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김미영의 차가 출발했다.
김미영의 차는 오래된 중고차였지만, 덕분에 촬영장에 만삭인 엄마와 수월하게 오갈 수 있었다.
엄마는 답답한지 창문을 살짝 내렸다.
초여름의 저녁 바람이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나는 엄마의 품에 안겨서 경쟁자 녀석의 배를 손으로 꾹 눌렀다.
“성국아, 너도 동생 어서 보고 싶지?”
[그럴 리가….]
삼전 그룹 회장 시절 나에게는 두 명의 동생이 있었다.
전태국과 전미진.
전태국은 일전에도 이야기했듯이 마이클보다 열 배, 아니 백 배는 더 사고뭉치였다.
대마부터 시작해서 각종 마약을 섭렵한 약쟁이였고, 기업 운영에는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할아버지 말씀처럼 차라리 여자나 만났으면 될 것을, 약을 해서 지 인생 지가 말아먹었다.
덕분에 빨리 후계 구도에서 밀리고, 뉴욕 지사로 내쫓아서 좋아하는 약이나 실컷 해주게 했다. 그나마 멍청해서 속은 편했다.
문제는 전미진이었다.
생긴 게 꼭 할아버지를 닮은 전미진은 욕심이 남달랐다.
언제나 나를 따라잡고 싶어 했지만, 실력이 욕심을 따라잡지 못했다.
내가 경영 쪽으로 확실히 노선을 잡자, 자신은 패션 쪽으로 노선을 과감히 틀었다.
파리 최고의 패션 스쿨을 나오고, 들어오자마자 삼전 모직을 맡았다.
결혼도 재벌가와 해서 나름 탄탄한 혼맥도 쌓았지만, 전미진은 창조보다는 모방에 능력이 있었다.
새로 론칭하는 브랜드마다 표절 시비가 일더니 실적 부진으로 끝내 철의 여인이 하던 갤러리만 물려받는다.
피가 섞인 동생들만 아니었다면 저 어느 분쟁 지역에 낙하산 하나 주고 떨어뜨려 주고 싶은 한심한 존재들이었다.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국아,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뭐긴, 동생으로 태어나는 놈이 전태국이나 전미진처럼 멍청하면 안 되는데, 그 걱정이었지. 엄마, 내가 걱정이 많아.]
나는 엄마 배를 통통 쳤다.
이때, 내 머리를 쓰다듬던 엄마의 손이 갑자기 축축해졌다.
[엄마, 갑자기 왜 그래?]
나는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구겨진 미간.
이마에 맺힌 식은땀.
“성국이 엄마, 괜찮아요?”
“언니, 저… 애가 나올 것 같아요. 윽.”
엄마는 얇은 입술을 깨물었다.
“병원으로 갈게요. 조금만 참아요.”
김미영은 다급히 핸들을 틀었다.
* * *
‘저스트’ 멤버들은 어둠 속에서 플래시를 켜고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리더 태형이 콜라를 쭉 들이켰다.
“성국이 덕분에 우리도 이제 햄버거도 먹고, 살 만하다. 그치?”
“그니까, 형. 두 달 전만 해도 우리 하루에 한 끼 먹고 그랬잖아.”
재현이 배시시 웃었다.
‘저스트’는 중소 기획사라는 약점을 가진 아이돌이라 지원 자체가 열악했다.
“근데 형,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 대박 날 줄 알았어?”
꽃미남 재현이 물었다.
태형은 햄버거를 물고는 머리를 흔들었다.
“진짜 꿈에도 몰랐지. 솔직히 이 프로그램, 다들 거절해서 우리가 한 거잖아.”
“맞아. 가수가 무대에 서야지, 뭔 애를 본다고. 다들 거절했잖아. 다들 기저귀 갈고, 애 우유 먹이고. 그런 거 하면 신비감도 사라진다고 말도 안 된다고 했잖아.”
루카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성국이가 진짜 우리 은인이야.”
범선이 나지막이 말했다.
“은인은 무슨 은인이야. 우리가 잘한 거지. 애야 맨날 나와서 웃고 울고 싸고 먹고. 하는 게 그것밖에 더 있어?”
투덜거리는 건 역시 마이클이었다.
범선은 마이클을 한심한 듯 쳐다봤다.
“마이클, 성국이 없이 누가 너 하나만으로 제대로 인정해준 적 있어?”
“그거야 무대를 더 나가면 다들 우리 매력을 시청자들도 알았을 거야!”
“하루에 데뷔하는 우리 같은 보이 그룹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하는데?”
마이클은 범선에게 대들었다.
