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앞으로 주어진 시간은 2시간입니다. 그동안 간편식에 알맞은 요리로 재탄생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자, 시작하겠습니다!”
구성현 부장의 말에 따라 경연이 시작됐다.
대기업 공장 시스템으로 만들어지는 요리인 만큼 2시간 동안 간편하게 출시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드는 게 주목적이었다.
아빠와 <원아저씨 보쌈> 수유점 사장님은 지난 한 달 동안 간편식에 맞는 요리 출시에 초점을 맞췄다.
보쌈과 족발을 편의점과 마트에서도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게 1인용 술안주와 도시락으로 만드는 게 아빠의 아이디어였다.
보쌈과 족발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요리인 만큼 요리 시간에 맞춰 구성하는 게 아빠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경연장 둘레에 마련된 응원석에서 가족들은 열심히 아빠와 수유점 사장님이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절로 손에 땀이 찼다. 내 손을 꼭 잡은 민국이의 미간에도 굵게 주름이 졌다.
아빠와 수유점 사장님은 오랫동안 손을 맞춰 와서인지, 서로 메인을 바꿔가면서 빈틈없이 요리를 시작했다.
엄마는 두 손을 모으고 아빠의 요리하는 모습을 쳐다봤다.
나도 아빠의 요리하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느새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엄마는 내 손을 도닥였다.
“성국아, 아빠 진짜 멋있다….”
“응!”
나는 격하게 대답했다.
아빠는 항상 건실한 가장이었고, 묵묵히 할 일을 다 하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진짜 멋있는 사람이었다.
구성현 부장이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앞으로 30분 남았습니다. 저희가 준비한 간편식 도시락 안에 맞춰서 세팅해 주시기 바랍니다.”
쨍그랑!
이때, 접시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하필 아빠 바로 옆에서 조리를 하는 아구찜 팀이었다.
“이걸 어쩌나.”
아주머니는 급한 마음에 손으로 접시를 만지다가 그만 피까지 철철 흘렀다.
“잠시만요! 10분간 멈추겠습니다. 다른 팀들도 모두 멈춰주세요!”
구성현 부장은 얼른 응급대원들을 데리고 아구찜 팀으로 갔다. 응급대원 한 명이 피가 나는 손을 급히 지혈하고 응급처치를 했다.
아빠는 두꺼운 장갑을 몇 개나 끼고 얼른 깨진 접시를 정리했다.
아주머니가 연신 아빠에게 미안해했다.
“미안해서 어째요.”
“안 다치셔서 다행이에요. 괜찮습니다.”
진행 요원들이 와서 얼른 깨진 접시를 치웠다.
10분이라는 시간이 거의 다 흘렀다.
요리에도 흐름이 중요했다.
갓 익은 보쌈과 족발을 막 썰던 아빠와 수유점 사장님의 흐름도 깨졌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30분!
다시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구성현 부장이 카운트를 시작했다.
“자, 이제 5분 남았습니다. 모두 마무리를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른 팀 모두가 정신없이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빠뜨린 게 없는지 확인하는 아빠와 수유점 사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는 간편식 도시락에 보쌈을 가지런히 놓고, 빈칸에 새우젓 소스를 넣고 있었다. 옆으로는 흰밥과 절인 무와 김치가 들어갔다.
“자, 이제 30초 남았습니다. 종소리와 동시에 모두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5, 4, 3, 2, 1!”
구성현 부장의 외침과 동시에 종이 울렸다.
아빠와 수유점 사장은 서로 얼굴을 보고 빙긋 웃고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아빠의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자,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초대된 다섯 명의 전문 심사위원들이 지금부터 심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구성현 부장은 마이크를 놓고 심사 차트를 들었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명의 전문 심사위원들과 한 팀 한 팀 돌기 시작했다.
아빠 팀은 후반부였다.
전문가들은 매의 눈으로 간편식 구성과 맛에 대해서 논의했다. 다들 포커페이스여서 의중을 알기는 어려웠다.
아빠와 수유점 사장님은 땀을 닦으며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드디어 아빠 차례가 다가왔다.
