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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59화 (59/231)

제59화

나는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내가 달리는 이 지점부터 멈춰 서는 그 지점까지가 이제부터 내 땅이었다!

“헉. 헉. 헉.”

거친 숨을 내뱉으며 멈춰 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다.

엄마와 아빠가 걸어오고 있었다.

민국이 녀석이 나를 따라잡겠다고 뒤뚱뒤뚱 달려왔다.

“형아!”

나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높게 들어 흔들었다.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저번 생에서는 느낄 수 없던 성취감이었다.

다 가진 채 태어난 삶에서는 이룰 것보다 지킬 게 더 많았다. 가족과도 경쟁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삶은 잃을 것보다 이룰 수 있는 게 많다는 것. 그리고 내가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가슴이 웅장해졌다.

나는 다시 내 땅을 쭈욱 훑었다.

자, 전성국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 *

아빠는 묘목 한 그루를 차에서 가지고 왔다.

“아빠, 그게 뭐예요?”

“배나무야.”

“배나무는 뭐 하게요?”

“아빠가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배 과수원이 있었거든. 봄에 거길 지날 때마다 배꽃이 흐드러지게 핀 게 정말 보기 좋았어.”

나는 아빠의 등을 세 번 두드렸다.

[아빠, 감성팔이는 그만.]

아빠가 빙긋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이젠 내 행동의 의미를 가족들도 모두 눈치챈 후였다.

“암튼… 이 나무, 성국이 땅에 심자. 이 땅이 성국이 땅이라는 의미도 되고… 나중에 이 나무가 크면 배도 따 먹자.”

“아빠, 내가 심을게.”

나는 얼른 삽을 집어 들었다.

저번 생에서 군대는 면제여서 군대에서 삽질할 일은 없었지만, 공장 건립식 같은 데서 삽질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푹. 흙을 파내자 민국이가 묘목을 들고 왔다.

“형아, 나도 도울래.”

“그래. 여기다가 묘목 잘 넣어봐.”

“응!”

민국이는 고사리손으로 묘목을 구덩이 안에 밀어 넣었다.

아빠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성국아, 어서 흙 다시 덮어야지.”

“응!”

나는 삽으로 흙을 떴다.

탁- 탁- 탁- 탁.

마무리는 아빠가 맡았다.

심은 배나무 주변을 삽으로 연신 두드렸다.

“소영아, 여기 물.”

엄마가 준비한 물을 배나무 주변에 뿌리면서 우리 가족의 식수는 마쳤다.

아직 황량한 날씨였지만, 이제 곧 봄이 오면 이 녀석도, 내 땅값도 솟아오를 것이다!

“성국아, 그렇게 좋아?”

엄마가 내 뺨을 쓰다듬었다.

[당연히 좋지, 엄마. 판교는 지금 사지 않으면 서민들은 영원히 살 수 없는 땅이라고.]

나는 엄마의 배에 얼굴을 파묻었다.

“너무 좋아!”

“성국아, 초등학교 가서도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초딩들이랑 수준 안 맞지만, 땅 샀으니 내가 꾹 참아볼게.]

민국이도 나를 껴안았다.

“형아, 나두.”

“너는 맨날 나두래?”

“형아, 나두 학교 가고 싶어.”

[넌 아직 멍청해서 안 돼.]

아빠가 나한테 매달린 민국이를 안아 들었다.

“민국아, 넌 유치원부터 잘 다니자.”

“나도 학교.”

“넌 아직 2년은 더 배워야 해.”

“시로. 시로.”

민국이 녀석이 떼를 쓸 기미가 보였다. 이럴 때 쓰는 특효약이 있다.

“아빠, 짜장면 먹으러 가자.”

“짜당면?”

민국이는 짜장면이면 울음도 그치는 아이였다.

“너희 둘은 짜장면이 그렇게 좋아?”

“네에!”

나와 민국이가 동시에 오른팔까지 올리며 대답하자, 엄마와 아빠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 * *

김미영은 의아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언니, 무슨 일 있어요?”

“성국이 엄마. 효진 그룹에서 우리를 만나자는데요?”

“효진 그룹이요?”

“구수영 회장님이라고, 작년 연말에 삼전 호텔에서 잠깐 뵌 분 기억나요?”

“그분이 만나자는 거예요?”

“비서실이라고 하는데… 비서실에서 오는 것은 보통 회장실에서 직접 지시 내리는 거거든요.”

