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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2화 (2/231)

제2화

전태국.

나보다 두 살 아래의 남동생.

부모님의 열성유전자만 고스란히 몰빵한 전태국은 중학생이 되자마자 미국으로 쫓겨나다시피 조기 유학을 떠났다.

거기서도 대마에, 마약에, 각종 신종 약들을 모두 섭렵한 이후에 국내로 들어와서 마찬가지였다.

삼전 그룹의 계열사 하나 맡겼더니 약 먹고 자동차 사고 내는 통에 한 방에 깔끔하게 후계 구도에서 아웃된 꼴통이었다.

저 비열하게 찢어진 눈이 회귀 전과 별반 다를 것도 없어 보였다.

나는 얼른 전태국 뒤를 살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침통한 얼굴로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감옥에 간 3개월 동안 일명 왕자의 난이 일어난다.

자기가 가진 그릇에 비해 야망이 쓸데없이 큰 작은아버지가 주주들을 설득해서 아버지의 경영권을 박탈하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실패로 돌아가고 이 일로 삼전 그룹에서 가장 수익을 내지 못하는 건설을 작은아버지에게 넘기는 것으로 왕자의 난은 마무리된다.

[캬아, 그때 작은아버지가 울며불며 할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었지. 할아버지는 너 같은 아들을 둔 내 잘못도 있으니 내 몸 같은 기업 하나 날리는 셈 치고 준다며 건설 회사를 안겼는데….]

“꾹아, 너 뉴스 보고 뭐라고 하는 거야?”

술이 살짝 올라 볼이 빨개진 여자가 나를 쳐다봤다.

[니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재벌의 세상은 모를 것이다. 이럴 땐 자는 척이나 해야겠다.]

나는 몇 번 눈을 끔뻑이다가 눈을 감았다. 졸리다는 신호였다.

“꾹이, 졸린가 봐.”

여자는 나를 조심스레 안더니 원룸 구석의 내 자리에 살포시 놓았다. 그러고는 볼에 뽀뽀를 했다.

“잘 자라, 우리 꾹이.”

여자는 내 배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소영아, 근데 우리 꾹이 이제 엄마, 아빠 이런 말 할 때 되지 않았어?”

“말이 좀 늦은 애들도 있대. 우리 꾹이도 그런 거 아닐까?”

[말이 늦은 게 아니라 니들은 내 진짜 엄마, 아빠가 아니라서 안 부르는 거야. 니들은 그저 나, 전성국을 키워주는 대리모, 대리부일 뿐이야, 이것들아….]

어느새 잠이 스르르 오기 시작했다.

평생을 불면증에 시달렸는데, 요즘은 잠이 주기적으로 미친 듯이 쏟아져서 죽을 지경이었다.

* * *

나는 뉴스 시간대가 되면 최선을 다해서 울어댔다.

여자는 내가 뉴스를 보면 울음을 그친다는 사실을 알고는 뉴스를 주기적으로 틀어줬다.

뉴스는 나에게 뽀통령과 같은 존재였다.

덕분에 나는 삼전 그룹이 현재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회귀 전처럼 2년 형을 선고받고 온갖 플래시를 받으며 감옥에 들어갔다.

그 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작은아버지는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할아버지가 3개월 만에 특사로 풀려나면서 왕자의 난은 마무리됐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회귀 전과 다른 것은 없었다.

비록 나는 가난한 집에 태어났지만, 회귀 전의 모든 경험과 지식은 그대로이고 미래까지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1992년 이후의 대한민국 미래가 바뀌지 않았다면 말이다.

더군다나 나는 이전 생보다 열 살이나 어렸다.

이런 집안이라도 잘만 버틴다면 다시 회귀 전에 누린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달콤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이번 생에서도 재벌이 될 계획이다.

나의 발아래 고개 숙인 수많은 직원들.

대한민국의 경제가 내 손안에 움직이는 그때.

히죽히죽.

“꾹아,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여자가 설거지를 하다 말고 웃는 나를 뒤돌아봤다.

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여자를 쳐다봤다.

[IMF 때 돈 좀 불릴 거야. 그러니까 나 잘 키워. 나중에 키워준 은혜 정도는 갚을게.]

이 비루한 환경에서 나 같은 고귀한 존재를 키워준 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할 생각이다.

[집도 좀 사줘야 할 것 같고, 여자나 남자나 번듯한 자리 하나씩 주면 되겠지.]

나는 턱을 매만졌다.

“성국아, 엄마랑 콩나물 사러 요 앞 슈퍼에 가자.”

[난 뉴스 보고 있을게. 혼자 다녀와.]

