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60화 (60/231)

제60화

주례는 없었다.

혼인선언문은 엄마와 아빠가 낭독했고, 임선미의 친구이자 유명 포토그래퍼인 알렉스가 연신 사진을 찍었다.

알렉스는 저번 생에서 내 결혼식 때도 사진을 담당한 아주 유명한 포토그래퍼였다.

“자, 이제 가족사진 찍을게요.”

알렉스의 외침에 나와 민국이는 엄마, 아빠 옆으로 가서 섰다. 난 아빠 손을, 민국이는 엄마 손을 잡았다.

“와, 이 집 진짜 비주얼 쇼크네. 쇼크야.”

“알렉스, 입 좀 닫고 사진이나 잘 찍어.”

“네네, 누님.”

임선미와 김미영이 유쾌하게 웃었다.

“자, 사진 찍을게요. 비주얼 가족, 모두 스마일 해주세요!”

나는 능숙하게 미소를 지었다.

카메라 셔터의 경쾌한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아빠의 손이 축축해지고 있었다.

나는 살짝 아빠의 손을 두 번 잡았다가 놨다.

“아빠, 긴장하지 마.”

아빠가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아버님, 지금 표정 너무 좋으세요. 그 표정 그대로 신부를 바라봅니다.”

“네에!”

아빠가 크게 외쳤다.

동시에 엄마, 아빠의 결혼식장이자 작은 식당 안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 * *

우리 네 가족과 임선미 그리고 김미영. 사진을 담당한 알렉스까지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요리는 이탈리안 코스 요리였다.

나는 능숙하게 포크를 돌돌 말아 파스타를 호로록 입에 당겨 넣었다.

“성국이는 어쩜 파스타도 이렇게 능숙하게 먹지.”

임선미는 기특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누나, 나 전성국이야. 미슐랭 레스토랑만 다녔던 사람이라고.]

“아, 맞다. 깜빡할 뻔했네.”

임선미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봉투 세 개를 꺼냈다.

“이게 뭐예요?”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가 물었다. 여전히 20대인 엄마는 누가 봐도 애 둘인 엄마처럼 보이지 않았다.

임선미가 빙긋 웃더니 봉투 하나는 엄마에게, 하나는 김미영에게, 나머지는 알렉스에게 돌렸다.

“결혼 정말 축하하고요. 모두 제 홍콩 결혼식에도 꼭 와주세요. 성국이네는 특별히 성국이랑 민국이, 그리고 새신랑 티켓까지 다 넣었어요. 호텔도 다 제공되니까 부담 없이 오세요. 사실은 신혼여행 겸 제 결혼식 구경 겸 오시라는 거예요.”

역시 임선미는 스케일이 남달랐다.

나는 얼른 엄마의 티켓을 훔쳐봤다. 3월 21일 토요일이었다.

[홍콩 아트페어 기간인 거 같은데….]

홍콩 아트페어는 아시아의 큰손들이 모이는 행사였다. 들러도 좋을 것 같았다.

“선미 씨, 깜짝 결혼식도 너무 고마운데 신혼여행까지… 너무 미안해서 어떡해요.”

“무슨 소리예요. 우리 성국이 어머니이자 팀장님과 대표님은 당연히 오셔야 하죠. 저를 그동안 얼마나 잘 도와주셨는데요. 알렉스는 사진 찍으러 와야 하고.”

“너무하네, 누나.”

아빠가 살짝 근심 어린 눈길로 티켓을 바라봤다. 보나 마나 가게 문 닫는 게 걱정인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아빠의 소매를 당겼다.

“아빠, 나 아빠랑 여행 가고 싶어.”

“그게….”

“성국이 아버님, 신부 혼자 오게 하는 신혼여행이 어디 있어요. 이건 제 결혼식 보러 오시는 게 아니라 두 분의 신혼여행이라고요.”

임선미가 재빨리 아빠의 입을 막았다.

“자기야, 그동안 여름휴가도 한 번 안 갔잖아. 짧게라도 다녀오자. 애들이랑 추억도 만들고, 좋잖아.”

“그래…. 알았어. 공지 좀 빨리해야겠다.”

아빠는 머쓱한 얼굴로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아빠의 등을 쓰다듬었다.

[아빠, 잘했어.]

아빠가 나를 슬쩍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성국아, 꼭 너, 아빠 조련하는 것 같아.”

[헤헤. 아빠, 눈치챈 거야?]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헤헤 웃었다.

