끔찍한 모습에 뒷걸음질을 쳤다. 귀신이 내가 있는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듯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귀신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얼른 먹어. 얼마나 어렵게 구했다고!”
욘이 애인에게 굴 듯 다정한 말투로 귀신에게 말했다. 욘의 시선에 내가 걸렸다. 지금 귀신더러 날 먹으라는 거야? 난 귀신보다도 더 소름 끼치는 욘의 민낯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귀신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눈을 뜨자, 동공이 사라지고 흰자위만 보였다.
“뭘 먹으라는 거야…. 아무것도 없는데….”
여차하면 귀신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던 나를 귀신이 슥 스쳐 지나갔다. 이어 귀신은 네 명의 죄수들을 훑고, 펠라를 지나쳐 욘에게 돌아갔다.
“뭔 소리야. 지금 네 앞에 가져다 놨잖아.”
욘이 짜증이 솟구친 말투로 귀신에게 쏘아붙였다.
“없어…. 아무도 없어…. 배고파…. 너라도 먹어야겠어.”
눈빛이 돌변한 귀신이 이리저리 살피더니 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귀신 앞에서 욘이 비명을 질렀다.
“내가 아니야. 쟤가, 쟤가 제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