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나는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이 추카하미다. 생이 추카하미다. 따랑하는.”
“김 매니저님, 생일 축하합니다.”
뒷부분은 엄마와 아빠가 같이 불렀다.
아빠가 케이크를 급히 상 위에 올렸다. 케이크에는 초가 딱 하나 꽂혀 있었다.
“촛불 켜야지, 자기야.”
“어… 어.”
아빠는 부리나케 초에 불을 붙였다.
김미영은 놀란 얼굴로 엄마와 아빠를 바라봤다.
“언니가 지난번에 지나가는 말로 성국이 돌 지나고 일주일 후가 자기 생일이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때 성국이 돌잔치 때 같이 해서 너무 좋았다고요. 자기 생일은 어차피 못 챙기는데, 남 생일 챙기면서 자기도 생일 한 기분이라서요.”
[아하. 그래서 내 돌 때 고기까지 가지고 왔군.]
난 오랫동안 김미영의 그날 행동이 궁금했다.
이제야 그 의문이 풀렸다.
“그, 그렇지만.”
김미영의 목이 살짝 멨다.
[뭐 이런 소소한 것에 감동하고 그래? 이 케이크, 길 건너 제과점 거잖아. 얼마 안 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새 한 손은 보쌈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몸이 기억하는 맛이라더니.]
나는 아빠가 야들야들하게 삶은 보쌈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매니저님, 소원 빌고 초 부세요.”
“진짜 고마워요. 두 분 다요. 그리고 성국이도요.”
[그럼,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나 모델료 장난 아닌데, 내가 직접 노래도 불렀잖아. 김 매니저, 앞으로 충성해.]
김미영은 눈을 감더니 초를 훅 불었다.
동시에 엄마, 아빠의 힘찬 박수가 터졌다.
민국이는 뭣도 모른 채 히죽히죽 웃어댔다.
나는 민국이의 입에 젖병을 밀어 넣었다.
[너랑 나랑은 지금부터 입 닥치고 조용히 먹어주는 게 엄마, 아빠 도와주는 거야. 알아들어, 전민국?]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민국이는 젖병을 안고 쭉쭉 빨았다.
“언니, 어서 먹어요.”
“정말 고마워요. 부모님 돌아가시고, 친구들이 챙겨주기도 했는데… 시집가니까, 얼굴 보기도 힘들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생일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보냈는데….”
“언니, 앞으로는 우리가 챙겨줄게요.”
“말이라도 고마워요. 어서 먹어요.”
모두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는 술까지 한 잔 들어가자, 누가 먼저 연애를 걸었네, 혹은 결혼 전에 누가 더 인기가 있었네. 그런 어쭙잖은 이야기를 늘어놨다.
[하아, 역시 20대는 아직 애야, 애.]
나는 데구루루 굴러가서 젖병을 다 비우고 졸린 눈을 비비고 있는 민국이의 배를 도닥거렸다.
[경쟁자 녀석아, 어서 잠이나 자. 네가 일찍 자야, 내가 오늘은 엄마 품에 안겨 잔다고.]
토닥토닥.
민국이는 어느새 눈을 스르르 감았다.
까만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마늘 한쪽을 올려놓은 것 같은 작은 코에 오물거리는 입술이 꽤 귀여웠다.
[좀 귀여운데?]
나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이 녀석은 내가 이뤄놓은 모든 부를 호시탐탐 노리는 적이 될 수 있다.
[정신 차리자, 전성국.]
* * *
엄마와 아빠가 맥주를 더 사러 간 사이에 김미영과 나만 단둘이 남았다.
민국이는 자고 있으므로, 없는 셈 쳤다.
김미영의 눈시울이 좀 붉어지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성국아.”
[왜 불러?]
“사실은 너희 엄마, 아빠 참 많이 싫었거든. 젊은 애들이 책임감도 없이 좁은 원룸에 살면서 애나 덜컥 가지고. 애들은 어쩔 거야.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근데, 니네 엄마, 아빠 정말 좋은 사람들이야. 가난하지만 너희들 위해서 허튼돈도 안 쓰고, 성국이 네가 벌어온 돈도 다 저축하잖아. 성국아, 넌 정말 좋은 부모 만난 거야.”
김미영은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속내를 털어놨다.
물론 나는 그녀의 말을 다 알아들었다.
처음 이 가난한 집구석에 태어났을 때만 해도 눈앞에는 절망뿐이었다.
다섯 평 원룸에 고아 출신 부모.
미래도 불투명한 주방 보조.
대한민국은 이미 가능성의 나라가 아니었다.
쥐고 태어난 수저가 평생을 좌지우지하는 나라였고, 안 봐도 그들의 미래는 뻔해 보였다.
그게 인생이고 현실이다.
그런데 이들은 달랐다.
사랑으로 나를 감쌌고, 진심으로 나를 대했다.
진짜 부모라면 이런 거겠지?
나는 생각에 빠졌다.
술기운이 살짝 오른 김미영이 내 뺨을 툭 찔렀다.
