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4화 (14/231)

제14화

카메라가 갓 태어난 동생을 보는 내 모습을 잡고 있었다.

시뻘겋고 무지하게 못생긴 갓난아기.

거기다 성별은 남자.

이름은 민국.

회귀 전 나에게 남동생 탄생의 의미는 딱 하나였다.

경쟁자 등장!

하지만 지금 나는 형이 된 무한 감동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카메라가 나를 연신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나를 안은 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민국이에게 자꾸 가까이 들이댔다.

“성국아, 동생이야. 민국이.”

“밍구기.”

“성국아, 동생 이름 한 번에 안 거야? 우리 성국이 진짜 대단해.”

아빠는 감격에 겨운 얼굴로 내 얼굴에 뽀뽀 세례를 쏟아부었다.

[제발 저리 좀 가. 아무리 아빠지만, 남자가 해주는 뽀뽀는 사양할게.]

나는 바동거렸지만, 아빠는 그럴수록 더 세게 나를 껴안았다.

이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나는 얼른 유리창에 손을 딱 대고는 기다리고 기다린 동생의 탄생 앞에 감격한 형의 얼굴을 연기했다.

“밍구기. 헤.”

그러곤 해맑게 웃었다.

“촬영 그만!”

감독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야, 이거 완전 대박이야. 초대박. 이거 나가면 분명 시청률 또 오른다.”

감독은 연신 감탄했다.

“감독님, 성국이는 진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아는 것 같다니까요. 이것만 내보내도 되겠는데요.”

조연출이 잽싸게 나를 칭찬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으쓱으쓱.

범선이 내 볼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성국이 형 되더니 의젓해졌는데.”

[난 태어날 때부터 의젓했어.]

간호사가 유리창 너머에서 다시 민국이를 내밀었다.

“이제 들어가 봐야 하거든요. 마지막으로 좀 더 보세요.”

나는 아빠 품에 안겨서 핏덩이 민국이를 내려다봤다.

시뻘건 민국이는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눈빛으로 경고했다.

이제부터 절대 동생이라도 봐주는 일 따위 없을 것이라는 예고장이었다.

“그럼, 들어갈게요.”

간호사는 민국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스태프들은 철수 준비를 했고, ‘저스트’ 멤버들도 모두 숨을 돌렸다.

“성국아, 동생 생겨 좋겠다!”

루카스는 해맑게 장난도 걸었다.

[루카스, 자세히 보니 이에 양배추 꼈다고 내가 말 안 했나.]

나를 안고 있던 루카스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야! 나 이에 양배추 꼈잖아.”

“그니까 아까 차에서 거울 보라고 했잖아. 졸리다고 자더니. 쯧쯧.”

재현이 혀를 찼다.

루카스가 마이클을 가리키며 웃었다.

“마이클, 넌 케찹!”

하지만 마이클은 이번 촬영 내내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감독의 말 때문이었다.

마이클은 사이사이 몇 번이나 감독에게 가서 사과했지만, 감독은 대답도 않고 촬영만 했다.

감독이 마이클을 휙 지나치더니 다른 멤버들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다들 정말 자연스럽고 좋았어! 니들은 친근한 이미지로 승부 걸어야지. 자, 오늘은 쉬고 다음 방송 때 보자.”

감독은 웃으며 철저히 마이클을 무시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다가가 봉투를 내밀었다.

“아버님,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게 뭐예요, 감독님?”

“출산하셨는데, 제대로 된 선물도 못 준비했네요. 이건 제 개인적으로 드리는 거예요. 참, 병원비는 방송국에서 다 계산했습니다.”

“병원비도 계산하셨는데, 괜찮습니다, 감독님.”

“받으세요. 안 받으시면 제가 더 서운합니다. 솔직히 출연료야 정해진 거고, 광고 출연도 당분간 못 하잖아요.”

아빠는 어쩔 수 없이 감독이 내민 봉투를 받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독님.”