김미영의 말에 성국이 엄마도 고개를 갸웃했다.

“이유는 말 안 해요, 언니?”

“뭐, 광고 때문이라고 하는데… 광고 때문이면 비서실에서 직접 연락할 일은 아닌데…. 암튼 약속은 잡았어요. 성국이랑 같이 나와달래요.”

“뭐, 만나보죠.”

사무실 밖에서 인터폰이 울렸다. 임선미였다.

성국이 엄마가 얼른 문을 열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웬일세요?”

“여기 제가 좋아하는 파니니집 있잖아요. 갑자기 당겨서 나왔다가 같이 먹으려고 사왔어요.”

성국이 엄마는 얼른 파니니를 받아 들었다.

임선미는 최근 들어 일을 줄이고, 홍콩 증권사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 친구와 결혼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선미 씨, 결혼 준비는 잘돼가요?”

김미영이 얼른 파니니를 세팅하며 물었다.

“결혼식을 홍콩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이렇게 두 번 해야 할 거 같아요.”

“두 번이나요? 와! 나 같은, 결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상상이 안 되네요.”

“대표님도 어서 좋은 사람 만나야죠. 참, 두 분 다 홍콩 결혼식에 오셔야 해요. 성국이도 꼭 데리고 오세요.”

“그럴게요. 남편도 같이 가면 좋은데, 가게 때문에 또 안 간다고 할 것 같아요.”

“진짜 성국이 아빠는 성실해요.”

김미영도 칭찬을 했다.

“우리 남편도 성국이 아버님처럼 성실하기만 하면 좋겠어요. 참, 팀장님은 결혼식 때 부케 무슨 꽃으로 했어요?”

“저희 결혼식 안 했어요.”

성국이 엄마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임선미가 놀라 물었다.

“신혼여행만 안 간 거 아니었어요?”

“결혼식도 못 했으니, 신혼여행도 못 갔죠.”

“어머, 미안해요.”

“선미 씨가 왜 미안해요. 저희 형편 다들 아시잖아요. 고아원 출신들이 결혼하는데, 방 한 칸도 겨우 얻었는걸요. 그런데 어떻게 돈 들어가는 결혼식을 해요. 그리고 결혼식을 한다고 해도 올 사람도 저희는 아무도 없잖아요. 이래저래 잘됐죠, 뭐.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할게요. 근데, 이 집 파니니 진짜 맛있네요.”

성국이 엄마는 괜히 대화를 돌렸다.

“참, 효진 그룹에서 성국이를 모델로 한번 보고 싶다고 하는데요… 효진 그룹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어요. 선미 씨, 효진 그룹이 원래 그렇게 일하나요?”

“흠… 이상하긴 하네요. 효진 그룹이면 광고사도 있는데… 아, 맞다. 작년에 효진 그룹 구수영 회장님 아들,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었거든요.”

임선미는 뭔가 생각난 듯했다.

“그 아들이 재벌가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어요. 구수영 회장님도 재벌들 중에서는 가족들 살뜰히 챙기고, 스폰서도 안 하시기로 유명했거든요. 첫째 아들이 공부도 잘해서 일찌감치 미국 유학 보냈어요. 하버드 입학 선물로 차를 사줬는데, 여행 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어머.”

성국이 엄마와 김미영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미래라고 제 절친인데, 효진 그룹 부사장 딸이에요. 요즘 그 아들 이름으로 재단을 하나 만든다, 어쩐다 하는 것 같아요. 근데 구수영 회장님 정말 좋은 분이세요.”

“한번 만나는 봐야겠네요.”

김미영이 답했다.

“참, 팀장님. 성국이 아버지 언제 쉬세요?”

“매주 월요일이요.”

“그럼, 월요일에 저 좀 도와주실래요?”

“뭘요?”

“웨딩드레스 고르러 가야 하거든요. 같이 가주세요.”

* * *

임선미가 아빠 가게를 찾아와서 쉬는 월요일에 자신에게 시간 좀 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나와 민국이를 데리고 청담동의 웨딩숍으로 나와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어머, 성국이 너무 이쁘다. 아저씨가 너 나오는 프로 증말 좋아했는데. 어쩜 이렇게 잘 컸니. 나중에 아저씨 패션쇼에 서줄 거지?”

“네에.”

나는 대충 대답했다.

어차피 난 커서 모델이나 연예인 같은 것은 할 생각이 없었다.