“아빠, 오늘 엄청 잘생겼어.”

“알았다, 알았어. 암튼 이 녀석은 못 당하겠어.”

와인까지 다들 한 잔 하고 나자 아빠는 포크를 슬며시 놨다. 그러곤 모두들 쳐다봤다.

“정말 오늘 다들 저희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하지 못해서 언제나 미안했는데, 주변분들 덕분에 드디어 아내의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봤습니다.”

갑자기 모두들 숙연해졌다.

[난 이런 분위기 별로인데. 좋은 날 슬퍼지려 하면 안 되지, 아빠.]

“저희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서.”

[아빠, 사연팔이는 그만. 인생의 꽃길은 이제부터잖아.]

나는 여기까지 듣고 옆에 앉아서 파스타를 입안에 우걱우걱 밀어 넣고 있는 민국이의 옆구리를 슬쩍 꼬집었다. 그리고 윙크를 슬쩍 했다. 민국이가 멍청하긴 했지만, 눈치는 빨랐다.

“아빠, 그만… 그렇게 외쳐.”

내가 조용히 속삭이자 민국이가 고개를 대범하게 끄덕였다.

그동안 기저귀 갈아주며 연기 연습 시킨 보람이 있었다.

“정말 돈 한 푼 없는 저에게 시집와서.”

“아빠!”

민국이가 손을 번쩍 들자 고요했던 분위기는 일순간에 깨졌다.

“어, 민국아, 왜?”

“아빠, 그만해.”

민국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모두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엄마는 드디어 아빠를 잡아당겼다.

“자기야, 여기 우리 사정 모르는 사람 없으니 그만하자.”

“그, 그래. 난 너무 감격해서.”

[아빠는 감성이 너무 풍부한 게 탈이야.]

아빠는 머리를 긁적이며 앉았다.

나는 얼른 아빠를 위로하기 위해 아빠의 손을 잡았다.

“아빠, 사랑해요.”

그리고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 사랑해요.”

이때, 민국이가 끼어들었다.

“형아, 밍구니는?”

[하아, 넌 사랑하진 않아. 하지만….]

“민국이도 사랑하지.”

“형. 최고!”

민국이가 나를 와락 껴안았다.

[민국아, 형아 양복에 파스타 소스 묻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모두들 나와 민국이를 보며 웃었다.

나와 민국이에게 시선이 집중된 때, 아빠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눈을 맞추는 게 보였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좋을 때다.]

* * *

심장이 두근거렸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3주 후에 우리 가족은 모두 홍콩으로 떠난다.

이번 홍콩 아트페어 전시 목록을 보다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바로 데미안 허스키였다. 지금은 막 영국에서 뜨는 작가였지만, 20년 후에 데미안 허스키는 아무나 살 수 없는 작가가 된다.

“성국아, 자?”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방문을 열었다.

“성국이 안 자.”

“성국아, 내일 학교 가려니 긴장되지?”

아니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이 대답은 어린이답지 못했다.

“응.”

“성국아, 초등학교는 누구나 다니는 곳이야. 유치원이랑 다를 거야. 다양한 친구도 만나고, 동네 친구도 만나서 뛰어놀고 그러자.”

“아빠?”

“왜에?”

“아빠, 초등학교 때는 어땠어?”

“…….”

아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안 들어도 알 것 같았다.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를 아이들이 어떻게 봤을지.

아빠는 애써 미소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성국아, 넌 아빠랑 달라. 너는 엄마랑 아빠가 있고, 그리고 동생 민국이도 있잖아.”

“아빠, 나 공부가 재미있어.”

“그건 아빠랑 유일한 차이점이네.”

“아빠, 나 진짜 빨리 공부하고 싶어요.”

“성국아, 그건 천천히 생각해보자.”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기야, 성국이 초등학교 보낸다니까 떨리지?”

“응. 유치원 보낼 때랑은 완전히 달라. 초등학교 간다니 이제 우리 성국이도 다 큰 것 같고 그러네.”

“아빠, 나 다 컸어.”

나는 얼른 아빠에게 어필했다.

하지만 아빠는 촉촉한 눈으로 내 머리만 쓰다듬을 뿐이었다.

[아빠, 나도 애 키워봤어. 초등학교 들어갈 때 가슴 촉촉하지. 근데 그 이후는 그냥 전쟁이야. 공부 못하면 공부 못해서 짜증 나고, 잘하면 잘난 척하는 것에 치이고. 이제 슬슬 문 닫고 아빠도 모른 척하면 엄청 상처만 받아. 아빠, 그거 알아?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영원한 짝사랑이야.]

