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71화 (71/231)

제71화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셋째가 태어나는 날.

엄마는 아침부터 진통이 있다고 하더니 점심시간을 지나서 내 손을 붙잡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아빠는 가게 문을 닫고 왔고, 김미영 대표도 함께였다.

이모님이 민국이를 보고 있어서 나는 아빠와 김미영 대표와 함께 분만실 앞에서 초조하게 셋째의 탄생을 기다렸다.

아빠는 연신 분만실 앞을 오갔다.

“성국이 아버님, 좀 앉아서 기다리세요.”

“분만실 들어간 지 오래된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소식이 없죠?”

“아직 1시간도 안 됐어요.”

“그런가요….”

[아빠, 정신 사나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종종 복도에서 여자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지만, 태연하게 기다렸다.

저번 생에서도 두 번의 출산을 경험했다.

아빠는 벌써 세 번째이니 이건 확실히 나보다 더 나아야 할 텐데, 아빠는 안절부절못했다.

이때, 분만실 문이 열리면서 간호사가 나왔다.

“김소영 님 보호자시죠?”

“네.”

“아이 거의 다 나왔어요. 탯줄 자르실 거면 같이 들어가세요.”

“당연히 자를 거예요.”

아빠는 얼른 분만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김미영이 기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여동생 생겼어.”

[기뻐해야 하나?]

사실 하나도 안 기뻤다.

아빠는 보쌈집 하나 운영하는데, 이제 겨우 간편식 준비 중이었다. 올 연말에 출시한다니 매출은 내년쯤 잡힐 건데, 애가 하나 더 는 거였다.

엄마는 내가 소속된 소속사 SKJ 엔터테인먼트에서 일했지만, 당분간 육아 때문에 손을 놔야 했다. 거기다 SKJ 엔터테인먼트는 송혜선도 떠나고 제작사로 업종 변경을 시도 중이라 현재는 수입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민국이는 겨우 지 밥벌이 정도 하는데… 이 와중에 셋째라니….

정말 산 넘어 산이었고,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라고는 없었다.

간호사가 다시 나오더니 나와 김미영을 보며 손짓을 했다.

“신생아실에서 아이 보실 수 있어요. 여자아이예요.”

김미영은 내 손을 꼭 잡고 신생아실로 향했다.

유리창 너머로 핏덩이가 한 명 있었다.

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가져다 댔다.

[전지희. 너는 이 전성국 동생으로 태어난 이상, 인생 빡세게 살 각오 해야 할 거야.]

* * *

1998년 12월 11일 금요일.

정식으로 아빠와 수유점 사장님이 합동으로 개발한 <원아저씨 보쌈>의 도시락과 혼술 족발 안주가 효진 푸드의 이름을 걸고 전국의 편의점과 마트에 전시되는 날이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나와 민국이. 유모차에 탄 지희까지 우리 가족 모두는 아파트 상가에 있는 효진 푸드 편의점을 찾았다.

그런데 어디에도 아빠의 <원아저씨 보쌈> 상품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도착을 안 했나….”

아빠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빠, 나만 믿어.]

나는 얼른 계산대로 가서 까치발을 세우고 물었다.

“사장님.”

“나, 사장 아니고 알바인데.”

“알바님, <원아저씨 보쌈> 도시락이랑 족발이 안 보여서요.”

“그게 뭔데?”

[하아, 이 가게 알바인 네가 알아야지, 내가 어떻게 알아!]

삼전 그룹 후계자일 때 너 같은 알바 만났으면 정말 인생 앞날이 캄캄하게 만들어버릴 수 있었는데.

나는 화를 가라앉히며 다시 물었다.

“한번 찾아봐 주시겠어요? 효진 푸드에서 나온 거예요. 오늘 나온다고 했어요.”

“진짜 애가 가지가지 오만 가지 시키네.”

알바는 투덜거리면서 창고로 들어갔다.

이때,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들어서더니 진열대를 살폈다.

“영석아, 효진 푸드에서 나온 음식, 왜 진열 안 돼 있어? 회사에서 오늘 저녁에 관리자 돈다고 했어.”

“지금 진열하려고요.”

“아이고, 내 속이 터진다, 터져.”

사장은 못마땅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곤 나를 쳐다봤다.

“아이고, 잘생겼네, 고 녀석. 뭐 찾아?”

“<원아저씨 보쌈>에서 나온 도시락이랑 족발이요.”

“어, 지금 진열할 거야. 근데 너 그거 어떻게 알아? 오늘 나온 건데.”

