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01화 (101/231)

제101화

달칵.

방무혁이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다.

“예진아, 아직 안 갔어?”

“네. 제가 오늘 너무 못한 거 같아서요.”

방무혁이 다가왔다.

“예진아, 너 울었니?”

“…….”

예진이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진아, 난 네가 가능성이 많은데 아직 조금 자신감이 부족한 거 같아. 이거 네가 너무 걱정해서 알려주는 거야. 이번 달은 잘 통과했어.”

“정말요?”

예진은 큰 두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근데 다음 달에도 이러면 나도 장담 못 해. 성국이가 너는 그룹 중 한 명의 멤버로 매력이 있다고 어필해준 덕분이야. 성국이한테 고마워해.”

[그건 말할 필요 없는데….]

방무혁은 괜히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설마 내가 만두상 예진한테 관심 있다고 여기는 건가…. 내 취향은 아니라고, 방무혁.]

예진은 쑥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고마워요.”

“예진아, 네가 성국이보다 두 살 더 많아. 편하게 말해. 동생이야.”

“네, 다음에 보면 그럴게요. 피디님.”

방무혁은 얼른 내 어깨를 도닥였다.

“예진이는 가보고, 성국이는 나랑 같이 잠시 작업실에 가자.”

“네에….”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정말 어른들이란 자기들 마음대로 상상하고, 생각해 버리는 존재들이었다.

[참, 나도 어른이지….]

뒤돌아가던 예진이 얼른 뒤돌아오더니 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번호 좀….”

“나 미국 들어가서 한국에서는 핸드폰이 없어요. 미안해요.”

나는 철벽을 쳤다.

[재벌이 되기 전까지 내 사전에 연애는 없어.]

방무혁이 다시 내 어깨를 툭 쳤다.

“성국아, 이메일 있잖아.”

예진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메일 주소를 적어줬다.

“바빠서 메일에 답 못 할 수도 있어요.”

“다음 방학 때는 연습생 할 거니까 회사에서 볼 수 있는 거죠?”

“아마도요.”

“그럼, 그때 봐요. 피디님, 안녕히 계세요.”

예진은 90도로 인사를 하고 후다닥 계단을 내려갔다.

방무혁이 내 어깨를 여러 번 두드렸다.

“성국아, 연습생들 사이에서 우리 회사는 연애 금지야. 알아둬.”

“저도 아직 연애할 생각은 없어요.”

나는 끝까지 철벽을 쳤다.

* * *

방무혁은 작업실에서 MP3 하나를 내밀었다.

[MP3 정말 오랜만에 보네.]

나는 신기한 눈으로 MP3를 내려다봤다.

“성국아, 이거 선물이야.”

“선물이요?”

“응. 여름방학 때 들어와서 연습생 하려면 음악 많이 들어놓으면 좋을 거야. 내가 즐겨 듣는 음악부터 해서 장르별로 한 천 곡 들어가 있을 거야. 공부하면서 들어봐.”

“감사합니다.”

“음악도 많이 듣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장르도 구분이 되고, 내가 잘 부를 수 있는 장르도 자연스레 알 수 있거든.”

[방무혁, 나 가수 할 생각 없어. 나 재벌 할 거야. 그래도 주는 건 우선 받아두지.]

나는 MP3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과 모양이 선명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피디님, 저도 작은 선물 하나 준비했어요.”

나는 집에서부터 가져온 선물 하나를 내밀었다.

미국에서 사온 마블 캐릭터 피규어였다.

“성국아, 이거 <아이언맨>이잖아.”

“선물 뭐 살까 고민하다가 샀어요. <아이언맨>처럼 성공하시라고요.”

방무혁은 감동스러운 얼굴로 나를 봤다.

사람들은 원래 작은 거에 감동한다.

식당에서 눈높이 맞춰 주문을 받아주는 직원의 따뜻한 시선.

문을 잡아주는 앞사람의 세심한 배려.

비행기에서 뒤척일 때 이불을 덮어주는 승무원의 손길.

“성국아, 진짜 고마워. 작업실에 두고 작업할 때마다 봐야겠어.”

방무혁은 얼른 작업실 테이블 위에 <아이언맨> 피규어를 놨다.

[이렇게 우리 관계는 또 끈끈해지는 거지.]

나는 회심의 미소를 슬쩍 지었다.

* * *

나는 가족들과 함께 하버드 입학식에 맞춰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내 하버드 입학식에 총출동했다.

“엄마, 아빠. 여기!”

민국이가 손을 흔들었다.