“마이클, 대형 기획사 아이돌들은 매주 나가고, 예능도 쭉쭉 나가는데. 우리한테는 이게 정말 마지막 기회였잖아. 거기다 성국이란 진짜 무해한 아기를 우리가 케어하고, 그런 모습 보면서 시청자들이 우리 개인 캐릭터도 잡아준 거잖아.”
마이클만 입을 쭉 내밀고,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가 해맑게 웃었다.
“성국이 안으면서 나도 키운 근육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아.”
“암튼 루카스는 낙천적이야.”
재현이 침울한 분위기를 띄우려고 애썼다.
이때, 거실의 불이 들어왔다.
“어, 불 들어왔네.”
동시에 매니저가 뛰어 들어왔다.
“얘들아, 어서 준비해.”
“촬영 바로 들어가요?”
“성국이네 엄마가 둘째 낳는대! 너희도 가서 성국이 동생 같이 맞아야지!”
“형, 우리 메이크업도 다 지웠는데.”
“야, 맨날 자고 일어나서 촬영하고는 무슨 메이크업 타령이야. 방송국은 벌써 출발했대. 니들 조금이라도 늦으면 이 중요한 사건에 너희들은 몽땅 빠지는 거야! 그냥 지금 그대로 튀어나와!”
“네에!”
* * *
엄마의 진통이 계속됐다.
벌써 2시간째였다.
나는 퇴근한 아빠의 품에 안겨 있었다.
“성국아, 긴장하지 마.”
[긴장하는 건 아빠지. 아빠, 지금 나 잡은 손에 땀이 흥건해.]
나는 떨고 있는 아빠의 무릎을 꽉 잡았다.
김미영이 다가왔다.
“감독님이랑 저스트 멤버들 모두 오고 있대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김미영은 아빠와 감독에게 연락을 했다.
누가 봐도 이건 방송감이었다.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성국이의 동생 탄생!
그날을 함께하는 다섯 남자 ‘저스트’!
[김미영 매니저, 감각 좀 있네. 고생했어.]
나는 김미영 매니저의 등을 손으로 도닥였다.
토닥토닥.
저 멀리 복도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저스트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아악! 태형이다!” “루카스!!!” 같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눈망울에 슬쩍 눈물을 비치고 아빠의 셔츠를 두 손으로 앙 쥐었다.
엄마와 둘째를 기다리는 초조한 첫째의 모습이었다.
[자, 연기 시작해볼까?]
‘저스트’ 멤버들이 일제히 달려와 아빠에게 90도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스트입니다.”
“성국이 아빠 됩니다.”
“와, 아버님도 진짜 미남이시네요.”
태형은 극존칭을 했다.
[태형아, 너랑 몇 살 차이도 안 나.]
범선이 어느새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아 들었다.
“아버님, 좀 쉬세요. 저희가 성국이 볼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빠는 마다했지만, 나는 얼른 범선에게 안겼다.
보쌈집에서 일하다 온 아빠가 1시간도 넘게 나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보나 마나 피곤할 게 뻔했다.
[아빠, 좀 쉬어.]
“그럼, 잠시만 부탁드릴게요.”
‘저스트’ 멤버들의 얼굴도 긴장된 채였다.
곧 방송국 카메라와 감독도 도착했다.
“우리가 한발 늦었네요. 둘째 아직 나오기 전이죠?”
“네.”
“다행이네요.”
감독은 정말 한숨을 돌렸다. 그러곤 저스트 멤버들을 보곤 웃음이 빵 터졌다.
“다들 거울도 안 보고 뛰어나온 거지?”
“네에?”
재현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됐어. 진짜 리얼하고 좋네. 좋아. 자, 카메라 돌아간다.”
나는 멤버들 얼굴을 쭉 훑었다.
햄버거들 제대로 먹었네.
태형의 셔츠에는 양배추가 붙어 있었고, 마이클의 흰 티셔츠에는 붉은 케첩 자국이 선명했다.
나는 얼른 태형의 셔츠에 손을 툭툭 가져다 쳤다. 자연스레 양배추가 떨어졌다.
카메라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감독님, 성국이가 형 챙기네요.”
조연출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조연출, 형아 챙기는 성구기. 이렇게 자막 부탁해.]
태형은 얼른 내 머리를 쓱 쓰다듬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다들 긴장한 얼굴로 분만실 앞을 오갔다.
그렇게 2시간이 또 흘렀다.
다들 지친 얼굴이었다.
이 와중에 빛을 발한 것은 범선이었다.
나를 안은 범선은 피곤할 법도 한데, 나를 꼭 안고는 계속해서 분만실 앞을 오갔다.
태형이와 재현, 루카스가 번갈아 나를 안긴 했지만 범선이 가장 오래 나를 안고 있었다.
마이클은 내가 버둥거려서 몇 분 안지도 못하고 삐친 얼굴로 구석에 찌그러졌다.
