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흠….]
나는 고개를 슬쩍 좌우로 움직이며 풀었다.
마이클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그의 귀에 속삭였다.
“전 거짓말을 못 해요.”
마이클은 콧방귀를 뀌더니 금세 시선을 돌려 멤버들에게 햄버거를 나눠줬다.
“태형이 형, 치즈 덕후였잖아. 두 장 깔았어. 범선이는 느끼한 거 싫어해서 기본.”
“우리 취향도 다 기억하고 있네.”
“장사하니까, 자주 오는 손님들은 취향을 기억하게 되더라고. 촬영 전에 형들이랑 합숙 때 생각하면서 다들 취향 어땠나 돌이켜봤지.”
구 ‘저스트’ 멤버들은 모두 행복하게 마이클의 햄버거를 먹었다.
나 역시 끝까지 햄버거 하나를 다 먹었다.
찰진 패티에 느끼함을 잡아주는 소스. 거기다 적당한 불맛.
전직 재벌 시절에 먹었던 가든 램지의 14만 원짜리 버거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맛이었다.
나는 얼른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마이클을 쳐다봤다.
[마이클, 여기 좀 봐.]
“성국아, 왜?”
마이클이 다가왔다.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걱정과 기대가 반반 섞여 있었다.
“마이클 아저씨, 저 하나 더 주세요.”
“진짜? 하나 더 먹을 수 있어?”
“네! 이거 엄청 맛있어요! 또 주세요! 또 주세요!”
내 말을 태형과 멤버들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마이클, 나도 또 주세요.”
“이거 중독성 쩌네. 마이클, 나도 또 주세요.”
여기저기서 ‘또 주세요!’가 터져 나왔다.
마이클이 나를 보더니 슬쩍 윙크를 했다.
[윙크는 사양할게. 난 맛있는 것을 맛있다고 했을 뿐이야.]
* * *
‘다섯 남자와 아기 바구니 7년 후’는 일요일 황금 시간대에 방송됐다.
해체 후 ‘저스트’ 멤버들의 모습과 1집 탈퇴 후 이태원에서 수제 버거집을 차린 마이클의 이야기. 거기다 효진 그룹의 첫 장학생으로 뽑힌 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마지막 압권은 바로 마이클 수제 버거집에서 내가 외친 한마디였다.
“또 주세요!”
자막에는 이렇게 써졌다.
[또 주세요! 왠지 대유행 조짐.]
뒤집지도 못하는 지희가 내 목소리를 듣더니 방긋방긋 웃어댔다.
[정들게 웃지 마라.]
일곱 살이 된 민국이는 플라스틱 칼을 들고 허공에 찌르며 “또 주세요!”를 연발했다.
보고 있던 엄마도 입맛을 다셨다.
“성국아, 진짜 맛있었어?”
“응. 진짜 맛있었어. 또 먹고 싶어.”
“미국 가기 전에 우리 다 저 집에 가서 먹고 오자.”
미국 가는 날이 다가오자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대한민국의 교육에 실망하고, 더 큰 세상에서 더 많이 배우기 위해서 떠나는 유학이었지만 가족들과 헤어지는 게 슬플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유학 날짜가 잡히고 난 이후에 민국이는 매일같이 내 방에 찾아와서 좁은 싱글 침대에서 나를 꼭 껴안고 잠들었다.
“형아, 나도 데리고 가.”를 잠꼬대로 해대는 통에 나의 수면의 질은 최악이었다.
엄마와 아빠도 내가 뭘 하든 야단도 안 치고, 매번 꼭 안아줄 뿐이었다.
늦은 밤, 민국이가 오늘 밤도 내 허리를 붙잡고 잠드는 통에 나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뒤척였다.
이때, 방문이 살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곧 아빠가 들어오더니 잠든 나와 민국이를 내려다봤다.
나는 눈을 더 꼭 감았다.
아빠는 침대 모서리에 앉더니 나와 민국이를 한 번에 안았다. 옅게 술 냄새가 풍겼다.
[아빠, 뭐 힘든 일 있나.]
아빠는 <원아저씨 보쌈> 출시 이후로 가게까지 덩달아 바빠져서 얼굴 보기도 쉽지 않았다.
곧 아빠는 나와 민국이에게 뽀뽀를 퍼붓더니, 내 볼에 쪽 소리가 나게 뽀뽀했다.
“성국아, 아빠 너 미국 가면 엄청 보고 싶을 거야. 그래도 우리 성국이가 잘되는 일이니까 꾹 참을게. 성국아, 아빠가 옛날 사람이라 우리 성국이 엄청 사랑해도 많이 표현 못 했어. 그래도 아빠 맘 다 알지?”
[말 안 하는데, 어떻게 아나.]
나는 더 눈을 꼭 감았다.
아빠는 내 엉덩이를 도닥였다.
“성국아, 너 낳고 엄마랑 아빠 정말 행복한 일만 가득해서 너무 좋다. 아빠가 돈 어서 많이 벌어서 성국이 방학 때 꼭 얼굴 보러 갈게.”
