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75)

#069화

질겁한 욘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내가 아니라, 쟤라니까!! 네가 요구한 조건에 딱 맞는 제물을 내가 찾아왔잖아. 눈앞에 두고도 왜 못 보는 거야. 왜!!!”

욘이 발악하자 귀신이 멈칫했다. 귀신의 입가가 쌜룩쌜룩했다. 마치 지금 이 상황이 몹시 흥미롭다는 듯이.

“아, 잠깐…….”

욘이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맡았는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이 새끼. 나 몰래 뭔 장난질을 했구나. 그러지 않고서야 왜 귀신이 너희들을 못 보냐는 말이야.”

광기 어린 눈빛의 욘이 무대 위에 선 주인공처럼 독백을 시작했다.

“해그냥에게 가짜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굴까……. 계속 생각해 봤거든? 근데 그렇게 내 필체와 인장을 똑같이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펠라 너뿐이더란 말이지……. 이자들이 너한테 시키디? 이제 나 대신 널 예언자로 만들어 주겠대?? 부모 잃고 혼자 남은 새끼 거뒀더니 결과가 이거냐?”

욘의 말에 펠라가 분노에 휩싸여 소리쳤다.

“닥쳐!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던 그 사고. 네가 낸 거 다 알고 있어. 그래 놓고 날 거둬서 개처럼 부려 먹은 걸 모를 줄 알아?”

내내 침착했던 펠라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폭주했다. 그간 참아 왔던 분노가 범람하듯 그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이들도 마찬가지야. 욘을 죽일 운명? 웃기고 있네. 가짜 예언가 주제에. 네놈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고작 다른 사람의 능력이 뭔지 알아보는 것뿐이잖아. 아니야? 그래서 진짜 예언가인 이 사람들을 감금해 이용한 거고!”

펠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욘이 순식간에 내 목덜미를 덥석 잡았다. 목뼈가 단숨에 꺾일 것 같은 악력이었다. 어제만 해도 크고 따듯했던 그의 손이 이제 내 숨통을 조였다.

“귀신 눈에 네놈들이 안 보인다면 내가 직접 귀신 입속에 처넣어 주지.”

돌변한 욘의 모습 때문에 놀라 제대로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했던 나는 고개를 돌려 지팡이를 휘둘렀다.

욘이 지팡이에서 나온 힘으로 인해 튕겨 나갔다. 쓰러진 욘이 가소로운 듯이 비웃으며 말했다.

“능력이 있어도 쓰지도 못하는 게……. 뭘 어쩌려고 그래.”

그때 욘의 지팡이에서 기어 나온 몸통이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뱀 두 마리가 내 몸을 휘어 감았다. 팔다리가 뱀에게 묶여 쓰러진 내 위로 욘이 올라탔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욘의 민낯이 여실히 보였다. 수더분해 보이던 얼굴은 어디 가고, 탐욕이 찌든 때처럼 겹겹이 끼어 있는 주름진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 이를 지켜보던 귀신이 이 정도면 많이 참았다 싶었는지 결국 욘에게 달려들었다.

귀신 눈엔 욘이 원맨쇼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로뎀나무 기름을 바른 우리는 귀신의 눈에서 완전히 모습을 지울 수 있었다.

“으아아악!! 저리 가!!! 아아악!!”

귀신은 욘의 귓구멍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무언가 우걱우걱 씹히는 소리가 들리자, 욘이 자기 머리를 양손으로 쥐고 흔들며 발악했다. 들어갔던 반대쪽 귓구멍으로 나온 귀신은 입에 질겅질겅 무언가를 씹고 있었다. 입가에 묻은 검은 기름이 바닥에 뚝뚝 흘렀다.

귀신에게 영혼이 일부 먹힌 욘의 눈동자가 구슬처럼 쩍- 금이 갔다. 이와 동시에 죄수들을 가두고 있던 욘의 결계에도 금이 가더니, 순식간에 반쯤 무너져 내렸다.