“감사는 우리가 해야죠. 성국이 덕분에 시청률 또 오르겠는걸요. 이 녀석 진짜, 뭐 연기를 아는 건지. 어떻게 카메라만 딱 들이대면 우리가 원하는 장면이 딱 나와요? 밍구기. 이 한마디에 제가 모든 시름이 다 사라졌다니까요.”

“성국이가 동생 무지 기다렸거든요.”

[설마…. 내가?]

감독이 내 볼을 슬그머니 잡았다 놨다.

“알았다, 이놈아. 동생 보고 싶었구나. 참, 아버님. 이번에는 이미 촬영한 분량도 있고, 성국이 동생 만나는 장면까지 나가서 다음 촬영 좀 여유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감독을 보고는 배시시 웃어줬다. 일종의 아부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감독.]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성국아, 나 보고 싶어도 울면 안 돼.”

“응.”

나는 고개도 끄덕였다.

“아이고, 기특한 녀석.”

자본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 빨리 파악하는 것이다.

지금 이 촬영장에서는 감독이 왕이었다.

* * *

임선미는 막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전재형이 샤워가운만 걸친 채 소파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자기야, 오늘 자고 갈 거야?”

“내일 일찍 오찬 모임 있어.”

전재형의 규칙 중 하나는 외도는 해도 외박은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건 삼전 그룹 가족들의 불문율이었다.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가족은 지킨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저 바람 상대로 만나다가 하루 이틀 자다 보면 그게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전재형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저 몇 푼이면 해결될 상대가 갑자기 안방을 넘보기 시작하고, 헤어질 때 골치가 아파진다.

임선미는 서운한 표정으로 위스키를 따라 전재형 앞에 내밀었다.

“좋아하는 거.”

“고마워.”

“자기야, 이번에 나 영화 촬영 끝나면 우리 미국이나 다녀올까?”

“그래.”

미래는 어찌 될지 몰랐다.

다만 지금 당장 싫다거나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해서 앞에 있는 여자와 싸우는 건 에너지 소비일 뿐이다.

전재형은 슬슬 임선미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임선미를 처음 만난 것은 임선미가 한창 슬럼프를 겪고 있을 때였다.

이미 하이틴 스타로 잘나가다가 성인 연기자로 변신하겠다며 찍은 파격적인 정사 신이 있는 영화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국민 여동생 임선미의 노출은 아무도 보고 싶지 않다.>

영화도 망하고, 이미지도 망한 임선미는 서서히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임선미를 구해준 건 신성중이었다.

하이틴 시절 임선미를 연예인으로 좋아했던 전재형에게 임선미를 소개해준 거였다.

임선미도 전재형의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재벌. 거기다 큰 키에 잘 관리된 외모는 40대였지만, 중후한 매력까지 있었다.

거기다 전재형과의 관계만 잘만 유지하면 삼전 전자의 전속 모델이 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이틴 스타로 벌어둔 돈은 아빠와 오빠가 사업한다고 야무지게 말아먹었고, 오히려 빚만 남은 상황이었다.

물론 전재형의 여성 편력은 연예계에서도 유명했다.

잘나가는 배우들 중에 전재형과 엮이지 않은 배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전재형은 신문에 난 삼전 전자의 광고를 보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는 임선미가 있었다.

이번에 새로 출시한 냉장고였다.

“선미야, 너 살 좀 찐 거 같은데.”

“이번에 맡은 배역이 30대 노처녀 역할이라 살 좀 찌웠거든.”

임선미는 얼마 전부터 전재형이 자신을 보는 눈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한 번에 알아챘다.

그래서 일부러 그동안 맡아온 도회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노처녀 역할도 맡은 거였다.

전재형은 그동안 좋은 발판이었고, 이제 임선미에게도 연기 변화가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전재형은 살짝 눈썹을 올렸다.

“우리 삼전 전자 가전은 젊고 세련된 도시 여자들을 대상으로 하잖아.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도 그들이 원하는 몸매는 34–24-36의 미스코리아 몸매지 넉넉한 노처녀 몸매가 아니잖아.”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 봤어?”

