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07화 (107/231)

제107화

피터는 뉴욕에서 막 미란다에게 보고를 받았다.

“피터, 전성국이란 그 아이가 하는 30일 프로젝트가 엘렌 윈프리 쇼에 나왔어요.”

“뭐어?”

피터는 조금 놀랐다.

“금주의 핫이슈라는 작은 코너인데, 그 코너 담당 작가가 ‘페이스 페이퍼’를 이용하더라고요. 성국 군이 하는 프로젝트 보고 흥미로워서 인터뷰 내보냈는데, 그 덕분에 ‘페이스 페이퍼’ 접속하려는 이용자 수가 증가해서 서버가 다운됐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복구된 상태고요.”

“엘렌 윈프리 쇼에 나갔다고?”

“네. 재방송 시간대 알려 드릴게요. 한번 찾아보세요.”

“어, 고마워. 미란다.”

미란다가 나가고 피터는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우선 가장 걸리는 것은 ‘페이스 페이퍼’가 생각보다 너무 유명해졌다는 점이다. 물론 그 덕분에 자신이 믿었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페이스 페이퍼’의 미래는 분명 밝았다.

* * *

“성국, 방송 잘 봤네. 자네가 흥미로운 인터뷰를 했더군.”

나는 지금 10년 후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마이클 샨델의 <정의란 무엇일까?>란 강의를 듣고 있었다.

머리가 막 벗겨진 마이클 샨델도 내 인터뷰를 본 모양이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됐다.

같은 강의를 듣는 마크와 데니스, 제시도 나를 자랑스럽게 쳐다봤다.

“성국, 그 인터뷰 너무 잘 봤네. 그런데 난 자네가 만든 ‘페이스 페이퍼’에 대해서 이런 의문이 약간 들더라고. 만약 내가 여기 앞에 앉은 여학생을 스토킹하는 남자라고 생각해 보게나.”

[흥미진진해지는데, 마이클.]

나는 잠자코 마이클 샨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페이스 페이퍼’에는 지금 내가 있는 위치를 알리는 역할도 있지 않나? 내 말이 맞지?”

“네, 교수님.”

“그러면 나는 단지 친구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페이스 페이퍼’에 내 위치를 올렸는데, 만약 스토커가 그 위치를 확인하고 찾아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마이클 샨델의 질문이 시작됐다.

이건 그가 가진 특유의 대담 형식 수업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마이클 샨델에게 질문을 던졌다.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요, 교수님. 만약 어떤 아이가 집을 나갔거나 납치가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범죄 해결의 단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 자네는 어떤 하나의 작용에 대한 양면성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네, 비행기는 세계 각국으로 우리를 여행할 수 있게 해주지만, 전쟁이 터지면 폭탄을 실어 나르죠. 에어컨과 냉장고는 우리를 더위에서 구해줬지만, 결국 자연 파괴로 지구의 생명이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발명과 새로운 도전에는 양면성이 존재하죠.”

“흠… 흥미로운 이야기이네.”

“교수님, 모든 혁신에는 악용 사례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두려워했다면, 세상이 어떻게 진보할 수 있었을까요? 스토킹은 ‘페이스 페이퍼’ 이용 전에도 이미 우려되는 문제였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최대한 방어막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예로 어떤 걸 들 수 있지?”

“친구들 외에는 자신의 위치를 공개하지 않는다든가,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만 위치가 보이게 한다든가. 차례차례 필요한 방어막을 만드는 거죠.”

마이클 샨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분명 그런 기능들이 ‘페이스 페이퍼’의 순기능에 도움이 되길 바라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네.”

마이클 샨델은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 다가왔다.

“성국, 자네 개발이 무척 흥미롭거든. ‘페이스 페이퍼’를 통한 자네 도전도 흥미롭고. 나도 가입할 수 있겠지?”

“물론이죠.”

“앞으로 기대하겠네.”

마이클 샨델은 인사를 하고 강의실을 나갔다.

제시가 나를 보더니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성국, 방송 너무 잘 나왔던 거 알아? 친구들이 너 소개해 달라고 난리도 아니야.”

“내 나이도 같이 말해줘. 나 아직 미성년자잖아.”

[이럴 땐 미성년자인 게 편하네.]

나는 무거운 가방을 챙겼다.

