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84화 (84/231)

제84화

“둘 다 지금 나 따라와.”

마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잡았다.

“성국, 이거 뭐야? 우리가 뭐 잘못한 거야?”

“마크. 우리가 잘못한 거 있어?”

“아니….”

“그럼 됐어. 그러니 쫄지 마. 우린 잘못한 거 없어.”

나는 그사이 얼른 그레이스에게 연락을 했다.

그레이스는 내가 ‘페이스 페이퍼’를 만드는 동안 변호사 연결이나 기록 등에 대해서 다 알아봐줘서 이 상황을 대강 알고 있었다.

- 그레이스, 학교 측에서 ‘페이스 페이퍼’ 때문에 우리를 불러요. 변호사 부탁해요.

나는 얼른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 * *

학교 상담실은 엄숙한 분위기였다.

나와 마크는 처음 보는 나이 든 중년의 선생님 앞에 앉아 있었다.

“전성국.”

“네.”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마크 주크버스?”

“네.”

마크도 작게 손을 들었다.

“두 사람이 ‘페이스 페이퍼’라는 SNS를 같이 개발했나요?”

“네, 저희는 공동 창업자입니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흠… 아직은 비영리단체인 거죠?”

“네. 저희는 학교 친구들의 친목 도모를 위해서 만든 거거든요.”

나는 ‘페이스 페이퍼’에 대해서 차분히 설명했다.

내가 설명하는 동안에도 마크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불안해했다.

미국의 보딩스쿨 규칙은 엄격했다.

자칫 학교 눈 밖에 나는 날에는 퇴학도 당할 수 있었다.

나와 마크는 최대한 숨을 죽이고 담당 선생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흠… 학생들이 이런 일을 했다는 건 굉장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역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지만 그다음이다.

“하지만… 마이크로 세이버에서 오늘 학교로 문의가 들어왔어요.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이 누구냐고요. 그래서 우리도 알아본 거죠.”

마이크로 세이버?

대한민국 컴퓨터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창문! 그 창문 회사였다.

나는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곤 조심스레 물었다.

아무래도 아직도 바보같이 다리나 떨고 있는 마크는 지금 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럼, 저희를 부르신 이유가 이 프로그램에 대한 징계가 아니라 마이크로 세이버사의 문의 때문이신 거죠?”

“맞네, 성국 군. 처음엔 징계도 생각했지만, 유해한 프로그램이 아니었어. 그때 때마침 마이크로 세이버에서 연락이 온 거고.”

마크가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마이크로 세이버에서 왜 연락이 온 걸까?”

나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와 마크가 개발한 이 ‘페이스 페이퍼’를 사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나는 팔짱을 낀 채 마크를 여유롭게 바라봤다.

“마크, 걱정 마.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 * *

마이크로 세이버에서 나온 담당자는 키가 유독 큰 백인 남성이었다.

마크와 난 그레이스가 소개한 변호사를 대동하고 마이크로 세이버사의 담당자를 만났다.

담당자는 자연스레 명함을 내밀었다.

“제임스 프랭코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전 전성국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는 마크예요.”

마크는 수줍은 얼굴로 책상 아래만 쳐다보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한테 들으니 둘 다 똑똑한 학생이라고 하시더라. 성국 군은 딱 봐도 어려 보이는데 필립 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면 대단하네.”

“‘페이스 페이퍼’ 개발은 마크가 했어요.”

나는 수줍어하는 마크를 조금 추켜세워 줬다. 그래야 이 너드 같은 녀석이 삐치지 않고 말을 잘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땅만 보던 마크는 그 말에 어깨를 조금 폈다.

“대단하네. 그럼, 아이디어도 마크가 낸 거야?”

“아이디어는 성국이가 냈어요.”

조금 기운을 차린 마크도 말을 하기 시작했다.

“둘이 환상의 조합이구나. 아이디어맨과 프로그래머.”

제임스는 빙긋 웃었다.

“저, 오늘 저희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뭐예요?”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하… 이 프로그램을 우리 회사에서 사고 싶거든.”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우선 너희들을 보고 우리 회사에서 금액을 제시하고 싶어서 한번 만나자고 한 거야.”