하지만 여자는 나를 이미 포대기에 안고 있다.

[여자! 나 혼자도 잘 있을 수 있다고!]

내가 바동거리자 여자가 엉덩이를 도닥였다.

“이렇게 발버둥 치는 거 보면 성국이는 축구 선수 될 거야?”

[무슨 말씀. 난 재벌이 장래 희망이래두.]

“알았어, 알았어. 어서 가자.”

여자는 나를 업고는 문밖을 나섰다.

이때, 위층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107호?”

[뭐야, 감히 이름도 아니고 호수로 부르다니?]

나는 내려오는 여자를 쏘아봤다.

단발머리에 짙은 정장. 차가운 인상이었다.

“어머, 이제 출근하세요?”

여자가 살갑게 묻자 단발머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에 일이 있어서 오늘은 좀 늦게 출근해요. 그럼, 난 길 건너서 버스 타야 해서요.”

“잘 다녀오세요.”

여자는 허리를 반쯤 숙여 인사했다.

[어이, 여자. 대체 저 여자가 누구인데, 허리까지 숙여 인사해?]

“성국아, 뭘 그렇게 종알거려?”

여자가 내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이게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지?

엉덩이 토닥거림 몇 번에 화도 풀리고 졸음도 슬슬 밀려왔다.

“성국아, 자는 거야?”

[말…시키….]

나는 얼핏 잠에 빠져들었다.

슈퍼에서 콩나물 100원치를 사면서 좀 더 달라는 여자의 소리가 들렸다.

겨우 100원에 벌벌 떨다니.

나는 100원이라는 동전을 써본 기억도 없었다.

슈퍼를 나선 여자는 잠에 취해 있는 내 엉덩이를 연신 도닥이며 집으로 걸어갔다.

“성국아, 오늘 저녁에는 맛있는 콩나물국 끓여줄게.”

[그건 니들이 먹는 거지. 내가 먹는 건 분유잖아.]

나는 잠결에 중얼거렸다.

“우리 성국이는 진짜 엄마 말 다 알아듣는 것 같아. 엄마가 성국이 막 낳고는 혼자 집에서 너무 외로웠는데, 이제 성국이가 이렇게 종알거리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

여자는 많이 외로웠나 보다.

산후우울증인가, 그런 게 있다더니 그런 모양이었다.

여자는 내 엉덩이를 연신 두들겼다.

또! 또! 또!

겨우 이런 거에 또 기분 포근해지면 안 되는데.

쿠우웅!

뭐지?

이때, 잠이 번쩍 깨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악!”

“어서 피해요!”

“으아악!”

동시에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도대체 뭐지?]

여자는 업은 나를 재빨리 안아 들고 다급히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그때였다.

길옆 건물이 우르르 무너졌다.

동시에 내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여자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고, 눈앞은 시커멓게 변했다.

이번 생은 이렇게 죽는 건가.

[그래, 가난한 집에 태어났으니 일찌감치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다음 생이 없으면!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여자를 얼른 잡고 흔들었다.

[여자, 정신 차려! 여자, 죽으면 안 돼! 나 커서 재벌 돼야 한다고!]

그때였다.

숨이 넘어갈 듯한 여자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성국아… 엄마가 지켜줄게.”

뭐지?

왜 가슴이 뜨뜻해지는 거지….

여자의 머리 위로 거대한 벽돌 하나가 낙하하고 있었다.

[안 돼!]

나는 온몸을 바동거리며 소리를 질렀고, 여자는 나를 온몸으로 감싸 안았다.

“성국아… 엄마가 지켜줄.”

여자는 채 말을 다 끝내지도 못했다.

순간 내 입에서 한마디가 불쑥 튀어나왔다.

“엄. 마!”

그 소리를 듣자마자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꾹아. 엄마야….”

여자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나는 그때부터 세상 사람 다 들리게 소리쳐 울기 시작했다.

“으아앙! 으아앙! 으아앙!”

엄마를 살리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엄마! 죽지 마! 도와주세요! 우리 엄마가 죽는다고요!]

* * *

그릉. 그릉. 그릉.

나는 너무 많이 울어서 숨을 힘겹게 뱉어냈다.

눈은 이미 퉁퉁 부어서 감았다 뜰 때마다 쓰리기까지 했다.

이런 나를 안고 1시간째 병원 복도를 오가는 건 남자였다. 아니, 아빠였다.

여자에게 엄마라고 부른 순간 나의 마지막 방지턱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슈퍼를 나오는 길, 다세대주택이 철거 작업 중에 무너졌다.

그 바람에 길을 걸어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엄마도 길을 걸어가던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중 나만 유일하게 아무 상처도 입지 않았다.

