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51화 (51/231)

제51화

“성국아, 지금 뭐라고 말한 거야?”

[귀찮게 또 말해야 해?]

나는 거침없이 걸어서 식탁 의자에 앉았다. 그러곤 놀란 엄마와 아빠 얼굴을 번갈아 봤다.

“아빠, 엄마. 내가 그 상가 살게요.”

“성국아….”

빈틈을 주지 말자.

나는 아빠가 멍한 사이에 바로 말을 이었다.

“아빠, 내 통장에 5억이 넘게 있어요. 나 이제부터 그 돈으로 투자를 하려고요.”

“투자?”

“네!”

“성국아, 네가 모르나 본데. 지금 우리나라 사정이 안 좋아. 주가도 바닥이고, 샀던 건물도 다들 내놓는 판인데 지금 투자를 한다는 거야?”

“아빠. 위기가 기회예요.”

나는 두 주먹을 앙 쥐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려면 다시 태어나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IMF는 대한민국 역사상 마지막 위기이자 기회가 되는 시기이다. 기존의 부와 질서가 붕괴하고 새로운 부와 질서가 생기는 격변기!

“성국아, 넌 부동산 못 사.”

“아빠, 대리로 하면 살 수 있어요.”

[아빠, 진짜… 나 전성국이야. 이런 것도 조사 안 해봤을까 봐.]

삼전 전자 전속 모델을 하면서 받은 삼전 주식 통장은 이미 내 이름으로 개설되어 있어서 언제든 투자가 가능했다.

나는 모두가 바닥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지하가 있더라는 말이 돌 정도로 흉흉한 이 시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부동산은 미성년자의 구입은 대리로 가능했다. 물론 아빠에게 내 돈 1억을 증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돈거래는 원래 부모, 자식 간에도 철저해야 했다.

이건 나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한 투자였다.

엄마가 비록 SKJ 엔터테인먼트에서 지분을 가지고 일하고 있었지만, 나이가 든 임선미는 점점 광고나 영화, 드라마 기회도 줄어들었다. 송혜선은 주가가 오르면서 슬슬 다른 기획사 이적을 준비하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SKJ의 수입은 앞으로 장담할 수 없었다.

거기다 아빠의 보쌈집은 서민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이다. 제일 먼저 외식비부터 줄이는 가계 경제의 위기 속에서 버티기 위해서는 월세를 내는 구조는 없애야 했다.

“성국아, 네 뜻은 잘 알겠는데 이건 어른들의 문제야.”

“아빠, 나도 이제 곧 여덟 살이 돼. 어른들의 대화에 낄 때야.”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엄마는 얼른 내 눈치를 파악했다.

“자기야, 성국이 말대로 성국이 돈으로 사는 거니까 그 상가를 성국이 이름으로 해두면 어떨까? 그러면 자기가 안 미안해도 되지 않을까?”

“소영아… 그래도 그건….”

“미안하면 성국이한테 월세 내든가.”

[그런 푼돈은 됐어, 아빠.]

“어쩌지…. 소영아, 상가는 그냥 우리 돈으로 사자.”

“자기야, 성국이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가고 민국이도 유치원 다니는데 1억을 상가에 모두 쏟기는 좀 그래.”

[그니까 아빠, 내가 산다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다시 노트북 앞으로 갔다.

엄마, 아빠는 물론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소시민일 뿐이다. 나 같은 아들을 둔 덕에 지금 그나마 이 정도로 사는 것이지, 아마 내가 없었다면 아직도 그 수유의 작은 원룸에서 둘이 행복했을 것이다.

나는 노트북에 파일을 열어서 앞으로 나의 계획에 대해서 적기로 했다.

이제 곧 여덟 살이 된다.

IMF 외환 위기의 골도 더 깊어진다.

이 중요한 시기를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아빠, 엄마에게.

아빠, 엄마. 그동안 저 전성국을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지난 7년의 세월동안 대한민국 경제에 대해서 많은 공부를 했고, 아역 활동으로 악착같이 통장에 돈도 모았습니다.

IMF 외환 위기는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입니다.

모두가 힘들지만, 힘들지 않은 소수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제가 그동안 아역 활동으로 모은 돈 5억 7천만 원을 가지고 부동산과 주식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 전에 혹시 제가 이 돈을 다 탕진할 경우를 대비해서 아빠의 보쌈집 상가를 1억에 매수하려고 합니다.

