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정우가 사라진 학교생활은 더욱더 재미가 없었다.
10분 쉬는 시간에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검정고시 준비를 했다.
수업 시간에는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려고만 했다.
엄마는 의기소침한 나를 보며 다시 친구를 사귀라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니 그럴 생각도 없었다.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서는 엄마가 손을 흔들었다.
“성국아, 이따 엄마 참관수업 갈 거야. 알지?”
“응.”
“이따 보자.”
“응.”
“기운 좀 내, 우리 아들.”
“응.”
나는 대강 대답하고는 학교로 향했다.
4교시자 되자, 엄마들이 교실에 모여들었다. 간혹 아빠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중에서도 우리 엄마는 제일 젊고 예뻤다.
사람들이 서로의 아이를 확인하면서 인사를 나눴고, 그중에서 엄마는 단연 스타가 됐다. 내가 방송에 나온 것은 언제나 화제였다. 하지만 난 영 기운이 나지 않았다.
수업하는 동안 선생님의 질문에는 대표로 대답도 했지만, 평소와 달리 시무룩했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엄마는 내가 얼마나 시무룩한지 잘 알고 있었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담임선생님의 말에 학부모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오신 분들 상담 시작할게요. 번호대로 할 테니까, 아이랑 같이 남아서 기다려 주세요.”
엄마는 내 곁으로 오더니 일부러 밝게 이야기를 꺼냈다.
“성국이 오늘 멋지던데. 발표도 잘하고.”
[그거야, 껌이지.]
하지만 이러면 안 되니까, 나는 최대한 짧게 대답했다.
“응.”
“성국아, 좋은 친구들 많은 거 같은데 다른 친구들이랑도 친하게 지내보자.”
“…….”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른 애들은 너무 유치했다.
정우도 유치했지만, 마음이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성국이 어머님, 상담실로 오세요.”
“아, 네.”
드디어 엄마 차례가 됐다.
담임선생님은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상담실로 불렀다.
* * *
담임선생님은 성국이 엄마에게 캔 커피를 내밀었다.
“드세요.”
“어머,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거요. 선생님들과 나눠드세요.”
성국이 엄마는 사온 꽃과 음료 세트를 내밀었다.
“아이, 뭐 이런 것까지 사오시고요. 잘 먹을게요.”
담임선생님은 음료가 든 종이 상자를 은근슬쩍 열더니 눈으로 안을 살폈다. 그러곤 곧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성국이 엄마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챘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이미 상담실 책상 위에는 각종 선물들이 그득했다.
“성국이 어머니.”
“네.”
“성국이가 방송 나왔다고 참 말들이 많아요.”
성국이 엄마는 뭔가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방송을 나온 것은 사실인데, 말이 많다니?
“선생님, 무슨 말씀이세요?”
“성국이가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른 거 아시죠?”
“아, 네.”
성국이가 영어나 프랑스어를 잘하는 것 같은 특기 사항은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해서 담임선생님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특별한 아이는 어디서든 드러나는 법이다.
성국이 엄마는 내심 담임선생님이 성국이의 특별함을 알아봐 주셨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성국이가 참 똑똑해요.”
근데 말투가 좀 이상했다. 비꼬는 투였다.
“감사합니다.”
이 말을 뱉자 담임선생님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뭐랄까. 애가 영악하다고나 할까요. 정우가 우리 반에서 제일 잘살던 애거든요. 걔랑 딱 친구 할 때부터 보이더라고요.”
성국이 엄마는 놀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성국이 선행 많이 시키셨나 봐요?”
“선생님, 선행이요? 아, 저흰 선행 안 시켰어요.”
“아, 네. 다들 그렇게 말하죠. 선행 많이 시킨 애들 고학년 가서 공부 잘하는 경우 별로 없어요. 성국이 보면 딱 선행 많이 한 애들 습성이 있어요. 수업 지겨워하고, 지가 다 아는 것 같고. 그거 몇 달 안 가요, 어머니.”
“저… 선생님. 거짓말 아니고, 저희 성국이 선행 시킨 적 없습니다. 성국이가 혼자 공부한 거예요.”
“뭐, 성국이가 영재라도 된단 말씀이세요?”
“유치원 다닐 때 영재교육 하라는 제안은 많이 받았어도 저희가 특별하게 키우고 싶지 않아서 거절한 적은 있어요.”
성국이 엄마는 최대한 천천히 화를 억누르며 대답했다.
* * *
뒷좌석에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들 몇이 수다 떠는 소리가 들렸다.
“지민이 엄마는 얼마 넣었어?”
“나, 5만 원.”
