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11화 (111/231)

제111화

마크가 스파이더맨 의상을 입고 내 앞에서 오락가락했다.

“성국, 너 하품했어? 눈이 왜 빨개?”

“그냥. 동생들이 보고 싶어.”

내 말에 마크가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한참 쳐다봤다.

“정말, 성국아. 넌 이럴 때는 꼭 열두 살 같긴 해.”

“지희 많이 컸을 텐데.”

“역시 오빠는 오빠구나.”

나는 멍하니 아이언맨 코스프레 의상을 쳐다봤다.

“성국아, 어서 입어. 대학교 1학년 할로윈 파티는 오늘뿐이야.”

“응.”

나는 아이언맨 복장을 입고, 손에 아이언맨 마스크를 들었다.

곧 문이 열리면서 데니스가 뛰어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데니스의 오늘 의상은 뭔지 알 수 있었다.

“데니스, <오즈의 마법사> 양철 나무꾼이야?”

“응. 내 심장은 도로시가 가져올 거야.”

“그 도로시가 미셸이지?”

“응.”

데니스가 쑥스럽게 웃었다.

마크는 부러운 눈으로 스파이더맨 가면을 썼다.

“난 MJ를 찾아야겠어.”

“성국아, 너도 오늘 파티에서 여자 친구라도 만들어. 맨날 마크랑 나랑 어울리지 말고.”

“아이언맨은 원래 고독한 거야.”

나는 아이언맨 가면을 썼다.

* * *

마를린 먼로가 케네디 대통령 생일에 나타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던 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제시가 문을 열었다.

“다들 어서 와.”

평소보다 억양도 다소 느릿하게 진짜 마릴린 먼로 흉내까지 냈다.

“스파이더맨은 보나 마나 마크고, 아이언맨이 성국이지?”

“응.”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 다들 신나게 즐겨.”

이때. 뒤에서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 분장을 한 미셸이 등장했다.

“양철 나무꾼, 내가 심장 가져왔어.”

“고마워, 도로시.”

데니스와 미셸 커플은 파티장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나와 마크도 파티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역시 하버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시의 할로윈 파티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정말 이런 20대 파티는 내 취향 아닌데. 술도 싸구려고. 음료도 저질이고. 하아.]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구석으로 숨어들었다.

이때, 누가 봐도 윙클 형제 중 한 명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금발에 저 떡대. 거기다 저 키의 하버드 대학생은 흔치 않았다.

[오른쪽 입꼬리에 점이 있는 게 캐머런이니까….]

내게 다가오는 건 타일러였다.

캐머런과 타일러는 많이 닮았지만, 성격은 좀 달랐다.

타일러가 좀 더 계산적이고 똑똑했지만 그런 모습이 겉으로 보여서 친구들은 많지 않았다.

그에 비해 캐머런은 성격 좋은 부잣집 도련님 같았다. 능력은 별로 없지만, 성격 좋아서 친구가 많은 그런 타입이었다.

지금 타일러가 내게 접근하고 있단 것은 뭔가 계산된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타일러가 날 보며 빙긋 웃었다.

“마크, 맞지?”

[이런, 어쩌지.]

* * *

1시간 전.

아이언맨 복장을 한 나와 마크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재미있는 내기를 떠올렸다.

“마크, 우리 이 복장으로 할로윈 파티 간다고 ‘페이스 페이퍼’에 올리고는 서로 바꿔 입고 가는 게 어때?”

“성국, 천재인데! 그럼 사람들은 아이언맨 복장을 한 나를 너로 착각할 거잖아.”

“그렇다고 이상한 짓 하면 절대 안 돼!”

“알았어. 이 기회에 나도 여자들에게 인기남 좀 되어보고 좋지.”

마크는 대찬성했다.

우리는 얼른 옷을 바꿔 입고 데니스 앞에 섰다.

“데니스, 우리 구분돼?”

“와, 머리까지 다 감추니까 전혀 모르겠어.”

아직 무럭무럭 자라는 중인 나와 마크는 키가 얼추 비슷했다. 내가 몇 달 사이에 마크를 조금 추월하긴 했지만,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었다.

“마크, 문제가 있어. 스파이더맨 쫄쫄이잖아!”

“성국, 네가 먼저 제안한 거야. 난 아이언맨 슈트 너무 좋아.”

“바지 어디 있어, 바지!”

나는 얼른 바지를 입었다.

뭔가 어정쩡했지만, 졸라맨으로 할로윈 파티에 갈 순 없었다.

데니스가 우리를 보고 소리쳤다.

“자, 나를 봐주세요.”

찰칵. 찰칵.