구성현 부장은 빙긋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보쌈 도시락을 살폈다.
“보쌈을 도시락으로 만드셨네요.”
“네, 보쌈 하면 사람들이 술안주로 여기지만 사실 푹 삶은 고기와 김치는 한 끼 식사로도 훌륭하거든요. 한 끼지만 든든하고, 영양소를 골고루 챙길 수 있어서 이렇게 구성해 봤습니다.”
“족발은 술안주용으로 구성하셨네요?”
“족발은 차가워지면 식감이 살아나는 특징이 있거든요. 그 쫀득한 식감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고요. 편의점이나 마트 특성상 냉장 유통을 해야 해서 족발을 술안주용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거기다 요즘은 1인 가구도 늘어가는 추세라 1인용으로 세팅했습니다.”
구성현 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문가들은 보쌈 도시락과 족발 안주를 맛보면서 심사 차트에 뭔가를 꼼꼼하게 적었다.
“잘 봤습니다.”
구성현 부장은 알 수 없는 얼굴로 아빠와 수유점 사장에게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아빠는 드디어 한숨 돌리고는 가족들을 쳐다봤다.
나는 아빠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빠, 쵝오!”
내 목소리가 경연장에 울려 퍼지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아빠도 어느 때보다 환하게 나를 보며 웃었다.
진짜 이번 생에 아빠 아들로 태어난 게 자랑스러웠다.
* * *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열심히 했으니까, 그걸로 족하다.
이건 다 개소리이다!
나는 아빠의 심사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자기야, 오늘 정말 고생했어.”
“결과, 너무 떨린다.”
“성국이 아버님, 오늘 진짜 대단했어요. 제가 다 손에 땀이 났어요.”
“결과도 좋아야 할 텐데요.”
[당연한 말씀. 결과가 나쁘면 다 나쁜 거야!]
나는 주먹을 앙 쥐었다.
“성국아, 아빠 오늘 멋있었지?”
“응. 조금.”
“아까는 최고라며?”
[그땐 그랬지만, 지금은 결과 기다리잖아. 아빠 긴장 줄 놓치자.]
나는 아빠의 등을 탁탁 두드리며 단속했다.
수유점 사장님이 나를 보며 허허 웃었다.
“성국이가 더 긴장하고 있네. 자네 덕분에, 아니지,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성국이 덕분이지. 이런 대회도 참가하고, 진짜 좋은 경험이었어.”
[사장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요! 뭐 다 끝났다는 듯이 이야기하세요!]
나는 매의 눈으로 사장님을 힐끔 보고는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드디어 구성현 부장이 심사 결과가 나온 종이를 들고 나왔다.
웅성거리던 실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구성현 부장에게 집중되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그 전에 오늘 정말 모두 다 고생하셨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잡설은 그만하고. 어서 결과나 발표하라고!]
“자, 그럼 많이 기다리셨으니 결과 발표 먼저 하겠습니다. 예정대로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두 팀 씩 모두 여덟 팀을 뽑았습니다. 자, 그럼 먼저 양식 부문부터 발표하겠습니다. 이탈리아 파스타 간편식을 만든 <정든 파스타> 그리고 스테이크 도시락을 만든 <킹스테이크>입니다!”
“와우!”
함성과 동시에 박수 소리가 들렸다.
같은 양식 부문의 탈락자들은 애써 박수를 쳐주고 있었다.
역시 세상에는 승자만 존재한다.
일식과 중식이 차례대로 발표됐다.
이제 드디어 한식 차례였다.
아빠 손을 잡으려고 뻗는 순간, 이미 엄마가 아빠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오늘은 내가 양보해주지.]
나는 팔짱을 끼고 구성현 부장의 발표를 기다렸다.
“자, 이제 마지막은 한식 부문입니다. 까다로운 한식을 간편식으로 만드시기 위해 모두 애 많이 쓰셨습니다. 그럼, 효진 푸드와 함께할 첫 번째 팀은…. 오늘 접시 깨지셨는데, 합격하셨습니다. 바로 <마산 아구찜> 팀입니다.”