“성국아, 앞으로 행복만 하자. 나 잊지 말고.”
[당연히 안 잊지. 김 매니저, 내 신념이 하나 있어. 내게 먼저 손 내밀어준 사람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김 매니저는 우리 엄마, 아빠 빼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먼저 손 내밀어준 존재야. 그러니까 앞으로 잘해보자고. 우리의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할 거야. 두고 봐.]
나는 작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김미영은 영문도 모른 채 내 손을 꼭 잡아 쥐었다.
[계약 완료!]
나는 배시시 웃었다.
* * *
삼전 전자의 전속 모델, 전성국!
파격적인 대우!
각종 일간지의 탑을 장식했다.
이 시절 누가 가장 인기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신문 가판대를 보면 됐다.
그곳에 내 이름 세 자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엄마는 기분 좋게 내 이름이 쓰인 스포츠 신문을 보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국아, 엄마가 잘 간직해둘게. 나중에 우리 성국이가 글 읽을 줄 알게 되면, 스포츠 신문 1면 난 거 엄마가 보여줄게.”
[글은 지금도 읽을 줄 안다고. 나중에는 더 큰 기사가 뜰 거니깐 기대해, 엄마. 물론 스캔들은 아니야.]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자, 성국아. 우리 이제 촬영 가야지. 준비해볼까?”
오케이!
엄마는 얼른 세수를 시키고, 옷을 입혔다.
“성국이 이제 많이 커서 옷 좀 사야겠네. 이건 이제 민국이 물려줘야겠네.”
팔목 위로 쑥 올라온 내복을 보더니 엄마가 중얼거렸다.
이때,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 언니 왔나 보다.”
엄마는 얼른 현관문을 열었다.
김미영은 큰 쇼핑백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성국이 엄마, 이거 성국이 입혀요.”
“이게 뭐예요?”
“유아복 협찬이 들어왔어요. 방송 노출이나 이런 조건 없어서 몇 벌 받아왔어요.”
나는 얼른 쇼핑백으로 기어갔다.
엄마, 내가 말이야. 재벌일 때는 완전 패셔니스타였다고. 옷 잘 입는 기업인에 뽑히기도 했단 말이야.
“응차!”
나는 있는 힘을 다 끌어모아 쇼핑백을 뒤집었다.
프렌치 시크 스타일의 유아복이어서인지 내 취향에도 제법 잘 맞았다.
오늘은 이 티에, 청바지를 입고.
나는 마음에 드는 티와 바지를 바닥에 툭툭 내던졌다.
[엄마, 나 이대로 입을 거야.]
엄마가 나를 얼른 안아 들었다.
“언니, 진짜 그냥 입어도 돼요?”
“나도 몇 번 확인해 봤는데, 그냥 협찬해주는 거래요. 혹 오가다가 성국이 사진이 찍히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대요.”
나는 얼른 브랜드를 확인했다.
쁘띠꾸숑. 아기 돼지? 기억해 두겠어.
“안 그래도 성국이 옷 사야 했는데, 잘됐네요.”
엄마는 얼른 내가 고른 옷을 들어 입혔다.
“성국이는 옷도 잘 고르네.”
김미영이 내 등을 도닥였다.
“참, 성국이 엄마. 오늘 촬영 ‘저스트’ 멤버들이랑 할 것 같아요.”
“진짜요?”
엄마의 눈이 반짝였다.
‘저스트’ 촬영을 마치면서 제일 아쉬워한 게 엄마였다.
“성국이 엄마, 범선이 볼 생각에 신난 거죠?”
“언니, 티 나요? 진짜 범선 씨, 사람도 진국이고 너무 잘생겼어요.”
엄마의 입가가 연신 올라갔다.
엄마도 여자였지.
[엄마, 앞으로 내가 더 대단한 사람들 많이 만나게 해줄게. 체통을 지켜.]
나는 엄마 등을 토닥였다.
* * *
반년 만에 찾는 삼전 전자 광고 촬영장이었다.
반년 사이에 내 위상이 바뀐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성국 님’이라는 표시가 붙은 전용 대기실이 생겼고, 대기실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각종 과일과 과자가 놓여 있었다.
엄마가 바나나를 내밀었다.
“성국아, 바나나 먹자.”
“시러.”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촬영 전에 괜히 얼굴이 붓거나 하면 곤란했다.
“성국아, 촬영하려면 뭐 좀 먹어야지.”
[엄마, 나 프로야. 핼쑥해 보여야 사진발 잘 받는다고.]
촬영을 따라온 민국이만 열심히 과자를 주워먹고 있었다.
똑. 똑. 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저스트’ 멤버들이 모두 대기실로 들어왔다.
“성국아!”
못 본 사이 근육이 더 커진 루카스가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나를 안아 들었다.
“성국이, 엄청 무거워졌네.”
[당연하지. 나 이제 15킬로그램야.]
리더인 태형이 나를 얼른 안아 들었다.
“전성국, 이 복덩이. 성국아, 네가 딱 집은 곡 <거짓이야>가 지금 5주 연속 1위 했어.”
