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집안을 일으켜세우겠습니다-112화 (112/231)

제112화

타일러의 얼굴이 붉어졌다.

방금 올라온 성국의 ‘페이스 페이퍼’ 글 때문이었다.

캐머런이 타일러의 눈치를 살폈다.

“타일러, 왜 그래?”

“젠장!”

타일러는 테이블을 손으로 내려쳤다.

“무슨 일이야?”

타일러는 아무 말 없이 성국의 ‘페이스 페이퍼’를 캐머런에게 보여줬다.

“설마 너… 마크라고 착각해서 이야기한 거야?”

“응.”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었다.

“전성국, 나를 가지고 놀았어. 내가 꼭 갚아줄 거야.”

“타일러, 진정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사과하든지, 암튼 우리가 한 학년 선배니까 잘 구슬려보자.”

타일러는 기분 나쁜 얼굴로 맥주를 들이켰다.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안 되는 사람이 유일하게 성국이었다.

타일러는 그걸 견딜 수 없었다.

“전성국, 가만 안 두겠어!”

* * *

나와 마크는 피터와 마주하고 앉았다.

옆으로는 각자의 변호사들이 앉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뉴욕은 이제 완연한 겨울이었다.

피터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쳐다봤다.

“이렇게 계약까지 오다니 정말 꿈만 같아.”

“저희도요.”

“자, 그럼 계약서에 사인할까?”

“네.”

피터가 먼저 사인을 하고 우리에게 계약서를 건넸다.

나와 마크는 공동 창업자로서 각자 사인을 마쳤다.

드디어 ‘페이스 페이퍼’가 정식으로 투자를 받고 세계 최대의 SNS 세상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사인을 마치자 피터가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 우리는 한배를 탄 거야. 잘해보자.”

“네.”

* * *

저녁 식사는 뉴욕의 가장 유명한 피자집에서 이뤄졌다.

슈트 입고 가야 하는 레스토랑보다 이곳이 좀 더 편해서였다.

슈트를 입은 피터가 어색하게 피자를 한 입 물었다.

“이런 데는 너무 오랜만인데. 담당 의사가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라고 항상 난리거든.”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요.”

“그래, 정말 특별한 날이지.”

피터는 우리에게 최대한 맞춰줬다.

“‘페이스 페이퍼’ 스튜디오를 하버드 근처에 찾아보려고 하는데, 어때?”

“저흰 좋아요.”

“참, 피터.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겨울방학에는 저랑 마크 둘 다 인생의 마지막 휴가를 보내고 오려고 하거든요.”

피터도 수락한 내용이었다.

“응. 알고 있어.”

“그 일 이후로 저희 둘은 ‘페이스 페이퍼’에 인생을 걸어 보려고요.”

“학교는?”

“그만두려고요.”

피터는 심각한 얼굴로 마크와 나를 쳐다봤다.

“이런 말 꼰대 같을 수도 있는데. 부모님과는 상의가 된 일이야?”

“아직이요. 근데 저랑 마크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학업이랑 병행하기 어렵기도 하고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실패를 해도 저나 성국이나 훨씬 회복이 빠를 수도 있잖아요. 그렇다고 실패하겠다는 말은 절대 아니에요!”

마크가 놀라 손사래를 쳤다.

“알지. 근데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두 사람 다 젊고 학업보다 창업에 흥미를 가진다는 것도 놀랍고 대견해. 그래서 하는 말인데. 2학기는 우선에 학업이랑 병행하고, 그다음에 사업이 좀 더 커지면 학교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어때?”

나와 마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부모님들도 다들 그렇게 말씀하실 거예요. 우선 저희의 결심은 그만큼 이 ‘페이스 페이퍼’에 집중하겠다는 거예요.”

“내 두 사람의 뜻은 충분히 알겠어. 이건 딴말인데 말이야. 이 맛있는 피자를 내가 그동안 왜 안 먹은 거지!”

피터는 피자를 한 판 더 주문했다.

“그레이스에게도 한 판 사다줘야겠어.”

“피터, 그레이스랑은 이제 어떤 관계세요?”

“사실은 이 계약에 영향 줄까 봐 아무 말 못 하고 있었는데, 오늘 집에 가자마자 바꿀 거야. 연애 중으로.”

