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66화 (66/231)

제66화

황철수가 입을 열었다.

“구수영 회장님께서 일전에 만남 이후 저를 보내신다고 이야기했다고 들었습니다.”

“진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성국이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께서 빈말은 하지 않으십니다.”

“아, 네.”

“이번에 제가 직접 찾아뵌 것은 성국 군 때문입니다.”

“그러실 거라 예상은 했습니다.”

성국이 아버지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성국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분명 다른 아이였다. 그걸 이제야 인정하는 자신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황철수 비서는 보쌈을 한 점 먹더니 미소를 지었다.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정말 맛있네요.”

“감사합니다. 더 드릴까요?”

“사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 확인했습니다.”

“…….”

황철수 비서는 젓가락을 놨다.

성국이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성국이 아버님, 성국이 같은 특별한 아이에게는 특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물론 삼전 그룹에서도 성국이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압니다. 하지만 저희는 삼전과 다릅니다. 삼전이 아이에게 길을 제시한다면, 저희는 아이가 가는 길을 곁에서 보고 도와주는 그런 교육을 지향합니다. 그리고 구수영 회장님의 장남이셨던 준호 군 이름으로 생기는 장학재단의 첫 후원을 성국 군에게 하고 싶어 하십니다.”

“…….”

솔직히 성국이 아버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이야기였다.

자신은 고아원 출신으로 공부는 곧잘 했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학교 선생님들은 보육원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공부 대신 기술을 배우라 했다. 그래서 배운 게 요리였다.

성국이 아버지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비서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성국이에게 의견을 물어봐야 할 것 같지만요. 저는 이제 성국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국이가 다른 교육을 받았으면 하고요.”

황철수 비서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아버님, 잘 생각하셨습니다.”

“참,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요. 저희 그룹 내에 홈푸드라고 해서 음식 서비스 관련 자회사가 있습니다. 유명한 음식점들과 제휴를 맺어서 간편식으로 출시할 예정인데, 성국이 아버님도 한번 지원해 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유명한 음식점도 아닌데요.”

“지원은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 이 기회에 지원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참, 특혜는 없습니다.”

황철수 비서는 기획안과 지원서를 성국이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좋은 기회니까, 꼭 도전해 보세요.”

“감사합니다.”

* * *

“이거 읽어봐.”

“응!”

민국이는 이제 제법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래봤자 동화책 한 페이지지만, 머리가 그렇게 나쁜 건 아닌 모양이었다.

민국이는 책을 다 읽더니 나를 올려다봤다.

“형아, 밍구기 다 읽어써.”

“응. 잘했어.”

“형아, 초코레.”

“잘 읽어서 주는 거야.”

나는 옆에 둔 초콜릿 통에서 초콜릿을 하나 꺼내서 민국이에게 줬다.

민국이는 해맑게 웃으며 초콜릿을 먹었다.

[역시 머리 나쁜 애들한테는 먹는 게 최고지.]

달칵.

현관문이 열리더니 아빠가 양손 가득 과자를 들고 들어섰다.

아빠를 보자마자 민국이가 후다닥 달려갔다.

“아빠아!”

“민국이 초콜릿 먹어?”

“응. 형아가 줘써.”

“성국아, 아빠가 성국이 좋아하는 과자 사왔어.”

[아빠, 난 삼전 호텔의 망고 케이크 좋아한단 말이지.]

하지만 난 조르르 달려가서 아빠 다리에 매달렸다. 여덟 살의 모범 답안 같은 행동이었다.

나를 본 민국이도 아빠의 다른 다리 한쪽에 매달렸다.

“아빠아!”

“이 녀석들, 아빠 무거워. 아빠도 이제 서른이다, 이 녀석들아.”

[뭐라고? 아빠가 벌써 서른이라고?]

나는 얼른 아빠를 올려다봤다.

내가 여덟 살이 됐으니 아빠는 정말 올해 딱 서른이었다.

[아빠, 언제 이렇게 나이 먹은 거야.]

나는 아빠 다리에서 떨어져서 민국이 뒷목을 잡아끌었다.

“민국아, 그만.”

“성국아, 아빠 힘들까 봐 그래?”

“응.”

“우리 성국이 정말 다 컸네.”

[아빠가 몰라서 그러는데, 나, 태어날 때부터 완성형 인간이었어.]

아빠는 얼른 과자를 하나 내밀었다.

“성국이 제일 좋아하는 계란 과자.”