난 아빠를 자랑스럽게 가리켰다.

“저희 아빠가 개발한 거예요.”

“어? 여기 상가에 있는 <원아저씨 보쌈>에서 했다더니 진짜인가 보네.”

사장은 얼른 아빠에게 다가갔다.

“오가며 저도 몇 번 시켜 먹었는데, 그 집 보쌈, 안 그래도 맛있다고 생각했어요.”

“감사합니다.”

아빠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때, 알바생이 <원아저씨 보쌈>의 도시락과 족발을 가지고 나왔다.

“이런! 이웃 가게에서 만들다니…. 맨 앞에 전시할게요.”

“감사합니다!”

내가 소리치자 민국이도 따라 소리쳤다.

“감싸합니다!”

“아이고, 애들도 이쁘네. 니들 사탕 줄까?”

“밍구기 딸기맛 사탕 좋아해요.”

편의점 사장이 사탕을 가지러 간 사이에 아빠는 기분 좋게 여섯 개의 도시락과 술안주 할 족발 세 개까지 야무지게 챙기고 맥주와 소주도 담아 계산대로 갔다.

“사장님, 이거 계산해 주세요.”

“이거 개발하면서 많이 드셨죠?”

“네. 그래도 사장님 매상도 올리고 앞으로도 진열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요.”

“당연하죠. 아파트 상가에 있는 <원아저씨 보쌈>집에서 만든 거라고 내가 홍보 엄청 할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얼른 과자와 우유 몇 개까지 계산대 위에 올렸다.

“아빠, 계산.”

[이 정도는 매상 팍팍 올려줘야지.]

엄마도 평소 같으면 편의점에서 사지도 않는 기저귀까지 계산대에 올렸다.

“사장님, 이것도요.”

“우리 매상도 이렇게 올려주시니, 진짜 <원아저씨 보쌈> 대박 났으면 좋겠네요.”

* * *

<원아저씨 보쌈> 도시락으로 저녁상이 차려졌다.

김미영이 사온 도시락까지 해서 내일 저녁까지는 보쌈 도시락을 먹어야 할 판이었다.

“저도 동네 마트랑 편의점 싹 돌았는데, 맨 앞에 전시되어 있어서 너무 기분 좋더라고요.”

“부끄럽네요. 김 대표님, 한 잔 하세요.”

아빠는 김미영 대표의 잔에 맥주를 따랐다.

“아빠, 난 우유.”

“밍구기는 딸기 우유.”

“이 녀석들 자기주장 확실하네.”

아빠는 얼른 나와 민국이의 잔에도 우유를 따라줬다.

“참, 성국아. 너 다음 달이면 출국이지?”

“네.”

드디어 유학길에 오를 날이 정해졌다.

9월부터 시작하는 미국 학기 전에 적응을 위해서 1월에 출국해서 짧은 어학 코스를 밟을 예정이었다.

엄마는 옆에서 벌써부터 걱정 가득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엄마 성국이 보고 싶어서 어쩌지.”

“엄마가 미국 오면 되지.”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어차피 크면 다 품 떠나는 게 자식이야, 엄마.]

더 큰 세상에 나가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에 머무를 수만은 없었다.

아빠가 좀 시무룩한 얼굴로 맥주를 마셨다.

“아빠도 성국이 엄청 보고 싶을 거 같아.”

“형아, 밍구기도. 밍구기도 가고 싶어.”

“민국아, 넌 좀 더 공부를 잘해야 해. 형아 없는 동안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없는 집에서 성공하려면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든, 특출한 재능이 있든가 해야 하는 거야.]

나는 민국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민국이는 거의 울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전에는 이 얼굴에 마음이 약해져서 미국 유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었다.

대한민국 교육은 나를 담기에는 그릇이 작았다.

이때, 아빠 핸드폰이 울렸다.

신파로 흐르는 흐름을 막아주는 적절한 타이밍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네, 부장님.”

효진 푸드 구성현 부장인 모양이었다.

“벌써 그런 게 집계가 되나요? 첫날인데요.”

전화를 받는 아빠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부장님도 좋은 주말 되세요.”

아빠는 전화를 끊고, 뿌듯한 얼굴로 가족들을 쳐다봤다.

“<원아저씨 보쌈>이 오늘 발매한 간편식 중에서 2등 했대요.”

“진짜?”

“응.”

아빠는 쑥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와중에도 미소는 점점 얼굴에 번졌다.

나는 얼른 아빠에게 가서 안겨서 등을 도닥였다.