“이 선생님. 작년에도 1학년 맡았는데, 봉투 밝히기도 유명했대. 안 하면 애들 깎아내리고, 나머지 공부 시키고. 애들 앞에서 야단치고 해서 엄마들이 봉투를 안 줄 수가 없대.”
나는 엄마가 들고 온 꽃다발과 음료수 세트만 떠올렸다.
아직 김영란법이 없을 때라 이 정도는 아이 가르쳐주는 선생님에게 주곤 했다.
[이거 불길한데….]
나는 화장실 가는 척 몰래 교실을 빠져나와 상담실로 향했다.
상담실 문을 살짝 열자, 쩔쩔매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담임선생님은 팔짱까지 끼고 엄마를 무시하는 투로 말했다.
“그럼 영재교육을 시키시지, 왜 저희 초등학교를 보내셨어요?”
“저희는 친구도 만들어주고 성국이가 평범하게 자랐으면 싶어서요.”
“성국이 어머니, 솔직히 이야기하세요. 선행 많이 한 거 쪽팔린 거 아니에요. 다만 지금 선행 아무 소용 없다고 제가 진심 어린 충고를 드리는 거예요.”
“선생님, 저희 선행 정말 안 했어요.”
“학원에 갖다 바칠 돈이 있으면 학교 선생한테 잘하셔야죠.”
담임선생님은 엄마의 말까지 자르며 본색을 드러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나는 벌컥 문을 열었다.
놀란 엄마가 나를 보더니 나가란 손짓을 했다.
“성국아, 교실에서 기다려.”
나는 얼른 엄마 손을 잡았다. 그리고 끌었다.
“엄마, 집에 가자. 저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듣지 마.”
“성국아, 그러지 마. 엄마, 담임선생님이랑 이야기하고 갈게.”
“엄마! 저 선생님 한글 맞춤법도 맨날 틀리고, 산수 문제도 맨날 답 보면서 애들 가르쳐. 저런 교사한테 내가 뭘 배우겠어!”
“너… 얼굴 좀 알려졌다고 지금 어디서 선생님한테 대드는 거니! 어?!”
목소리에 화가 잔뜩 난 담임선생님은 손까지 올렸다.
그때, 엄마가 담임선생님의 손목을 잡아 세웠다.
“선생님, 체벌은 안 되죠.”
“맞을 만한 애는 좀 맞기도 해야 되는 거예요.”
“선생님, 성국이 잘못 없는데요. 촌지 없으니까 저한테 괜히 선행 핑계 대고 짜증 내신 거고. 성국이는 사실만 말하거든요. 맞춤법도 틀리고, 수업은 건성으로 하시면서 촌지 바라시는 건 무슨 배짱이시죠?”
“뭐요?”
담임선생님은 화가 치밀어 올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역시 엄마였다. 엄마는 지를 땐 확실히 지르는 스타일이었다.
엄마가 내 손을 꼭 쥐었다.
“성국아, 가자.”
“응, 엄마!”
엄마는 나가다가 멈칫하곤 뒤돌아섰다. 아직 하고픈 말이 더 남아 있었다.
“선생님, 저희 성국이요. 선행한 적 진짜 없고요. 삼전 그룹 아이들만 다니는 삼전 유치원에서 영재교육 받은 거 사실이에요.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저희 성국이 혼자 독학으로 영어, 프랑스도 합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자료 다 보내 드릴게요. 그러니까 어디서 선행 한다고 미리 짐작해서 말하지 마세요.”
담임선생님은 황당한 얼굴로 엄마와 나를 쳐다봤다.
“성국이 어머니, 정말 어이가 없네요. 지금 교사 가르치려고 드시는 거예요?”
“선생님, 인성이 부족하면 선생님도 배우셔야죠.”
엄마는 뿌듯한 얼굴로 내 등을 두드렸다.
“전 정말 성국이 평범하게 키우고 싶었는데, 선생님 같은 사람들 밑에서는 가르칠 수 없겠네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나도 엄마도 동시에 인사를 하고 상담실을 나왔다.
나는 복도를 걸으며 엄마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오늘 엄마는 정말 박력 있었다.
“성국아, 엄마가 그동안 잘못 생각한 것 같아. 특별한 아이를 평범하게 키우는 건 부모가 멍청한 거였어.”
“엄마, 나 학교 그만둬도 돼?”
“엄마는 우선은 그래. 아빠 의견도 들어보자.”
“응.”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 * *
“뭐라고? 우리 성국이한테 선행 시키는 거 아무 소용 없다고 했다고! 와, 진짜 뭐 그런 선생이 다 있어! 우리 성국이가 언제 선행을 한 적이 있어! 지 혼자 다 공부한 거지.”
