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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42화 (42/231)

제42화

잠시의 침묵이 이어졌다.

전재형 회장이 나와 전태국을 번갈아 봤다.

“태국이는 원래는 내일부터 다닐 학교 탐방하기로 했는데, 모레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성국이는 내일 유니버설 스튜디오 가는 대신 나랑 태국이 형이랑 샌프란시스코로 벤처 박람회 견학하자.”

[진짜?]

“성국이 유니버설 스튜디오 못 가서 실망한 거 아니지?”

“전 더 좋아요.”

나는 배시시 웃으며 햄버거를 앙 깨물었다.

그까짓 유니버설 스튜디오 대신 내가 이번에 원하는 것은 일론 머스트와의 대화였다!

일론 머스트는 현재는 페이썬의 전신인 T.com을 운영 중이지만, 곧 페이썬을 설립하고 억만장자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전기 자동차와 우주여행을 현실화시킬 것이다.

이 회사들 모두 상장되자마자 사들이는 게 내 목표 중 하나이다.

* * *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자마자 전태국과 나의 일정은 시작됐다.

전태국은 나랑 같이 다니는 게 싫은 건지, 놀고 싶은데 벤처 박람회 같은 데나 와야 하는 게 짜증 난 것인지 아침부터 예민하게 굴었다.

“양 비서, 이 꼬맹이랑 오늘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하는 거야?”

“오전 중에는 전재형 회장님께서 반도체 관련으로 미팅이 잡혀 있으셔서요. 오후에 같이 벤처 박람회로 이동하실 겁니다. 오전에는 호텔에서 편히 쉬셔도 됩니다.”

“그럼, 난 방에 있을게. 잘 테니까 11시에 깨워줘.”

“네, 도련님.”

전태국은 툴툴거리며 방으로 갔다.

양 비서는 홀로 남겨진 나에게 물었다.

“성국이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벤처 참여 기업 참가자 명단 없을까요?”

“그건 왜?”

[왜긴 일론 머스트가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하려고 하지.]

나는 속마음을 숨긴 채 빙긋 웃으며 양 비서의 손을 잡았다.

“궁금해떠요.”

“성국이는 정말 뭔가 다르구나. 내가 구해볼게.”

“녜에! 감따합니다, 아저씨.”

나는 최대한 애교를 장착했다.

다섯 살 어린이가 되어서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아무도 이 어린아이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어른이 되면 행동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생겼다. 더군다나 중요한 자리에 앉은 사람일수록. 어쩔 때는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의 의미까지 미리 헤아리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다섯 살 아이의 행동엔 별 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전재형 회장이야 후계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그렇겠지만, 양 비서야 그저 똑똑한 아이라고만 생각할 것이다.

양 비서는 1시간 만에 참가자 명단을 가져다줬다.

거기에는 일론 머스트가 있었다!

* * *

차가 샌프란시스코의 벤처 박람회장으로 향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져온 옷 중에서 나름 가장 근사한 옷을 입었다.

스트라이프 셔츠에 청바지에 운동화. 어린아이지만, 나름 격식 있는 옷차림이었다. 예전에 협찬받은 브랜드였는데, 커서 못 입다가 이제야 입게 됐다.

나는 셔츠 깃을 매만졌다.

양 비서가 얼른 다른 부분도 확인했다.

“성국아, 오늘 멋진데?”

“감따합니다.”

나는 배꼽에 양손을 모으고 인사를 했다.

누가 봐도 명품 브랜드의 어린이용 정장을 입은 전태국이 투덜거렸다.

“뭐야, 싸구려 주제에.”

[싸구려는 니 인성이지.]

나는 주먹을 앙 쥐고 겨우 화를 참았다.

“양 비서, 아빠는 언제 오신대?”

“회의장에서 이쪽으로 바로 이동하실 예정입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아빠는 왜 이런 데를 가자는 거야.”

전태국은 여전히 툴툴거렸다.

이 기회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 것이 너무 한심했지만, 나에게는 분명 좋은 기회일 것이다.

차가 도착하자 미리 준비한 샌프란시스코 삼전 그룹의 주재원들이 우리를 맞았다.

너무 어린 나이의 나와 전태국이 내리자 조금 당황한 듯 보였지만, 다들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했다.

양 비서는 내 손을 잡고 박람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성국아, 아저씨 손 놓으면 안 돼.”

“네엥.”

[그러면 일론 머스트는 어떻게 만나지?]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양 비서가 졸졸 쫓아다니면 일론 머스트와의 만남도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든 양 비서와 떨어져서 일론 머스트를 만날 생각으로 박람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미국의 유망한 벤처 업체들은 모두 총출동한 박람회였다.

