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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9화 (9/231)

제9화

아빠는 보쌈집 사장과 한 잔 더 하고 11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다.

오늘은 아빠의 양손 가득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자기야, 그게 다 뭐야?”

“사장님이 이것저것 마구 챙겨주셨어. 광고 나올 때마다 손님들한테 자랑하시느라 난리도 아니었어. 매상도 다른 날보다 배로 올랐어.”

“사장님 정말 좋은 분이셔.”

“이것 봐. 성국이가 아까 보쌈 고기 잘 먹는 거 보고는 가게에서 쓰는 보쌈 고기도 따로 챙겨주셨어.”

나는 잠결에 엄마, 아빠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아빠는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자랑을 늘어놨다.

오늘 내가 나온 광고 덕분에 하루 종일 힘이 났다는 것과 사장님이 이젠 자기가 만든 보쌈이랑 맛이 거의 비슷하다며 칭찬해준 일 등 시시껄렁한 이야기였다.

“자기야, 사장님이 보쌈집으로 바꾸고 매출도 많이 올라서 다음 달부터 월급도 10만 원 인상해 주신대.”

“10만 원이나! 성국이 정말 복덩이인가 봐. 성국이 태어나고 자기 일도 잘되고, 너무 좋아.”

엄마는 겨우 10만 원에 아빠의 손을 부여잡고 감동하고 있었다.

10만 원이면 뭘 할 수 있지?

삼전 호텔에서 저녁 한 끼 겨우 먹을 수 있을까.

내가 졸린 눈을 비비자 아빠가 다가왔다.

“성국아, 안 잤어?”

[정확히 말하면 자다 깬 거지. 시끄러워서.]

“소영아, 우리 성국이 선물 지금 줄까?”

아차, 선물이 있었다.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눈이 또랑또랑해졌다.

[나 전직 재벌인데, 왜 이렇게 없이 구는 거지?]

아빠는 늘 들고 다니는 낡은 손가방을 뒤지더니 뭔가 작고 얇은 것을 꺼내 내 눈앞에 가져다 댔다.

[뭐야, 통장이잖아….]

나는 실망한 투로 옹알거렸다.

“성국아. 이거 보여? 통장이야. 네가 이번에 광고 모델 해서 번 돈, 다 네 이름 앞으로 저축했어. 여기 네 이름으로 된 거 보여? 전성국.”

아빠는 내 눈앞에 ‘전성국’ 이름으로 만들어진 통장을 들이밀었다.

정말 모델료 받은 돈 한 푼도 빼놓지 않고 모두 입금된 통장이었다. 심지어 오디션 날 교통비로 받은 5만 원도 저축했다.

[엄마, 아빠 바보야? 이걸 왜 고대로 저금해! 이 돈으로 집도 좀 옮기고, 하다못해 맨날 똑같은 옷 입고 다니는 엄마, 아빠 입을 옷이라도 사야지!]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금세 눈가가 촉촉해졌다.

세금 떼고 나면 채 400만 원도 안 되는 금액.

회귀 전에 나에게 이 돈은 그저 한 끼 식사 금액일 때도 있었고, 하룻밤 술값이 안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 돈은 한 남자가 식당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고 받는 반년치 월급이었다.

그런 돈을 지금 한 푼도 안 쓰고 내 이름으로 모두 저축한 것이었다.

“성국아, 이거 네가 번 거니까 다 네 거야. 엄마, 아빠는 하나도 안 건드렸어. 우리 성국이가 커서 학교 가면, 이 돈으로 배우고 싶은 거 있으면 엄마, 아빠가 다 시켜줄게.”

[나 좀 그만 울리라고!]

나는 목이 멨다.

“자기야, 우리 성국이 진짜 우리 말 알아듣나 봐. 눈시울이 붉어졌어.”

“소영아, 성국이 진짜 감정이 풍부한 것 같아. 그래서 연기도 잘하나 봐.”

나는 작은 두 손으로 얼굴을 비벼댔다.

아빠가 내 손을 잡았다.

“성국아, 이러면 얼굴 다쳐요. 우리 스타님.”

[누가 울리래!]

“자기야, 성국이 자다 깨서 졸린 것 같아. 내가 안을게.”

“아니야, 소영아. 너 배 나와서 힘들잖아. 내가 안을게.”

아빠는 나를 안아서 어느새 등을 도닥였다.

식당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또 나를 안아 들었다.

“성국아, 너는 정말 고아원에서 자라서 부모도 모르고 형제도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 온 복덩이야. 엄마, 아빠가 아직 많이 어려서 많이 부족하지? 그래도 엄마, 아빠가 진짜 열심히 살아서 우리 성국이는 부족한 거 없이 자라도록 노력할게. 성국아, 사랑해.”