“와아! 아빠 최고.”

나는 얼른 계란 과자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과자를 열었다. 정말 이런 과자는 저번 생에서는 본 적도 없었다.

“형아, 밍구기도.”

[하아, 저번 생에는 이런 혹도 없었다.]

나는 과자를 뜯자마자 민국이 입에다가 계란 과자를 하나 쏙 밀어 넣었다.

[민국아, 요즘 너 일 안 하더라. 넌 머리가 나빠서 반반한 얼굴로 연예인 생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러니까 앞으로는 조금 더 열심히 일하는 거다. 알았지?]

히죽히죽.

민국이는 내 속말을 알아듣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화장실에서 엄마가 나왔다.

“자기 왔어?”

평소와 달리 엄마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엄마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소영아, 너 좋아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사 왔어. 녹기 전에 먹자.”

“어….”

엄마는 정말 평소와 달리 조금 의기소침한 얼굴로 다가왔다.

“소영아, 무슨 일 있어?”

“그게… 자기야… 이것 봐.”

엄마는 아빠 앞에 흰 막대를 내밀었다.

[설마!]

나는 주먹을 앙 쥐었다.

아빠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엄마를 쳐다봤다.

“소영아, 너 설마….”

“두 줄이야. 내일 산부인과 가봐야 할 것 같아. 자기야, 나 셋째 가졌나 봐.”

툭-.

계란 과자를 들었던 내 손이 바닥에 떨어졌다.

셋째라고? 진짜 셋째라고?

“소영아, 이 선생님 말이 맞았나 봐. 올해 우리 셋째가 생길 거라고 했잖아.”

“근데 이거 너무 예상 못 한 일이라서….”

“소영아, 걱정 마. 내일 아침에 일찍 같이 산부인과 가자.”

아빠는 엄마를 달랬다.

[하아. 셋째라고…. 둘째 겨우 밥벌이 시켜놨더니, 진짜 셋째라는 거야?]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민국이를 쳐다봤다.

[민국아, 너도 동생 생긴 거야.]

히죽히죽.

아무것도 모르는 민국이는 웃기만 했다.

동생이 한 명 더 생겼다는 것은 내가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한 명 더 늘었다는 말이었다.

* * *

산부인과 대기실에 아빠, 나, 민국이가 조르륵 앉아 있었다.

검사를 하러 들어간 엄마를 아빠가 초조하게 기다렸다.

곧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우리를 쳐다봤다.

“김소영 씨 보호자 들어오세요.”

“아이들 데리고 가도 되죠?”

“네, 같이 들어오세요.”

아빠는 내 손을 붙잡고 일어났고, 난 민국이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의사 선생님이 우리를 보더니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유명한 집이셨네요. 엄마, 아빠가 선남선녀라 애들이 참 이쁘네요.”

“감사합니다.”

“참, 결과 알려 드려야죠. 벌써 석 달이 넘으셨어요.”

“네에?”

아빠가 놀라 엄마를 쳐다봤다.

“자기야, 난 정말 몰랐어.”

“아마 두 분 다 계획에 없으셔서 생각지 못하셔서 그랬나 보네요. 그래도 이렇게 인물 좋은 집에서 막내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네요. 참, 예정일은 10월 27일입니다.”

셋째라니…. 내 어깨가 무거워졌다.

아빠가 얼른 나와 민국이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성국아, 민국아, 동생 생긴대. 여동생이면 좋겠지?”

아빠는 은연중에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다.

의사 선생님이 얼른 아빠를 보며 빙긋 웃었다.

“아버님, 두 달만 기다리세요. 성별은 그때 알려 드릴게요.”

“제가 아들만 둘이라서 마음만 조급했네요. 소영아,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나는 아빠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아빠, 진정해. 누가 보면 첫애 가진 아빠인 줄 알겠어. 아빠, 벌써 세 번째라고….]

* * *

“소영아, 내가 셋째 때문에 정신이 없었네. 효진 그룹에서 구 회장님이 비서분을 보내셨어. 성국이 후원해주고 싶다고.”

“자기야, 안 그래도 성국이 학교 말이야. 진짜 그만두는 게 낫겠지?”

[엄마, 그때 큰소리치고 왜 약한 모습이야?]

나는 얼른 물을 쭉 들이켰다.

지금 엄마가 먹고 싶다는 돈가스 집에 왔는데, 나는 돈가스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가장의 무게란 이런 것인가.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 아빠. 나 학교 그만두고 검정고시 볼래.”

