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75)

#074화

탄둥은 얼마나 놀랐는지 헛구역질을 했다. 나를 포함해 예언자들 모두 바닥을 손으로 짚은 채 숨을 헐떡였다.

혼란스러웠다. 방금 우리가 본 미래가 의미하는 바가 뭘까. 질겁한 표정의 해나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우, 우리가 미래를 보는 것을 들킨 거 같아…….”

롭이 믿기지 않는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이건 정말 말도 안 되잖아. 누군가 자신의 미래를 본다는 사실을 그 순간에 어찌 아느냐는 말이야!”

유진이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심호흡을 했다.

“영이 예민한 자라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지도…….”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지오가 덩달아 겁을 먹은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그게… 푸에르의 미래를 봤는데…….”

난 예언자들과 함께 본 미래에 대해 남은 이들에게 설명했다. 내 말을 들은 지오와 미고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놀란 건 사장도 마찬가지였는데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근데요. 그 5마을에 있었다는 벌거숭이 나뭇길 말이에요. 저 거기 어딘지 알 거 같아요. 워낙 주변이 지대가 험하고, 야생 동물이 많이 살아서 집을 짓고 살 만한 곳이 아니긴 한데…….”

지오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기억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전에 약초 캐다가 발견했는데, 길이 워낙 특이해서 기억해요.”

지오가 가방에서 부싯돌을 꺼내서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 끼적이며 5마을 지도를 그렸다. 대충 이쯤 될 거라며 지도 왼편에 엑스 표시를 했다.

내내 조용하던 사장이 입을 뗐다.

“푸에르의 미래를 본 거라면, 지금 그곳에 찾아가도 아무도 없을 수도 있다는 거네.”

“그건 그래요. 일단 확인부터 해야죠. 푸에르가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이 없더라도, 가서 기다리면 언젠가 올 테니까요.”

내 말에 사장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나가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래의 푸에르는 누군가 자신의 미래를 엿봤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그게 현재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까요?”

누구도 그에 대한 답을 알지 못했고, 섣불리 예상하지도 못했다.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흘렀고, 해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거기…… 찾아갈 거예요?”

대답하려는 찰나, 한 걸음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펠라가 내 쪽으로 가까이 오며 말했다.

“당신이 장로에게 쓴 마법 말이야. 굉장한 힘이었어. 지팡이를 꺾었다고. 그것도 장로의 지팡이를!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있지 않은 한 불가능한 일이지.”

그가 격려의 의미를 담아 악수를 청했고, 나는 그 손을 꽉 잡았다.

“지난번에 욘이 그랬지. 당신은 자신의 능력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당신이 능력을 모두 발휘하면… 어쩌면 푸에르와 상대가 될지도 모르겠어.”

이어 펠라는 예언자들과도 한 명씩 작별 인사를 나눴다. 펠라가 미리 준비해 두었는지 그들에게 낡은 천으로 된 주머니를 한 개씩 나누어 주었다.

그 안에 가득 든 페닌을 보고 해나가 놀라며 물었다.

“이게 다 뭐예요?”

“욘의 심부름을 하면서 그에게 받은 것들이야.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모아 두었지. 이제 멀리 떠나서,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라고.”

다들 서둘러 자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 예언자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 한, 방금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까.

우린 그새 서로에게 정이 들었는지, 차례차례 상대를 바꿔 가며 서로를 꼭 껴안고 작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커피 마시러 갈게요.”

“응. 꼭 와. 약속했어.”

예언자들과 펠라가 떠나고, 이제 우리 차례였다.

사장이 덤덤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고, 난 답했다.

“갈 거지?”

“네. 가야죠.”

***

그 시각, 진우가 씩씩거리며 해그냥의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이 새끼…… 집에 또 없어? 진짜 실종 신고라도 해야 하나.”

진우는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는 해그냥이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집 안에 들어가 보니 방전된 핸드폰이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집 안 꼴은 치운 듯, 어질러진 듯 어정쩡한 청소 상태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인턴 떨어졌다더니 상심해서 어디 여행이라도 갔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핸드폰이라도 챙겨 가든가! 미리 말이라도 하든가! 사람 걱정되게…….”

휴대 전화는 커피숍에만 들어가면 불통이었다. 전화와 인터넷도 되지 않았고, 심지어 카메라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게 해그냥이 집에 휴대 전화를 두고 간 이유였지만, 진우가 그 사정을 알 리 없었다.

그는 사춘기 아들 방을 청소하는 엄마의 심정으로 신세한탄을 하며 청소를 시작했다. 모든 물건이 완벽하게 제자리를 찾아가자 집이 금세 쾌적하게 변했다.

청소를 마친 그는 거실 한가운데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의 손에는 해그냥이 이전에 아버지 유품이라면서 맡겼던 낡은 스웨터가 들려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해그냥은 진우에게 아버지 스웨터를 국립 과학 수사 연구원에 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공식적으로 사건 접수도 되지 않은 물건을 국과수에 보내냐며, 국과수가 동네 세탁소인줄 아냐고 툴툴댔던 진우지만 결국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친구의 부탁이어서라기보다, 형사로서 영 촉이 좋지 않았다. 결국 국과수에 오래 알고 지냈던 친한 선배에게 맡겼는데, 결과를 듣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말이 선배지, 선생님이라고 불러 마땅한 국과수 38년 차 베테랑이었다. 부탁을 들어줄 짬도 아니었지만 진우는 그에게 부탁하는 게 가장 안전하고 빠른 방법인 걸 알았다. 물건을 맡기고 한참 후 선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는데 목소리를 저음으로 까는 게 영 심상치 않았다.