화가 난 아빠가 팔뚝을 걷어 올렸다.
아빠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자기야, 진정해.”
“진정? 자기는 그대로 나온 거 아니지?”
“나도 한마디 했지. 성국이 선행 한 적 없고, 특별한 아이를 평범한 아이들 사이에서 키우려고 한 내가 멍청했다고.”
“…….”
순간 아빠는 입을 닫았다.
[아빠, 찔리지?]
사실 내가 초등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니기를 원한 것은 아빠였다.
아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곤 나를 쳐다봤다.
“성국이는 방에 가 있어. 아빠랑 엄마랑 상의할게.”
“응.”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민국이가 졸래졸래 쫓아왔다.
“형아, 형아. 책.”
“하아, 민국아. 형아는 너 나이 때 이미 한글은 물론이고 영어와 프랑스어를 마스터했어. 근데 너는 여섯 살이 아직도 책도 못 읽는다는 게 말이 되니?”
“형아….”
민국이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너 대본은 어떻게 읽은 거야?”
“엄마가 불러주면….”
“안 되겠다. 오늘부터 형이 가르쳐줄게.”
나는 동화책을 펼쳤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한 글자 한 글자를 가리켰다.
“아기 돼지.”
“아기 돼지.”
“잘했어. 혹시 아는 단어 있어?”
“응!”
민국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듬더듬 아는 단어들을 읽어 내려갔다. 물론 반 이상 모르는 단어들이었다.
“민국아, 단어 하나를 아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읽었을 때 어떤 의미인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한 거야. 알아들어?”
“응, 형아.”
민국이는 내가 따라 읽으면 곧잘 뒤를 따라 읽었다.
“형아.”
“왜?”
“형아가 가르쳐 주니까 조아.”
민국이가 방긋 웃었다.
[하아, 넌 정말 내 평생 인생의 짐이야.]
나는 말 대신 책장을 넘겼다.
민국이는 곧잘 따라 읽었다.
[뭐야, 대본 읽어서 그런가….]
“형아, 다음. 어서. 어서.”
“알았어. 천천히 해.”
나는 천천히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민국이는 의외로 내가 가르쳐준 대로 잘 읽어 내려갔다.
[뭐지? 이 녀석.]
“형아, 다음. 다음.”
“알았어.”
나는 또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이때, 방문이 열리더니 아빠가 얼굴을 내밀었다.
“성국아, 엄마랑 아빠랑 대화 다 했어. 이리 와봐.”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거실로 나갔다. 좀 세 보이고 싶어서였다.
아빠는 나를 보더니 꼭 안았다.
[왜 이래, 징그럽게. 아빠!]
아빠는 곧 내 얼굴에 얼굴을 비벼댔다.
[아빠, 아프다고. 면도 좀 해.]
그러더니 다시 나를 폭 안았다.
“성국아,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그동안 너무 잘못 생각했어.”
[어서 다음 말을 해, 아빠.]
나는 예의상 아빠를 폭 안아줬다. 아빠는 바로 내 등을 쓰담쓰담했다.
“성국아, 검정고시 보자. 학교는 그만 다니자.”
“정말?”
나는 아빠에게 되물었다.
아빠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성국아. 아빠가 그동안 너무 잘못 생각했어. 특별한 아이를 특별하게 키워야 하는데, 오히려 평범하게 만들려고 했어. 미안하다, 성국아.”
“아냐, 아냐. 아빠. 성구기가 미안해.”
[아빠, 내가 다 용서해줄게. 왜냐면 우리 아빠니까….]
나는 아빠를 꼭 껴안았다.
* * *
구수영 회장의 비서는 몇 번이고 간판을 확인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문이 열리자마자 젊은 남자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성국이 아버님 되시죠?”
“네, 맞습니다.”
“저는 효성 그룹의 구수영 회장님 개인 비서 황철수입니다.”
황철수는 성국이 아빠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아하, 오늘 오전에 비서실에서 온 전화 받았습니다.”
“네, 이때가 가장 한가하시다고 해서 왔습니다.”
“이리 앉으세요.”
성국의 아빠는 얼른 의자를 뺐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보쌈 저도 맛볼 수 있을까요?”
“걱정 마세요. 안 그래도 준비해 뒀습니다.”
성국이 아빠는 얼른 준비한 보쌈을 내놨다.
“드셔보세요.”
“감사합니다.”
황철수는 보쌈을 한 점 집어 먹었다. 그러곤 황홀한 얼굴로 연신 맛을 음미했다.
“진짜 맛있네요.”
“감사합니다.”
“참, 바쁘신데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네요. 제가 찾아온 이유를 말씀드려야죠.”
황철수는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