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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09화 (109/231)

제109화

한창 자랄 때라 그런지 이틀 연속 스테이크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나와 마크와 데니스는 허겁지겁 스테이크를 입으로 밀어 넣었다.

피터와 그레이스만 천천히 스테이크를 먹었다.

“성국이는 그럼 어릴 때부터 보신 거네요?”

“네. 성국이 처음 봤을 때가 열 살이었나. 한국 나이로요. 그때도 정말 나이답지 않게 당차서 놀랐는데,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은 몰랐어요.”

[내 얘기는 그만하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고.]

나는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피터와 그레이스를 번갈아봤다.

데니스가 은근슬쩍 내 옆구리를 찔렀다.

“성국, 그렇게 노려보면 두 사람이 말을 못 하지.”

[헛. 들켰나….]

나는 스테이크 마지막 한 조각을 밀어 넣고는 마크와 데니스를 쳐다봤다.

둘도 접시를 거의 비운 상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하품을 했다.

“성국아, 피곤해?”

피터가 얼른 내 상태를 캐치했다.

[그레이스가 마음에 드나 보군.]

나는 다시 한번 소리 없이 하품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 오늘 완전 강행군이었어요. 데니스랑 맨해튼 음대에 인터뷰도 갔었거든요. 거기서 돌아오는 길에 그레이스 만난 거고요.”

마크가 덧붙여 설명도 해줬다.

“정말 피곤하겠네. 그럼,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어. 우리 협상은 계약서 정리되는 대로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피터, 약속대로 오늘 밥은 저랑 마크가 살게요.”

“잘 먹을게.”

“나도 잘 먹을게.”

그레이스도 우아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빨리 가란 말이구나.]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크와 데니스도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마크와 밥값을 반반 냈다.

“성국, 이렇게 돈 쓰니까 우리 진짜 동업자 된 거 같고 좋은데.”

“앞으로 돈 많이 벌어도 우리 이렇게 돈 낼까?”

“좋지. 돈 진짜 많이 벌면 가끔은 내가 쏘기도 해야지.”

마크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 * *

호텔로 돌아온 나는 데니스와 노트북을 끼고 앉았다.

마크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성국, 피곤한 거 아니었어?”

“피터랑 그레이스 자리 마련해 주려고 한 거야. 우리가 피해줘야 두 사람이 자연스레 이야기 많이 하지.”

“오늘 소개팅 자리였던 거야?”

마크가 놀라 물었다.

[눈치 없는 자식.]

“의도한 건 아니지만, 둘 다 싱글이니 괜찮을 것 같아서.”

“성국이도 은근 눈치 없는데, 마크 너는 더 없구나?”

[데니스, 뭐라는 거야?]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데니스를 쳐다봤다.

“성국, 피터랑 그레이스랑 사귀게 되면 사업하는 데 도움 될 것 같아서 소개시켜준 거지?”

[역시 예술가는 다른가. 눈치가 빠르네.]

“뭐 그런 것도 좀 있고…. 하지만 난 정말 피터도 좋은 사람 같고, 그레이스야 당연히 좋은 사람이고 해서 소개해준 거야. 외로운 사람들끼리 뉴욕에 있는데, 만나면 좋잖아.”

“대박! 나만 몰랐던 거네!”

[응, 마크. 너는 진짜 눈치는 정말 없어.]

마크가 어이없다는 듯 맥주를 들이켰다.

“마크, 진정해. 근데 난 오늘 좀 흥미로웠어.”

“데니스, 넌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성국이 보면 우리보다 나이도 어린데 항상 성숙하게 행동하잖아. 목적도 분명하고. 근데 오늘 약점을 알았어.”

[내 약점을 알았다고? 나 약점 같은 건 없는 남자인데…. 근데 왜 자신 없어지지….]

데니스는 피식 웃더니 나를 쳐다봤다.

“성국, 기분 나쁘게 듣지 마.”

[들어서 기분 나쁠 말은 안 하면 되는 거잖아!]

“어서 말해봐, 데니스. 뭔데?”

마크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재촉했다.

“성국이 약점은 바로 연애야. 남녀 관계를 너무, 그러니까… 수학 공식처럼 이해하고 있는 거야.”

마크는 맥주를 마시며 흥미로운 눈빛으로 데니스를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성국이는 연애란 것도 목적을 가지고 보는 것 같아. 오늘 우연히 길을 가다가 그레이스라는 여자분을 만났고, 바로 피터에게 연락해서 자리를 마련했잖아.”

