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0화 (10/231)

제10화

“웃는 것도 장난 아니게 이쁘네. 나는 재현이야. 성국아. 잘 부탁해.”

눈웃음을 장착한 재현이 다가왔다.

재현은 꽃미남과로 인기가 많았는데, 나중에 복잡한 여자 문제로 여러 번 가십에 오르내린다.

“안녕, 난 범선이야. 형이라고 불러라. 아니지, 형님인가. 그건 또 조폭 같나.”

[어이, 범선! 오랜만이야.]

범선과 나랑은 꽤 인연이 있었다.

범선은 아이돌 사이에서 일명 배우상으로, 나중에 마초적인 매력의 배우로 성공적으로 전향한다.

삼전 그룹에서 후원하는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뒤풀이 자리에서 오래 술을 마신 기억이 있다.

술 매너도 좋고, 무엇보다 의리가 있었다.

삼전 그룹에서 후원하는 영화제라 평소라면 안 가던 뒤풀이도 갔었다.

[이제 마지막 한 명이 남았는데….]

“왓썹. 난 마이클이야. 잘 부탁해.”

건들건들한 포즈에 느끼한 면상.

거기다 이름도 버터 냄새 나는 마이클.

재미교포 출신인 이 녀석은 나중에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닌다.

여자와 돈 문제까지 얽히고 얽혀서 나름 국민 아이돌이란 칭호를 얻은 ‘저스트’의 얼굴에 먹칠하는 멤버이다.

마이클이 손으로 내 뺨을 슬쩍 건드렸다. 손가락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이 자식이 감히 담배 피운 손으로 날 건드려?!]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마이클이 어이없단 얼굴로 나를 봤다.

“뭐야, 얘 나 싫어하나 봐.”

마이클은 혀 꼬부라진 말투로 나를 자극했다.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너 담배 피우고 왔지? 나도 싫은데, 애는 좋겠니?”

리더인 태형이 핀잔을 주자, 마이클은 영어로 중얼거리며 구석에 찌그러졌다.

나는 다시 평온한 얼굴로 이들을 바라봤다.

엄마는 볼록 나온 배를 만지며 신기한 얼굴로 ‘저스트’를 보느라 정신없었다. 특히 잘생긴 범선을 넋 놓고 바라봤다.

[엄마, 정신 차려!]

내가 잡아당기자 엄마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나를 안았다.

“성국아, 오빠들 진짜 잘생겼어.”

[엄마보다도 어린 애도 있어.]

속내와 다르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비즈니스 대답을 해줬다.

“응!”

이제 돌도 지나서 어색하지만 걷기도 시작했고, 옹알이를 벗어난 수준의 단어도 가끔 내뱉을 수 있게 혀가 돌아갔다.

[엄마, 저 얼굴에 속으면 안 돼. 얼굴에 분칠하는 것들 말은 믿으면 안 된다는 말도 있잖아.]

엄마는 내 속도 모르고 저스트를 보며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감독이 들어오자 저스트가 일렬로 서서 동시에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가요계를 이끌어갈 저스트입니다!”

“반가워. 다들 이야기는 들었지?”

“네.”

태형이 대표로 대답했다.

“너희 숙소에서 3일 정도 촬영할 건데. 성국이는 아침 9시에 나와서 6시까지 촬영하고, 하루만 숙소에서 잘 거야. 그냥 생활 예능이니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중에 편집으로 우리가 캐릭터는 다 만들어줄게.”

“감사합니다! 감독님!”

“숙소에서는 그렇게 각 잡지들 마. 옷들도 원래 입던 것들 입고. 메이크업도 최대한 하지 말고.”

“네!”

감독은 이제 내게 눈길을 줬다.

“성국이 칭찬은 곽 감독한테 많이 들었어요. 말귀를 그렇게 잘 알아듣는다면서요?”

“저희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참, 주의 사항 아시죠?”

“방송 시작하고 6개월 동안은 광고 금지요?”

“네. 파일럿 날려보고 안 되면 금방 접을 수도 있어요. 이렇게라도 방송 타면 나중에 광고 모델 하는 건 더 유리할 거예요.”

엄마는 감독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감독은 우선 3일 정도 촬영한 것을 바탕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내보낸 후에 정규 편성 논의를 할 거라고 했다.

“근데 어머니, 만삭이시네요.”

“다음 달이 출산 예정일이에요.”

“얼른 찍어야겠네요. 근데 반응 좋으면 정규 들어갈 텐데, 어머니가 안 오면 성국이 불안해하고 그러지 않나요?”

“저도 그게 걱정인데요…. 성국이는 낯은 안 가려요.”

[엄마, 나 완전 프로야. 걱정이란 것은 하지도 마.]

감독이 내 볼을 귀엽다는 듯이 잡아당겼다.