그렇게 나와 마크는 서로 의상을 교체해서 입고 할로윈 파티장으로 향했다.

마크는 ‘페이스 페이퍼’에 내가 아이언맨으로 등장할 거라고 했으니, 여자들에게 엄청 많은 대시를 받을 거라고 기대했다.

[마크 덕분에 파티를 조용히 즐길 수 있겠네.]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 * *

타일러의 등장에 나는 잠시 주춤했다.

말을 하면 분명 나인지 알아챌 것 같아서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인 건 음악이 미친 듯이 흘러나오고 있어서 말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난 스파이더맨 복장이라 입까지 쫄쫄이가 점령하고 있었다.

나는 손을 들어 타일러를 반겼다.

“마크, 혼자야?”

“응.”

나는 작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일러는 내게 오더니 슬쩍 귓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마크, 피터한테 성국이 투자받기로 했다던데. 맞지?”

“응.”

[역시 다른 꿍꿍이가 있었군.]

“계약 조건 잘 살핀 거야? 혹시 너한테 불리한 조항이 있는 거 아니야?”

“어?”

나는 일부러 좀 놀란 척하며 타일러를 쳐다봤다.

“피터가 유명한 투자의 신이긴 하지만, 비즈니스는 모두 성국 담당이잖아. 성국이를 너무 믿지 마. 피터랑 이면 계약서를 썼을 수도 있잖아.”

[이럴 계획이었구나.]

나는 잠자코 타일러의 말을 들었다.

“솔직히 개발은 네가 다 한 거잖아. 성국은 얼굴마담이고. 근데 너랑 성국이 똑같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게 말이 돼?”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우리 생각은 그렇다고. 라이언 클럽에 널 못 초대한 것도 네가 개발자란 사실을 성국이 전혀 말 안 해서 우리는 몰랐다니까.”

[나와 마크를 이렇게 이간질시키려고 한 거구나.]

나는 조금 놀란 얼굴로 타일러를 쳐다봤다.

타일러는 조금 더 가까이 귓가에 속삭였다.

“마크, 우리 아버지가 유명한 사모펀드 운영자야. 너와 함께 언제든지 계약을 유리하게 조정해줄 수 있단 것만 기억해줘. 이건 우리 아버지 명함이야.”

나는 타일러가 건넨 명함을 받아 들었다.

“그럼, 연락 줘.”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정신없는 할로윈 파티 음악과 짧은 대답으로 위기는 모면했다.

나는 타일러가 건넨 명함을 바라봤다.

만약 마크가 이 명함을 받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근데 마크 어디 있지?]

이때였다.

“와아아아!”

환호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아이언맨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 막춤을 추고 있었다.

유일하게 나와 마크가 옷을 바꿔 입은 것을 아는 데니스가 웃으며 디지털카메라로 촬영 중이었다.

정말 마크의 막춤은 최악이었다.

제시가 웃으면서 내게 다가왔다.

“마크, 성국이 오늘 단단히 마음먹었나 봐.”

“그러게.”

“마크, 성국이 막춤 덕분에 여자애들 많이 떨어져 나가겠어.”

[마크, 저 자식을.]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푸하하하! 성국, 나 오늘 너무 너무 신났어. 나 춤춘 거 봤어?”

나는 침대에 앉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심각하게 고뇌에 빠져 있었다.

마크의 막춤, 그러니까 마크가 추고 사람들은 내가 추는 것으로 아는 그 막춤이 ‘페이스 페이퍼’를 휩쓸고 있었다.

“성국, 진정해. 화난 거야?”

“화난 게 아니라 좌절한 거지. 어서 사진 찍어서 올리자.”

“그렇게 금방 올리면 재미없잖아. 내일 아침에 올리자. 오늘 하루 동안은 그래도 사람들이 성국이 막춤을 춘 줄 알 거잖아. 와, 엄청 재미나다.”

마크는 신이 나서 종알거렸다.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성국, 실망하지 마. 내가 그 막춤을 추고 테이블에서 내려왔는데도 불구하고 나한테 전화번호를 준 여자들이 이렇게나 많아.”

마크는 손에 쥔 연락처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그래, 마크. 하루라도 즐거웠다니 다행이야.”

“근데 넌 재미있는 일 없었어, 성국?”

“있었어.”

나는 타일러가 내민 명함을 마크에게 건넸다.

“데이먼 윙클? 타일러, 캐머런 형제랑 성이 같네.”

“응. 그 쌍둥이 아버지가 운영하는 사모펀드야. 오늘 나에게 타일러가 다가왔었어.”