제가 빈털터리가 되어서도 엄마, 아빠는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하시고 저를 키워주셔야 하니까요.

엄마, 아빠. 저를 제발 믿고 지지해 주세요.

엄마, 아빠의 첫째 아들 전성국 올림.

아직 어눌한 말보다는 글이 좀 더 효과적인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노트북을 낑낑거리며 들었다.

[이놈의 벽돌. 다음에 사과 주식은 꼭 사야지.]

엄마, 아빠에게 가서 화면을 보여줬다.

“엄마, 아빠. 이거요.”

엄마, 아빠는 심각한 얼굴로 노트북 화면을 쳐다봤다.

물론 두 분 모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예상한 일이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어서 둘 중에 누구 한 명이 먼저 말하기만을 기다렸다.

아빠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성국아, 네 생각은 잘 알겠고, 엄마, 아빠가 성국이 무시하는 거 아니야. 성국이 돈은 성국이가 하고 싶은 공부 마음껏 하라고 모아둔 거야. 그러니까 공부하는 데 쓰고, 아빠 가게는 아빠가 알아서 할게.”

“자기야, 성국이가 어쩔 땐 우리보다 경제를 더 잘 알잖아.”

“그렇긴 한데….”

아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성국이 말대로 가게를 사는 게 어떨까 싶어서. 대출 없이 사면 앞으로 경기 어려워져도 자기도 훨씬 버티기 수월할 거잖아. 부동산 아저씨가 9천까지 해 보신다니까 그렇게 해보자. 성국이 말대로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 위기가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잖아. 상가 주인아저씨가 대출금 때문에 파는 거니, 우리가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니고….”

[역시 엄마!]

나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빠는 요리에 대해서는 진심이었지만 사업 수완은 엄마가 훨씬 뛰어났다.

내 생각을 빨리 이해하는 쪽도 엄마였다.

[아빠, 요리만 열심히 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아빠의 등을 두드렸다.

“성국이 이 녀석도 마음에 드나 보네. 그래, 소영아. 이 기회에 상가 안정되게 사고, 나도 더 열심히 보쌈 팔아볼게.”

“그래, 자기야. 내일 아침에 부동산 통해서 연락해서 가격 조정해 달라고 하자.”

“근데 성국아.”

“네!”

“너 정말 투자하고 싶어?”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와 아빠는 이 문제는 좀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내가 삼전 그룹의 후계자일 때는 아들 녀석에게 1억 정도는 주면서 마음껏 운용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는 처참했지만, 자신이 직접 돈을 움직여보는 것과 그에 따른 결과를 눈으로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교육이었다.

1997년 현재, 나에겐 5억 7천만 원이 있다.

앞으로 이 돈을 어떻게 불리는지 똑똑히 보여주지!

* * *

“와아!”

아빠는 상가 매매계약서를 받아 들고는 감탄사를 뱉고 있었다.

부동산에 엄마와 나 그리고 민국이와 김미영까지 와서 아빠의 상가 계약서 작성을 지켜봤다.

그만큼 이 일은 우리 가족 역사에서 중요한 일이었다.

“성국이 아버님, 계약서 그만 보시고요. 어서 등기도 치시고 하셔야죠.”

“김 매니저님, 아니 김 대표님. 진짜 믿기지가 않아서요.”

“저도 처음 부동산 계약했을 때 그랬어요. 성국이네는 아파트도 있고, 벌써 두 번째잖아요.”

“아파트야 성국이 덕분에 얻은 거라…. 이건 정말 그동안 저랑 소영이랑 열심히 번 돈으로 산 거잖아요.”

아빠는 계약서를 엄마에게 건넸다.

“소영아, 고생 많았어.”

“자기야, 이제부터 시작이야. 앞으로 장사 더 잘해야지.”

“알았어.”

아빠는 괜히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월세 한 번 안 밀리고 장사 잘했으니, 앞으로도 대박 나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덕분에 좋은 상가 얻었어요.”

상가를 판 주인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그사이 부동산을 헤집고 다니는 민국이 녀석의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를 꽉 물고 속삭였다.

“민국아, 가만히 있어. 형이 이따가 새우맛깡 사줄게.”

“진따?”