“그게 뭐야?”

“‘저스트’라는 그룹이 하는 예능인데, 요즘 대세거든. 지금까지는 가수나 배우 하면 신비주의 전략을 썼잖아. 근데 얘들은 지네가 사는 반지하 숙소도 다 공개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부스스한 모습. 다 늘어진 티셔츠 입은 모습까지 다 공개하면서 대중들한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가거든.”

“친근한 이미지?”

“응. 삼전 전자도 언제까지 10센티미터도 넘는 하이힐 신은 여자가 요리하는 광고나 할 거야?”

“…….”

전재형 부회장은 입을 다물었다.

전재형은 철저한 사업가였다.

임선미만큼 예쁜 연예인이야 수없이 많다. 그런데 여전히 임선미를 만나고 있는 것은 임선미만큼 말 통하는 여자도 없기 때문이다.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 할 시간이네. 자기도 한번 봐. 요즘 대중들이 원하는 게 바로 이런 거야.”

임선미가 TV를 켰다.

마침 성국이가 걸음마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어머, 성국이네.”

전재형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쟤가 저번에 너랑 광고 찍은 아기지?”

임선미를 보러 갔을 때, 대기실 문틈 사이로 해맑게 웃고 있던 성국이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마치 자신을 아는 듯 손을 흔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임선미가 전재형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저게 요즘 인기야?”

“완전 국민 육아 프로그램이라니까.”

전재형은 성국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귀엽네. 녀석.”

그런데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저 녀석, 왜 이렇게 눈에 익지….’

* * *

전재형은 오찬 모임이 끝나고 부회장실에 들어섰다.

양 비서가 뒤를 따랐다.

“오늘 오찬 모임 잘 하셨습니까?”

“반도체 공장 확장으로 골치가 좀 아프네.”

“그래도 지금 확장하시는 게 미래를 위해서 현명한 선택이신 것 같습니다.”

양 비서는 중진들 못지않은 선구안이 있어서 종종 전재형 부회장에게 조언도 했다.

전재형 부회장이 좋아하는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양 비서.”

“네, 부회장님.”

“자네도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란 프로 보나?”

“부회장님도 그 프로 아세요?”

“어제 우연히 좀 봤어.”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란 프로를 떠올리자마자 양 비서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거기 성국이란 애가 너무 귀여워서요. 저희 집 애도 너무 좋아해요.”

전재형은 턱을 매만졌다.

“그 프로 인기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양 비서는?”

“다들 육아는 한 번씩 해본 일이기도 하고. 안 했다 하더라도 할 일을 대리 체험하는 느낌도 있고요.”

“거기다 이웃에 있을 것 같은 아이와 남자 애들의 우당탕탕. 뭐 그런 건가?”

“그렇죠. 회장님, 어제 잠시 보셨다면서 다 파악하셨네요.”

임선미의 말처럼 친근함이 먹히고 있었다.

거기다 육아 대리 체험까지.

“그 성국이란 아이 좀 알아보지. 우리 세탁기 광고에도 나온 아이라며?”

“이유 여쭤봐도 될까요? 거기에 맞춰서 조사하겠습니다.”

“우리 삼전 전자도 이제 하이힐 신은 여자가 요리하는 거 말고, 친근한 이미지로 접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가전이 크지만, 반도체는 막 성장하는 추세니까 그런 우리의 기업 이미지를 그 아이의 성장과 함께 보여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네, 알겠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

양 비서가 문을 열고 나갔다.

양 비서는 나오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전재형 부회장이 아기 모델까지 관심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통돌이 세탁기 광고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긴 했지만, 광고사에서 제안도 안 했는데 직접 지시를 내린 것은 처음이었다.

* * *

엄마는 민국이를 데리고 다음 날 바로 퇴원했다.

철의 여인이 막내 여동생을 낳을 때는 한 달 동안 병원 VIP 병실에 누워 있었지만, 이때는 산후조리원도 없었고, 엄마에게는 그럴 여유도 없었다.