기념품숍에서 산 하버드 티셔츠를 모두 입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민국이와 지희까지.

[하아… 이게 바로 제 가족입니다.]

물론 나도 하버드 로고가 쓰여 있는 티셔츠를 극성인 아빠 때문에 입었다.

“성국아, 아빠가 이번에 카메라도 새로 샀잖아. 성국아, 이거 300만 화소가 넘어. 이거 성국이 주고 갈 테니까, 학교생활 하면서 친구랑 사진 찍어서 이메일 자주 보내야 해.”

“응, 아빠.”

조금은 촌스럽고 극성스러운 식구들이지만 나도 어느새 스며들어 있었다.

어쩌면 이게 정상적인 가족인지도 몰랐다.

“성국이가 가운데 서자.”

“성국이 아버지, 제가 사진 찍어 드릴게요.”

“감사해요, 선생님. 가족사진 찍고 제가 성국이랑 찍어 드릴게요.”

“좋죠.”

그레이스는 아빠에게 카메라를 건네받았다.

뒤로 구수영 회장 부부도 흐뭇한 표정으로 우리 가족을 바라봤다. 구예정과 예리도 함께한 자리였다.

“자, 하나, 둘 셋. 할게요. 하나, 둘, 셋!”

찰칵.

* * *

하버드 대학 근처의 조용한 레스토랑.

구수영 회장 부부와 두 딸. 그레이스와 아빠가 함께한 저녁 식사 자리가 시작됐다.

하버드 교정을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 뻗어버린 민국이와 지희를 보느라 엄마가 빠진 자리라 조금은 아쉬웠다.

구수영 회장은 뿌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정말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줘서 너무 고맙구나…. <준호 재단> 첫 장학생이 이렇게 멋지게 성장해줘서 우리가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요.”

“아니야, 아니야. 성국아. 더 열심히 하라는 게 아니라, 이제는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며 일이며 마음껏 하라고. 그 말이야.”

“네.”

구예정와 예리는 아까부터 나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놈의 인기는 나이 먹는다고 사그라지는 게 아니었다.

“아빠, 성국이 정말 잘 자란 좋은 예 아니에요? 아까 하버드생들 사이에 서 있는데도, 한눈에 들어왔어요.”

“언니도 그랬어? 나도 그랬는데.”

“우리 딸들이 이렇게 철이 없어요, 성국이 아버님.”

“괜찮습니다. 성국이 칭찬하는 거잖아요.”

아빠는 나를 흐뭇하게 쳐다봤다.

“참, 성국아. 너 JP에서 연습생 하기로 했다며?”

구예정이 대뜸 물었다.

[아직도 범선이랑 사귀는 건가… 소식 한번 빠르네.]

“방학 때, 여러 활동 해야 하잖아요. 연습생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요.”

“이러다 우리 성국이 가수로 먼저 TV에서 보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구수영 회장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걱정 말라고. 난 타임지나 포브스 1면이 목표야.]

구예리는 이미 나보다 더 들뜬 얼굴이었다.

“아빠, 성국이 진짜 이러다 유명해지는 거 아니에요? 가수도 되고, 배우도 하고….”

“성국이는 진짜 앞으로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성국아, 우리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응원한단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구수영 회장이 인자한 눈으로 바라봤다.

저건 진심이었다.

나는 고개를 단호하게 끄덕였다.

“어떤 선택을 하든 실패하지 않을 것이란 건 보여 드릴게요.”

* * *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지만, 내일 가족들이 떠나기 때문에 오늘은 학교 근처 숙소에 묵기로 했다.

아빠가 엄마가 잠든 방 문을 살짝 열었다 닫았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다.

“성국아, 엄마랑 민국이랑 지희는 다 잠들었어. 우리 같이 잘까?”

[징그러운데….]

“아빠는 오랜만에 성국이랑 자고 싶은데, 어때?”

[내가 참아야지, 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까치발을 세우고 옆방으로 향했다.

아빠는 내 잠자리를 봐주더니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성국아, 언제 이렇게 큰 거야?”

[내가 원래도 아빠보다 몸만 작았지, 정신연령은 한참 위였다고.]

“아빠, 내일 또 한국 가려면 어서 자요.”

“그래야지. 근데 아빠는 좀 아쉽다. 성국이랑 이렇게 헤어지면 여름방학 전까지는 못 보는 거잖아.”

“방학하면 바로 나갈게요.”

“성국아, 학교 공부 너무 무리해서 하지 마. 알았지?”

“네, 아빠.”