나는 아빠의 등을 쓰다듬었다.

“성국아, 너는 어쩔 때 보면 아빠를 위로하는 거 같더라.”

“아빠, 성국이 학교 가서 좋아요.”

뒷말은 생략했다.

어서 학교 가서 검정고시 치고 대학 갈 수 있어서 좋다는 말이었다.

아빠는 내 엉덩이를 통통 쳤다.

* * *

-신혼여행으로 3박 4일간 문을 닫습니다.

아빠는 가게 앞에 직접 쓴 문 닫는 사유를 붙였다.

나는 좀 창피했고, 엄마는 더 창피한 얼굴이었다.

“자기야, 우리 애가 둘인데 신혼여행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아, 맞다.”

아빠는 신혼여행 앞에 ‘늦은’ 이라고 썼다.

이건 더 쪽팔렸지만, 공항까지 가는 버스를 타려면 어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빠의 팔을 잡아끌었다.

“아빠, 늦었어.”

“그래, 가자.”

김미영도 시간 맞춰서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는 비즈니스석이었다.

역시 임선미는 돈을 쓸 줄 알았다.

나는 민국이 옆 좌석에 앉아서 비즈니스석에 배치된 홍콩 아트페어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임선미의 결혼식은 21일이었고, 22일에 데미안 허스키가 직접 하는 도슨트가 있었다. 우리는 그다음 날 출국이었다.

이곳은 어떻게든 가야 했다.

나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김미영을 훑었다.

이 중에 나의 의중을 제일 잘 알아챌 사람은 바로 김미영이었다.

나는 얼른 김미영에게 홍콩 아트페어 기사를 보여줬다.

김미영은 관심 있게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성국아, 여기 가고 싶어?”

“네에! 그림이 좋아요. 꼭 가보고 싶어요.”

김미영은 웃으며 일정을 체크했다.

민국이도 관심 있는 듯 어깨너머로 기웃거렸다.

“형아, 뭐야?”

[민국아, 너는 몰라도 돼.]

민국이는 기사에 난 그림을 이것저것 보더니 정확히 데미안 허스키의 작품을 손가락으로 집었다.

“형아, 이거 이뻐.”

나는 조금 놀랐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는 민국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민국아, 이게 왜 이뻐?”

“색깔이 이뻐.”

민국이를 보는 내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녀석이 정말 미술을 보는 눈을 가진 것인가?

아니면 여섯 살 나이의 눈으로 미술을 보는 것인가.

피카소도 미술은 사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면 이해 가능한 세상이라고 하기도 했고, 그게 현 미술계의 이론이었다. 설마 민국이가 미술에 재능이 있는 건가.

나는 민국이를 예민하게 살폈다.

이때, 스튜어디스가 다가와서 우리에게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냐고 물었다.

나와 민국이는 동시에 외쳤다.

“아이스크림!”

내가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있을 때, 김미영이 아트페어를 살피더니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여기 가고 싶어?”

“네에.”

“그럼, 진짜 예약할까?”

“진짜 그림 보고 싶어요.”

“그래, 나는 잘 모르는데… 돈 많은 분들은 이런 아트페어 자주 다닌다고 하더라.”

김미영은 관심 있게 아트페어 기사를 살폈다.

“언니, 저희도 같이 가요.”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던 엄마가 나서자 김미영이 손사래를 쳤다.

“두 사람은 신혼여행이잖아요. 내가 성국이랑 민국이 반나절 책임질게, 두 사람끼리 오붓한 시간 보내다 와요.”

“언니가 어떻게 성국이랑 민국이를 둘 다 책임져요. 안 돼요. 둘 다 엄청 사고뭉치잖아요.”

엄마는 걱정이 앞섰다.

[엄마, 나는 걱정 마. 내 생각에는 민국이가 걱정이지.]

김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민국이는 얌전하잖아.”

[어랏, 이 대답이 아닌데. 그럼 나는?]

“성국이가 지 맘대로 다니니 난 성국이가 더 걱정이에요.”

[잠깐만! 내가 민국이보다 못하다는 거야, 김 매니저! 아니, 김 대표!]

김미영은 뿔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국아, 그만큼 네가 호기심이 너무 많아서 따라다니기 힘들다는 거야.”

나는 입술을 앙다물고는 팔짱을 끼고 몸을 획 돌렸다.

[치. 나 어려운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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