“결과 나왔어요?”

“어.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니고, 이따가 퇴근 시간 맞춰서 회사로 와.”

“뭔데 그래요? 그냥 통화로 하면 안 돼요? 아이……. 참…. 알겠어요. 이따 봬요.”

그간 별의별 사건을 맡아 함께 의견을 나눴지만,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것은 처음이었다.

진우는 심란한 마음으로 회사 앞에서 선배를 기다렸다. 오래간만에 본 선배가 더욱 성성해진 흰머리를 휘날리며 뛰어나왔다.

“아우! 이번에 법 과학부장으로 승진하신 분이 체통 없이 이렇게 뛰십니까. 뒷짐 지고 걸으십시오.”

진우가 능글맞게 농담을 건넸지만, 선배는 예의 입가에 살짝 미소만 짓고는 진우의 팔을 잡고 서둘러 그의 단골 카페로 향했다.

“선배, 왜 그래요? 저 이제 좀 긴장되려고 그러는데……. 뭐가 좀 나온 거죠?”

선배가 뜨거운 대추차를 호로록 마시면서 잠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뗐다.

“네가 맡긴 옷 말이야. 이거 네 친구 아버지 유품이라고 했던가?”

“네.”

“그 옷에서 뱀 가죽이 나왔어.”

“뭐, 뭐요? 뱀 가죽이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선배의 말에 진우가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옷이나 가방에 쓰이는 그런 가공된 가죽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뱀에서 벗겨 낸 가죽 말이야. 그게 나왔어. 정확히는 러셀 바이퍼라는 뱀의 가죽인데, 황갈색 몸통에 사슬 모양의 반점이 있는 게 특징이야.”

그가 남은 대추차를 식히지도 않고 한입에 들이켜고는 말을 이었다.

“언뜻 봐선 비단구렁이와 헷갈릴 수는 있는데, 러셀 바이퍼가 확실해. 아주 포악하고 위험한 독사지. 한번 물 때 독약을 100mg 이상 주입하는데 성인 8명을 죽일 수 있는 양이라지. 서식지는 인도, 스리랑카, 네팔, 부탄, 파키스탄……. 아무튼 우리나라는 아니야.”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뱀도 아닌데 어떻게 옷에서 그런 게 나온 건데요?”

선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건강을 좀 챙기려고 했더니만 역시 안 되겠구먼.’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주문한 커피를 역시 반쯤 벌컥벌컥 마시더니 말했다.

“내가 지금부터 옛날이야기를 좀 할 건데, 내가 국과수에 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벌어졌던 사건이야. 당시에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았던 사건이었으니까. 지금 검색해도 바로 나올 거야. 초등생 일가족 방화 살인 사건이라고.”

진우도 어렴풋이 미제 사건 관련 수업에서 들었던 기억이 났다. 유력한 용의자는 겨우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남자아이였고, 그마저도 검거하지 못했다.

아이는 양부모였던 부모와 자신보다 2년 늦게 입양된 여동생을 죽인 후, 시신을 옷장에 넣고 집에 불을 질렀다. 위아래 집까지 전소되면서 추가 인명 피해가 컸던 사건이었다.

발화점은 찾지 못했고, 시신 역시 잿더미가 되어서 살해된 도구나 방법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사건 직후 그 집의 남자아이가 홀로 지나가는 것을 봤다는 슈퍼 아주머니와 과일 가게 아저씨 등의 공통된 증언으로 아이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던 사건이었다.

“근데 그 사건이랑 이번 일이랑 무슨 관련이 있어서 말씀을 하시는 건지……. 사실 잘 이해가 안 되거든요.”

진우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과거 기억에 빠져 잠시 딴생각을 하는 듯했던 선배가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다.

“그때 그 사건에서도 사건 현장에서 뱀 가죽이 나왔어. 딱 이 손바닥만 한 가죽이. 당시에 무슨 뱀인지 알아보라고 시켜서 알아본 결과…….”

“그게 러셀 바이퍼였군요.”

진우가 습관적으로 품 안에서 수첩을 꺼내 선배가 하는 말을 적으며 말했다.

“그래. 그때도 날것의 뱀 가죽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됐는데, 이상한 건 말 그대로 뼈까지 타 버릴 정도의 화마 속에서 그 뱀 가죽만 타지 않고 있었다는 거야.”

진우의 기억 속에는 초등생 방화 살인 사건에 그런 특이점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진우를 보며 선배가 덧붙였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 보급이 지금 같지 않았고, 언론사 경쟁도 이렇게 치열하지 않아서 이런 내용까지 신문에 나거나 하진 않았어. 그냥 우리끼리 참 괴이하다… 생각할 뿐이었지.”

“선배, 잠시만요. 그럼 지금 이 이야기를 제게 하는 이유가… 설마…….”

진우가 말을 얼버무리며 미간을 찡그렸다. 속으로 ‘선배가 너무 갔다.’ 생각하면서도 영 찜찜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그 설마가 맞아. 네가 가져온 이 옷의 주인이 죽은 배경과 과거의 사건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도 몰라. 좀 거칠게 말하자면, 38년 전 잡히지 않은 범인이 살아남아서 이 옷의 주인을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나는.”

단호한 선배의 말에 진우는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얼얼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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