“흠….”

아빠는 잠시 숨을 골랐다.

홧김에 학교를 그만두라고는 했지만, 막상 검정고시를 볼 아이 생각을 하면 걱정스러운 게 아빠의 마음이겠지.

“성국아, 정말 잘할 수 있겠어?”

“응. 그리고 아빠. 엄마. 나 초등학교 검정고시 보고 유학 가고 싶어요.”

“유학을?”

“응!”

나는 당차게 대답했다.

“성국아, 유학 가기 싫어했잖아.”

그땐 더는 배울 필요가 없기도 했고, 민국 녀석이 울고불고 잡는 통에 그랬다. 하지만 이제 곧 셋째가 생긴다.

한국에서의 교육은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은 초등학교 생활 한 달만으로 충분했다.

“그래, 성국이 뜻 잘 알았으니까 우선 검정고시 준비부터 하자. 학교 자퇴하고. 그리고 유학은 천천히 생각해보자.”

“네에!”

나는 번쩍 손을 들고 대답했다.

민국이가 옆에서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형아, 밍구기도.”

“민국이도 뭐?”

“밍구기도 형아 따라가.”

“민국아, 넌 아직 한글도 못 떼서 형아를 따라갈 수 없어. 알았지?”

“한글 다 떼면 형아 따라가?”

“영어 다 떼야 해.”

“영어도 다 떼면 형아 따라가?”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글도 미숙한 민국이가 영어를 마스터하려면 앞으로 20년쯤 걸릴 일이었다.

민국이는 굳은 얼굴로 포크에 찍힌 돈가스를 한 입에 우겨넣었다.

“근데 성국아… 삼전 그룹에서 원래 삼전 장학생으로 유학도 보장해 줬잖아. 근데 그걸 거부하고, 효진 그룹 장학생으로 가는 게 맞을까?”

아빠는 근심스러운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삼전 그룹에서 받은 혜택이 많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생에서 확실히 삼전과의 인연은 끊고 싶었다.

“아빠, 내가 벌어둔 돈 있잖아. 조건 없는 후원 아니면 난 내 돈으로 유학 갈 거야.”

물론 코스피가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는 7월에 주식을 왕창 사야 하지만, 효진 그룹에서도 삼전 그룹처럼 유학 후에 자신의 회사에서 일한다거나 하는 조건을 은연중에 제시한다면 내 돈으로라도 갈 생각이었다.

* * *

구수영 회장은 흐뭇한 얼굴로 황철수 비서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성국 군이 조만간 학교를 자퇴하고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본 후에 미국 유학을 떠나고 싶다는 의견을 말했다고 합니다.”

“녀석 아주 당차네. 고작 여덟 살짜리가.”

“삼전 그룹에서도 삼전 장학생으로 탐낼 만큼 분명 영특한 아이입니다. 준호 군 장학재단 설립이 차질 없이 진행되면 올해 하반기쯤 설립될 것 같습니다. 성국 군의 유학과 맞춰서 진행해도 좋을 것 같고요.”

“그러면 좋지만…. 성국이가 준호 장학재단의 첫 장학생으로 유학을 가는 데 있어서 거는 단 하나의 조건이, 조건 없는 후원이라는 말이지?”

“네. 삼전 그룹에서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유학 후 삼전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어서 모든 것을 거절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수영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하는 데 조건을 걸면 쓰나. 참, 자네가 성국이 자퇴 좀 도와주게.”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띵동.

아침부터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효진 그룹의 황철수 비서와 두 딸 예정과 예리가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 기억하시죠?”

“어머, 누추한 곳에….”

엄마는 얼른 입고 있는 목 늘어진 티셔츠를 매만졌다.

“오늘 성국이 자퇴한다고요.”

예리가 나섰다.

“네, 비서님이 도와주신다고만 했는데, 어떻게 두 분이 같이 오셨어요?”

“저희가 보고 싶다고 졸랐죠. 그리고 그 이야기도 들었어요. 학교 선생이 성국이 무시했다면서요?”

“아, 그건… 선생님도 아마 잘 몰라서 그랬을 거예요.”

“저희가 그 사실을 안 이상 우리 성국이를 무시한 사람은 가만히 둘 수가 없어요.”

예정이 나를 쳐다봤다.

“전성국, 이 누님들만 믿어. 알았지?”

[오바하지 마, 누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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