피터가 빙긋 웃었다.

“세상 참 편리해졌어. 예전에는 내가 누구랑 사귀고, 그런 거 파티 가서 귀찮게 다 말해야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도 없잖아. 참, 성국은 방학 때 한국 갈 거고, 마크는 뭐 할 거야?”

“유럽 배낭여행 떠나게요.”

“멋지네. 참, 방학 전에 잠시 시간 좀 낼 수 있어?”

피터는 피자를 오물오물 먹으며 물었다.

“한 일주일 정도 시간 있어요.”

“잘됐네. 찰리 좀 만나러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면 어때?”

“찰리요?”

“찰리 잡스. 다들 알지?”

[당연하지!!!]

저번 생에서 그토록 만나고 싶었는데, 만나지 못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가 찰리 잡스였다.

찰리는 사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할아버지 전주신 회장을 만나러 한국에 잠시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막 삼전에서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때였다.

할아버지는 세계적인 기업인 찰리 잡스의 아플과 만나기를 원했고, 그 당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찰리 잡스는 한국까지 와서 할아버지를 잠시 만나고 떠났다.

저번 생에서 그 당시 나는 기어 다닐 때라 할아버지 전주신 회장과 찰리 잡스가 만났다는 사실도 후에 기사 검색하다가 알았다.

“피터, 찰리 잡스는 어떻게 아세요?”

“내가 한 최악의 투자 중에 하나거든.”

“네에?”

나와 마크가 의아한 얼굴로 피터를 쳐다봤다.

“찰리가 아플사를 떠났을 때가 있는데, 그때 나도 아플사 주식을 다 뺐어. 그러고는 지금까지도 다시 못 사고 있으니까 내가 한 최악의 투자 실패지.”

피터는 씁쓸하게 웃었다.

* * *

기숙사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뉴욕을 이틀 만에 오갔더니 아무리 10대라고 해도 피곤하긴 했다.

드륵. 책상 위에 내던진 핸드폰이 울렸다.

[메시지인가? 누구지?]

머리로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눈이 스르르 감기고 말았다.

달칵.

문 열리는 소리와 닫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둘렸다.

데니스가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성국아, 자는 거야?”

“으으응.”

나는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도 지칠 때가 있구나. 성국아, 나 참 할 말 있는데….”

“무스은 마아알?”

“안 되겠네. 내일 일어나면 이야기하자.”

나는 또 눈을 감았다.

* * *

12시간을 자다니….

정말 이런 적은 기어 다닐 때 빼고는 기억에도 없었다.

아이큐 121의 충격을 받고 나서는 잠을 줄여가며 공부한 나였다.

훗날 자서전을 쓴다면 나는 이렇게 쓸 것 같다.

[전성국만큼 살면 재벌 된다. 캬아, 제목 죽이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성국아, 뭐가 그렇게 좋아?”

“오랜만에 푹 잤더니 상쾌해서.”

“너 정말 어젯밤에 계속 메시지도 오고 전화도 오던데, 아무것도 모르고 자더라.”

“그랬나.”

나는 그제야 핸드폰을 확인했다.

제시에게서 몇 개의 메시지와 전화도 와 있었다.

“제시네….”

“참, 데니스. 어제 잠결에 나한테 뭐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어… 성국, 너한테 이건 허락받아야 할 것 같아서.”

“뭔데?”

“미셸한테 드럼 연주자 이야기 했더니, 미셸이 같이 써보고 싶다고 해서. 미셸은 방송 작가 경력도 있잖아. 나한테 많이 도움도 될 것 같고….”

[역시 예술가들은 여자한테 약해.]

“데니스, 미셸이랑 같이 써. 나도 이제 다음 학기부터는 ‘페이스 페이퍼’ 때문에 엄청 바빠질 거야.”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성국, 나중에 영화 되면 각본에 네 이름도 꼭 넣어줄게.”

“데니스, 정말 투자 안 되면 나한테 와. 내가 투자할 테니까.”

“말이라도 고마워.”

[무슨 소리야. 내가 투자해주게 해서 고마운 거지.]

나는 씨익 웃었다.

“‘페이스 페이퍼’ 창업하면 마크랑 너, 학교는 제대로 다닐 수 있어?”

