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동업이라니?”
마크는 태연하게 과자를 먹으며 나를 바라봤다.
“나한테 아이디어가 하나 있거든. 근데 난 컴퓨터를 잘 못하잖아. 넌 컴퓨터를 잘하고.”
“응.”
“내 아이디어로, 네가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야.”
마크는 연신 과자를 먹었다.
“아이디어가 뭔데?”
“흠…. 먼저 계약서를 하나 쓰자.”
나는 마크 주크버스가 어떤 놈인지 너무 잘 알았다.
하버드에서 시작한 ‘페이스 페이퍼’도 사실은 다른 이의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이다. 이 일로 소송까지 가서 6천5백만 달러라는 합의금까지 내며 마무리한다.
지금 난 그 아이디어를 마크에게 말하려고 한다.
그리고 거래는 언제나 깨끗해야 했다.
“계약서?”
“응. 만약에 우리가 이걸로 백만장자가 되면 분쟁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성국, 그건 너무 황당한 이야기인데.”
“그치? 그래도 계약서가 있으면 왠지 그렇게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잖아. 계약서만 봐도 행복할 거 같아.”
“좋아. 나도 그 행복한 기분 느껴보고 싶어. 그럼, 계약서 쓸까?”
“물론이지.”
나는 이 일을 입학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운 좋게 마크와 룸메이트까지 되면서 일은 더 순조롭게 흘러갔다.
하지만 사춘기의 마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면도 있었다.
그 비위를 맞추느라 나도 참 많이 참고 또 참았다.
나는 오랫동안 준비한 계약서 초안을 출력해서 마크에게 내밀었다.
마크는 계약서를 한눈으로 휙 읽더니 미소 지었다.
“내가 대표가 되는 거긴 한데, 너도 공동 창업자고 지분도 반씩 나눈다. 맞지?”
“응.”
“좋아. 계약하자.”
“여기다 사인해.”
마크는 거침없이 사인했다.
나도 사인을 마치고, 나는 서류 봉투에 계약서를 모두 집어넣었다.
“성국아, 뭐 하게?”
“뉴욕에 아는 변호사가 있거든. 공증받아 둬야지.”
“성국, 진짜 우리가 공동으로 창업하는 거 같아. 흥미진진한데.”
“당연하지. 우리 진짜로 공동 창업하는 거야.”
[넌 이제 내 손안에 있어, 마크.]
나는 해맑게 웃으며 마크를 쳐다봤다.
마크는 마른 손을 비비며 컴퓨터 앞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성국, 네 아이디어가 도대체 뭐야?”
“이거.”
나는 필립 아카데미의 신입생 소개 책자인 ‘페이스 페이퍼’를 내밀었다.
마크는 약간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내가 참 잘 드러나는 녀석이었다.
“‘페이스 페이퍼’가 네 아이디어라고?”
“이제부터 설명할게. 잘 들어.”
“응. 참, 녹음도 해둘게. 내 아이디어라는 게 정확히 증명되어야 하는 거니까.”
“좋아.”
역시 10대의 남자는 단순했다.
나는 ‘페이스 페이퍼’에 대한 아이디어를 술술 풀어냈다. 당연히 이 모든 것은 마크 주크버스가 하버드에서 훔친 아이디어이다.
마크는 내 이야기를 다 듣더니 무릎을 탁 쳤다.
“성국, 완전 재미있겠는데. 같은 학교나 지역 등 연결 고리를 가진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는 새로운 개념의 SNS네.”
“맞아.”
“와, 얼른 만들어서 우리 학교부터 시작해보자. 옆의 다른 보딩스쿨도 추가하면, 친구의 친구가 이어지는 거고. 예쁜 여자애들 엄청 많이 알게 될 거 같아.”
“그럼.”
나는 마크를 적당히 독려했다.
마크는 손가락을 풀더니 컴퓨터 앞에서 작업에 들어갔다.
“성국, 나 저녁 못 먹을 거 같은데. 매점에서 햄버거 좀 사다줄래?”
“알았어. 참, 이건 내가 너한테 투자하는 거야.”
“아, 맞다. 성국, 우리 이거 이름 뭐라고 하지?”
“페이스 페이퍼. 어때?”
“좋아. 페이스 페이퍼라…. 자, 나 작업 들어간다.”
방 안에는 온통 마크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 울렸다.
나는 얼른 방을 나와서 매점으로 갔다.
혹시 몰라서 계약서와 녹음기는 내가 챙겼다. 월요일에 뉴욕으로 서류를 보내기만 하면 모든 게 끝이다.
* * *
‘페이스 페이퍼’ 작업을 시작한 지 석 달이 훌쩍 지났다.