“성국, 오늘 점심은 내가 살게. 같이 가자.”

“제시, 미안. 30일 동안 모든 호의는 거절하기로 했잖아. 이젠 내 도전이 너무 유명해져서 아마 너랑 밥 먹었다가는 단번에 ‘페이스 페이퍼’에 올라가버릴 거야.”

“내가 생각이 짧았어. 그 도전 성공하면 바로 나랑 밥 먹는 거야, 알았지?”

“응.”

* * *

- 드디어 30일 프로젝트가 끝나기까지 1시간이 남았습니다. 냉장고에는 오렌지 하나와 핫도그 두 개. 그리고 단백질 셰이크는 이렇게나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저와 같은 도전을 하실 분들에게 조언을 드리자면 단백질 셰이크는 정말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나는 내 계정의 ‘페이스 페이퍼’에 글을 남겼다.

응원 글들이 수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더불어서 밥 사주겠다는 댓글도 수없이 달렸다.

데니스가 핫도그 두 개를 모두 데워왔다.

“성국, 내가 특별히 널 위해 핫도그 모두 데워왔어.”

“데니스, 하나는 네가 먹을래? 나 핫도그 두 개 먹었다가는 영원히 다시는 핫도그를 못 먹을지도 모르겠어.”

“정말 너도 대단해. 어떻게 한 달 동안 이렇게 살 생각을 한 거야?”

“이렇게 끔찍할 줄은 시작할 때는 생각도 못 했어.”

나는 마지막 핫도그를 들었다.

데니스와 마지막 핫도그로 짠을 하고 한 입 깨물었다.

[평생 핫도그는 입에도 대지 말아야지.]

그래도 꾸역꾸역 핫도그를 입으로 밀어 넣었다.

데니스는 맛있게 핫도그를 먹었다.

“성국, 네 ‘페이스 페이퍼’에서 다들 지금 축제 분위기야.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어. 이제 곧 자정이니까, 네 도전도 끝나는 거지?”

“응….”

나는 마지막 핫도그의 나무 막대기를 쓰레기통에 휙 던져버렸다.

[이제 정말 끝이다!]

동시에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데니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면서 마크와 제시가 피자와 각종 음식을 들고 방 안으로 쳐들어왔다.

뒤로 미셸 조나와 카메라도 보였다.

“성국, 그날 방송이 워낙 이슈가 돼서 내가 급하게 연락도 없이 왔어. 미안.”

“괜찮아요.”

미셸 조나는 급하게 간단한 멘트도 땄다.

“오늘은 전성국 군의 30달러로 한 달 살기 프로젝트가 끝나는 날인데요. 벌써 하버드 기숙사는 축제 분위기입니다. 친구들이 프로젝트 끝나는 기념으로 피자와 각종 음식까지 사서 들고 왔네요.”

주변의 기숙사 친구들도 내 방 주위로 모여들었다.

모두들 다 같이 내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같이 해주고 있었다.

“자, 성국. 이제 1분도 채 안 남았어요. 우리 다 같이 카운트다운 해요.”

미셸 조나의 말에 모두들 동의했다.

나는 학생들 사이에 서서 카운트다운을 함께 했다.

“10, 9, 8, 7, 6, 5, 4, 3, 2, 1! 축하해요!”

미셸 조나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성국,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게 뭐예요?”

“저희 아버지가 만든 보쌈이요.”

“한국 음식이군요.”

“네.”

“아쉽게도, 여기서 지금 보쌈은 구하기 힘들 것 같은데, 그럼 이 중에서 가장 먹고 싶은 건 뭐예요?”

“당연히!”

나는 당장 잘 튀겨진 닭다리를 집었다.

“치킨이죠!”

그러곤 한 입 크게 깨물었다.

동시에 친구들은 다시 한번 크게 환호했다.

* * *

기숙사 방 안은 파티의 장으로 변했다.

미셸 조나도 파티에 끼어서 같이 음식을 먹고 즐겼다.

“성국, 방송 나가고 게시판도 난리였어. 너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도대체 저런 천재성을 가진 아이가 어쩜 저렇게 잘생기기까지 한 거냐고 난리도 아니었어.”

“방송 잘 내보내 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음식을 닥치는 대로 먹고 있었다.