아빠는 내 엉덩이를 애기 때처럼 도닥였다.

[아빠, 나 아기 아니야.]

문득 그때 아빠 머리에 새치가 보였다.

아빠도 이제 30대 중반이었다.

[아빠는 언제 이렇게 늙은 거야.]

물론 아직 젊은 나이였지만, 20대 초반에 어린 나이의 아빠가 나를 안고 집까지 돌아오던 그날의 기억이 내겐 선명했다.

울컥.

정말 이번 생에서는 감정 조절이 잘 안 됐다.

왜 이렇게 울컥할 일이 많은지.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욕실에 들어갔다.

“아빠, 나 먼저 씻을게.”

“아빠가 등 밀어줄까, 성국아?”

“싫어!”

쾅.

나는 문을 닫았다.

[아무리 그래도 등은 아니지.]

나는 얼른 붉어진 눈시울에 찬물을 끼얹었다.

유쾌한 아빠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성국이도 이제 사춘기구나….”

* * *

기숙사 앞에 선 내 오른 다리에는 민국이가, 왼쪽 다리에는 지희가 매달려서 울부짖었다.

“형아. 형아! 우리랑 같이 집에 가자.”

“오빠! 지희랑 가자!”

“으아아앙!”

“으아아아아앙!”

민국이와 지희는 내게서 떨어질 줄 몰랐고, 하버드 전교생이 이 장면을 흘깃흘깃 구경하고 갔다.

[하아, 쪽팔려. 나 이제 사춘기인가 봐.]

정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이때, 마크가 웃으며 다가왔다.

“성국!”

마크와 나는 이번에는 방은 달랐지만, 같은 기숙사 건물에 머물게 됐다.

“어머, 마크네.”

엄마가 얼른 마크에게 알은척을 했다.

마크는 오더니 한국식으로 엄마, 아빠에게 인사를 했다.

“마크, 반가워.”

아빠는 당당하게 한국말로 마크에게 인사를 했다.

마크가 이 상황에 당황하지 않은 것이 참 신기했다.

“성국, 동생들 때문에 지금 오도 가도 못 하는 거야?”

“응.”

마크가 민국이와 지희를 내려다봤다.

“와, 이 녀석들 완전 귀여워. 성국, 민국이는 꼭 너 어릴 때 같아.”

“무슨 소리야. 나보다 한참 못하지.”

“성국, 너 가끔 보면 나르시스트 같을 때가 있어.”

“마크, 안 도와줄 거면 어서 가.”

“알았어. 이따 수업 때 봐. 참, 제시가 이번 주에 자기네 기숙사에서 파티 한다고 오래. 갈 거지?”

“몰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다. 소영아, 한 명씩 맡자.”

“알았어.”

아빠와 엄마는 눈을 맞추고는 곧바로 지희와 민국이를 안아서 나에게서 떼어냈다.

[한숨 돌렸네….]

드디어 속박에서 풀려났다.

엄마, 아빠에게 안긴 민국이와 지희는 발버둥을 쳤다.

“엄마, 형아랑 같이 있을래. 나 한국 안 갈래.”

“나도 엄마. 오빠랑 같이 살래.”

지희는 끝까지 떼를 썼다.

내가 나서야 할 때인가.

나는 얼른 민국이와 지희의 귀에다가 속삭였다.

그러자 민국이와 지희 모두 울음을 뚝 그쳤다.

민국이는 자신의 가방을 메더니 아빠 손을 잡았다.

“아빠, 가자.”

지희도 가방을 메더니 엄마 손을 잡았다.

“엄마, 나도 집에 갈래.”

아빠가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아, 대체 뭐라고 한 거야?”

“비밀이에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성국아, 밥 잘 챙겨 먹고.”

“미국 애들 보니까 이상한 약 같은 것도 하던데, 너는 절대 그러면 안 돼.”

“성국아, 나쁜 애들이랑 어울리지 말고. 알았지?”

“성국아, 공부 적당히 해. 친구들이랑 놀러도 다니고….”

엄마와 아빠는 잔소리를 한 바가지 늘어놓고 공항으로 향했다.

차가 떠나고 기숙사 문을 여는데,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 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기분.

하지만 세상 혼자 사는 거다. 원래….

참, 내가 민국이랑 지희에게 뭐라고 했냐고?

형이랑 있으면 24시간 중에 4시간 자고 20시간 공부해야 한다고 했더니, 기겁을 하고 떨어졌다.

[내가 재벌 될 테니, 너희들은 편하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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