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75)

#070화

예언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감은 두 눈 밑으로 입이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움직였다. 그들이 내뿜는 열기가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미래를 보았는지, 내 앞쪽에 두 명의 예언자들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더벅머리 여자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눈물을 흘렸다. 허리가 굽은 남자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대체 무슨 미래를 보길래 저런 표정을 지을까 불안한 마음에 나머지 예언자들의 표정도 살폈다.

이상하게도 나머지 두 명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밝았다. 종탑에 남아 종을 친 남자는 아예 윗니가 다 보이게끔 웃고 있었고, 볼에 상처가 있는 남자의 표정도 평온해 보였다.

네 명의 예언자 모두 나의 미래를 보고 있었지만, 표정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예언이 막바지에 이르렀는지 손바닥에서 더욱 센 빛이 났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예언자들이 감았던 눈을 떴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미래를 봤나요?”

내 질문에 답하지 않고 네 명의 예언자들은 그들끼리 모여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볼에 상처가 있는 남자가 대표로 나와 내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언자들이 서로 다른 미래를 보았어요. 두 명은 당신이 푸에르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미래를, 다른 두 명은 당신이 푸에르를 죽이는 미래였습니다.”

혼란스러워하는 내 표정을 눈치챈 그가 재차 설명했다.

“사람들은 흔히 미래가 하나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아요. 그게…….”

그가 설명을 이어 나가려던 순간, 갑자기 우리 주변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리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죄수원 축제 행사 중 하나인 야간 퍼레이드를 하는 중이었다.

죄수원에 수감 중인 루베로 죄수들이 동물의 모습을 하고 앞서 나갔고, 그 뒤를 관람객들이 따랐다. 맨 뒤에선 4마을 장로들과 마을장이 걸어오고 있었다.

퍼레이드를 구경 중인 사람 중에 바닥에 나뒹구는 욘의 시신을 발견한 사람들이 우악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악!! 요…… 욘이…!!!”

장로들이 황급히 관람객들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들 눈에는 우리가 욘을 죽인 살인자로 보일 터였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우릴 죽일 기세로 지팡이를 겨누고 공격 태세를 갖췄다.

그때 더벅머리의 여자가 양 손바닥을 가슴 쪽으로 모았다. 손바닥 사이에 강한 빛이 만들어졌다. 팔을 들어 손바닥을 빠르게 펼치자, 거대한 빛이 타원형으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감쌌다.

마치 증강 현실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둥그스름하게 굽이친 화면 안에 사람들이 담겼다. 곧이어 빛은 어떤 장면으로 바뀌기 시작했는데 환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빛이 만들어 낸 영상 속에는 지금껏 욘이 가짜 예언가 행세를 한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욘이 예언자들을 학대하고 감금하는 장면부터, 욘이 이돌룸 술집에서 영혼을 먹는 귀신이 담긴 송아지 동상을 사는 장면까지 모두 비쳤다.

그뿐만 아니라 영상에는 욘이 가짜임을 알고도 이를 묵인해 주었던 헨의 부모님의 모습부터, 코르 페르다 꽃을 배달하는 헨의 모습까지 담겨 있었다. 충격에 휩싸인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거세졌다.

귀신에게 영혼이 잡아먹혀 죽은 욘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상은 끝이 났고, 펠라는 들고 있던 송아지 동상을 마을장에게 건넸다.

“방금 보신 거…… 전부 사실입니다.”

펠라의 말에 사람들의 탄식이 파도처럼 철썩였다. 마을장이 영상을 꺼내 보였던 더벅머리 예언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욘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욘에게 제가 예언을 줄 때 쓰던 방법을 이용해서 욘의 기억을 훔쳤습니다.”

그녀의 말에 마을장이 근심 어린 한숨을 쉬며 답했다.

“욘의 실체를 밝히고 싶었겠지. 그의 죽음에 대한 소명이기도 할 테고. 그래도 함께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부족한 설명을 마저 해 줘야겠네.”

마을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집행자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현장에 있던 자들을 모두 끌고 갔다.

욘의 시신은 순식간에 남색 보스턴백에 담긴 채 사라졌다. 군중 속에서 몸을 숨기려던 헨도 금세 집행자에게 발각됐다.

나와 펠라, 그리고 네 명의 예언자들은 집행자들의 손에 이끌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멀리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미고와 지오가 나를 향해 뛰어들었지만, 사장이 이를 간신히 말렸다.

집행자들이 우릴 끌고 간 곳은 마을장의 저택이었다. 마을장은 큰 응접실에 우리를 두고는 잠시 쉬고 있으라며 자리를 비웠다.

우리 바로 옆방에는 헨과 그의 부모님이 있었다. 집행자들은 욘의 사기 행각이 조력자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었다.

어쩐지 예언자들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었다. 마치 제2의 욘이 나타나 자신들을 또 감금하고 해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긴장이 고조된 분위기를 풀어 볼 요량으로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뭐예요?”

우린 이제야 통성명을 나눴다. 예언자들이 차례로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어색하고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귀여우면서 애잔했다.

더벅머리 여자의 이름은 해나, 볼에 상처가 있는 앳된 목소리를 가진 남자는 유진, 허리가 굽은 남자는 롭, 그리고 종탑에 남아 종을 울렸던 자의 이름은 탄둥이었다.

난 아까 이들이 전하다 만 예언에 관해 물었다.

“예언자들이 서로 다른 미래를 보는 경우가 많은가요? 두 분씩 전혀 다른 미래를 보셔서…… 전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경우가 드물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언자들이 서로 전혀 다른 미래를 보는 것 말이에요. 천재지변이나 사건·사고는 오히려 명확하고 쉽죠. 그것들과 달리 인간은 셀 수도 없이 많은 미래를 부둥켜안고 삽니다.”