모두들 이곳에서 자신들의 기술을 소개하고 투자받기 위한 자리였다.

삼전 그룹은 그들에게는 아직은 가전제품으로 유명한 그룹이었지만, 반도체 등 IT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그룹이었다.

나는 양 비서의 손을 살짝 놨다.

“성국아, 여기는 사람이 많아서 안 돼.”

양 비서는 얼른 내 손을 잡았다.

어떻게 하면 양 비서를 떼어놓지?

내 머리는 그 생각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양 비서는 내가 이끄는 대로 잘 쫓아왔다.

나는 사방을 살피며 일론 머스트의 T.com을 찾았다. 이때 눈앞에 T.com의 부스가 보였다. 거기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오갔다. 하지만 일론 머스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양 비서의 손을 이끌고 부스 앞으로 아장아장 걸어갔다.

부스 앞에 도착하자 부스를 지키고 선 키만 큰 백인 남자가 나를 의아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안녕, 꼬마야. 무슨 일이야?”

“일론 머스트 어디 있어요?”

“네가 찾는 사람이 일론 머스트라고?”

직원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아시아의 어린아이가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의 대표를 찾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나는 얼른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꼭 만나고 싶어요.”

“잠시만….”

직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럴 때는 어린아이라는 점이 매우 유용했다. 어른들은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기꺼이 들어주고 싶어 했다.

내가 부스 주변을 서성이는 동안 직원이 T.com뿐 아니라 일론 머스트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 보스는 정말 장난 아니야. 완전히 워커홀릭이야.”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일론 머스트는 주당 40시간을 일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며 주당 100시간은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역시 삼전 전자의 그룹에서 그렇게 일했다.

재벌이 공짜로 세습되는 거라고 불평불만 하는 사람들은 아마 나처럼 공부도, 일도 해보지 않은 게 분명하다.

세상은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바뀌는 거였다.

이때 저 멀리서 한눈에 봐도 알아볼 수 있는 남자가 걸어왔다.

머리는 슬쩍 벗겨지기 시작했으며, 네이비색 양복 재킷에 흰 셔츠를 입은 모습이 한눈에 봐도 일론 머스트였다.

나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일론 머스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번 생에서 이렇게 만나는군, 일론!]

일론 머스트는 환하게 웃으며 내게 인사했다.

“나를 찾는다는 동양의 어린아이가 이 아이야?”

일론 머스트는 직원에게 물었다.

“그냥 동양 아니고 대한민국이에요.”

나는 영어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영어를 잘하네. 미국에서 살아?”

“아니요. 미국은 태어나서 처음 왔어요.”

일론 머스트는 신기한 듯 나를 내려다보더니 어느 순간 무릎을 꿇고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한국에서 영어를 배운 거야?”

“네.”

“나는 어떻게 알고?”

“경제 뉴스에서 봤어요.”

대한민국 어느 뉴스에서도 일론 머스트를 다루지 않았지만,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내가 대한민국에서도 알려질 정도인가….”

일론 머스트는 의아해했다.

“앞으로 더 유명해지실 거잖아요.”

나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싶어, 나도. 참, 나를 찾은 이유는 뭐야?”

“이 사업 이야기 듣고 싶어서요.”

“T.com?”

“네.”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론 머스트는 나를 번쩍 안아 들더니 부스로 가까이 걸어가며 T.com에 대해서 설명했다.

“모든 사람들의 집에 컴퓨터가 있잖아. 그리고 우리는 이제 인터넷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어. 앞으로는 이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 결제를 할 거거든.”

끄덕끄덕.

나는 일론 머스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1996년에 일론 머스트의 말은 조금 허무맹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일은 현실이 된다.

전기로 굴러가는 차가 세상에 나올 거라는 비전.

국가에서나 하는 우주 항공 사업을 민간이 할 수 있을 거라는 뚝심.

이 모든 것을 그는 차근차근 현실로 만들었다.

일론 머스트는 짧게 설명을 마치고 나를 쳐다봤다.

“알아듣겠어, 꼬마야?”

“난 꼬마가 아니라 전성국이에요.”

“전 뭐?”

아무래도 한국식 이름은 발음하기 어려워했다.

“전. 성. 국.”

나는 또박또박 다시 한번 힘줘서 말했다.

“서엉국? 맞아?”

“네. 전성국.”

일론 머스트가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너 같은 인재가 대한민국에 있다니,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은 것 같아.”

“일론 같은 인재가 미국에 있으니, 미국도 그런 것 같네요.”

내 대답에 일론 머스트는 폭소를 터트리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너 정말 천재구나.”