“이 자식, 진짜 말귀 알아듣는 얼굴이네요. 완전 걱정 말란 얼굴이잖아요. 우선 촬영해보죠. 파일럿이 잘돼야 다음도 있는 거니까요.”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엄마는 부른 배를 안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도 엄마를 따라 배꼽에 두 손을 딱 모으고 인사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 감독. 이 은혜는 내가 성공하면 몇 배로 갚을 테니 걱정 마.]

* * *

드디어 첫 촬영이 시작됐다.

내가 할 일은 말갛게 씻은 얼굴로 촬영장으로 향하는 것뿐이었다.

나는 이미 이 프로그램의 끝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동글동글 귀여운 눈으로 잘 웃고, 잘 울면 멤버들 역시 나를 이해하고 같이 웃고 울고 하는 거였다.

나와 엄마는 방송국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촬영 장소인 ‘저스트’의 숙소로 향했다.

반지하 숙소 인근은 이미 스태프와 각종 촬영 장비도 가득했다.

엄마가 나를 안고 내리자 조연출이 다가와서 얼른 내 상태를 확인했다.

“성국이 컨디션 괜찮죠?”

“잠도 잘 자고, 아침도 먹였어요.”

“좋네요. 그럼 30분 후에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조금만 대기해 주세요.”

“네.”

엄마와 나는 다시 차 안에서 30분을 기다렸다.

대기 시간 동안 엄마는 가져온 책을 읽어줬다.

<왕자와 거지>였다.

똑같은 얼굴을 한 왕자와 거지가 서로의 일상을 바꿔 살아본다는 내용의 동화이다.

[이거 내 이야기잖아.]

재벌이었을 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절대 단 하루라도 누군가와 인생을 바꿀 생각 따위는 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재벌의 삶이란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였다.

“성국아, 그림만 봐도 재미있어?”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아마 내가 어떤 생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한때는 삼전 그룹의 후계자였던 전성국이었다.

그 모든 왕좌의 짐을 내려놓은 게 지금의 전성국이었다.

똑. 똑.

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창을 내리자 조연출이 배시시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촬영 곧 들어갈게요.”

“녜에!”

나는 번쩍 손을 들었다.

* * *

카메라가 돌아갔다.

나와 ‘저스트’ 주변을 에워싼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숨죽였다.

‘저스트’의 멤버들은 이미 대강 라인이 정해진 각본에 따라 각자 편안한 차림으로 거실에 모였다.

‘저스트’의 숙소였다. ‘저스트’의 숙소는 소속사와 가까운 30평대의 오래된 반지하 빌라였다.

아직 인기가 그렇게 많은 그룹은 아니어서 아파트나 주상복합으로 옮기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게 더 정감 가고,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른 아침,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막 잠에서 깬 멤버들이 나오면 문이 열리면서 아기 바구니에 든 내가 배달되는 장면부터 찍었다.

프로의 이름은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였다.

그 콘셉트에 충실한 오프닝이었다.

막 잠에서 깬 리더 태형이 아기 바구니를 들고 당황하며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이리 모여봐.”

멤버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 2박 3일 동안 함께할 나를 맞으러 모두 졸린 눈으로 나왔다.

[연기들 좀 하는데?]

몇은 자연스레 머리도 헝클고 눈에 안 띄게 메이크업도 했다.

나는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저스트’ 멤버들을 한 명씩 눈으로 훑었다.

[자, 이제 첫 장면이다. 낯선 곳에 왔으니 울어볼까?]

이게 내가 생각한 첫 장면이었다.

긴장감에 울음을 터트린 아기. 그 아기를 달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저스트’ 멤버!

[음. 흠.]

나는 목을 풀고는 혼신을 다해서 울어재꼈다.

“엄마앙! 아빠앙!”

나를 잽싸게 안아 든 것은 마이클이었다.

[눈치 빠른 녀석.]

보나 마나 분량을 챙기려는 수작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울음을 그치면 분량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어쩔 수 없군.

나는 더 목 놓아 울어재꼈다.

곧바로 꽃미남 재현이 나를 빼앗듯이 안아 들었다.

나는 타이밍에 맞게 재현을 보고는 울음을 차츰 멈췄다.

“애도 이쁜 사람 좋아하네.”

멤버들의 반응에 이번엔 덩치만 근육돌 루카스가 나를 안으려고 들었다.

“성국아, 이리 와봐. 형이야, 형.”

낯선 장소에서 당황하는 모습.

마이클이 안아 들자 우는 장면에 이어 재현이 나를 안자 잠잠해지는 것까지는 계산된 상황이었다.

갑자기 루카스는 좀 당황스러웠다.

[이 녀석과의 관계 설정을 어찌하지?]

순간, 루카스의 두툼한 손바닥이 눈앞에 보였다.