유진의 말이 언뜻 이해가 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미래가 여러 개고, 각기 다른 미래를 본다면… 그걸 예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이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나의 이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롭이 말했다.

“차라리 내일 날씨를 물어봐. 정확히 말해 주지. 하지만 인간의 미래는 지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순간에도 바뀔 수 있어. 그런데도 바뀌지 않는 확정적인 사실이 존재하지. 상반된 두 예언이 다 당신이 끝내 푸에르와 승부를 본다는 것을 예견하는 것처럼.”

롭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나가 롭의 말을 거들었다.

“저흰 오랜 시간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한 번도 그곳을 탈출하는 미래를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영영 탈출하지 못하나 보다…… 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포기했죠. 근데 어느 날 말 그대로 질식할 것 같은 기분에 종일 헐떡이던 날이 있었어요. 욘에게 예언을 알려 주지 않고 버티다가 이 친구의 얼굴에 끔찍한 상처가 생긴 날이었죠.”

해나가 유진의 볼에 난 상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죽고 싶다는 말로는 부족했어요. 억울해서 미칠 거 같았죠. 그 억울함 때문에 저흰 탈출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성공하는 미래를 보지 못해도 상관없다. 실패로 미래가 결정지어졌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요. 탈출에 실패하는 미래를 수도 없이 봤어요. 근데 그럴수록 미래가 점점 내 편이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죠. 그렇게 계속 실패하다가…… 처음으로 미래에 당신의 모습이 보였어요. 당신이 함께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이들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탄둥이 윗니와 아랫니를 부딪치며 말했다.

“당신에게 미리 욘의 정체를 밝힐까도 싶었지만…… 욘은 뱀같이 눈치가 빠른 자여서 피치 못하게 당신까지 속였어요. 당신에게 욘의 정체를 말했다가 실패하는 미래를 몇 번 보았거든요.”

궁금증들이 하나씩 해소되니 마음에 시름도 하나씩 덜어 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펠라에게도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당신은 언제부터 욘의 정체를 알았죠?

펠라가 내 질문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욘이 이상했어. 코르 페르다 꽃을 먹이라고 시키면서도, 절대 자신이 시켰다는 사실을 알려선 안 된다고 했지. 죄수원 설계와 구상을 모두 도맡아 놓고도, 마치 죄수원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처럼 굴었어. 앞뒤가 다른 사람은 꼭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이들더러 죄수라고는 하는데 내게 그 어떤 설명도 해 주지 않았어. 이들을 언제부터, 무슨 잘못 때문에 가뒀는지 전혀 말하지 않았지.”

펠라는 죄수들의 행적을 파헤치면서 이들이 오래전 실종되거나 불의의 사고로 사망 처리된 자들임을 알게 되었다. 석연치 않았던 부모님의 사고 배후에도 욘이 있다는 사실까지.

그때 마을장이 응접실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장은 키가 작고 푸근한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상을 풍겼다.

“방금 이돌룸 술집 사장을 잡아들였고, 욘에게 귀신 송아지를 팔았다는 자백을 받았어요. 욘이 가짜임을 알고도 이를 묵인한 장로들도 모조리 가려낼 겁니다. 잡아서 죄수원으로 보내야죠.”

마을장은 해나가 욘의 기억을 보관해 준 덕분에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마지막으로 당신들이 진짜 예언자임을 우리에게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마을 사람에게도 욘의 죽음을 납득시킬 수 있어요.”

마을장의 말에 예언자들이 서로를 난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이들의 마음을 눈치챈 펠라가 물었다.

“능력을 증명해 보이고 나면 그다음은 뭡니까.”

“예언자들이 머물 만한 공관을 제공하고, 편히 쉬면서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이들에게 마땅한 작위 또한…….”

“아니요.”

어느새 서늘해진 표정의 유진이 마을장의 말을 가로막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예언자로서 사는 게 아니에요. 우린 아무도 모르는 시골 외딴곳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사는 것을 바라요.”

“하지만 4마을의 예언을 모두가 고대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예언이 끊기면…….”

“왜요? 4마을 위상에 금이라도 가나요?”

반가운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이 마을장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빈정거렸다.

난 반가운 마음에 미고를 양손으로 끌어안았다.

“어떻게 온 거야?”

“따라왔죠. 와 보니까 우리도 조사받으라고 해서 방금 조사받고 나오는 길이에요. 귀신이 욘을 잡아먹는 모습을 우리도 봤으니까요.”

유진이 잠시 딴 데로 샌 이야기를 다시 가져왔다.

“아무튼 자유를 준다고 약속하면 우리의 능력을 보이겠습니다. 우릴 또 다른 감옥에 가둘 생각은 마세요. 우린 다신 그 누구를 위해 예언을 하지 않을 겁니다.”

유진의 단호한 말에 다른 예언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장이 허탈한지 한숨을 길게 쉬었다.

“생각해 보니 제가 무례했던 것 같군요. 용서하세요.”

마을장에게 약속을 받아 낸 예언자들은 집행자들을 따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때 옆방에서 헨을 만난 지오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사색이 완연한 채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지오야, 너 표정이 왜 그래? 어디 아파?”

내 물음에 지오가 깊게 숨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지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언자들이 갇혀 있던 종탑이 토모토 가문 소유래요. 욘이 가짜 행세를 할 수 있도록 도운 장로 중에 저희 부모님이 있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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