크응.

나는 몰래 울음을 삼켰다.

회귀 전의 나에게 이렇게 따뜻했던 사람이 있었던가.

부모조차 나를 자식이 아닌 삼전 그룹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따뜻한 말보다 혹독한 채찍을 가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삼전 그룹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면 어떻게든 내게 잘 보여 뭐라도 뜯어갈 생각만 했다.

나는 아빠 품에 폭 안겼다. 그리고 광고 속 그 한마디를 외쳤다.

“아. 빠?”

“소영아, 들었어?”

아빠가 들뜬 얼굴로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내 엉덩이를 토닥였다.

“자기야! 우리 성국이, 아빠 진짜 잘하지?”

“소영아, 사실은… 우리 성국이가 엄마, 아빠 말을 너무 안 해서 사실 한동안 고민했거든.”

얼마 전까지 이들은 내가 크는 동안 양육을 담당하는 대리모와 대리부 정도의 존재였다.

“그게, 성국이한테 내가 부족한 아빠라서 그런 게 아닌가 괜히 자격지심 들고 그랬는데,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아.”

“자기야, 그런 생각 하지 마. 우리 성국이 진짜 아빠라는 말을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애니까.”

“그러게. 어! 성국이 자나 보다.”

이럴 때는 자는 척이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나도 눈치라는 게 있다.

스물세 살의 아빠와 그보다 어린 엄마. 둘만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 * *

삼전 전자 CF를 찍은 곽 감독이 집 앞까지 찾아왔다.

곽 감독의 손에는 과일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열대과일이었다.

나는 어느새 과일바구니를 향해 기어갔다.

애가 되더니 전에는 없던 식탐까지 생긴 모양이다.

얼른 멜론을 집어 들려는 순간, 엄마가 나를 안았다.

[하아, 멜론 좋아하는데. 저기다 하몽 얹어서 와인 한 잔 하면 피로가 싹 가시는데….]

나는 입맛을 다셨다.

아빠가 얼른 감독에게 직접 탄 믹스 커피를 내밀었다.

“감독님, 어쩐 일이세요?”

“성국이가 요즘 엄청 핫한 거 아시죠?”

“저희는 실감이 안 나요.”

“그러실 만도 하죠. 오늘 제가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성국이한테 제안을 하나 하려고요.”

“제안이요?”

아빠가 되물었다.

“이런 이야기 어려우실 수 있는데요. 지금 다른 광고 제안 들어와도 하지 마시고, 방송 하나를 하면 어떨까 해서요.”

“광고도 더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방송이라니….”

[아빠, 원래 일이라는 것은 연달아 들어오는 법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에 MVC 방송국 일요일 저녁 버라이어티 쇼에서 새로 신설되는 거거든요. 한 번도 아이를 키워본 적 없는 어린 남자 가수들이 아이를 키우는 거예요. 거기 성국이가 메인이고요.”

[아, 그거!]

나는 기억을 떠올렸다.

남자 아이돌 그룹이 어린아이를 키우는, 육아 프로그램의 시조새쯤 되는 거였다.

물론 이건 당연히 해야 한다.

당대에는 물론, 후에도 무척이나 회자되는 육아 프로그램의 레전드였다.

아빠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감독님 제의는 감사하지만요….”

아빠는 말끝을 흐렸다.

[아빠, 이건 아니지!]

나는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진 않았다.

그렇다면!

“으아앙! 으앙!”

“성국아, 왜 그래?”

엄마가 얼른 나를 안았다.

[왜 그러긴. 엄마, 아빠 좀 말려봐! 이건 내가 내 능력으로 따낸 황금 같은 기회라고!]

아빠는 생각한 말을 내뱉었다.

“성국이가 자꾸 방송을 타면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자랄까 봐 걱정이 돼서요.”

나는 잠시 울음을 멈췄다.

의외의 대답인걸?

감독은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 고민 이해됩니다. 아무래도 방송에 노출되다 보면 사람들이 많이 알아보고 아이도 그 시선 속에서 자라게 되니까요.”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평범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버님. 성국이는 정말 제가 본 다른 애들과 다릅니다. 외모도 외모지만, 타고난 재능이라는 게 보여요. 스스로 빛날 줄 아는 아이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요즘 부모들은 이런 방송 못 내보내서 난리거든요. 아이도 유명해지고 돈도 되니까요.”

“…사실은 저희 부부가 모두 고아원에서 자랐거든요.”

