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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32화 (32/231)

제32화

엄마는 맥주를 몇 모금 더 들이켰다.

“소영아, 진정하고.”

“너무 속이 상해서 그래. 이렇게 똑똑한 애한테 내가 너무 부족한 거 같아서.”

[엄마, 나한테는 누가 와도 부족한 부모야. 내가 너무 완벽한 것을 어떻게 하라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빠는 시계를 쳐다봤다. 벌써 9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소영아, 나 정리 시작할게. 성국이 좋아하는 뉴스 틀어주고 있어. 맥주는 조금만 마시고.”

“응.”

엄마는 나 보라고 뉴스를 틀어줬다.

삼전 그룹이 경기도 몇 군데를 반도체 공장 부지로 고민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동탄이구만. 다음은 동탄 아래 평택이고.]

나는 내 짧고 오동통한 손을 바라봤다.

[10년만 늙었어도 땅 사두는 건데….]

엄마는 맥주를 마시며 나를 쳐다봤다. 맥주 덕분인지 아까보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이었다.

“성국아, 성국이는 뉴스가 재미있어?”

“녜에. 엄마.”

나는 엄마를 힘차게 불렀다.

“왜에?”

“동탄.”

[아차, 화성이라고 해야 하나.]

“동탄? 그게 뭐야?”

“엄마.”

“성국이가 오늘따라 엄마를 많이 찾네. 왜에?”

“땅.”

나는 엄마에게 해맑게 말했다.

“땅? 그걸 왜?”

“땅. 사고파.”

“땅을 사고 싶다고?”

막 주방을 정리하고 나오던 아빠가 문득 멈춰 섰다.

“소영아, 지금 성국이가 땅 사고 싶다고 한 거야?”

“그런 거 같긴 한데….”

[그런 것 같은 게 아니라, 땅 사고 싶다고! 내가 삼전 그룹 이동하는 땅 다 안다고. 거기 근처 어디라도 사면 대박 나는 건 한순간이야, 엄마. 아빠!]

나는 중얼거렸지만, 역시 다섯 살은 아직 한계가 있었다.

아빠가 얼른 나를 안아 들었다.

아빠는 좀 전과 달리 해맑은 얼굴이었다.

“소영아, 내가 주방 정리하면서 생각해 봤거든. 성국이가 천재는 맞는 거 같고.”

[당연한 말씀.]

“네가 놀란 것도 알겠는데, 우리가 성국이 진짜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오빠,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린 고등학교밖에 못 나왔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많이 배운 사람들이었으면 성국이가 마음대로 공부하게 못 했을지도 몰라. 성국이가 어릴 적에 뉴스 좋아해서 많이 틀어주고, 책도 읽고 싶은 거 다 사주고 했잖아. 그게 오히려 좋은 교육인지 몰라. 애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펼치게 둔 거잖아.”

“그런가….”

엄마는 영 못 미더운 눈치였다.

나도 아빠의 가설이 믿음직하진 않았다.

나의 이 많은 지식과 능력은 사실 혹독한 삼전 그룹의 스파르타식 교육 덕분에 탄생한 것이었다. 물론, 나의 뛰어난 머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히 이번 생에서는 엄마, 아빠가 조금 가방끈이 짧은 게 도움이 되긴 했다.

겨우 다섯 살짜리가 <맨큐의 경제학>을 잡는다고 사주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아빠의 품에 폭 안겼다.

평소 같으면 발버둥을 치고, 권투 자세를 취하며 놀아달라고 했겠지만 오늘따라 아빠가 기특해 보였다.

[이건 보나스.]

나는 아빠의 볼에 쪽 입도 맞췄다.

아빠의 입술이 승천하는 게 보였다.

“봐봐. 성국이도 내 말이 맞다고 하잖아.”

“그런가…. 자기야, 그래도 성국이가 땅 사달라고 한다고 사주면 안 돼.”

[엄마, 내 돈으로 내가 살 거야!]

“성국이 돈으로 성국이가 산다고 하면 말릴 수 없지.”

[옳지! 아빠, 오늘 좀 도움이 되네.]

나는 얼른 아빠에게 또 뽀뽀를 날렸다.

“소영아, 근데 진짜 성국이가 천재면 우리 어디 기관에 가서 아이큐 검사나 이런 거 받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요즘은 영재들은 특별 교육도 어릴 때부터 시킨다고 TV에서 그러더라고.”

“내가 미영 언니랑 상의해보고 알아볼게.”

“소영아, 근데 너무 신기하지 않아?”

“뭐가?”

“어떻게 나랑 너 사이에서 이런 천재가 태어났을까?”

[내 말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빠는 유모차에서 자고 있는 민국이를 쳐다봤다.

“소영아, 설마 우리 민국이도 천재 아닐까?”