그사이 시험 기간도 있어서 작업을 쉰 적도 있었지만, 결과물은 하루하루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나는 뉴욕에 있는 변호사에게 계약서의 공증도 받아뒀고, 심지어 녹음된 우리의 첫 아이디어 회의는 은행의 개인 금고에 저장했다.
마크가 혹시 작업에서 손을 떼거나 할까 봐, 나는 주기적으로 간식과 음식을 제공했다.
심지어 여자 친구 사귈 시간도 없다고 투덜거리기에 나의 귀여운 외모를 이용해서 마크가 짝사랑하는 비앙카라는 빨간 머리에게 영화 보자는 쪽지를 대신 전해주기도 했다.
물론 결과는 악몽에 가까웠다.
빨간 머리 비앙카는 나와 함께 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며, 마크에게 성질만 잔뜩 내고 나에게도 절교 선언을 했다.
하지만 이 일로 나와 마크는 더욱 가까워졌다.
연애 상담까지 하는 사이이니, 이보다 더 친해질 수 없었다.
이제 모든 시험도 끝났고,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여름에도 학교에 잠시 남아 특강을 듣고, 한국에도 잠시 다녀올 생각이었다.
마크는 비앙카에게 차인 이후로 더욱 ‘페이스 페이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성국, 어서 완성해서 겨울방학 전에 학교에 푸는 거야. 너랑 나랑 이걸 만든 걸 알면 여자애들이 날 다르게 보겠지?”
[아마 네가 억만장자가 되면 다르게 볼 거야. 그 전까지는 글쎄.]
“성국아, 겨울방학 때 다들 집에 가니까 이걸로 서로 연락하게 해두면 재미있을 거 같지? 난 제시가 마음에 들거든.”
마크가 비앙카 이후 빠져든 여자는 제시였다. 1학년에서 제일 예쁘게 생긴 여자애였다.
[이제 아예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는 건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는 제시와 무척 친했다는 것이다.
“성국아, 네가 제시랑 친하니까 너랑 연결되어 있으면 나한테도 보이겠지?”
“당연하지.”
“대박! 그때 친구 신청해서 내가 접근하는 거야. 와, 완전 흥분돼!”
그래, 모든 위대한 역사의 시작은 여자로부터다.
난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새벽 3시였다.
마크가 내 컴퓨터는 점령하고 있는 바람에 난 마크 책상에서 노트북으로 주식을 확인했다.
역시 대한민국은 빠르게 IMF 위기를 극복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삼전 주식은 나날이 고공 행진을 하고 있었다.
“성국아, 근데 넌 뭘 그렇게 맨날 보는 거야?”
“주식.”
“너, 주식도 해?”
“조금.”
“대단하다. 난 그런 건 잘 모르겠더라.”
“그러니까 내가 경영 쪽으로 너에게 도움을 주는 거지.”
“우리는 정말 운명 같아.”
[운명 같은 소리는 서로 성공한 후에 하도록 하자, 마크.]
나는 얼른 나스닥을 살폈다.
삼전 주식 조금 팔고 사놓은 아마조네스 주식이 하늘 높이 날고 있었다.
2007년 리먼 사태 전까지는 미국의 증시는 호황이다. 그 전까지 아마조네스의 주식은 계속 사들일 계획이다.
나는 노트북을 덮고 뒤를 돌아봤다.
조용하다 싶더니, 마크가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잠들어 있었다.
어쨌든 이 녀석의 천재성과 열정은 인정할 만했다.
나는 마크의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마크, 침대 가서 자.”
“어… 고마워, 성국.”
마크는 좀비처럼 침대에 가서 누웠다.
나는 마크가 만든 ‘페이스 페이퍼’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모니터를 확인했다.
[역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페이스 페이퍼’의 초창기 버전이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 * *
“성국아!”
제시가 식판을 들고 나와 마크의 테이블로 걸어왔다.
제시는 큰 키에 늘씬한 몸매. 환상적인 블론드 헤어로 필립 아카데미 모든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제시가 나랑 친해진 이유는 딱 하나이다.
내가 어리지만 잘생겨서였다. 거기다 나는 토론 수업에서 언제나 칼 같은 전개와 결단력 있는 결론을 도출해서 주목을 받았다.
똑똑하고 잘난 남자 싫어하는 여자는 없었다.
하지만 어린 나를 사귈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인기녀라 구애는 많이 받지만, 진정한 친구가 없는 제시에게 나는 좋은 말동무가 될 수 있었다.
“제시, 어서 와. 여기는 마크. 알지?”
“알지. 성국아, 너는 매번 마크 인사시켜 주더라. 안 그래도 이젠 마크 이름 정도는 알아.”