“그치.”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성국은 피터 옆에 그레이스를 앉혔고, 평소와 달리 말도 없이 스테이크를 마구 먹는 거야. 마치 어서 먹고 나가려는 사람처럼.”

[배가 고팠다고!]

나는 근질거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우리가 아무 말 없이 스테이크만 먹으니 피터와 그레이스가 자연스레 대화를 시작했고, 성국은 마치 그때를 기다린 것처럼 스테이크를 입에 욱여넣고 하품을 해댔잖아. 성국이가 원래도 계획적으로 모든 일을 진행하는 건 알았지만, 그건 몰랐던 거지.”

[내가 뭘 몰라!]

“연애와 사람의 마음은 계획대로 절대 진행되지 않는다는 거.”

“맞아! 맞아!”

마크는 손바닥까지 치며 웃고 있었다.

[지금 감히 날 놀리는 거야?]

“성국, 맞지?”

데니스가 나를 쳐다봤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해.”

“성국이가 저렇게 삐친 척 말하면 맞는 거야.”

마크는 나 놀리기에 이미 신이 난 상태였다.

[이 녀석들이랑 좀 거리를 둬야겠어. 날 너무 잘 아는데….]

데니스는 마크의 응원에 힘입어 계속 떠들어댔다.

“성국이는 한마디로 아직 연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게 내가 내린 결론이야!”

“난 열두 살이니까.”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저번 생에서 연애야 수없이 했지만, 항상 나는 갑의 위치였다.

여자들은 내가 빙긋 웃기만 해도 뭐든지 다 해줬다.

연애의 정석 같은 책들은 몇 권 보기도 했지만, 굳이 어렵게 여자의 심리까지 파악할 이유는 대부분 없었다.

[그게 약점이 된 건가…. 책이라도 읽어야 하나….]

데니스가 웃으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쳐다봤다.

“성국, 너 분명 지금 연애학개론 같은 책이 있나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지?”

뜨끔.

[데니스 저 녀석, 사람 속을 꿰뚫고 있네.]

마크가 신기한 듯 물었다.

“데니스, 넌 어떻게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아는 거야?”

“영화나 소설, 모든 것은 사실은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 그럴듯하게 만드는 거잖아. 그 안에 캐릭터들도 살아 숨 쉬듯 그려야 하고. 그러려면 사람의 심리를 잘 알아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거거든.”

“데니스, 난 절대 관찰하지 마.”

마크가 한 발짝 뒤로 몸을 뺐다.

“나쁜 의미로 관찰하는 게 아니라… 완벽한 성국이 같은 친구한테도 사실은 약점이 있다, 그런 거 인간적인 거잖아. 평소에는 외모도, 하는 행동도 분명 애늙은이인데, 연애에서는 완전 약하잖아. 너무 인간적이지 않아?”

“성국이가 실전 연애에는 약하지. 아니지, 성국이는 실전 연애 경험이 전무하잖아.”

“마크,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내가 얼른 마크를 놀렸다.

마크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더니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나, 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뭐야, 전혀 안 놀라워.]

마크는 금사빠였다.

데니스도 별로 놀라워하지 않았다.

“제시는 포기한 거야?”

“응. 제시는 내가 넘기에는 너무 높은 허들 같아. 뭐, 제시가 나 좋다고 하면 모르지만.”

[꿈 깨, 마크.]

“그래서 누군데?”

데니스가 재촉했다.

“미셸 어때?”

[혹 미셸! 내가 아는 미셸? 이런 헛다리 전문 녀석 같으니라고. 쯧쯧쯧.]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오늘 데니스의 맨해튼 음악 학교를 연결해준 건 미셸 조나였다. 그 말인즉슨, 데니스와 미셸 조나가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단 말이었다.

나는 얼른 데니스의 눈치를 살폈다. 당혹감이 얼굴에 비쳤다.

[내가 연애는 몰라도, 눈치는 한 눈치 한다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먹고살려면 탑재해야 하는 건 바로 눈치야.]

마크가 신이 나서 미셸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엘렌 윈프리 쇼 때문에 만났지만, 미셸… 굉장히, 사람이 뭐랄까. 시원시원하고. 그리고 우리 어리다고 무시하지도 않고… 말도 잘 통할 것 같아.”

“잘 통하는 거 아니고 그럴 것 같다는 거지?”

내가 묻자 마크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는 데니스를 슬쩍 쳐다봤다.

“데니스, 할 말 없어? 나는 말이야. 친구 사이에 이성 문제로 꼬이는 거 딱 질색이야.”