동시에 이 비좁은 원룸에 식구가 한 명 더 늘었다.

침대도 없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엄마와 민국이가 누웠다.

나는 가만히 다가가 민국이를 내려다봤다.

시뻘건 핏덩이가 조금씩 형체를 갖춰가고 있었다.

딱 봐도 인물은 나보다 못했다.

기럭지도 나보다 살짝 작은 것 같았다.

역시 우월한 모든 유전자는 나에게 몰빵된 게 분명했다.

엄마가 내 등을 토닥였다.

“성국아, 동생 귀엽지?”

[경쟁자 녀석이 귀여울 리가.]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성국아. 엄마, 아빠는 우리 성국이가 혼자가 아니었으면 했거든. 진짜 동생이 생겨서 다행이야.”

이게 뭔 소리야?

“엄마랑 아빠는 세상에서 혼자잖아. 부모도 없고, 의지할 형제도 없고. 그래서 결혼할 때 능력 되는 대로 낳자고 약속했어.”

나는 묵묵히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게 가족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던가?

언제나 경쟁하고, 견제해야 할 대상이었는데.

“엄마, 아빠가 민국이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기 위해 진짜 열심히 일하잖아. 엄마, 아빠가 죽으면 민국이가 우리 성국이 울타리가 되어줄 거야. 성국이가 형이니까, 민국이 잘 돌봐줄 거지?”

나는 민국이를 내려다봤다.

두 살이 어린 핏덩이.

나는 민국이의 작은 손을 잡아 쥐었다. 따뜻하고 보드라웠다.

나는 민국이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동생, 너 내 뒤통수치면 죽을 줄 알아.]

그러곤 엄마를 향해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안 봐도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문을 열자 김미영이 과일과 큰 냄비 하나를 들고 들어섰다.

“언니, 그게 다 뭐예요?”

“미역국. 내가 끓인 건 아니고, 요 앞 슈퍼 아주머니한테 부탁해서 끓였어요. 산모가 몸조리하는 동안 잘 먹어야죠. 그리고 내일부터 아줌마도 올 거예요. 집안일 하고, 성국이도 좀 봐주고요.”

“언니, 저희 그럴 돈이.”

“걱정 말아요. 이건 성국이 매니저인 내가 내는 거니까요.”

“언니….”

엄마는 말문이 막혔다.

방 안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올 것 같은.

[이건 절대 못 참지.]

나는 얼른 김미영이 가져온 과일 봉지에서 사과를 집어 방 안에 하나둘 투척하면서 까르르 웃었다.

엄마는 얼른 정신을 차리더니 나를 안았다.

“언니, 정말 감사해요. 성국이 낳고 혼자 몸조리했거든요.”

“참, 방송국에서 연락 왔어요. 2주 후에 촬영 들어가자고요. 성국아, 알았지?”

“응.”

김미영은 얼른 말을 돌렸다. 김미영도 닭살스러운 반응에는 알레르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서 이 답답한 원룸을 벗어나 촬영장에 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누워만 있는 민국이야 모르겠지만, 이제 막 걷기 시작해서 혈기가 주체가 안 되는 나에게 원룸은 너무 좁았다.

김미영은 어느새 사과를 깎아 내 손에 쥐여줬다.

나는 손에 사과를 쥐고 단맛을 입으로 쪽쪽 빨았다.

“107호, 이제 이사 좀 생각해보는 거 어때요? 성국이도 조금만 있으면 두 돌이잖아요. 애도 벌써 둘인데 원룸은 너무 좁지 않아요?”

“좁긴 해도 전 여기가 편해서요. 아직 애들 어리니까, 여기서 돈 좀 더 벌면 옮기고 싶어서요.”

“성국이가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 출연한 지도 벌써 두 달째잖아요. 출연료만 200만 원 들어왔어요. 매니저 비용 빼더라도 성국이한테 돌아갈 돈이 150만 원이에요.”