알렉산더 김은 독보적인 디자인으로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유명 디자이너였다.

결혼식 때 알렉산더 김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들의 로망이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별로 알렉산더 김의 디자인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철의 여인이 좋아해서 어릴 적에 자주 따라다녔다. 나한테 언제나 프랑스산 마카롱을 선물로 주곤 했는데, 심근경색으로 쉰도 안 된 나이에 세상을 떠나서 나도 좀 충격적이긴 했다.

옆에서 민국이가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어머, 어쩜. 형제들이 이렇게 인물이 훤할까. 아, 맞다. 성국이 아버님, 턱시도 다 입으셨으면 나오세요.”

“선생님, 제가 맞게 입은 건지… 모르겠어요.”

“우선 나와보세요.”

“아, 네.”

탈의실 문이 열리고 아빠가 모습을 드러냈다.

큰 키에 배도 안 나온 슬림한 몸매. 거기다 맨날 덥수룩한 수염을 깔끔하게 깎고 나니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얼굴이었다.

[내 얼굴 유전자 반은 영락없는 아빠구나.]

나는 아빠의 모습에 감탄했다.

“아빠, 아빠 마자?”

민국이도 놀라서 아빠 주위를 맴돌았다.

“민국아, 아빠 이상해?”

“어. 아니. 멋져!”

알렉산더 김이 아빠의 나비넥타이를 매만졌다.

“어머, 성국이랑 민국이 외모가 다 아버지한테서 온 거네요. 이 얼굴로 나도 하루만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과찬이세요. 소영이, 아니 성국이 엄마도 이쁜 걸로 유명했어요.”

“선남선녀끼리 만났네요.”

아빠가 머쓱한지 머리를 긁었다.

알렉산더 김이 아빠의 턱시도 허리를 잡아당겼다.

“헙.”

순간 아빠의 기합 소리가 터져 나와 민국이가 까르르 웃어댔다.

“전민국, 웃지 마. 아빠 창피해.”

아빠는 연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거울을 바라봤다.

“선미가 두 분 옷 최고로 좋은 거로 골라달라고 어찌나 부탁하든지, 정말 제가 애먹었어요. 근데 두 분, 정말 결혼식도 안 올리신 거예요?”

“네, 돈이 없어서요. 근데 이제는 성국이 덕분에 잘살아요. 결혼식은 어쩌다 보니 민국이가 생겨버려서 미룬 게 이렇게 됐네요.”

“선미가 마음 씀씀이가 좋아요. 결혼하면 잘 살 거예요. 참, 부인께는 오늘이 두 분 결혼식이라는 거 비밀이라면서요?”

“네. 지금 한창 선미 씨 웨딩드레스 구경하고 있을 거예요.”

아빠는 턱시도가 어색한지 이리저리 보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 * *

결혼식장은 청담동의 작은 이태리 레스토랑이었다.

특별한 날을 위해서 딱 한 테이블만 예약받는 것으로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

김미영이 나와 민국이에게 작은 꽃다발을 내밀었다.

“오늘은 둘이 화동 하는 거야. 이따가 엄마 들어오면 곁으로 가서 서.”

끄덕.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살다 보니 별거를 다 한다.

아빠는 여전히 긴장된 얼굴로 서 있었다.

“성국이 아빠, 긴장 푸세요.”

“근데 긴장이 안 풀려요. 진짜 결혼식 올리는 것 같아요.”

나는 아빠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빠, 진짜 결혼식이야.”

“아, 맞다. 아빠가 너무 긴장했나 봐.”

그때, 밖으로 임선미가 타고 다니는 큰 밴이 멈춰 섰다.

아빠는 긴장했는지, 손이 바르르 떨렸다.

나는 얼른 아빠의 손을 꼭 잡았다.

“성국아, 아빠 많이 떨지?”

“아빠, 내가 있어.”

“아빠, 밍구기도 있어.”

민국이가 아빠의 다른 한 손을 잡았다.

그리고 드디어 검은 밴의 문이 열렸다.

“와아!”

“와아아!!”

“와아아아!!!”

우리 집안 세 남자의 탄성이 동시에 터졌다.

엄마가 예쁜 건 알았지만, 옆에 있는 임선미가 기가 죽을 정도로 이쁜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임선미는 단아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의 손을 잡아줬다.

엄마는 긴 치맛자락을 잡고는 밴에서 천천히 내렸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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