엄마 품에 꼭 안긴 채였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엄마 덕분에 살았다.

“크으응!”

나는 콧물을 다시 주르륵 들이켰다.

아빠라는 남자는 나를 달랬다.

“꾹아, 괜찮아. 다행히 엄마도 괜찮대.”

눈두덩이 잔뜩 부은 채 나를 안아 달래는 아빠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빠는 울음을 겨우 참으면서 나를 안아 달래고 있었다.

일하는 식당의 앞치마를 벗지도 못한 채였다.

이제 이들은 나에게 엄마이고 아빠였다.

엄마는 나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리고, 아빠는 우는 날 달래느라 온종일 서서 일하고 와서도 병원 복도를 걷고 또 걸었다.

그러면서도 싫은 말 한 마디 안 하고, 포근하게 나를 감싸 안은 채 내가 놀랐을까 봐 걱정만 잔뜩 하는 이들.

“꾹아, 괜찮아. 엄마도 다 괜찮대. 하늘이 정말 도왔나 봐. 의사 샘이 며칠 푹 쉬면 될 거래.”

[그건 나도 안다고. 근데 그냥 계속 눈물이 난다고….]

나는 옹알거렸다.

아마 회귀 전에 나를 모시던 양 비서가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기겁해서 도망갈 게 뻔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말을 남기셨다.

- 기업의 총수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단다, 성국아.

그래서 나는 나를 귀여워해 주던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도 울지 않았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곧 회사의 주가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엄마 보러갈까?”

“우우우!”

나는 격하게 대답했다.

토닥토닥. 남자는 내 등을 두드리며 엄마가 누워 있는 병실의 문을 열었다.

엄마의 가녀린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머리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지만, 의사 말로는 피부가 찢어져서 그런 거지 다른 이상은 없다고 했다.

엄마가 나를 보자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나를 들어 엄마 품에 안겨줬다.

엄마가 나를 다시 꼭 안았다.

“꾹아, 엄마 다시는 우리 꾹이 못 보는 줄 알았어. 그래두 우리 꾹이가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야.”

[바보, 엄마는 머리가 찢어졌다구!]

내가 바동거리자 엄마는 나를 더 세게 안았다.

“소영아, 오늘 밤에는 내가 꾹이 볼 테니까 오늘은 병원에서 푹 쉬어.”

“자기야, 나 퇴원할래. 병원비 많이 나오잖아.”

“다른 데 크게 이상 없지만, 그래도 모르니까 의사 선생님이 하루는 병원에 있으라고 했어.”

“자기야, 그래도….”

“소영아, 내 말 들어. 돈보다 네 건강이 더 우선이야. 네가 건강해야 꾹이도 잘 키우지. 안 그래?”

“…알았어.”

엄마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참, 자기야. 집주인 아가씨가 나 발견했는데. 어디 가셨어?”

“나 오자마자 출근해야 한다며 가셨어. 그동안 꾹이 검사도 다 받아주시고,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단발머리는 맞은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건물이 무너지자 달려와서 재빨리 나와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다.

경황이 없어 나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덕분에 누구보다 빨리 병원에 도착했다.

“자기가 먼저 보면 인사드려. 난 병원 나가면 따로 인사드릴게.”

“지금은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쉬어. 성국이는 내가 잘 돌볼 테니까.”

아빠는 나를 안고는 병원을 나섰다.

* * *

밤공기가 시원했다.

아빠는 나를 달래며 계속 걸었다.

“꾹아, 오늘은 좀 걷자. 아빠가 아직 스물세 살이라 다리는 튼튼해.”

[돈 없단 소리구나.]

“엄마랑 너랑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아빠가 다 미안해. 그 건물주가 병원비랑 다 물고, 건물도 다시 튼튼하게 짓는대. 아빠가 잘 감시할게.”

[부실시공은 정말 안 된다고!]

“우리 꾹이랑 말하면 꼭 대화하는 것 같다니까. 꾹아, 오늘은 아빠랑 남자끼리 진한 밤을 보내자.”

[하아. 그건 사양할게.]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우리 성국이는 진짜 아빠 얘기 다 알아듣는 거지?”

[당연하지.]

아빠는 그제야 퉁퉁 부은 얼굴로 웃었다.

다치고도 병원비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엄마.

차비를 아끼려고 이 밤에 돌이 다 된 아들을 안고 걸어가는 아빠.

그런데 이 모든 게 이상하게 기분 좋았다.

스물세 살의 돈 없는 아빠가 나를 아기 띠에 매고는 터덜터덜 걸어가는 이 늦여름의 밤.

나는 이 밤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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