“형이 거짓말하는 거 봤어?”

“아니. 가마니 있을게. 헤.”

[단순한 녀석.]

민국이를 조용히 시키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사장이 나가고, 아빠와 엄마는 부동산에 등기 치는 일까지 맡기느라 대화를 이어갔다.

“근데 사장님, 요즘 매물 많이 나오죠?”

김미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는 순간 귀를 바싹 세웠다.

김미영은 삼전 기획에 다니면서 30대에 이미 원룸 건물을 소유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 건물을 팔고 잠실의 24평 아파트와 아파트 상가 두 곳에서 월세를 받고 있었다.

“요즘 매물 미친 듯이 나오죠.”

“급매도 많나요?”

“어느 정도 되는 거 찾는 건데요?”

“제가 여기 아파트 상가 두 채 가지고 있는 거 아시죠?”

“그럼요. 요기 편의점이랑 떡볶이 가게 하는 데잖아요. 둘 다 월세도 잘 나오는 데고.”

“그 두 상가 팔면서 대출 좀 껴서 살 수 있는 상가 건물 좀 보고 있어요.”

나는 김미영이 말한 조건을 되새겼다.

저건 지금 두 상가를 파는 조건으로 부동산에 살 수 있는 상가 건물을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다.

지금같이 가격이 하루 사이 떨어지는 장에서 자신의 매물도 싸게 정리하면서 동시에 싸게 나온 다른 매물로 갈아탄다는 말이었다.

[역시 서민 경제는 내가 모르는 게 많아.]

삼전 그룹의 후계자 시절에 상가니, 건물이니 그렇게 쪼잔하게 거래해본 적이 없어서 김미영의 거래는 꽤나 흥미로웠다.

“상가면 어느 정도 되는 거 찾아요? 요즘 대출도 잘 안 나올 텐데.”

“작은 거면 돼요. 5억 정도 선에서 상가 건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5억이면 상가 건물을 찾을 수 있다고?]

나는 턱을 매만졌다.

나의 전 재산 5억 7천. 그리고 2천만 원어치의 삼전 주식.

삼전 주식은 앞으로 10년 이상 가져갈 것이다.

나는 공인중개사 아저씨의 윗도리를 잡아당겼다.

“어, 성국아. 왜?”

“아저씨.”

“응.”

“판교에 땅 좀 나오면 연락 주세요.”

“뭐어?”

공인중개사 아저씨가 놀라 나를 쳐다봤다.

동시에 엄마, 아빠 그리고 김미영까지 나를 주시했다.

“허허. 성국이 아빠. 성국이가 뭐라는 거예요?”

“그게… 성국이가 사실은 경제에 대해서는 저희보다 더 잘 알거든요.”

[맞지. 맞지.]

“그래도 판교 땅이라니….”

“아저씨, 꼭 연락 주세요. 판교요.”

난감한 얼굴로 공인중개사가 아빠를 쳐다봤다.

“사장님, 그래 주세요. 판교에 땅 나오면 저 통해 연락 주세요.”

“어, 그래요. 바로 연락 줄게요. 참, 김 대표님은 5억 정도 하는 상가 건물 말하는 거죠?”

“네. 제 상가 두 개 파는 조건으로요.”

“알았습니다. 급매들 많이 나오니까 연락드릴게요.”

“감싸합니다.”

나는 공인중개사 아저씨에게 배꼽 인사를 하고 부동산을 나섰다.

* * *

문이 열리면서 전재형 회장이 들어왔다.

제이슨 리는 다리를 꼬고 앉았다가 얼른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재형 회장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네요.”

“회장 자리에 오르시고 큰일 치르십니다.”

전재형은 눈썹을 찡긋했다.

제이슨 리는 동생 전재진의 미국 대학 동창으로 삼전 투자 증권에 낙하산으로 들어온 인물이었다. 외환 위기 상황에서 외국 정세를 알 수 있는 인맥을 놓치기 아쉬워 두고 보긴 했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이슨 리 역시 전재형 회장이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것쯤은 익히 알았다.

“오늘 이렇게 특별히 보자고 한 이유는요.”

전재형 회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내놓았다. 싫은 사람과는 사담도 나누지 않는 게 전재형 회장이었다.

“제이슨 리. 앞으로 대한민국 경제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대한민국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겁니다.”

제이슨 리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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