“아, 그게….”

데니스는 몇 번 어색하게 말을 꺼내더니 마크를 쳐다봤다.

“마크, 사실은 미셸이랑 내가 연락을 자주 주고받거든.”

“…어… 지, 진짜?”

마크의 큰 두 눈이 흔들렸다.

[지진 난 줄.]

나는 팔짱을 끼고 뒤로 몸을 뺐다.

[이런 건 당사자들끼리 해결하는 거야.]

데니스는 몇 번 머리를 벅벅 긁더니, 마크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아직 사귄다, 뭐 그런 관계는 아니야. 그리고… 나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는데, 이야기도 잘 통하는 거 같고. 나는 영화에 관심이 많고, 미셸은 방송 일을 하니까. 서로 통하는 게 많다고 할까. 근데 아직 그 정도야.”

마크가 갑자기 크게 웃어댔다.

“푸하하하. 데니스! 걱정 마!”

[마크, 또 오버한다.]

내가 오랫동안 마크를 봐온 결과, 마크는 지금 엄청 당황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크의 말이 빨라지고 논리는 없어졌기 때문이다.

“데니스, 나도 미셸한테 막 관심이 갔던 거 아니야. 제시가 나를 안 받아주니까. 대학생도 됐는데 나도 누구라도 연애를 해야 할 거 아니야. 난 미셸이랑 대화 나눈 것도 별로 없고. 사실은 인터뷰가 다야. 그러니까 뭐, 미셸을 짝사랑하고 그런 거 전혀 아니니까, 걱정 마. 난 괜찮아. 진짜 괜찮아. 진짜 괜찮을 거야. 이런 일 한두 번 있는 것도 아니고….”

나는 마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크, 맥주나 마셔.”

“…아, 맥주. 그렇지. 마셔야지. 오늘 같은 날 마셔야지. 말도 못 걸어봤는데, 차였잖아.”

“마크… 미안. 만약 미셸이 나한테 관심 없으면 바로 알려줄게.”

[데니스, 마크 비참하게 왜 그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크는 맥주를 벌컥 마셨다.

“아, 아니야. 내 영혼의 반쪽도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할 거야. 그렇겠지, 성국?”

“아마도….”

[앞으로는 1인 가구가 대세가 될 거야. 마크 너도 동참해!]

나는 마크의 어깨를 도닥였다.

* * *

맥주를 연달아 세 병을 마신 마크는 충격으로 침대에 뻗어버렸다.

[그래, 차라리 자는 게 낫지.]

데니스는 맥주를 홀짝였다.

“내가 너무했나….”

“진실은 빨리 알릴수록 좋아. 걱정 마. 마크가 뒤끝은 없어. 금사빠라 금방 빠지고, 금방 또 빠져나와. 그러곤 굶주린 해파리처럼 누굴 찾아 헤맬 거야.”

“그럼 다행이고…. 근데 왜 해파리야? 하이에나도 아니고?”

“마크가 은근 투명하거든. 속내가 다 보인다고 할까. 해파리 마크. 나만 혼자 생각하는 마크 별명이야.”

“성국, 너도 은근 웃긴 데가 있어.”

[내가 재벌 중에서는 제일 웃겼는데. 그런 말은 또 할 수 없지.]

나는 깡생수를 들이켰다.

“데니스. 솔직히 너, 미셸이랑 사귀는 거지?”

내가 진지하게 물었다.

데니스는 내성적인 편이고 신중한 성격이었다.

뭔가 확실한 단서가 없다면 저 정도로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말에 데니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 사귀자고 서로 말한 건 아니고. 그래도 호감은 확실한 거 같아. 내일 하버드로 가기 전에 만나기로 했어.”

“물론 넌 처음엔 우리 이야기도 하면서 같이 만나는 거냐고 떠봤겠지? 근데, 미셸이 둘이 보자고 한 거지? 내 추측 어때?”

“정확한데.”

데니스가 수줍게 미소 지었다.

어깨가 간만에 올라갔다.

“데니스, 내가 연애는 모르지만 눈치는 빠르지?”

“그래, 그건 인정할게.”

데니스가 빙긋 웃었다.

“데니스, 우리 중에 가장 빨리 솔로 탈출한 거 축하해!”

“고마워.”

나는 뒤를 돌아 침대에 뻗어서 자는 마크를 뒤돌아봤다.

[하아, 가족들 말고 챙겨야 할 놈이 한 명 더 늘었네. 쯧쯧쯧.]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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