[아빠, 소상공인이 몇 푼이나 번다고. 저축해.]
민국이가 내 허리를 꼭 껴안았다.
녀석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니 이 녀석도 잠이 안 든 모양이다.
그래도 어쩌겠어. 잠든 척 연기해야지.
나는 얼른 민국이를 더 껴안았다.
“자기야, 나와. 애들 깨.”
엄마가 조용히 속삭이자, 아빠는 그제야 나와 민국이에게 마지막 뽀뽀를 하고 나갔다.
[하아, 살았다.]
순간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초롱초롱 빛나는 민국이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너도 안 잤어?”
“응. 형아.”
“어서 자.”
“형아. 나도 형아 마이 사랑해.”
나는 민국이의 등을 두드렸다.
“민국아, 너는 연예인으로 대성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얼굴이니까 공부 게을리하지 마. 머리가 나쁘면 뭐든 열심히라도 해야 하는 거야. 알지?”
“응.”
“형이 방학 때마다 확인할 거니까, 엄마 아빠 속 썩이지 말고 있어야 해.”
“응, 형. 근데 형… 나 형 말 잘 들으면 미국에서 선물 사오는 거야?”
역시 애는 애였다.
나는 민국이 엉덩이를 도닥였다.
“응. 많이 사올게.”
“히히. 형, 사랑해.”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란 물질이 오고 갈 때 발생하는 거였다.
* * *
“지희야, 여기 봐. 그래, 여기.”
아빠는 카메라를 들고 지희에게 손짓 발짓을 하며 사진을 찍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지희의 백일상은 거실 한편에 차려졌다.
단칸방에 제대로 된 상도 없이, 일회용 카메라로 돌잔치 하던 때를 생각하면 우리 집안은 정말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자기야, 성국이랑 민국이랑 가서 서봐.”
“어, 근데 우리 다 같이 찍어야지.”
“이거 찍고 타이머 맞춰서 찍자.”
엄마는 나와 민국이를 끌고, 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는 왕관을 쓴 지희 옆으로 갔다.
지희는 나를 보자 배시시 웃었다.
“지희도 오빠를 좋아하나 봐.”
[당연하지. 나 전성국이야. 마성의 남자!]
나는 지희의 손을 꼭 잡았다.
“성국아, 민국아. 지희 백일이니까 오빠로서 하고 싶은 말 한마디씩 해주자. 누가 먼저 할래.”
“저요! 저요!”
민국이가 나섰다.
나는 형답게 양보라는 것을 했다.
“지희야, 어서 커서 오빠랑 칼싸움하자. 알았지?”
물론 지희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백일짜리 아이가 알아듣기나 했을까?
“이제 성국이 차례.”
“흠….”
나는 턱을 매만지며 천천히 지희를 살폈다.
민국이는 백일쯤 어느 정도 얼굴의 윤곽이 드러났다. 나보다야 당연히 못했지만, 그럭저럭 봐줄 만한 얼굴에 동그란 눈이 귀염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희는 아직도 오동통한 볼을 제외하고는 얼굴의 윤곽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연예인은 아닌가…. 그럼, 공부라도 잘해야 하는데. 민국이 보니 나 빼고 이 집안 식구들은 머리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도 않고…. 지희도 걷기 시작하면 밥벌이를 해야 하는데.]
내가 고민에 빠진 사이에 아빠가 타이머를 맞춰놓고 달려왔다.
“자, 얘들아! 카메라 보자. 십, 구, 팔, 칠… 사, 삼, 이, 일!”
찰칵.
카메라는 플래시까지 터졌다.
그 바람에 지희가 눈을 감았다.
“자기야, 그렇게 얘기도 없이 오면 어떡해. 성국이가 지희한테 이야기할 건데.”
“아! 미안, 미안. 다시 찍자. 지희 눈 감은 거 같아.”
아빠는 다시 타이머를 맞추기 위해 달려갔다.
나는 지희를 보고는 손을 꼭 잡았다.
“지희야, 튼튼하게만 자라. 오빠가 너는 먹여 살릴게.”
* * *
“성국 군의 유학 준비가 다 끝났어요. 이건 비행기 티켓입니다. 구 회장님 댁 따님이랑 같이 가시는 컨설턴트분이 동행하시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황철수 비서는 비행기 티켓을 내밀었다.
엄마는 여전히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
“컨설턴트분이 재벌가 자녀들 유학 갈 때 다 따라가시던 베테랑이세요. 구 회장님 댁 따님들도 이분이 다 어릴 적에 데리고 다니셨으니까, 걱정 하나도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너무 어린데….”
[엄마, 나 미국은 엄청 많이 왔다 갔다 해서 괜찮아.]
오히려 내가 엄마를 안정시켜야 할 판이었다.
“참, 저번에 다시 성국 군 검사한 거요. 결과가 나왔습니다.”