[아빠! 그건 아니지!]

* * *

[훗, 이건 껌이지.]

아이큐 테스트 검사지가 내 눈앞에 놓여 있었다.

내가 TV만 보고 영어를 배웠고, 원어민 선생님인 토마스와 막힘없이 영어로 이야기를 나눴다는 사실을 안 양 비서 아저씨는 부모님께 영재 테스트를 권했다.

유치원이 쉬는 날, 나는 일하는 아빠 대신 엄마와 김미영 매니저와 영재 테스트를 받으러 기관에 와 있었다.

영재 테스트라고 해도 크게 어려운 건 없었다.

처음엔 여러 아이들과 평범하게 어울리며 내가 사고하는 방식이나, 글을 해석하는 능력 등을 관계자가 지켜보고 평가했다. 여러 가지 평가가 이어졌고, 이제 마지막으로 아이큐 테스트가 시작됐다.

나는 얼른 테스트를 마치고, 엄마를 보며 손을 들었다.

“끄읕!”

관계자가 얼른 들어오더니 테스트지를 걷어갔다.

“양 비서님이 부탁하셔서 바로 결과가 나오도록 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결과 안 봐도 뻔해. 나 저번 생에서 167이었다고. 그 아이큐가 하늘로 날아갔겠어, 땅으로 꺼졌겠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 * *

“오늘 성국이가 하는 행동이나 학습 능력을 관찰한 결과,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모두들 천재 아니냐고 다들 그러더라고요.”

앞머리를 한껏 올린 긴 머리의 여자가 나에 대해서 설명했다.

엄마는 살짝 초조해 보였다.

나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 엄마 아들 천재 맞아.]

“그런데 말이에요.”

[응, 뭐가 그런데야? 앞에 좋은 이야기 했는데, 그런데 들어가면 반전이 있다는 건데….]

여자는 테스트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테스트지에는 각종 수치를 그래프로 그려놓은 표가 있었다.

학습 능력과 인지, 사고 능력 모두 다 최고치로 그래프를 뚫고 나갈 기세였다. 그런데….

“아이큐는 너무 평범해요. 이런 아이라면 적어도 130 이상은 되어야 할 텐데. 성국이는 121입니다.”

[…뭐, 뭐라고? 잠깐만,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내 아이큐가 121이라고?]

나는 너무 놀라 여자를 다시 빤히 쳐다봤다.

[여자, 다시 말해봐. 거짓말이지? 나, 저번 생에서 아이큐가 167에 멘사 회원이었다니까!]

김미영도 의아한 얼굴이었다.

“선생님, 다른 게 이렇게 좋은데 아이큐만 나쁠 수가 있나요?”

“121도 나쁜 건 아니에요. 이 정도면 평균보다 높은 편이에요. 다만, 성국이의 학습 능력이나 기타 모든 게 상위 0.1프로에 속한다고 말하는 것도 미안할 정도로 최고치인데, 아이큐가 거기에 비해 평범한 거죠.”

[아니야, 믿을 수 없어.]

나는 여자가 내민 테스트지를 얼른 앞으로 당겼다.

그런데 진짜 아이큐는 121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여자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행동하는 것도 정말 다섯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거든요. 아무래도 아이큐 테스트 때 성국이가 꾀를 부린 것 같아요. 너무 뛰어난 아이들 사이에서는 종종 있는 일이에요.”

“그런 거죠?”

엄마는 그제야 안심했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절망했다.

[나 사실… 정말 열심히 풀었어. 나의 온 힘을 다해서 아이큐 테스트 한 거라고….]

어깨가 쭉 처졌다.

선생님은 여러 가지 지표를 보여주며 엄마와 김미영 매니저에게 설명했다.

“성국이는 정말 다른 분야에서는 독보적이에요. 솔직히 어느 성인보다도 뛰어난 이해력과 어휘력을 가지고 있어서 저도 무척 놀랐어요.”

나는 더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내가 아이큐 121이라니! 평범이라니! 이번 생에서는 얼굴만 주고 머리는 안 준 건가!]

“성국아, 다음 스케줄 가야지?”

[일 안 하기로 했는데, 무슨 스케줄?]

“전미진이랑 같은 반이라며?”

김미영 매니저가 물었다.

“네에에.”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양 비서님이 미진이가 너 생일에 초대했다고 하던데, 맞아?”

[아, 깜빡했네. 그만큼 안 중요하단 거야. 안 갈래.]

나는 의자를 빼고 일어나 뒷짐을 지고 뚜벅뚜벅 걸었다.

“미진이가 엄마랑 나도 다 초대했는데….”

[전미진이 초대한 게 아니라 양 비서 아저씨가 같이 오라고 했겠지.]