“그거 다 저축해야죠. 성국이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인데, 저희가 그걸 함부로 쓸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나는 주먹을 앙 쥐고 가슴을 탕탕 내려쳤다.

[고인 물은 바다가 될 수 없듯이, 차곡차곡 저축만 해줘 봤자 은행 좋은 일만 시키는 거라고!]

김미영이 나를 안아 들었다.

“성국이 대체 뭐라는 거야? 가슴은 왜 쳐? 이 녀석, 언제나 의견이 참 많다니까.”

“요즘은 저랑 남편이랑 이야기하면 매번 끼어들기 바쁘다니까요.”

엄마는 내 배를 손으로 간지럽히며 배시시 웃었다.

[이러면 약해지는데.]

나는 어느새 엄마를 따라 웃고 있었다.

“까르르.”

“참, 그리고요. 오늘 또 온 용건이 있어요.”

“뭔데요?”

“성국이를 광고에 쓰고 싶다는 제의가 수없이 들어와요.”

“저희 6개월 동안은 광고 금지잖아요.”

“그렇죠. 근데 그 6개월도 이제 4개월밖에 안 남았잖아요. 이미 성국이 스타성이야 입증된 거고, 광고 업계에서 난리예요.”

[내 이럴 줄 알았지. 역시 삼전 그룹을 운영하던 내 감각은 죽지 않았어.]

나는 가만히 김미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광고가 많이 들어오는 만큼 성국이 이미지를 생각해서 우선은 대기업 위주로 접근하면 좋을 것 같아요.”

“대기업이요?”

“저번에 통돌이 세탁기 광고했던 삼전 전자에서 전속 모델 제의가 왔어요. 물론 금액도 업계 최고액을 제시했고요.”

이번 생은 묘하게 삼전 그룹과 엮이는 기분이었다.

삼전 그룹의 장남에서 가난한 집 첫째로 태어나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삼전 그룹의 도움을 조금만 받는다면 좀 더 빨리 이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의 표정에 걱정이 앞섰다.

“남편이랑 상의해 봐야겠지만,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

“나 말 돌리는 거 못 하잖아요. 솔직히 이야기할게요. 성국이 지금 가장 예쁘지만, 아이들 크면서 얼굴이 수십 번 바뀐다잖아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잖아요.”

[난 역변 아니고 정변의 아이콘이 될 거야. 걱정 마, 매니저.]

“삼전 전자에서 제시한 조건 너무 좋고요. 성국이 엄마, 아빠가 성국이 미래를 위해서라면 어릴 적에 광고로 돈 착실히 모아서 어서 자리 잡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엄마는 여전히 불안한 눈빛이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했어, 엄마. 지금은 닥치는 대로 뭐든 해서 돈 벌 때야. 내가 조금만 더 크면 주식도 하고 부동산도 해서 엄마, 아빠 편하게 살게 해 줄게.]

나는 진지하게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물론 엄마는 내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으앙. 으아앙!”

하필 이때 민국이 녀석이 울음을 터트리는 통에 우리의 진지한 대화는 더는 불가능했다.

엄마는 얼른 민국이를 안았다.

“언니, 남편이랑 상의해 볼게요.”

“그럼, 우선 먼저 만나나 보는 건 어때요? 나도 삼전 기획에서 근무해서 잘 알잖아요. 삼전 전자 광고 전속 모델은 정말 놓치기 아까운 자리거든요.”

“딱 하루만 고민해 볼게요.”

“으앙. 으아악!”

민국이가 울어댔다.

나는 시끄러워서 귀를 두 손으로 닫아버렸다.

엄마는 이제 나보다는 울고 보채는 민국이 달래기에 바빴다.

“민국아, 배고파? 잠깐만 기다려.”

엄마가 우유를 탈 동안 나는 민국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더는 바쁜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떼쓰지도 않았다. 배고프거나 기저귀가 불편할 때만 성질을 부렸다.

[이렇게 어른이 되는 거겠지.]

나는 쓸쓸히 홀로 사과의 단물을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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