갑자기 어깨가 처지더니 의기소침해졌다.
유학을 앞두고 장학재단에서 나의 학습 능력 등을 테스트했다. 거기에는 아이큐 검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저번 생에 멘사 회원까지 한 내가 이번 생에서는 121이라는 처절한 수치를 받았던 기억에 나는 아이큐 검사 자체가 공포였다.
청심환까지 먹어가며 테스트를 했는데,
“성국 군이야 뭐, 워낙 뛰어난 결과들을 받아서 놀랍지도 않습니다.”
황철수 비서는 다른 테스트지를 내밀었다.
“그때 민국 군도 같이 검사를 받았잖아요. 어머니, 민국 군도 좀 더 신경을 쓰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민국이가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가 아니라 민국 군 아이큐가 160이 넘거든요.”
[왓더X!]
나는 입이 턱 벌어졌다.
“민국이가요?”
엄마도 놀란 듯했다.
“성국 군이야 워낙 뛰어난 아이라 아이큐야 문제가 되지 않죠.”
[설마, 그 말은.]
나는 슬쩍 내 평가지를 열어봤다.
아이큐는 123이었다. 121이나 123이나. 거의 컨디션 차이로 발생하는 오차 범위였다.
“근데 민국 군 아이큐가 워낙 좋아서 영재교육을 한다면 분명 성국 군의 뒤를 잇는 좋은 인재가 될 거라고 그러시더라고요.”
“민국이는 평범한 줄 알았더니….”
“이 집안 애들은 모두 참 훌륭합니다. 저도 자식 키우는 입장으로 너무 부럽네요.”
엄마는 흐뭇한 표정으로 결과지를 받아 들었다.
그날 밤, 절망에 휩싸인 나는 민국이를 쳐다봤다.
“형아, 나랑 칼싸움하자.”
“민국아….”
내 목소리마저 힘이 없었다.
“형아, 왜?”
“민국아, 공부 열심히 해.”
“난 공부 시로. 칼싸움이 더 조아.”
민국이는 해맑게 플라스틱 칼을 허공에 휘둘렀다.
[저 녀석이 아이큐 160이 넘는다니….]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갓 돌이 됐을 때부터 아침에 눈 뜨면 이 집안을 어떻게 일으켜 세울지 궁리하고, 하루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난 그저 평범한 123. 그것도 2점 올랐다.
그런 아이큐로 평생을 살아야 하고, 내 동생으로 태어나 나의 특훈으로 오디션도 쉽게 통과한 저놈은 날 때부터 160이 넘는 머리까지 탑재했다.
“하아….”
“형아. 왜 그래?”
“민국아, 넌 연예인 말고 공부해라.”
“난 장군이 될 거야.”
[장군 되려면 사관학교 나와야 해. 고로 공부 잘해야 한단 말이다.]
나는 등을 한껏 구부리고 뒤돌아서 짐을 챙겼다.
[미국 가서 잘할 수 있으려나. 이렇게 평범한 머리로….]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이때, 민국이가 뒤에서 나를 폭 안았다. 민국이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딱 잡았다.
“형아, 형아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생기고, 제일 똑똑해. 형아, 기운 내.”
[내가 잘생긴 건 맞는데, 네가 더 똑똑해.]
이건 팩트이다. 부정할 수 없는.
“성국아, 엄마가 짐 싸는 거 도와줄게. 성국아, 이리 줘봐.”
엄마는 캐리어를 챙기다 그만 내 얼굴을 보고 말았다.
“어머, 성국아. 왜 그래? 왜 울어?”
“흑-.”
나는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성국아, 우리랑 헤어져서 슬프구나.”
엄마는 나를 꼭 껴안고 도닥였다.
“엄마아앙!”
“그래, 엄마도 성국이 가는 거 너무 마음 아파. 성국이가 하나도 안 슬퍼하는 것 같아서 조금 속상했는데, 우리 성국이도 가족이랑 헤어지는 거 슬펐구나.”
“흐어엉! 흐어어엉!”
[그럴 리가. 엄마, 나 민국이보다 머리 나빠서 우는 거야. 세상 정말 불공평해!]
* * *
공항은 눈물바다였다.
엄마, 아빠 그리고 민국이가 훌쩍였고, 아무것도 모르는 지희도 따라서 찡얼거렸다.
나는 태연하게 안녕을 고했다.
엄마와 아빠를 꼭 안고 민국이도 꼭 안았다.
엄마에게 안긴 지희의 볼에는 뽀뽀도 했다.
“엄마, 아빠. 성국이 잘 다녀올게요.”
“성국아, 힘들면 언제든 엄마, 아빠한테 전화해.”
“녜에!”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어제는 민국이보다 나쁜 머리 때문에 속상해서 울었지만, 오늘은 정말 가족들과 헤어지는 게 속상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입술을 꼭 깨물고 인사를 했다.
“엄마, 아빠! 성국이 공부 많이 해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