나는 잠시 멈춰서 곰곰이 생각이라는 것을 했다.

전미진은 물론 정말 너무 싫은 여동생이었다. 물론 저번 생에서.

이번 생에도 엮일 일 같은 것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미진의 약점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얼빠라는 사실.

더불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간과 쓸개를 스스로 갖다주는 성격이라는 것.

어차피 지금 전미진은 삼전 그룹 유치원의 피라미드 제일 꼭대기이다.

삼전 유치원에서 흙수저를 담당하고 있는 나로서는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었다.

나는 겨우 기운 차려서 엄마에게 걸어갔다.

“엄마. 선물 사야 해.”

“그래, 가는 길에 백화점에 가서 선물 사자. 근데, 그런 부잣집 딸한테 없는 게 있을까?”

[걱정 마. 내가 아니까.]

나는 먼저 문을 박차고 나갔다.

* * *

“꽃 사주고 싶어, 성국아?”

“네에!”

나는 꽃가게 안을 두리번거리다 핑크빛 장미를 골랐다.

장미 싫어하는 여자 못 봤고, 핑크 싫어하는 여자아이도 못 봤다.

전미진도 특별히 다를 게 없는 아이였다.

김미영은 꽃가게에 있는 핑크색 장미를 모두 결재했다.

“언니, 다른 선물은 안 사도 될까요?”

“다른 것은 뭘 사야 할지 모르겠어요. 난 결혼도 안 했잖아요.”

“저도 딸은 없어서….”

[내가 꽃 들고 들어가면 그게 곧 선물이야.]

그리고 내가 내민 꽃을 받아 든 전미진은 정말 입이 찢어져라 미소 지었다.

“와, 너무 예뻐.”

“생일 축하해, 미진아.”

“성국아, 너무 고마워. 이리 와.”

전미진은 내 손을 잡고 한남동에 위치한 자택 내 별채로 이끌었다.

별채는 아빠가 집에서 손님들을 대접할 때 주로 사용했지만, 종종 자식들의 생일 파티나 엄마의 모임에도 이용했다.

구석에는 삼전 그룹 유치원의 A반 원생 모두와 그들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익숙한 얼굴도 몇 있었다.

검찰총장의 손자인 김주성의 어머니는 삼전 그룹 전재형 회장과는 사촌지간이었다. 계열사 하나 맡아서 독립한 집안이었다.

삼전 병원의 병원장 손녀 이세희의 어머니는 한때 유명한 가수였다.

다들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인물들.

전미진은 핑크 장미 꽃다발을 안아 들고는 철의 여인에게 가서 자랑을 했다.

“엄마, 성국이가 사왔떠.”

“센스 있구나.”

철의 여인은 나를 쓱 한번 쳐다보고는 엄마를 쳐다봤다.

철의 여인의 시선이 엄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훑었다.

[왜 저런 눈으로 보지? 설마….]

철의 여인이 바로 옆자리를 가리키며 엄마를 불렀다.

“성국이 엄마, 여기 앉아요.”

“아, 네.”

엄마는 바로 철의 여인 옆자리에 앉았다.

[흠…. 불안한데.]

철의 여인은 겉으로는 우아한 척했지만, 사실 사람들을 철저히 계급으로 나누고 자신이 말을 섞을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했다. 그런데 엄마를 옆으로 부르다니…. 뭔가 개운치 않았다.

나는 자연스레 전미진의 옆자리에 앉았고, 철의 여인과도 아주 가까운 자리였다.

철의 여인과 엄마의 대화를 감시하기에 딱 좋았다.

전미진은 나에게 케이크도 먼저, 음식도 먼저, 음료도 먼저 건넸다.

“성국아, 이거 먹어.”

“고마워.”

모두 나를 주시하는 게 보였다.

이미 유치원에서 수제 햄버거 때문에 일어난 소동은 모두 알 터였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음식을 먹었다. 괜히 엄마가 있는 자리에서 그런 소리를 다시 듣기는 싫었다.

철의 여인이 엄마에게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성국이 아버지는 보쌈집 하신다고요?”

“네, 아파트 상가에서 조그맣게 하고 있어요.”

그 말에 원생들 엄마들은 모두 놀란 눈치였다.

그러곤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속삭였다.

철의 여인은 엄마에게 마카롱을 건넸다.

“커피랑 드시면 맛있어요. 제가 파리에서 좋아하던 건데, 이번에 들어올 때 많이 사왔어요. 파리 가봤죠?”

“아니요. 저는 태어나서 외국 나가본 적이 없어요. 제주도도 아직 못 가봤어요.”

그 말에 엄마들의 눈짓은 더 빨라졌다.

철의 여인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일부러 엄마를 불러 질문을 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앙 쥐었다.

[감히 우리 엄마를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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