“진짜? 그럼 나인 줄 알고 다가간 거겠네?”

“응.”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치를 보더니 마크가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눈치채곤 차분히 물었다.

“뭐 이상한 제안이라도 했어?”

“마크, 솔직히 물을게. 진심으로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어. 이건 앞으로 우리 동업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일이거든.”

“응. 알았어.”

마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크, 너는 내가 너보다 더 주목받는 게 혹시 마음에 걸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아이디어를 냈지만, 개발자는 너잖아.”

“그 아이디어가 굉장히 중요한 거고, 너도 나한테 프로그램 배워서 많이 도와주잖아. 그리고 비즈니스는 네가 다 하잖아. 솔직히 보딩스쿨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버드까지 ‘페이스 페이퍼’ 가입자가 는 건 다 네 인기 덕분이잖아. 난 진짜 아무렇지도 않아.”

마크는 제법 진지했다.

“처음엔 나도 개발자인데, 사람들이 너무 안 알아주는 것 같아서 좀 서운하기도 했어. 하지만 너도 날 최선을 다해서 소개했고, 사람들이 내가 ‘페이스 페이퍼’를 만든 공동 개발자라는 거 많이 알아. 너보다 내가 스타성이 없는 건 사실이잖아.”

“솔직히 말해줘서 고마워, 마크.”

나는 파티장에서 있었던 일을 마크에게 짧게 이야기했다.

“타일러가 우리를 이간질하려고 하더라고. 너만 빼가려고 작전을 수정한 것 같아.”

“말도 안 돼.”

[그렇지. 말도 안 되지. 우린 이미 계약으로 꽁꽁 묶인 상태잖아.]

윙클 형제는 아마 우리가 개발 초창기부터 계약서를 썼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크는 내 흉내 내느라 못 마신 맥주를 들이켰다.

“성국, 그건 전혀 걱정하지 마. ‘페이스 페이퍼’는 우리 둘이 만든 거고, 둘 중에 한 명이 빠진다면 아무 의미도 없어.”

마크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마크, 요즘 점점 멋있어지는 거 같은데?”

“그치? 성국. 나 요즘 명언집 엄청 읽어.”

[그럼 그렇지. 사람 안 변해.]

내가 고개를 흔들자, 마크가 웃어댔다.

“성국, 우리 이 관계 절대 변하지 말자.”

[그건 내가 할 소리야, 마크. 너, 나 배신하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복수할 거야.]

나는 유쾌하게 웃었다.

“당연하지, 마크.”

달칵.

기숙사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데니스가 양철 나무꾼 가슴에 빨간 하트를 붙이고 들어왔다.

“미셸이 일이 바빠서 좀 전에 갔어.”

“데니스, 드디어 양철 나무꾼도 심장을 찾은 거야?”

“응. 완전 팔딱팔딱 뛰어. 근데 성국, 막춤 진실은 언제 공개할 거야?”

“내일 아침에 하려고 하는데, 어때?”

“자정에 하자. 마치 신데렐라처럼.”

역시 예술가다운 발상이었다.

데니스가 카메라를 들고 우리 앞에 섰다.

우린 둘 다 아직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 차림이었다.

“둘 다 다시 가면을 쓰고, 내가 카메라로 촬영을 시작하면 가면을 벗는 거야. 알았지?”

나와 마크는 다시 가면을 썼다.

나는 스파이더맨.

마크는 아이언맨으로 돌아갔다.

“하나, 둘, 셋 하면 벗는 거야. 하나, 둘, 셋!”

동시에 나와 마크는 가면을 벗어서 뒤로 던졌다.

* * *

밤 12시 정각.

나와 마크는 각자의 ‘페이스 페이퍼’에 사진을 올렸다.

- 오늘 막춤을 춘 사람은 제가 아니라 마크였어요!

내가 올린 글에 미친 듯이 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크의 ‘페이스 페이퍼’도 터져 나가고 있었다.

“성국, 나한테 번호 준 여자들이 죄다 너한테 번호 좀 전해달래. 이런 말도 있어. 막춤 추는 거 보고 실망했는데,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마크, 아이언맨이 너무 조용해서 당연히 너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많아. 내가 그렇게 나대나?”

“성국, 몰랐어?”

[그저 난 어디 가든 시선 집중이 될 뿐이야.]

데니스도 댓글 읽기에 동참했다.

- 스파이더맨이 생수 들고 있을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 어쩐지 스파이더맨이 몸이 너무 좋더라.

“마크, 막춤이 자기 스타일이었다고 연락 달래. 그런데 이름이… 미안. 저스틴이네.”

“그만 좀 놀려들!”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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