[아빠, 그동안 수고했어. 이제 나도 마음 편하게 미국 갈 수 있겠어. 아빠 이렇게 성장시키느라 지난 8년 동안 나 정말 힘들었어.]

울컥.

지난 8년의 고생을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벅차올랐다.

“성국아, 우는 거야?”

“응.”

“왜? 아빠가 잘돼서 기분 좋아서?”

“응.”

대답은 그렇게 하고,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내 고생을 떠올렸다.

원룸에서 시작해서 잠실 아파트까지.

민국이도 사람 만들고, 이제 아빠 일도 자리를 잡아갔다.

내가 미국 가 있을 동안 가족들 손가락 빨 일은 적어도 없을 거 같았다.

지희가 꼬물거리면서 히죽거렸다.

[그래, 지희야. 나 미국 가 있는 동안 무럭무럭 잘 자라서 보자. 오빠가 돌아와서 너도 밥벌이 제대로 하게 해줄게.]

아빠가 내 등을 도닥이며 안았다.

“성국아, 아빠 고생을 네가 알아주다니 아빠도 감동이야.”

[아빠 고생 말고, 내 고생.]

* * *

엄마도 오랜만에 마신 맥주 한 잔에 얼굴이 붉어졌다.

다들 기분이 좋아진 가운데, 민국이는 이미 거실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아빠가 민국이를 안고 일어났다.

“민국이는 내가 재울게. 김 대표님, 오늘 한 잔 더 해야 하니까 좀만 기다리세요.”

“그럴게요.”

“언니, 그럼 저도 얼른 지희 재우고 올게요. 우리끼리 진짜 오랜만에 한잔해요.”

“성국이도!”

나는 얼른 우유를 마시며 손을 들었다.

“성국이 넌 자야지.”

“하아, 어른들은 너무해.”

“성국이는 좀 더 놀게 하자. 나 성국이랑 할 이야기도 있어.”

[무슨 이야기?]

나는 김미영 대표를 쳐다봤다.

“성국아, 니가 저번에 말한 음식 프로그램 경연 말이야.”

“네.”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 하셨던 감독님이 몇 년 전에 프리로 선언하시면서 나왔거든. 그동안 IMF 때문에 힘드셨는데, 우리 아이템 좋다고 같이 해보자고 하셔.”

[내 촉은 틀리지 않는다고.]

나는 가만히 김미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당분간 매니지먼트를 쉬고 제작사로 전환하려고 하거든.”

[김 대표,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다음 이야기를 해봐.]

“성국아, 난 네가 가진 능력이 좀 남다른 거 같아. 미국 가서 하고 싶은 공부 많이 하고, 엔터테인먼트 업계 공부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이번에는 내 눈이 반짝였다.

확실히 김미영은 삼전 기획 경리부에서 썩기에는 아까운 사람이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연예계 업계가 더 커질 거고, 지금처럼 주먹구구로 하는 시스템에 많이 변화가 올 것 같아. 넌 어릴 적에 아역으로 일도 해봤고, 이 업계 일을 경험해 봤잖아. 한번 잘 생각해봐.”

“조언 감사해요.”

나는 깍듯하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김미영 대표는 맥주를 마시며 빙긋 웃었다.

“성국아, 정말 너랑 대화하다 보면 회사에서 높은 분이랑 대화하는 것 같단 말이야, 꼭.”

[당연하지. 나 전직 삼전 그룹 회장이야.]

나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엄마와 아빠가 민국이와 지희를 재우고 나왔다.

나도 슬슬 자리를 떠줘야 할 타이밍이었다.

“엄마, 성국이도 잘래.”

“성국아, 양치해야지.”

[치카치카 시르다.]

나는 엄마 손에 끌려 욕실로 들어갔다.

* * *

“끝도 없이 추락할 것만 같은 코스피 지수가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빠르게 IMF 부채를 갚는 중이고, 수출 흑자는 사상 최대치입니다.”

뉴스에서 기분 좋은 소식이 흘러나왔다.

내가 바닥에서 줍듯이 산 삼전 주식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은 당연했다.

뉴스를 보던 아빠가 허리를 바로 세웠다.

“성국아, 저것 봐. 삼전 주식 장난 아니게 올랐어.”

[아빠, 나만 믿으라니까.]

“성국아, 너 비상금 필요할지 모르니까 조금 팔까?”

나는 팔을 딱 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삼전은 장투다.

나는 삼전 주식의 끝을 이미 알고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