[뭘 그런 걸로 고마워하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루카스가 내 볼을 살짝 잡았다.
“이 녀석 완전 으쓱인데. 성국아, 형들 안 보고 싶었어?”
히죽히죽.
나는 애매하게 웃었다.
대답하기 곤란할 땐 웃으면 다 해결됐다.
“보고 싶었구나?”
“녜에!”
[그래, 대답해줬다. 됐냐들?]
범선이 루카스에게서 나를 받아 들었다.
“성국아, 이제 너 진짜 무겁다. 덕분에 1위 많이 했으니까, 성국이 가장 좋아하는 거 뭐 사줄까?”
[땅과 주식. 그런 것 좀 사주는 게 어때?]
“뭐라고 종알거리는 거야, 이 녀석.”
재현은 옆에서 그새 더 예뻐진 얼굴을 들이밀었다.
조연출이 들어왔다.
“30분 후에 리허설 할게요.”
“네!”
저스트와 함께 나도 손을 번쩍 들었다.
태현이는 리더답게 엄마에게 가서 오늘 촬영을 설명했다.
“어머니, 콘티 보셨죠?”
“네.”
“저희랑 성국이가 재미있게 놀다가 거실 어지럽히면, 삼전 전자 청소기로 거실을 확 닦는 거래요.”
“성국이 잘 부탁드려요.”
“저희가 성국이한테 잘 보여야죠. 성국이 덕분에 광고도 촬영하는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먼저 전속 모델 계약을 한 이후에 ‘저스트’와 계약을 한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다 내 덕분이었다.
그런데 마이클이 보이지 않았다.
“근데… 마이클 씨가 안 보이네요.”
김미영이 내 마음을 읽고 마이클을 찾았다.
“사실은요. 마이클은 ‘저스트’에서 탈퇴하기로 했어요.”
진짜?
좀 놀라운 사실이었다.
내 기억으로 마이클은 저스트 3집 이후에 탈퇴했었다.
“아무래도 저희랑 하고픈 음악이 안 맞는다고 회사랑 상의해서 나가기로 했어요. 발표는 다음 주에 나갈 건데요. 광고는 다음 달에 나가는 거라, 저희들만 광고 촬영하기로 했어요.”
“어머, 아쉽네요.”
엄마는 아쉬워했다.
[엄마, 마이클은 없어도 돼.]
나는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 시원했다.
대한민국의 기업인과 연예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도덕성이었다. 마이클은 그 도덕성이라는 게 없는 놈이었다.
“와, 이게 얼마 만이야!”
나의 첫 삼전 전자 광고 촬영을 맡아준 곽 감독이 나를 안으려고 다가왔다.
안 본 사이 좀 더 수염이 자랐고, 살도 좀 더 찐 모습이었다.
[감독, 아무리 카메라 뒤에 선다지만, 다이어트 좀 해야겠어.]
“성국이 이 녀석, 여전히 종알거리는 게, 말 많네.”
“안냥하세요.”
나는 세 살의 어눌한 발음으로 감독에게 배꼽 인사를 했다.
“아이고, 말도 진짜 많이 늘었네.”
감독의 시선이 기어 다니는 민국에게 갔다.
“이 녀석이 성국이 동생이군요.”
“네. 민국이에요.”
“동생도 부모님 닮아서 인물 좋네요.”
[감독, 그래도 나보다는 못하지?]
“성국이 동생도 기회 되면 이쪽 일 시켜보세요.”
감독이 민국이를 보더니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 말에 과자를 입에 넣고 쪽쪽 빨고 있는 민국이를 찬찬히 쳐다봤다.
나보다는 못한 이목구비.
아직 좀 멍청한 것 같지만, 헤벌쭉 웃을 때는 봐줄 만했다.
나 정도의 스타성은 없지만, 아기 모델 정도 하기에는 나쁘지도 않을 것 같았다.
머리가 나쁘면 얼굴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흠.”
내가 턱을 매만지자, 곽 감독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그 포즈 다시 한번 해볼래?”
이거?
나는 턱을 매만지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거! 성국아, 이 포즈 이따가 카메라 앞에서 할 수 있지?”
[그걸 말이라고 하시나, 감독. 나 전성국이야.]
곽 감독의 목소리가 커졌다.
“막 어질러진 거실 볼 때 이 포즈 지으면 딱이겠어. 자, 10분 후에 촬영 들어갑니다. 다들 준비해 주세요!”
감독은 얼른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얼른 거울을 보며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졌다.
[이건 자신 있지.]
사실 이건 재벌 시절부터 나의 특허 포즈였다.
재벌 시절 청문회에서 찍힌 이 사진이 한때 인터넷에 도배되기도 했었다.
생각하는 전성국 회장, 웃음 참는 전성국 회장, 립밤 바르는 전성국 회장 등등 내 포즈에 별 시답잖은 수식어를 붙여서 한때 유행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며 나의 시그니처 포즈를 쓱 지어봤다.
[오늘도 완벽하군. 자, 촬영 시작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