변호사는 아무 말 없이 예리하게 이 상황을 지켜봤다.

제임스 프랭코는 사람 좋게 웃었다.

“처음은 얼굴을 보고 싶었고… 다음에 우리 회사에 한번 초대하고 싶은데, 어때? 물론 왕복 항공비와 숙박까지 우리가 다 제공할게.”

마크는 가고 싶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난 ‘페이스 페이퍼’를 팔 생각이 없었다.

나는 슬쩍 마크에게 속삭였다.

“마크, 이 일은 전적으로 날 믿어줄 수 있어?”

“당, 당연하지.”

마크는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봤다.

나는 태연한 얼굴로 제임스를 바라봤다.

제임스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늘 와서 우리를 본 것은 보나 마나 얼마나 가격을 후려칠 수 있을까 감을 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내가 변호사까지 대동해서 나타나자 자세까지 바로잡으며 말을 아꼈다.

어쨌든 협상에 불리한 것은 모두 배제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리고 싸게 후려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분명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임스 고맙긴 한데요. 마크와 전 ‘페이스 페이퍼’를 팔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제임스는 짧게 웃곤 나를 쳐다봤다.

“성국, 이렇게 급히 판단 안 내려도 될 것 같아. 우리에게 ‘페이스 페이퍼’를 안 팔아도 돼. 그래도 우리 회사에 구경은 올래? 이제 곧 방학이잖아.”

“정말요?”

마크가 불쑥 대답했다.

가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구경하는 건 나쁘지 않지.

“구경 갈게요. 단, 아무 조건 없이요.”

“그래, 당연하지. 그럼 회사로 돌아가서 상황 보고하고 이번 주 안으로 날짜 잡아서 보낼게. 아마 우리 회사 보면 마음이 달라질 거야.”

[그럴 리가….]

나는 겉으로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확고했다.

[어디 ‘페이스 페이퍼’를 헐값에 사려고 해. 이 양심도 없는 회사야!]

* * *

마이크로 세이버에서 사람이 와서 나와 마크를 찾았다는 소문은 학교에 삽시간에 퍼졌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제시가 다가왔다.

마크는 또 얼굴이 굳더니, 괜히 제시를 못 본 척했다.

난 얼른 제시에게 알은척을 했다.

“제시!”

“성국, 같이 밥 먹자.”

“응.”

“근데 진짜 마이크로 세이버에서 니네 둘 찾아온 거 맞아?”

“응.”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우리가 만든 ‘페이스 페이퍼’에 관심 있대.”

“대박! 너무 멋있다, 성국아.”

“나랑 마크랑 같이 개발한 거잖아. 마크가 엄청 노력했어.”

내가 또 제시 앞에서 추켜세워 주자 마크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렇게 표정 관리가 안 되는 녀석이 나중에 어떻게 ‘페이스 페이퍼’의 대표가 되는 거지?

“성국, 그럼 ‘페이스 페이퍼’ 팔 거야?”

“아니.”

내 대답은 분명했다.

“마크도 같은 생각이야?”

“응. 근데 마이크로 세이버에서 우리 초대했어. 비행기에 숙소까지 다 제공한대. 와서 회사 보라고.”

“너무 멋있다. 니들 10대에 백만장자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제시, 난 이미 백만장자야.]

오늘부로 내가 가지고 있는 삼전의 주식은 40만 원을 돌파했다.

5만 원에 산 게 8배가 올랐다. 내 자산도 8배로 껑충 뛰었고, 경기도에 조용히 잠자고 있는 판교의 땅도 나날이 오르고 있었다.

아마조네스야 말해 입 아프다.

마크는 제시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들떠서 이것저것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제시, 내가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몇 시간이나 걸렸는지 알려줄까?”

[제발, 마크. 여자들은 그런 이야기 싫어해.]

나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고, 제시는 표정이 묘하게 굳어갔다.

나는 어서 대화 주제를 돌리고, 마크를 좀 더 도와주기로 했다.

어쨌든 이 녀석과 나는 동업자였다.

“제시, 방학 때 어쩜 뉴욕에서 같이 식사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어. 한국에도 잠시 가야 해서. 혹, 내가 일정 안 되면 둘이 같이 저녁 먹을래?”

“난… 좋아.”