욘은 혼비백산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여기서 더 먹히면 나는 죽어!!”

욘이 계단으로 내려가자, 기름지고, 찐득거리는 욘의 영혼을 씹어 넘긴 귀신이 입가를 닦으며 여유 있게 그의 뒤를 쫓았다.

펠라가 다가와 나를 묶고 있는 투명한 뱀의 몸통을 갈랐다.

그 모습을 본 죄수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등이 굽은 자는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고, 더벅머리를 한 여자는 눈물을 흘렸다. 볼이 움푹 파인 자는 여전히 표정의 의미를 알기 어려웠고, 가장 험상궂게 생겼던 남자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날 풀어 준 펠라는 욘이 설계한 결계가 흐트러진 틈을 타서 이를 부수기 시작했다.

난 조금 전 펠라의 말을 떠올렸다. 편지를 보낸 게 펠라였다니. 욘의 실체를 바로 앞에서 목도하고도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여기 갇힌 이들은 죄수가 아니라, 예언자라는 뜻인가.

펠라의 지팡이가 푸른빛을 내는 도끼가 되어 결계를 내리쳤다.

“네 눈으로 똑똑히 봤잖아. 욘은 사기꾼이야. 진짜 예언자는 이들이라고.”

예언가 행세를 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그토록 오랜 시간을 감금하다니, 악마도 혀를 내두를 만한 짓이었다.

“욘은 오늘 널 귀신에게 제물로 바치려 했어. 네 명의 예언자의 영혼을 모두 죽이고, 그 능력을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뺏어 오기 위해서 말이야.”

욘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다시금 울렸다. “쟤를 먹어. 쟤를!” 펠라의 말은 사실이었다. 펠라가 있는 힘껏 도끼를 내려치자, 결계가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게 보였다.

“당신은 어떻게 욘의 계획을 미리 알았던 거지?”

“이들은 예언자야. 이들이 보여 준 미래를 통해 봤어. 우리의 계획은 네가 없이는 성공할 수 없었어. 그래서 편지를 보내 너를 불러들인 거고.”

나는 그 전까지 악마처럼 보였던 이들을 돌아봤다. 그들은 결계가 깨지고 문이 열린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고 서 있었다. 펠라가 답답한 듯 소리쳤다.

“안 나오고 뭐 해!”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감옥에 있던 이들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키가 작고 허리가 굽은 남자가 요상한 소리를 지르며 선두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 뒤를 더벅머리 여자, 볼에 움푹 파인 상처가 있는 남자가 따랐다.

마지막으로 그 뒤를 펠라가 쫓았다. 가장 험상궂게 생겨서 습관적으로 이를 갈던 남자는 계단 아래가 아닌, 위로 올라갔다.

왜 한 명이 종탑에 남아 계단 위로 올라갔는지 그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예언자 세 명과 펠라가 종탑을 빠져나가자마자, 하늘에서 폭죽 여러 개가 포개지며 빛을 냈다. 예언자 한 명이 종탑 위에서 폭죽을 터트리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본 미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욘과 그를 따라간 귀신의 뒤를 쫓아서 우린 강기슭을 달리고 또 달렸다. 종탑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사장과 미고, 지오도 내 뒤를 쫓았다.

저만치 욘의 모습이 보였다. 힘이 풀린 다리가 빠르게 엇갈리면서 앞으로 고꾸라지길 반복했다. 이미 몇 차례 더 귀신에게 영혼을 뜯어 먹힌 욘은 이제 거의 반송장 상태였다.

귀신은 한꺼번에 그의 영혼을 삼킬 수 있었음에도, 죽기 전 사냥감이 발악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가 힘껏 달려 욘을 따라잡았을 때, 귀신은 남아 있던 욘의 영혼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일말의 생기가 남아 있던 욘의 눈동자가 산산이 조각나듯 깨지면서 회색빛으로 변했다.