“피터가 학교 근처에 우선 스튜디오를 하나 얻어준다고 했거든. 거기서 마크랑 시작할 거 같아. 학교는 틈틈이 다닐 건데, 솔직히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어.”

“나도 알바 자리 하나 줄 수 있지?”

“물론이지.”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한 학기지만, 데니스에 대해서는 파악이 끝났다.

마크가 해파리라면 데니스는 갈대였다.

우유부단한 면이 많았고, 특히 여자한테는 약했다.

[갈대 데니스, 시나리오 열심히 써. 내가 투자할게.]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차, 제시….]

나는 얼른 제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제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후다닥.

복도 끝에서부터 누가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노크도 없이 방문이 열리더니 마크가 숨을 헐떡였다.

“성국아….”

“어, 왜?”

“제시가…. 제시가 말이야.”

“제시가 뭐?”

“연애 중으로 프로필을 업데이트했어.”

[그래서 나한테 그렇게 전화를 했던 거구나.]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성국아, 안 놀라?”

“성인이 연애하는 게 놀랄 일이야?”

“제시잖아. 제시는 그러니까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널 좋아한다고 생각했잖아.”

“마크, 난 미성년자야. 제시가 나한테 들이대는 순간, 제시는 범법자가 되는 거잖아.”

“그렇긴 한데….”

데니스도 꽤 당황한 얼굴이었다.

“성국, 정말 제시한테 관심 없었어?”

“응. 제시는 내 스타일이 아니야.”

나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마크는 좀 진이 빠진 느낌이었다.

“뭐야, 나만 호들갑을 떨었네.”

“그나저나 마크. 난 네가 괜찮은 지가 더 궁금한데?”

“그, 그거야… 어쩔 수 없잖아. 나 같은 너드를 누가 좋아하겠어.”

[하아, 정말 마크는 내 어깨를 무겁게 하는 인생의 짐이었다.]

나는 기지개를 늘어지게 켜고는 책을 챙겼다.

“마크. 수업이나 가자. 늦겠어.”

“어… 알았어.”

* * *

강의실에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와 마크는 중간에 앉아서 학생들과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국, 주말에 뉴욕에 있었던 거야?”

“응.”

“마크, 참 내 친구가 저스틴인데. 할로윈 때 네 막춤 보고 반해서 연락처 달라고 난리야. 마크, 혹시 괜찮다면.”

“노! 저스틴이라면 남자애잖아. 절대 싫어!”

마크는 남자에 대해서는 철저히 철벽을 쳤다.

“저스틴 진짜 괜찮은 애인데….”

그때, 강의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뒤돌아보니 제시가 윙클 형제 한 명과 팔짱을 끼고 강의실에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매의 눈으로 윙클 형제 입매를 살폈다. 점이 없었다.

[역시 타일러네. 쯧쯧. 타일러. 난 그런 걸로 질투 같은 거 안 하는데….]

이때, 제시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제시는 나를 보고는 씨익 웃더니 타일러의 팔짱을 더 다정하게 꼈다.

“대박! 성국아, 쌍둥이 중 누굴까?”

“타일러 같아. 입 옆에 점이 없잖아. 그리고 타일러 표정이 좀 더 거만해.”

제시가 자리를 잡고 앉자 타일러는 제시와 짧은 입맞춤을 했다. 그러곤 고개를 휙 돌려 나를 찾는 게 보였다.

손이라도 들어서 나 여기 있다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꾹 참았다.

곧 나를 찾은 타일러는 한동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마치 자신이 승리했다는 듯이.

[쯧쯧. 정말 저 둘은 전혀 관심 없는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타일러가 강의실을 떠나자 제시 주변으로 여자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제시, 타일러야? 캐머런이야?”

“타일러.”

“어머, 제시 넌 어떻게 구별해?”

“타일러가 조금 더 몸이 좋아.”

“누가 먼저 대시한 거야?”

“당연히 타일러지. 타일러가 할로윈 파티 이후로 나한테 매일 꽃을 보냈거든.”

여자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속보이는 자식.]

마크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국, 분명 타일러가 할로윈 파티 일로 너한테 복수하려는 걸 거야.”

“타일러는 참 감각이 없는 것 같아. 어떻게 매번 헛다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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