한 달 동안 의도치 않게 절식을 해서인지 살도 많이 빠졌고, 덕분에 카메라는 더 잘 받았다.

마크가 다가와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햄버거를 내밀었다.

“성국, 너 최애 버거. 내가 이거 구하려고 차까지 빌려서 다녀왔어.”

역시 오랜 친구는 달랐다.

“마크, 진짜 고마워.”

이때,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는 누가 전화를 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예상대로 발신자 표시에 피터 브랜튼이 떴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조용한 구석으로 향했다.

구석으로 걸어가는 내내 동기들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겨우 구석에 자리 잡은 나는 전화를 받았다.

- 성국, 축하해! 막 ‘페이스 페이퍼’로 결과 확인했어.

“감사해요.”

- 성국, 다음 주 주말에 마크랑 뉴욕에 올 수 있지? 비행기표와 호텔까지 내가 모든 것을 제공할게. 아, 그 룸메이트 친구도 함께.

“아무 대가 없는 거죠?”

- 당연하지.

“다음 주에 뉴욕에서 봬요.”

나는 흔쾌히 뉴욕행을 선택했다.

* * *

해가 밝아오는 것을 보고 동기들은 기숙사를 떠났다.

마크와 데니스도 졸린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얼른 마크와 데니스를 쳐다봤다.

“참, 우리 다음 주에 다 같이 뉴욕 갈 거야. 피터가 비행기랑 호텔 다 예약해준대.”

“나도?”

데니스가 물었다.

“응. 피터가 ‘페이스 페이퍼’ 가입할 때 도움 줘서 고마웠대. 내가 너, 뉴욕에 있는 예술 학교 배경으로 시나리오 쓴다고 말했었거든. 한번 가서 보는 게 좋지 않겠어?”

“대박! 성국. 정말 믿기지가 않아. 너랑 있으면 모든 게 이뤄지는 느낌이야.”

[당연하지, 나 전성국이야.]

나는 최대한 겸손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마크, 우리는 피터와 어떤 식으로 사업을 추진할지에 대해서 조금 준비하자.”

“성국, 진짜 우리 이걸로 창업하는 거야?”

“마크, 난 내가 너에게 이 아이디어를 말했던 그 순간부터 이렇게 할 생각이었어.”

마크는 내 어깨를 도닥였다.

“그래, 가보자. 지금 아니면 이런 도전 또 언제 해보겠어.”

[물론 그 결과는 창대할 것이야, 마크. 나만 믿어.]

나는 승리에 차서 미소를 지었다.

* * *

“지금 우리 퍼스트 클래스에 타고 있는 거 맞지?”

마크와 데니스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촌스럽게 왜 이래.]

나야 저번 생부터 시작해서 이번 생에도 주구장창 퍼스트 클래스를 운 좋게 탔다.

마크가 나를 흘깃 쳐다봤다.

“성국, 피터가 엄청 우리를 높게 평가하고 있단 의미지?”

[어쭈, 나랑 좀 붙어 있더니 이제 제법 상황 판단도 하네, 마크?]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 같아. 뭐든 우리가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을 거야. ‘페이스 페이퍼’가 지금 하버드를 보내고 싶어 하는 미국의 열성 엄마들 사이에서도 엄청 유명해졌대.”

“엘렌 윈프리 쇼 덕분이네.”

“응.”

미국에서 시청률 1위를 달리는 엘렌 윈프리 쇼의 영향력을 막 실감하는 중이었다.

미셸 조나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이미 여러 곳에서 투자 제의를 위해 방송국까지 연락을 하거나, 학교로도 연락이 왔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증명된 안정적인 투자였다.

데니스는 그사이 찾아본 뉴욕의 예술 학교 몇 곳 중 한 곳을 방문하기로 약속을 잡아둔 상황이었다.

“성국, 너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시간이 될까?”

“약속이 언제인데?”

“내일 저녁에 들렀다가 학생들 몇 인터뷰하기로 했어.”

“피터랑은 점심 먹으니까, 끝나고 바로 가도 될까?”

“그렇게 알고 있을게.”

곧 비행기가 이륙했다.

나는 길게 하품을 하고 잠으로 빠져들었다.

비행기는 점점 고도를 향해 올라갔다.

지금 내 인생이 딱 그랬다.

고도를 향해서 마지막 힘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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