“와아!”
손에 붕대를 둘둘 만 아주머니가 일어나서 환호를 했다.
아빠는 부러운 눈길로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자, 다음 팀 어서!]
구성현 부장이 심사 차트를 보더니 빙긋 미소를 지었다.
“정말 오늘 아이디어와 맛 모두 좋은 점수를 받은 팀입니다. 보쌈 도시락과 1인용 족발 술안주를 만드신 <원아저씨 보쌈> 팀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아빠는 그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나와 민국이를 안아 들고 뽀뽀를 해댔다.
“성국아, 민국아. 아빠가 해냈어!”
[아빠, 뽀뽀는 사양할게.]
“성국아, 아빠가 사랑한다.”
아빠는 연신 뽀뽀를 해댔다.
[그래, 오늘만 허락해줄게. 내일부터는 국물도 없어, 아빠.]
나는 볼을 슬그머니 아빠 쪽으로 돌렸다.
* * *
아빠와 수유 사장님은 가게에서 심각하게 계약서를 검토 중이었다.
김미영이 옆에서 돕고 있었다.
“계약서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네요. 지원할 때 조건과 동일하네요. 1년 내에 간편식을 각 상호를 따서 출시하고 개런티로 순매출의 10프로네요.”
“사인해도 되겠죠, 김 대표님?”
“제가 보기에는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두 분 축하드려요!”
김미영의 말에 아빠와 수유점 사장님은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와, 이게 꿈이야, 생시야! 우리 상호 이름으로 된 상품이 전국 마트랑 편의점에 짝 깔리는 거잖아.”
수유점 사장님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참, 두 분도 계약서를 작성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김미영이 감격한 두 사람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저희끼리도요?”
“네. 동업이라는 게 원래 좀 어렵잖아요. 두 분 모두 고생하셨고, 서로 잘되는 것을 바라는 것도 잘 알지만, 계약서로 깔끔하게 서로 수익 배분하는 것도 정리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나중을 위해서라도요.”
김미영의 말은 정확했다.
처음엔 의리로, 우정으로 시작한 사업이, 되든 안 되든 싸우고 헤어지는 게 동업의 수순이었다.
“전 수유점 사장님이 더 수익 많이 가져가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빠, 지금 무슨 소리야?]
옆 테이블에서 사이다를 마시며 대화를 듣던 나는 발끈했다.
“무슨 소리야. 이 기회며 뭐며 다 자네 덕분이잖아. 도시락이나 1인용 술안주 아이디어도 다 자네가 낸 거고. 이번 경연에서 제일 중요한 건 간편식으로 만들어낸 아이디어였어.”
[수유 사장님, 간만에 마음에 통하네.]
하지만 아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장님이 보쌈과 족발 기술 전수 안 해주셨으면 이 자리도 없었죠.”
“두 분, 그럼 공평하게 5 대 5로 하시죠. 지분도 5 대 5. 그리고 나중에 연계된 어떤 사업을 하든 5 대 5로 시작하는 것으로요. 그리고 한쪽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도 안 되며, 타인에게 양도도 안 됩니다.”
“당연하지. 난 죽을 때까지 보쌈집 할 거야.”
수유점 사장님이 허허 웃었다.
“저두요. 사장님, 그럼 저희 뭘 하든 공평하게 5 대 5. 그렇게 해요.”
“고마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항상 더 고맙죠.”
“그냥저냥 막걸리집 하는 나한테 보쌈 전문점 해보라고 한 것도 자네고, 이 대회 나가자고 한 것도 자네잖아. 자네 덕분에 나까지 덩달아 성장하는 것 같아서 고마워.”
[사장님, 앞으로도 그 고마움 절대 잊지 마세요.]
수유점 사장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성국이 이 녀석, 뭐라 쫑알거리냐. 성국아, 넌 진짜 복덩이다. 너 태어나고 너희 집도 다 잘 풀리고, 아저씨도 덩달아 잘 풀리고.”
[당연하지. 전직 재벌이 되는 건 로또 당첨되기보다도 어려운 복을 타고난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