범선은 내 등을 연신 토닥였다.
“성국아, 엄마가 고생 많이 하시겠다.”
나는 범선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앙숙 버리고, 어색한 사이로 갈아타 볼까?]
아빠가 범선에게 다가왔다.
“성국이 제가 볼게요. 이제 성국이 꽤 무거워서 힘드실 거예요.”
“아니에요. 제가 막둥이 업어 키웠거든요. 저희 어머니가 저 고등학교 때 늦둥이를 낳으셨거든요. 성국이 정도면 완전 가볍죠. 제 동생은 우량아였거든요.”
범선이 애써 미소를 지었다.
2시간이면 지칠 법도 한데, 제법이었다.
스르륵- 분만실의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뛰어나왔다.
“김소영 산모님 보호자분이요?”
“저, 저요!”
아빠가 얼른 손을 들었다.
“아버님, 탯줄 자르실 거죠?”
“네!”
“그럼, 따라 들어오세요. 곧 출산하실 것 같아요.”
“네, 네….”
아빠는 반쯤 넋 나간 얼굴로 분만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간호사님!”
감독이 뛰어 들어가는 간호사를 잡아 세웠다.
“저희 아시죠? 아기 바구니와 다섯 남자요.”
감독은 당황해서 제목도 거꾸로 말하고 있었지만, 간호사는 용케 알아들었다.
“아, 네. 근데 무슨 일이세요?”
“저희도 같이 들어가도 될까요? 얘가 그 유명한 성국이에요.”
감독은 얼른 범선에게 안긴 나를 간호사에게 보였다.
“그게….”
간호사는 당황했다.
“데스크에 물어봤더니, 보호자가 동의하시면 병원 홍보 차원에서 괜찮다고 했어요.”
순간, 아빠가 감독을 잡았다.
“감독님, 우선 아내한테 허락을 받아야 해요.”
“아차, 죄송합니다.”
“제가 들어가서 물어보고 올게요.”
아빠는 얼른 분만실 안으로 간호사와 함께 들어갔다.
그러곤 잠시 후에 뛰어나왔다.
“탯줄 자르는 장면만 찍어주실 수 있죠?”
“네, 그렇게 하죠.”
김미영이 나섰다.
“산모 얼굴은 나오면 안 됩니다.”
“걱정 마세요. 예능 아니고 다큐로 찍을게요. 저 원래 다큐 출신이에요. 걱정되시면 방송 전에 편집본 먼저 보여 드릴게요.”
“그럼, 소독 다 하시고 같이 들어가시죠.”
간호사가 재촉했다.
아빠가 급한 와중에도 뒤를 돌아봤다.
“성국아, 둘째 만날 준비 하고 있어!”
나는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둘째는 걱정이 안 됐다.
내가 걱정되는 건 엄마뿐이었다.
참, 이상했다.
저번 생에서 철의 여인도 분명 엄마였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 걱정보다는 엄마의 부재가 삼전 그룹에 끼치는 영향부터 생각했다.
[이번 생에서 삼전 그룹과 같은 게 이 가족들인가….]
나는 턱을 짧은 손으로 매만졌다.
“성국아, 너도 이제 좋은 시절 쫑이다.”
내가 생각하는 시간을 깬 건 마이클의 허접한 말이었다.
내가 만약 아직도 삼전 그룹의 후계자였다면, 마이클은 아마 어떤 일로든 엮어서 국내에서 영원히 추방시켜 버렸을 것이다.
“마이클, 성국이한테서 떨어져.”
“형이 무슨 상관이야. 괜히 폼 잡는다고 입 꽉 다물고 있어서 분량도 못 챙기지 말고, 나처럼 굴어. 이래야 시청자들은 좋아한다니까.”
“마이클, 지금 너 뭐라고 한 거야?”
“형, 아직도 분위기 파악 못 해? 나랑 성국이랑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거 시청자들이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감독님도 알아서 적절히 편집해 주시고. 이 장면, 아마 내가 성국이 옆에서 같이 울상 짓고 있으면 성국이도 이제 어른이 됐다. 그러나 마이클은 아직 어른이 덜 됐다. 뭐 이런 걸로 나갈걸.”
뒤가 싸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범선은 마이클 뒤에 선 감독을 보고는 얼른 인사를 했다.
감독은 어이없는 얼굴로 마이클을 쳐다봤다.
“마이클, 우선 촬영 제대로 끝내자.”
“예썰!”
마이클은 평소보다 더 호기롭게 대답했다.
한 번 굳은 나와의 관계성이 절대 무너질 리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때, 감독이 단언하듯 말했다.
“마이클, 네 말대로 우리가 편집으로 너 살려줬으니, 편집으로 너 죽일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