[내가 너무 오버했나.]
여자 앞에만 서면 얼굴이 붉어지고 말도 살짝 더듬는 마크 대신, 제시에게 언제나 마크를 소개시켜 줬다.
“성국아, 겨울방학 때 학교에서 하는 특강 들을 거지?”
“응. 그거 듣고 바로 한국 다녀올 거야.”
“나 대학 가면 한국 꼭 가고 싶어.”
“우리 집에서 머물게 해줄게.”
“진짜지?”
“당연하지.”
내가 자연스럽게 제시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을 마크는 한없이 부럽게 쳐다봤다.
슬쩍 마크에게 끼어들라고 눈짓을 했다.
“제시, 넌 집이 어디야?”
“난 뉴욕.”
“나둔데.”
그리고 마크는 입을 닫아버렸다.
‘어쩌라고?’가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올 뻔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시, 나도 뉴욕에 며칠 있다가 한국 갈 건데, 마크랑 만나서 밥 먹을래? 내가 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아빠한테 부탁해서 레스토랑 예약할게. 그럼, 마크까지 세 명으로 할게.”
“응. 고마워, 제시.”
마크의 입이 찢어질 듯 올라가는 게 보였다.
나는 마크의 무릎을 꽉 손으로 눌렀다.
[마크, 진정해.]
그러곤 제시에게 노트북을 펼쳐서 ‘페이스 페이퍼’ 화면을 보여줬다.
“성국아, 이게 뭐야?”
“나랑 마크가 만든 SNS야.”
“블로그?”
“그런 것이긴 한데, 만약 여기에 네가 등록하면 같은 학교나 같은 지역 출신으로 추천이 뜨는 거야. 거기다 나랑 친구 사이면 내 친구인 마크도 친구 추천란에 뜨고. 일종의 인맥 형성 SNS라고나 할까.”
“친구의 친구와 또 친구가 되는?”
“응.”
제시는 예쁘기도 했지만, 똑똑하기도 했다.
“제시, 네가 우리 ‘페이스 페이퍼’의 첫 여자 가입자가 되어줄래?”
“나야 좋지. 그럼, 방학 때 밥 먹을 때 여기에 내가 약속 장소 올리면 되겠다. 그치?”
“맞아.”
제시는 그 자리에서 ‘페이스 페이퍼’에 가입했다.
마크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었다.
필립 아카데미 최고의 인기녀인 제시가 ‘페이스 페이퍼’에 가입했으니, 이제 곧 수많은 남자들이 미친 듯이 가입할 건 뻔했다.
왜냐하면 제시의 전화번호조차 딸 수 없는 남학생들이 온라인상으로는 쉽게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 *
“성국아, 난리 났어. 이것 봤어?”
마크가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왜, 마크?”
“‘페이스 페이퍼’ 가입자가 벌써 사백 명이 넘었어. 1학년은 거의 다 가입한 거 같고. 2, 3학년도 많아.”
어젯밤, 나와 마크는 학생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에 ‘페이스 페이퍼’의 서비스를 시작한다며 링크를 올렸다. 동시에 첫 가입자가 필립 아카데미 최고 인기녀인 제시라는 사실을 알렸다.
나는 흐뭇한 얼굴로 가입자들을 살폈다.
마크의 말대로 1학년은 거의 대부분 가입한 것 같았다.
제시의 인기도 인기지만, 내 인기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마크가 시무룩한 얼굴을 지었다.
“마크, 왜 그래?”
“제시랑 인사했는데… 제시가 아직 내 친구 신청을 수락하지 않았어.”
나는 얼른 내 ‘페이스 페이퍼’를 확인했다.
당연히 나와 제시는 친구 사이였다.
“마크, 너무 조급해하지 마. 제시처럼 인기 있는 여자들은 천천히 다가가는 거야.”
“성국, 그럴까?”
“내 말을 믿어봐.”
[나 이래봬도 전직 재벌이야. 여자들이 내 앞에 줄을 섰었다고.]
이때, 제시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 성국, 이렇게 하는 거 맞아?
난 답을 곧 했다.
- 응. 제시.
- 성국, 이따 점심도 같이 먹자.
- 응.
마크는 ‘페이스 페이퍼’를 통해 제시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봤다.
똑. 똑. 똑.
이때, 누군가 기숙사 문을 두드렸다.
누구지?
문이 열리자 기숙사 담당 선생님이 서 있었다.
“너희가 혹시 ‘페이스 페이퍼’를 만든 학생들이야?”
“네.”
내가 얼른 대답했다.
기숙사 담당 선생님의 얼굴을 보아하니,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