나는 얼른 루카스의 손바닥을 내 작은 손으로 콩 찍었다. 마치 놀이를 하듯이.

“성국이도 루카스가 장난 좋아하는 거 단번에 알아보네. 루카스랑 놀려고 하나 봐.”

태형의 예상대로 나는 루카스를 친구로 설정했다.

듬직한 리더 태형은 아빠.

자상한 꽃미남 재현은 엄마.

근육돌 루카스는 친구.

낯가림이 있는 범선과는 어색한 사이.

장난치기 좋아하는 마이클과는 앙숙.

나는 얼른 머리로 관계 설정을 끝마쳤다.

그러곤 방긋 웃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저스트’.]

‘저스트’ 멤버들이 모두 내 앞으로 모여들었다.

“성국아, 앞으로 잘 지내보자.”

리더인 태형이 이야기하자 모두들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조금 경계를 풀고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낯설지만, 진심으로 나를 대하는 ‘저스트’와의 첫 만남 엔딩으로 이것만큼 좋은 것은 없어 보였다.

“컷! 자, 다음 갑시다!”

감독의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 * *

쉬는 시간이 시작됐다.

이제 제법 배가 부른 엄마 옆에서 나는 ‘저스트’ 다섯 멤버들 분석을 시작한다.

집중하기 위해서 엄마의 뱃살에 얼굴을 콕 박았다.

[엄마 냄새 조아. 헤헤.]

“성국아, 엄마가 그렇게 좋아?”

“녜에!”

나는 격하게 호응했다.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내 볼에 마구 뽀뽀를 해댔다.

[엄마, 나도 이제 내일모레면 18개월이라고. 거기다 이제 동생도 생기는데 창피하게 왜 이래.]

내가 발버둥을 치자, 엄마는 나를 더 꼭 안았다.

‘저스트’의 맏형 태형이 달려오더니 간식과 물을 내밀었다.

“어머니 피곤하지죠?”

“아니에요.”

“근데 어머니, 진짜 젊으세요.”

[태형아, 너랑 동갑이야.]

“그럼 어머니, 쉬시고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하세요.”

“감사해요. 정말로요.”

엄마는 배시시 웃으며 뒤돌아가는 태형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 대체 왜 그래? 혹 쟤들 잘생겨서 그러는 거야? 어?]

엄마는 태형이 건넨 간식을 먹으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

“성국아, 저스트 멤버들 다 너무 잘생겼어.”

[엄마, 내가 아빠한테 다 이를 거야!]

“성국아, 이건 아빠한테 비밀!”

엄마가 내 입에 입을 쪽 맞췄다.

[이러면 마음 약해지는데….]

“자, 이제 촬영 다시 시작합니다!”

조연출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나를 안고 촬영장으로 향했다.

나는 두 손을 쫙 펴서 머리를 뒤로 넘기고, 내복을 탁탁 털었다.

[자. 촬영 시작해볼까.]

* * *

엄마와 함께하는 낮 촬영은 대부분 순조롭게 진행됐다.

엄마가 카메라 뒤에 어딘가에 있었고, 나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행동하기만 해도 다들 귀엽다고 난리였다.

그리고 내가 밤을 꼬박 ‘저스트’ 멤버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마지막 날 밤의 촬영이 다가왔다.

엄마는 임산부였기 때문에 아빠와 함께 근처 작은 호텔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혹시라도 있을 사건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 연출팀 몇 명이서 돌아가는 카메라를 주시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아빠는 임산부인 엄마만 호텔에 데려다주고 촬영팀과 함께 밤새 숨을 죽이고 카메라를 관찰했다.

감독도 떠나면서 나에게 딱 하나만 당부했다.

“성국아, 그냥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면 돼.”

[걱정 마, 감독. 내가 안 하려고 해도 이 나이엔 그게 조절이 안 돼.]

감독은 ‘저스트’ 멤버들에게도 단단히 주의를 줬다.

“성국이는 18개월밖에 안 된 아기야. 다들 알지?”

“네!”

“진짜 조심해야 해.”

“감독님, 걱정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마이클이 넉살 좋게 다가갔다.

“그래, 너만 믿는다.”

세상에서 단 한 명을 믿지 말라면 그건 바로 마이클이었다.

곧 촬영팀이 나가는 장면을 촬영하고는, 관찰 카메라 두 대만이 구석에서 돌아갔다.

“성국이 저녁 누가 준비할래?”

태형이 멤버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마이클이 얼른 나섰다.

“내가 할게!”

“네가?”

멤버들은 모두 의아한 얼굴로 마이클을 쳐다봤다.

“진짜 네가 한다고?”

재현의 얼굴만 봐도 마이클 이 녀석, 분량 챙기려는 욕심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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