예언자와 펠라는 일사불란하게 나무 위로 올라갔다. 비틀거리던 욘은 덫에 걸려 사지가 묶인 채 공중에 매달렸다. 내가 본 미래가 실현될 참이었다. 나는 황급히 소리쳤다.

“안 돼요. 죽이지 말아요. 그러지 말고 욘을 죄수원에 가두자고요. 욘의 실체를 모두에게 알리려면…….”

“욘은 이미 죽었어.”

볼에 움푹 파인 상처가 있는 남자가 말했다. 소년처럼 앳된 목소리였다.

“욘은 죽었고, 그 시체 안에 귀신이 들어 있어. 귀신을 꺼내서 다시 봉인할 방법은 이것뿐이야.”

세 명의 예언가와 펠라가 있는 힘껏 줄을 잡아당겼다. 그때 욘의 몸에서 귀신이 눈을 떴다.

귀신은 덫에 걸린 짐승처럼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욘의 몸이 대(大)자로 쭉쭉 뻗었다. 욘의 사지를 묶은 줄이 점점 팽팽하게 당겨지자 귀신이 괴이한 신음을 냈다.

밧줄이 묶인 욘의 팔다리에서 우둑우둑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 팔다리가 겹겹이 잡은 스케치북처럼 사람의 몸통에서 찢겨 나갔다.

몸통만 남은 채 땅에 떨어져 죽은 욘의 얼굴이 달빛에 비쳐 보였다.

귀신이 욘의 귓구멍에서 벌레처럼 스르륵 빠져나왔다. 펠라가 재빨리 송아지 동상을 가져다 댔다. 귀신이 동상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귀신이 모두 들어가자 펠라는 황급히 검은색 천으로 동상을 덮었다.

그때 종탑에서 댕, 댕, 댕 종소리가 울렸다. 다들 고개를 들어 종탑을 바라봤다. 예언가 한 명이 남아서 종을 울리며 예언을 실현했다.

내가 본 미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제 흩어져 있던 퍼즐이 맞춰지고, 물감 위를 걷던 내 눈에 그림이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네 명의 예언가는 내가 욘의 미래를 보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불꽃과 종소리를 이용해 날짜를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사장은 한 걸음 뒤에 서서 충격에 사로잡힌 미고와 지오를 챙겼다.

볼에 상처가 있는 남자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렸다. 그제야 어슴푸레한 빛을 담은 그의 눈동자가 보였다.

“7살 생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어요. 욘이 찾아와 저를 데려갔어요. 진짜 끔찍한 건…… 전 제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거든요? 근데 미래를 알고도 피할 수 없을 만큼 그땐 제가 너무 어렸어요. 여기 다…… 저처럼 어린 나이에 욘에게 붙잡혀 온 예언자들이에요.”

더벅머리를 한 여자가 쇳소리가 나는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우린 탈출을 계획했고 미래를 보았어요. 해그냥, 당신이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었죠. 욘은 우리의 능력을 빼앗기 위해 필요한 제물을 찾고 있었어요. 욘이 당신을 제물로 이용할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당신이 욘을 찾아가게끔 만든 거예요.”

종을 울리고 뒤늦게 종탑에서 뛰어온 나머지 예언자가 숨을 헐떡이며 모습을 보였다. 그는 오랜 학대와 감금 속에서 생긴 습관인지 여전히 윗니와 아랫니를 부딪쳐 이를 갈았다.

그는 우릴 보더니 부정 교합에 비뚤어진 얼굴을 찡그리듯 웃었다. 그가 미소를 짓자 비로소 비뚤어진 얼굴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맞춰졌다. 근사한 미소였다.

그가 도착하자 예언자들은 내 주위를 둥그렇게 감싸고 서로 손을 맞잡았다. 나는 당황하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 지,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등이 굽은 남자가 말했다.

“감사의 표시로 당신에 대한 예언을 하려고 해. 이미 미래를 통해 알고 있어. 당신이 푸에르에 맞설 사람이라는 것을. 부디 미래가 당신의 편이길.”

예언자들이 서로 맞잡은 손에서 점점 빛이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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