“아….”

감독은 놀라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빠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남의 손에 애를 맡기고 싶지 않았어요. 어릴 때만큼은 엄마, 아빠 사랑 듬뿍 받고 자라야 하는 거잖아요. 부족한 저희한테 찾아온 생명인데, 그래야 하잖아요.”

나는 주먹을 앙 쥐고 입을 틀어막았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겨우 참아내고 있었다.

[이번 생의 부모는 왜케 사연이 구구절절한 거야.]

감독도 어느새 붉어진 눈시울을 두 손으로 꾹 눌렀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엄마 품을 벗어나 아빠에게 기어갔다.

아빠의 마음을 전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비즈니스이다.

나는 얼른 아빠의 무릎 나온 바지를 물고 뜯었다.

[아빠, 지금도 사랑은 충분해. 돈이 많으면 더 많은 사랑을 줄 수도 있어!]

돈과 사랑의 비례는 일정할 때 최상의 시너지를 낸다.

돈이 너무 많아지거나, 사랑이 너무 많아지면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감독은 잠긴 목을 풀더니 아빠를 쳐다봤다.

“아버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감독, 이렇게 포기하면 안 돼!]

감독은 나를 흘깃 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님, 그래도 한 번 잘 생각해 보세요. 두 분 사정 들으니 알 것 같지만, 부모님이 이렇게 사랑하고 생각해 주는데, 잠시 방송하는 건 크게 문제 될 것 없어 보이거든요. 출연도도 적지는 않을 거고요.”

“저희는 돈 때문이 아니라요.”

아빠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우리 아빠, 엄마의 행색을 보면 누구든 형편이 어렵다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다.

나는 엄마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엄마, 걱정하지 마. 내가 10년 안에 부자 만들어 줄 테니까.]

감독이 엄마에게 안긴 나를 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이런 말씀 이상할지 모르지만… 성국이는 진짜 사람 말 알아듣는 거 같아요. 아무튼 제가 오늘 드릴 제안은 이거였어요. 방송국 오디션을 보시는 게 어떻겠냐는 거죠. 대신, 이 방송 조건에 6개월 동안은 광고 금지예요.”

나는 얼른 아빠의 등짝을 팡팡 쳤다.

[아빠, 이거야!]

아빠가 나를 내려다봤다.

“성국이, 하고 싶어?”

“네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 * *

지금 내 눈앞에는 회귀 전에 내가 즐겨 듣던 <너만을 원해>를 부른 국민 아이돌 그룹 ‘저스트’ 다섯 명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무명에서 조금 벗어난 신생 그룹 수준이었다.

이 녀석들은 몇 년 후에 엄청나게 성공해서 국민 아이돌 그룹이 된다.

[내 열두 살 생일에 와서 노래도 부른 녀석들인데….]

나는 그날을 떠올렸다.

삼전 호텔의 가장 큰 연회장에서 열린 내 열두 살 생일에는 ‘저스트’뿐 아니라 막 떠오르는 여자 아이돌 그룹도 모두 참석했다.

그들의 첫 멘트는 이거였다.

“전성국 도련님, 열두 번째 생일 축하드립니다!”

모두들 나와 아이 컨택 하려고 애썼었는데….

‘저스트’ 멤버들은 나중에 나이를 먹은 후에 사석에서 몇 번 마주치기도 했다. 아이돌들이 대부분 그렇듯 몇은 배우, 몇은 생계형 방송인이 된다.

먼저 리더인 태형이 나에게 다가왔다.

‘저스트’는 본명을 쓰는 멤버도 있었고, 영어 이름을 쓰는 멤버도 있었다.

“네가 아빠! 그 모델이구나. 형도 그 광고 봤어.”

리더이자 메인 래퍼인 태형은 잘생긴 얼굴에 토종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곧잘 해서 팀에서 브레인으로 통했다.

나중에 의류 사업 한다며 나대던 기억이 나는데, 인성도 크게 나쁘지 않고, 자기 이익은 잘 챙기는 스타일이라 재벌가의 먼 친척쯤 되는 여자랑 결혼해서 잘 산다.

그 뒤로 키가 유난히 큰 루카스가 다가왔다.

루카스는 덩치에 비해 웃는 모습은 순수해 보였다.

순진한 웃음에 근육질 몸매. 근육돌의 시초쯤 되는 녀석인데, 생긴 것처럼 성격도 단순한 체대 오빠 스타일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와, 장난 아니게 이쁘게 생겼네. 우리보다 성국이가 더 주목받겠는걸.”

[그거야 당연한 말씀. 두고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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