“남들은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전 노력가예요.”

일론 머스트는 나의 대답을 마음에 들어 했고, 우리는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대로 두면 지구는 망하고 말 거야. 자동차 배기가스나 발전소 같은 것만 봐도 그렇잖아.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지구를 파괴하고 있잖아.”

“전기로 자동차가 달리면 어떨까요?”

나는 일론 머스트에게 물었다. 그러자 일론 머스트는 벙찐 얼굴로 턱을 매만졌다.

“전기 자동차?”

“네. 전기로 자동차가 달리면 배기가스 문제는 없어지잖아요.”

“이미 많은 업체들이 전기 자동차 개발에 뛰어들긴 했는데, 대부분 망했어.”

일론 머스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손에 든 에비스의 생수병을 일론 머스트에게 보여줬다.

“아마 에비스 이전에도 수많은 업체들이 용기에 물을 넣어 팔려고 했지만, 그땐 사람들이 모두 물을 길어 먹으면 되지, 왜 사 먹냐고 생각했을 거예요. 에비스 이전에 생수를 만든 기업들은 모두 망했을 거고요. 하지만 어느 순간 물이 오염되고, 사람들이 건강에 신경 쓰면서 물의 중요성을 깨닫는 타이밍이 오잖아요. 에비스는 그때를 안 거고요.”

“전기 자동차의 타이밍이 오고 있단 말이니?”

“전 그렇게 생각해요. 화성에 이주하려는 계획이나 친환경 에너지를 찾으려는 인류의 노력처럼요.”

일론 머스트는 큰 발견을 한 듯 웃음을 몇 번이나 터트렸다.

“서엉국. 정말 좋은 생각이야. 정말 좋은 생각이야. 전기 자동차도 그렇고… 우주라. 멋진데!”

“미래에는 꼭 그렇게 될 거예요.”

나는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모두 불가능하다고 믿었지만, 일론 머스트는 정말 그 불가능을 현실로 이뤄냈다. 그것도 사람들의 생각보다 빨리.

일론 머스트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오늘 대화 즐거웠어. 언제 또 우리 만날 수 있겠지?”

“다음에는 내가 당신 회사의 대주주가 될 거예요. 여기 사인 좀 해주세요.”

나는 손 대신 브로셔를 내밀었다.

일론 머스트는 브로셔에 사인을 하며 중얼거렸다.

“미래의 대주주 성국이에게. 어때?”

“좋아요!”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기대하겠어. 서엉국.”

“물론이죠.”

나는 당차게 대답했다.

정확히 15분.

이 15분이 내 인생과 일론 머스트의 인생을 연결했다.

후에 일론 머스트는 세계적인 부자가 되면서 발음하기 어려운 내 이름은 잊어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온 꼬마가 말한 전기 자동차는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 * *

전재형은 일론 머스트와 성국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성국이 찍은 두 개의 회사 중 하나인 T.com에 대해서 전재형 회장도 면밀히 조사를 마쳤다.

실현 가능한 기술이고, 앞으로 인터넷 상거래에서 필수 불가결한 핵심 기술을 가진 회사였다.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미국 내 여러 대기업에서 인수를 위해 나서기도 했단 소식도 들렸다.

전재형 회장은 성국이 구굴과 T.com 두 회사를 찍었을 때 장난일 거라 여겼다.

사실 아들 전태국이 선택한 회사들은 거의 찍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 페이지당 수십 개의 기업 중 무작위로 한두 군데 마음 내키는 대로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성국은 박람회 참가 회사 중 딱 두 군데만 찍었다.

처음엔 성국 역시 아들 전태국처럼 재미로 선택한 것이라 여겼는데, 두 기업 모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것이며 아직은 미개척 분야지만 막 태동하고 있는 산업이라는 점이 신기했다.

자신이 간과한 지점인 것 같아 처음엔 당혹감마저 느껴졌다.

삼전 그룹은 아직도 2차 산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3차 산업으로 넘어가는 중이었다. 성국이 선택한 회사는 이 두 단계를 넘어선 4차 산업 회사들이었다.

성국이 일론 머스트와 악수까지 나누고는 헤어지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게 보였다. 이번에는 구굴 부스였다.

동양의 어린아이가 가서 능숙한 영어로 야무지게 묻자 부스 직원들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게 보였다.

전재형 회장의 수행비서 한 명이 다가왔다.

“태국이는 어디 있지?”

“그게… 박람회장 밖에 있는 아이스크림집에 가셨습니다.”

수행비서의 말에 전재형 회장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저 나이 때의 아이라면 부스를 도는 대신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르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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