마크는 얼른 대답했고, 제시는 대답을 머뭇거렸다.

“성국아, 진짜 시간 안 돼? 내가 아버지한테 부탁해서 진짜 좋은 레스토랑 예약하려고 했는데….”

“미안, 확답을 못 하겠어. 그럼, 날짜 잡고 혹 내가 안 가도 서운해하지 마. 제시.”

“난 정말 서운할 것 같아.”

제시는 진심이었다.

[이놈의 인기란….]

마크가 나를 애절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내가 안 나가면 제시가 약속 자체를 취소할 것 같은 분위기 때문이었다. 동업자 녀석을 잘 구슬리기 위해서는 제시의 도움이 필요했다.

“제시, 우리가 마이크로 세이버에 다녀오는 날 저녁으로 잡을까? 어차피 마이크로 세이버에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할 거 같거든.”

“그럴까? 그날로 그럼 뉴욕 레스토랑 예약해둘게.”

“응!”

내 대답에 제시도 마크도 안심했다.

* * *

마이크로 세이버에서는 퍼스트 클래스 항공권을 보냈다.

이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페이스 페이퍼’의 가치를 그만큼 높게 생각하고 있단 얘기이기도 했다.

마크는 처음 탄 퍼스트 클래스에 잔뜩 들뜬 얼굴이었다.

“성국, 다리가 짝 펴져.”

난 열 살치고는 큰 키였지만, 열일곱 살인 마크보다야 당연히 작았다.

마이크로 세이버의 본사는 시애틀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의자에 누워 안대를 쓰며 들뜬 마크를 쳐다봤다.

“마크 나 잘게, 도착하면 깨워.”

“응, 성국. 난 게임이나 하고 있어야겠어.”

마크는 노트북을 열었다.

나는 안대를 끼고 누웠지만, 잠은 잘 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다소 복잡했다.

마크 주크버스는 ‘페이스 페이퍼’를 창립하면서 가장 친한 친구까지 배신하고 회사를 독차지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소송이 있었고, 대부분은 액수가 알려지지 않은 금액으로 합의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는 최후의 왕좌를 차지한다.

거기다 마이크로 세이버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페이스 페이퍼’는 나와 마크가 50 대 50의 지분을 소유한 회사이다.

마크는 과연 이번 생에서는 어떤 선택을 할까?

* * *

“와아-.”

마크는 연신 감탄을 했다.

내 눈에도 마이크로 세이버사는 2000년도 회사치고는 무척 세련되고,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지금 삼전과 비교하면 정말 미쿡 스타일이었다.

나 역시도 감탄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자유로운 직장 내 분위기와 위계질서보다는 자신의 업무에 푹 빠져 있는 모습들.

그래, 직장이 족쇄가 되는 순간, 일의 능률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내가 뒷짐을 지고 걸어가자 제임스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봤다.

“성국, 넌 어린데 꼭 행동하는 건 애늙은이 같은 면이 있어.”

[그럼, 내 안에는 있는 사람은 마흔이야.]

하지만 난 그저 배시시 웃었다.

“성국, 너 찾아보니까 한국에서 굉장히 유명한 아이였더라?”

“그냥 조금 유명했어요.”

마크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성국, 그게 무슨 소리야?”

“마크도 몰라?”

“쑥스러운 과거라서요.”

“성국, 대체 그 과거가 뭐야?”

[마크, 네 얼굴로는 평생 알 수 없는 과거야.]

나는 턱을 만지며 짧게 대답했다.

“어릴 때 TV 광고 모델을 해서 좀 유명했어.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에도 꽤 오래 출연했고.”

“그걸 왜 말 안 했어?”

“한국에서만 유명했는걸, 뭐. 여긴 미국이잖아.”

“참, 회사 구경은 웬만큼 했으니 우리 보스 만나볼래?”

보스라고?

설마 빌 게이트?

마크도 눈이 휘둥그레졌다.

“빌 게이트 씨가 우리를 만나 주신다고요?”

“네. 보스도 ‘페이스 페이퍼’의 가치에 대해서 굉장히 높게 사고 있거든요.”

제임스는 자연스레 회사 소개를 끝내고 빌 게이트와의 미팅 장소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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